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by 박민진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아버지가 집을 떠나 연락을 끊고 산지 벌써 3년째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연락이 이어지지만 단답형의 말 뿐이다. 아버지가 왜 떠났는지 궁금했다. 계속 궁금하지는 않았고 간혹 무엇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했을까 감정을 이입해봤다. 퇴직한 지도 오래고 자식들도 다 독립해서 손주도 있는데 무슨 이유로? 달아나려는 대상이 뭔지 알면 왜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사그라들 터다. 그래서 지난 주말 어머니랑 만나서도 그런 얘기를 나눴다. 자연스럽게 내가 살면서 떠나온 것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너무 누추하게 보이지 않도록 되도록 멋있는 척하며 도망친 것들. 아버지에게 감정을 이입할수록 그와 나는 정말 닮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글로 쓰는 것은 대체로 하찮은 것들이다. 별거 아닌 것을 유심히 생각해서 길게 쓰는 것이 내 문체다. 누가 보면 저 피곤한 놈이 또 쓸데없는 소리를 길게도 써놨네 할 것들이다. 그래도 하찮은 생각에는 간절한 데가 있어서 좋다. 간절해지면 인생이라는 재생 버튼에 멈춤 표시가 뜬다. 배속의 시대에 잠시 앉아서 뭔가를 떠올리고 글을 쓰게끔 한다. 올해 첫 글은 아버지의 도망이다. 글을 쓰며 아버지가 왜 도망쳤는지 이해했다. 아 자연으로 가고 싶었구나. 머릿속으로 나는 자연인이다 재방송을 떠올렸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아저씨는 여기는 깨끗해서 좋다고 했다. 몰골을 봐서는 옷도 더럽고 집에는 벌레도 끓어 보이는데 뭐가 깔끔해. 엄마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지랄을 한다라고 했다. 나는 뭐 썩 괜찮아 보이는데라고 했다.


아버지는 집을 떠났고, 일터에서도 떠났으며, 나와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들을 떠났다. 형수, 조카 그리고 큰아버지까지 모두 어리둥절해한다. 왜 집을 나갔을까? 연초에 전화가 온 큰아버지는 다른 사람이라도 생겼으면 다행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언젠가 내게 삶은 버텨내는 것이라고 했다. 삶은 대부분 불행에 가까우며 가뭄에 콩 나듯 웃기는 일이 있는데 그건 대부분 술 한 잔 걸치면 나타난다고 했다. 술을 일절 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지금 그 말을 들었으면 아버지에게 상담 치료를 권했을지 모른다. 아버지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마도 삶을 안전한 상태로 통제하기 위해 애썼을 터다. 번듯함을 위해 매일 비슷하게 사는 꼴이 얼마나 지겨웠을까. 도망칠만하다.


스스로를 자연인이라고 칭하는 아저씨처럼 자연을 흉내 내고 싶었을까. 아버지도 자연인이다 재방송을 본 걸까. 되도록 얽매이지 않으려는 걸까. 낙타가 쓰러지는 건 깃털같이 가벼운 마지막 짐 하나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누적된 피로와 귀차니즘인가. 아버지에게 자연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자연은 작위를 덜어낸 일상이다. 생각해야만 하는 관계를 되도록 털어내고 지루함을 견디는 꼴이 자연과 유사하다. 어디선가 한적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셀카를 이 백장 찍는 무료한 아버지를 떠올리니 안심이 되었다. 아버지는 자기 전에 보통 술을 마셨다. 그리고 여러 가지 주정 어린 말을 내뱉었다. 내가 지독히도 싫어하는 냄새와 말투였다. 그 나이를 먹고 주정이라니. 아버지 그 녹색병 안에 자연이 있어서 그런 거여요?


아버지는 베란다 창문을 보면서, 집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호통을 치는 엄마를 무시하고 연기를 뿜어내며 중얼거렸다. 초점은 허공의 어떤 허한 기운에 가 있었다. 마법의 녹색병은 베란다를 자연으로 둔갑시켰다. 어머니가 심은 금전수와 산세베리아는 매캐한 매연에 그건 자연이 아니라고 했다. 난 이런 기억을 떠올리며 이게 도피의 징후였나 생각했다. 그의 넋두리는 자기 스스로 들으려고 하는 말이었다. 지겹다 지겨워 이놈의 인생. 무엇이 그렇게 지겹고 무엇이 그렇게 견뎌야 하는 것일까. 속 편하게 독서모임하며 사는 나는 마흔이 되어서도 그를 이해 못 하겠다. 자칭 아버지 전문가 어머니는 40년 경력답게 한 마디 거들었다. 원래 어디 틀어박혀서 뭐 하는 거 좋아하는 양반이었잖아. 집 나가서는 잔소리 안 듣고 실컷 커피나 마시면서 책이나 읽고 있겠지. 배고프면 돈가스 같은 거 먹으러 다니고 내가 하지 말라는 거 다하겠지. 심심하면 영화관 가서 영화 보고. 방구석에 누워서 실컷 놀고 있겠지. 엄마 그거 엄청 자연스러운데, 그게 아버지잖아?


아버지 전문가 어머니는 아버지의 삶을 단출하게 만들었다. 자기 속 편하려고 하는 말이었다. 그런 이유라면 너무 쉽고 단순해서 이해할 마음도 사라져 버린다. 아 복잡함에서의 도망이구나. 이래라저래라 하는 세상 말로부터 사라졌구나. 어머니처럼 그렇게 쉽고 단순하게 해석하면 명쾌하고 더 생각할 게 없어서 좋다. 근데 어머니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쉽고 단순한 파악을 일삼아온 어머니는 삶은 지금 자신의 복잡한 속내를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했다. 그 증거로 뒤에 이어지는 한숨이 속절없었다. 어머니는 간절하게 단순함을 믿어버리고자 했지만 그 단순함에 먹혀버린 얼굴로 내 눈을 피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지나치게 자기 삶을 성찰할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이 문제다. 하루를 고스란히 끌어안은 어머니는 자꾸만 자기 삶의 재무시세표를 적어내느라 바빠 보였다.


어머니는 무엇으로부터 아버지가 달아났는지 묻지 않았지만, 나는 다시 물어보게 되었다. 어머니는 어디로, 무엇을 위해, 누구와 함께를 궁금해했지만 난 두고 온 것들에 답이 있다고 믿었다. 돌아보면 내가 도망쳐온 것들도 대체로 떨쳐내기 위함이었다. 단순하게 얘기하면 복잡한 책임감이고, 복잡하게 얘기하면 길어지겠지만 그건 관계에서 빚어지는 여러 가지 고통의 나열일 것이다. 내 삶도 깊은 애정과 그것을 떼어놓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깊은 후회를 남겼다. 아버지는 나의 선잠 속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미안함으로 평생을 같이 살 수는 없다. 그건 우리를 향한 원망이자 이제야 우리에게서 도망쳐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느껴졌다. 찾지 말라고요? 뭘 원한다고요? 저도 그렇게 될 거라고요? 그 나이가 되면 저도 알 거라고요? 열차가 대구에 도착했고 난 짐칸에서 급히 가방을 내리다가 에어팟을 바닥에 떨궈 혼비백산했다. 이제 다시 배속의 일상이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