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기분

by 박민진

오랜 세월 나는 퇴직이 가져다 줄,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긴 시간을 글에 바치는 꿈을 꾸어왔다. 함께 일하던 회사 동료들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린 가끔 옥상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은퇴 이후의 일상을 늘어놓곤 했다. 나와 줄곧 헬스장을 다니고 러닝까지 함께한 현석이는 대학까지 외국에서 나온 터라 전역하면 통번역을 하고 싶어 했다. 제가 왜 아침마다 헬스장 대신 영어 학원을 다니겠어요. 나가서는 프리랜서 하고 싶어요. 종일 운동하고 맛있는 거 먹고 혼자 일하고. 선배는 뭐 없어요? 난 쑥스러워서 전업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은 하지 못했지만, 내심 만면에 미소를 띠고 쫑알거렸다. 그게 가능하겠냐,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할리 없어. 나도 있긴 있지. 너랑 많이 비슷해. 그냥 책이랑 가까운 일이면 좋을 것 같은데. 가끔 글이나 쓰면서 단순하게 살고 싶다.


대구에서 정착한 후 꾸준히 글쓰기 시작한 뒤로 작가에 대한 관심이 되려 줄어들었다. 글을 쓰고 싶은 다급한 욕구가 사라졌다. 내 여생을 채우려고 계획했던 일에 관심이 시들해진 것이다. 별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내가 쓴 모든 글이 노트북을 덮고 나면 지난번 글과 크게 달라진 게 없이 느껴졌다. 기껏 공들여 쓴 글을 멸시하자 기분을 잡쳤다. 글을 등록할 때마다 브런치 메인과 카카오톡과 다음 홈페이지에 브런치 수상 작가라는 이름으로 올라갔고, 판교와 강남 현대백화점에서 내 글이 전시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브런치 수상 덕이었다. 그다음은? 이제는 별로 보여줄 것이 없었다. 결국 모든 것이 공백이 되었다. 스페이스바 소리가 귀에서 탁탁탁 울렸다.


나는 한때 독서 모임 내에서 글 좀 쓰는 파트너에 지나지 않았다. 책을 몇 권 내고 어쩌고 저쩌고 했다. 여러 기관과 잡지에 기고를 했다. 뭔가 작가스러운 것 같았다. 그 작가인지 모를 어떤 기분에 오래 매달렸다. 그것이 나를 글 좀 쓰는 수준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 같았다. 그러다가 어쩌면 지금까지 쭉 그 정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글이 기능적으로 다가온다. 배수구를 뚫는 배관공처럼 머릿속에 낀 지난가을의 낙엽들을 주워 모으기에 바쁘다. 그건 과거의 오류를 정정하는 작업이다. 나의 실패를 전시하고 유심히 보는 작업이랄까. 난 글로 뭘 바꿔내고 싶은 걸까. 그런다고 달라지나? 내 오래된 자기기만? 아니면 유별나고 싶었지만 지극히 평범해진 일상에 구원을 얻으려는 시도? 갑자기 난 공백에 발이 푹 빠진 기분이 들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빠져 길을 잃고 멍해졌다.


어제는 새로 산 스크랩이라는 노트에 이런 말을 적었다. 그래도 계속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심지어 별 볼 일 없는 글을 쓰는 것조차도! 옆에서 그걸 보고 짝꿍은 웃으며 말했다. 계기가 생기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야. 그는 내 과장된 엄살을 다독이며 의무를 덜어주었다. 나는 글이라는 의무가 내게 없었다는 말에 신기해하면서도 상쾌하게 느껴졌다. 결국 이걸 바란 걸까? 그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느긋하게 기다려봐, 쓰게 될 거야 위로했다. 난 못 본 척하고 대답했다. "그럴 것 같지는 않아." 매일매일 인간적으로 기울이는 정성과 친절이 삶에 스며드니 글 쓸 생각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아무렴 어떠냐 하는 정도의 마음만 덩그러니 남았다.


살면서 어처구니없게도 과소평가하고 내버린 것이 있다. 과거에 놓고 왔으며 이후 내 회한의 근원이 된 말들. 요즘 내 백그라운드 뮤직. 나를 향해 무조건적인 관대함을 보여주는 말들. 이후에 내가 뭘 놓치고 살아야 하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내버린 가치가 그 속삭임에 담겨 있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아무렴 어때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그때 그 말을 듣고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더라? 뭐라고 대답했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요즘 글을 쓰면서 그 순간이 빚어낸 흠결을 지워버리고, 오직 그 관대한 말만 글에 남기는 중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따듯한 각색이다. 내 구린 표정도 뿌듯한 표정으로 고쳐 쓰고, 내가 미처 살피지 못했던 녀석의 얼굴에도 끄덕임을 그려 넣었다. 더는 수정할 것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윤곽선을 넣는 작업이다. 의도와 목적 없이, 메시지나 뭔가를 얻으려는 시도 없이.


요즘 나는 한때의 온기를 끌어오는 글에 집중하고 있다. 주제나 메시지로 시작하지 않는다. 애정이란 신비를 정의하는 건 다소 쓸모없는 일이지만 개념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날의 성질, 그의 표정, 어떤 장소, 그날 하늘이 허락한 날씨를 옮겨 적는다. 흔한 말과 개념과 고정관념과 두려움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뭔가를 적는다. 나의 한 달 글쓰기 챌린지도 그런 시도의 일환이었다. 이제 글로 위로를 얻고자 하는 소망은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 올해의 수확이라면 나이 탓인지, 내가 좀 더 너그러운 글을 쓰게 되었다는 점이다. 냉소와 염세로 인해 지쳐갔던 그들의 얼굴이 자꾸만 생각난다. 침대에 누울 때마다 돌이키고 싶은 순간을 떠올린다. 그들을 과거에 두고 온 게 걸린다. 그들을 살피는 것이 글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 거기에 집중하고 싶다. 다행히 오늘 하늘과 빛이 내 길을 도와주려는 듯 맑고 관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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