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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May 06. 2017

천재는 세상과 불화한다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앤드루 호지스 저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앤드루 호지스 저

영국의 2차 세계대전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수학자 앨런 튜링에 관련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재밌게 봤다. 최초로 인공지능 개념을 생각한 수학자이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해 연합군의 승리를 이끈 암호 해독가인 앨런 튜링은 왜 이제야 내 눈에 들어왔나 싶을 정로도 흥미로운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영화는 대중적인 화법은 물론이고, 요란 떨지 않고 한 고독한 인간의 성취를 조명했다. 마치 울퉁불퉁한 지면에 평탄화 작업을 하듯 부지런하고 근면한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가끔 이렇게 할리우드가 한 세기에 걸춰 이룬 서사의 세공력을 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론 감탄하면서도 조금은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한 인간의 삶이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각색가와 연출가에 의해 걸출한 드라마트루기 될 때 과연 '앨런 튜링'은 그 안에 살아 있는 걸까. 헐리웃적인 인물로 전형화된 것은 아닐까. 그에 대한 썩 괜찮은 대답이 될 서브텍스트를 소개한다.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은 제목에서 보듯 영화에 기대어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영화의 아류라고 보기엔 900페이지에 다다르는 이 책의 광범위한 분량에 기가 죽는다. 게다가 영화가 이 책을 근거로 각색되었다고 하니 믿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저자 앤드루 호지스는 일명 앨린 튜링 박사로 불린다고 한다. 영화의 그의 삶 밑바닥에 침잠해 있는 것들을 끌어올린 전기는 영화보다 자세한 건 물론이고, 앨린 튜링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의 인생을 통째로 복기한다. 영화와 정 반대의 지점에서 잠들어 있던 그를 깨운 느낌이랄까. 그렇다면 나는 비로써 그의 삶을 완전하게 체험했다고 할 수 있으려나. 그런 으쓱함을 뒤로하고 내 생각을 정리해본다.

잘 알려지다시피 앨런 튜링은 인간적으로 매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추한 외모에 옷도 거지처럼 입고 다녔다. 헐렁한 바지에 넥타이를 띠 삼아 묶고 다니고, 잘 씻지도 않아 더러운 머리는 냄새가 났다. 거기까지면 그냥 머저리로 치부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근데 문제는 더 있다. 그의 언어적 능력은 떨어지는 반면, 수학자로서 천재적인 능력을 지녔던 것이다. 내성적인 성격에 말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늘 더듬거리던 앨런은 방에 박혀서 수학 문제를 풀며 시간을 보내길 좋아했다. 그것도 평생 그렇게 살았다. 뛰어난 수학능력은 늘 세간의 관심을 받았지만, 그는 자기보다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이 오만한 성격은 그를 머저리 왕따로 만들었고, 불행히도 죽을 때까지 외롭게 사는 운명으로 점철되었다. 

영국의 암호해독가, 앨런 튜링

대화가 힘겨운 사람은 늘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늘 자신이 삶의 맥락 속에서 길을 잃을까 불안한 시간을 보낸다. 그가 마흔두 살에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먹고 자살한 이유도 말이 야기한 고독한 사회생활에 있다고 분석되는 이유다. 결국 그는 오만한 게 아니라 말을 하지 않았기에 이해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가 한 입 먹고 죽었다는 사과 한 알이 스티브 잡스에 의해 부활하여 한국 카페에서 맥북에 붙어 그 존재감을 드리울 뿐이다.

노골적인 영웅담을 좋아하는 할리우드의 각본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앨런 튜링은 영국의 스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스타성을 이용해 다시금 멋들어지게 부활한다. 역사가 마주하길 거부했던 그의 성과에만 초점을 맞춘 허구의 드라마로 말이다. 영화는 그가 가진 단점, 그를 죽음으로 몰아세운 틈이 부른 화는 거의 생략해버린다. 드라마에 어울리는 극적인 순간, 즉 29살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암호해독가로서 훌륭하게 변모한 것에 초점을 맞춘다. 행복한 인간이 아닌 불행한 인간의 전쟁 승리 도구 제작기랄까. 아무리 괴팍한 인간이라도 전쟁 승리에 기여한 바가 있으면 영웅이 되기 마련인데, 그는 그렇게 될 수 없었다. 영국 정보부가 이 사실을 20년간 감추며 그의 삶에 드리운 명예를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윈스턴 처칠은 이 수학천재가 얼마나 전쟁 승리에 큰 기여도가 있음을 확인했음에도 죽을 때까지 기밀에 부쳤다. 앨런이 가진 불통이 부른 화였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는 한 나라가 영웅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큰 틈을 가진 사람이었다. 정치적 쓰임새는 없고, 오로지 기계적 인간으로 가솔린 같은 삶을 살았다. 

The Imitation Game, 2014

그 결과 옥색 포장지에 리본까지 단 이 영화는 '87회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고, 그의 전기는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렇다면 영화가 눙치고 넘어갔던 것들은 무엇일까. 그리고 꾸며 넣어 포장한 것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가장 큰 것은 성문란 혐의로 체포돼 화학적 거세형을 선고받은 것과 2년 뒤인 1954년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베어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일 것이다. 19살 청년과의 동거와 발각, 정신병원 수감, 사회적 몰락. 영화는 페이소스 짙게 그의 어둠을 포장했다. 영화는 생략된 지점들을 관객 스스로 채울 수 있도록 적절한 공란을 제공한다. 앨런 튜링의 인생이 영화와 책을 동시에 섭취했을 때 더 흥미로운 이유일 것이다.

그의 동성애 취향, 언어적 고지식함은 영화 속에서 최대한 옅은 색채로 색칠되었다. 이는 모두 흥행에 도움이 안되는 사생활이다. 그 단점이 장점으로 전환되는 순간의 쾌감을 강화시켜 드라마로 풀어냈다. 그를 둘러쌌던 첫사랑 크리스토퍼,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알고도 학자로서 친구로서 그와 결혼한 조앤 클라크. 두 사람이 그의 학창 시절과 성인이 되었을 때의 보호자 역할을 맡아준다. 사실 이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허구에 가깝다는 게 그의 전기를 읽은 내 생각이다. 그의 인생을 버틸 수 있게 해줬던 것은 암호였고, 그 이외는 다 쓸데없는 갈등의 연속이었다. 그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수학과 논리의 세계에서 씨름하는 것을 해방으로 여겼고, 그 방에 누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역경을 보낸 사람이었으니까. 앨런 튜링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은 대부분 그 갈등이 빚은 순간들의 참혹함과 결과가 빚은 전쟁기계라는 칭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마저도 당시 범죄로 치부되었던 동성애자라는 멍 때문에 모두 사라졌다. 결국 영화는 드라마트루기를 통해 두 연인을 투입시켜 그의 삶에도 굴곡과 행복을 오가는 파동이 있었음을 주장하지만, 만든 사람도 보는 사람도 그저 2시간의 영화를 위한 조미료였음을 잘 알고 있다.

The Imitation Game, 2014

독일의 극작가 '볼프강 힐데스하이머'는 이런 말을 남겼다. 

가치 평가에 있어 여전히 확고한 기준이 없는 후세 사람들은 고통을 겪은 인간에게 더 큰 애정을 느끼게 마련이다. 

또한, 니체 비평가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빌헬름 랑에 아이히바움'은 자신의 명저 <천재, 광기 그리고 명성>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광기다. 

앨런 튜링의 인생을 보며 한 말처럼 느껴질 정도다. 앨런 튜링은 재능에 비해 비운 했기에, 비극적 상황이 연이어 그를 덮쳤기에 오늘날에 이르러 다시금 재조명받고 있다. 그것이 영웅담이고, 천재의 숙명이기도 하다.

영화, 전기, 소설로 다양하게 변주된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텍스트는 실화와 허구, 묘사한 것과 생략된 것을 비교하며 읽는 것이 앨런 튜링이라는 암호를 해독하는 알고리즘이다. 그리고 그 해독 결과 앨런 튜링에게 이미테이션 게임이란 복잡한 논리로 무장한 독일군의 에니그마가 아닌, 사회 부적응자로서 인생이라는 씨름에서 버티기 싸움이었던 것이다. 게이가 아닌 척 연기하고, 사람처럼 사고하도록 지시받은 기계로서 평생 ‘척’ 해야 하는 게임. 어둠으로 점철된 그의 삶도, 20대 후반에 요절한 천재를 둔 가족들도 최근 다시금 말해지고 있는 이 현상을 통해 일정 부분 보상받고 위로받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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