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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Mar 25. 2017

이해할 수 있지만, 용서할 순 없는 것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이제 막 열다섯이나 됐을까. 열병에 걸린 한 소년이 거리에서 토악질한다. 지켜보기 힘들 정도로 고역스러운 표정이다. 벽을 짚는 선 모습이 꼭 병든 강아지 같다. 키는 멀대처럼 큰데 구부정한 몸과 앳된 얼굴을 보니 여태 어린 티를 벗지 못했다. 소년은 채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이 배수로를 통해 흘러가는 걸 빤히 지켜본다. 그 와중에도 손에 꼭 쥔 책은 비에 다 젖어버렸다. 소년은 겨우 고개를 들고 이리저리 둘러본다. 무관심을 미덕으로 여기는 도시답게 누구 하나 소년을 돌보지 않는다. 머쓱해진 소년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마침 검은 코트를 입은 나이 든 여인이 다가온다. 


 그녀의 집에서 잠시 몸을 뉜 소년은 눈을 뜨자마자 부끄러움에 급히 달아난다. 며칠간 집에서 병마와 싸우다 겨우 정신을 차린 소년은 다시 나이 든 여인을 찾는다. 제 무례함을 깨달았는지 꽃을 사 들고 그녀의 집 앞을 서성인다. 늦은 저녁에야 퇴근한 그녀는 소년을 다시 집으로 들인다. 허름한 집에 들어서니 단출한 세간에 낡은 책상이 눈에 들어온다. 욕실과 주방이 한 공간에 담겨있다. 소년은 잠시 머뭇거리다 수줍게 자신을 소개한다. 미하엘, 근처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목소리에 잔뜩 힘을 주고 민망한 인사치레를 한다. 나이 든 여인의 이름은 한나.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는 그녀는 별 대화도 없이 미하엘을 침대로 이끈다. 서로를 살피던 두 사람은 마치 당연한 수순처럼 섹스한다. 이후 매일같이 밀회를 하게 된다. 독특하게도 한나는 늘 관계 전에 미하엘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요구한다. 가방에 늘 책을 지나고 다니는 미하엘은 저녁만 되면 그녀를 위해 소설을 낭독한다. 마치 의식처럼 낭독과 섹스에 탐닉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아무런 말도 없이 미하엘을 떠난다. 이후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법대생이 된 미하엘은 우연히 참관하게 된 재판정에서 피고인 신분으로 전락한 한나를 마주한다. 열병과 같은 첫사랑과 무책임한 이별의 아픔을 안긴 한나의 몰락을 마주한다.


 “그러니까 저는, 제 말은 재판장님 같았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법정에서 나치의 조력자라는 죄목으로 추궁을 받던 한나는 모두에게 묻는다. 당신은 그때 그녀의 처지라면 어떻게 했겠는가. 독일이 벌인 전쟁, 혹독한 생활고, 유럽 전역에 퍼진 전염병. 생존이 모든 이념과 가치를 전복한 유럽 대륙에서 그녀는 나치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맹목의 사회는 그녀를 생계의 절벽으로 내몰았고, 정부는 전쟁물자 확보가 날로 어려워졌다. 보살펴 줄 가족도 없고, 문맹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 한나는 살아남기 위해 어디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권력이라도 맛봤지, 뭘 몰랐던 그녀는 오직 무지한 죄로 역사의 심판대에 올라선다.

 한나의 눈빛은 거만하고 상처받은, 길 잃은 고양이처럼 한없이 피곤해 보인다. 그것은 아무도 그리고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는 시선이었다. 그녀는 이제 전후 세대의 숙제로, 죄의식의 재물로 법정에 섰다. 당신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한나가 묻지만, 그녀의 눈엔 독일인의 복잡한 심경이 겹쳐진다. 오늘도 사무실에서 상사의 지시를 따른다. 일상이 반복되면 어느새 관성처럼 일하는 나를 발견한다. 묻고 따지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평온하다. 시대적 사명에 거리로 뛰쳐나와 돌이라도 던지며 저항했던 지난날은 서정시와 함께 사라졌다. 오로지 편안한 노후를 위해 오늘 하루를 대충 수습한다. 잠시 호흡을 고르던 한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내게 묻는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머리는 그렇지 못하다.


 이 작품은 섹스와 문맹에 관해 말해야 마땅하다. 두 사람의 충동적인 동침은 한나의 도피로 종지부를 찍는다. 가냘팠던 소년은 상실감과 폐허 같은 마음으로 청년기를 통과한다. 그리고 한나가 법정에 나타났을 때 그는 그녀가 읽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두 사람은 노골적으로 전범 세대와 전후 세대를 은유한다. 늘 서로를 마주하지만, 반대편에 서서 묘한 긴장감을 이루는 그들 관계는 독일이 가진 딜레마와 다르지 않다. 봉합할 수 없는 갈등을 지닌 두 세대은 끝내 파열한다. 한나는 뭘 몰라서 비극에 휘말렸고 미하엘은 그녀 세대의 무지함을 심판하고 죄책감을 털어내기 위한 자리에 섰다. 두 사람은 나이를 뛰어넘는 은밀한 사랑을 나눴지만, 섹스 외에 모든 소통은 미하엘이 한나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데 그쳤다. 한나는 지속해서 미하엘이 읊는 지성의 산물을 접하며 매료됐다. 한나는 그저 듣는 게 가장 속 편한 사람이다. 한나는 미하엘이 책을 다 읽어주고 나서야 섹스를 허락한다. 그녀는 관계에서 마저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다. 그녀가 미하엘에게 글을 배웠다면 어땠을까. 자존심을 접고 자신도 뭔가를 읽고 생각하는 데까지 나아갔다면 상황이 지금과 달랐을까.


 한나는 성실한 근무태도로 직장에서 사무직으로 승진하지만, 글을 읽어야 하는 자리에 오르자 급히 회사를 떠난다. 자신이 문맹이 밝혀질까 두려워 아무런 말도 없이 미하엘을 버린다. 한나의 무지하고 무책임한 태도는 제 이야기를 하길 겁내는 독일인이 가진 죄의식과 비견할 수 있다. 이는 영화가 명백하게 전범 세대에 날을 세우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류의 인격을 가진, 비상식적인 학살을 저지른 그들의 몽매함에 비수를 꽂는다.

 미하엘은 한나가 떠난 이후 평생에 걸친 후유증에 시달렸다. 자신이 그녀를 떠나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으며, 그는 감정에 무딘 남자가 되어 청년 시절 활기를 잃었다. 전범 세대의 무지함이 전후 세대를 평생 죄의식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 꼴이다. 스티븐 달드리는 두 남녀의 비극을 통해 인간적으로 한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죄를 용서할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죄의식은 세대를 타고 전이되고, 미하엘은 평생 감옥에 갇혀 사게 될 그녀를 위해 다시 책을 읽어준다. 슬픔 외에도 타고 흐르는 증오와 원망, 연민을 곁들여서, 설명해내기 어려운 복잡한 심경으로 다시 무거운 책을 펴든다. 결국 고쳐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우리 모두 그들의 과오를 알고 있다. 속죄는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출소를 앞둔 한나는 미하엘에게 묻는다. “왜 나에게 답장을 쓰지 않았어.” 미하엘은 답하지 않고 되묻는다. “죽은 자들에게 죄책감을 느끼느냐.” 미하엘이 가장 묻고 싶었던 건 죄의식의 잔존이다. 미하엘은 궁금했다. 결국 문맹을 벗어난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그때 한나의 표정은 미묘하게 실망하는 것처럼 바뀐다. “내가 뭘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내가 뭘 느끼는지도 중요하지 않지. 죽은 자들은 여전히 죽어 있을 뿐이야.” 작가는 굳이 이 장면을 넣어서 전후 세대와 전범 세대의 화해를 유예시킨다. 우리는 용서받을 수 있는가를 스스로 묻고는 변한 건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한나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끝에 이르러 난 다시 이 문장을 손에 쥔다. “내가 책을 읽어주는 것은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그리고 그녀와 내가 이야기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항변하던 영화는 결국 출구 없이 끝을 맺는다. 어쩌면 원작자인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이 작품을 쓰며 용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해받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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