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위함 사업자등록증은 23년 5월 4일이 찍혀있다. 그날 난 대구 북구에 있는 세무서에 다녀왔다. 인터넷 검색으로 절차를 다 알아보고 갔음에도 뭔가 미심쩍었다. 뭘 한 건지 묻는 말에 그냥 모임 같은 거 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사무실인데 코오롱 스포츠 로고가 크게 박힌 등산복을 입은 공무원 분께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업자를 내줬다. 3분 만이었다. 끝난 거예요? 네 끝나셨어요. 그냥 가면 되나요? 네. 그렇게 난 난생처음 사업자가 되었다. 벌써 3년이 다가온다.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보니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차장을 내리자마자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들어와 뺨에 닿았다. 대구 여름은 습도가 높아서 온 도시가 마치 비닐하우스 같았다. 신호 대기 중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저물어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건널목에는 낮술을 했는지 온몸이 빨갛게 익은 채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여자가 서 있었다. 은색 무늬가 박힌 등록증이 내 옆좌석에 놓여있었다. 오전 11시였다.
23년 5월은 퇴직한 지 딱 석 달이 되던 때였다. 내 신작 운동의 참맛의 원고 작업이 끝나고 출간을 앞둔 때였고, 때마침 새 에세이 책에 관한 계약이 들어와 있었다. 브런치 대상의 위력을 실감했다. 난 오래전부터 써보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다. 40대 전후의 싱글들에 관한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인터뷰집을 내보고 싶었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그들의 얘기는 책을 주로 읽는 30대 전후의 독자들에게 어필이 될 것 같았다. 내 삶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고, 두려움에 대한 희석이기도 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자 집에 고액의 모션데스크도 사고, 커피를 내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캡슐 커피 머신도 샀다. 이제 어느 정도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왜인지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난 뭔가에 화가 나고 혼란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뭔가 큰 기대를 가지고 퇴직했는데 사위가 너무 고요했다. 뻔한 줄 알면서도 연기를 해야 하는 삼류 배우가 된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날 찾지 않았고, 무턱대고 들이닥친 시간만 죽여댔다. 동네 아트하우스를 들락거리면서 하루 두 편씩 영화를 봤다. 암전 속 나는 보이지 않아 심적으로 편했다. 고역은 극장 문밖에서 시작되었다.
아무 일도 없는 상태에서 책상 앞에 앉아만 있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성인이 된 이래 정규적인 일이 없는 상태에 날 둔 경험이 없었다. 말 그대로 어쩔 줄 몰랐다. 우선 구글 검색창에 아무거나 쳤다. 작가란 무엇인가. "작가는 글을 통해 생각과 세계를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글을 통해서 가능한데 내가 쓴 글이 상투와 패턴 속에 매여 허우적댔다. 글감이라도 발견하려고 뉴스란에 들어가서 싱글과 고독에 관해 검색했다. 신빙성 없는 견문을 넓히는 데 힘을 기울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실시간 뉴스와 날씨는 물론 인플루언서의 식단을 보고 있었다. 최근 코스피 상승 원인과 트럼프의 장기 집권 플랜 기사도 읽어봤다. 화제의 유튜브 영상과 인기순위가 높은 유머도 알아두었다.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글의 재료가 될지 모른다는 막연함에 기대 하루를 잡아먹었다. 세상에는 무수한 정보가 있었지만 내가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될 거라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쟤는 어떻게 사려고 그러나, 당시 여자친구는 퇴근하고 나면 나를 뚫어져라 봤다. 내 기를 죽일까 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것은 사랑이었지만 그럴수록 난 더 압박감을 느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글을 써보려는 내게 환멸과 두려움이 생겨버렸다. 아직 뭘 쓴 것도 없는데 퇴직 우울증이 들이닥친 것이다.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맥북을 들고 카페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동네 카페를 일곱 군데 정도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대구는 카페의 도시였다.
커피를 마시고 베이글을 먹고 하릴없이 실내의 밀도와 기척에 신경을 쓰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인터뷰집을 내기로 했으니 누군가를 만나야 했는데 차마 톡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터뷰는 질문인데 나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의 진솔한 마음을 어떻게 듣는다는 말인가. 나는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낼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옆자리 손님의 얘기를 엿듣고 글로 적어서 급히 브런치에 업로드했다.
내용인즉슨 감색 넥타이를 맨 남자가 한 여자에게 다음 시의회에 자리 하나를 줄 테니 돈을 좀 부치라는 말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었다. 제 딴에는 돌려서 한다는 말이 더 음흉하게 들렸다. 빨간 스웨터를 입은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없이 그 자리에서 돈을 송금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고 이제 됐지 이 새끼야,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난 그들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현실에서 도피했다.
가끔 독서모임 멤버들과 주말 술자리를 가졌다. 그들은 내 상황을 몰랐지만 책에 관해서만큼은 재미있게 얘기할 수 있어서 편했다. 소라탕을 시키고 난 요즘 카페들이 얼마나 글쓰기 작업에 좋은지 떠들었다. 궁색한 세간도 없고 날 아는 사람도 없고 푹신한 의자에 드립 커피를 손수 내려주는 나의 도피처. 그러나 아무도 내 얘기에 관심이 없었다. 난 그들이 원하는 돈, 성공, 결혼, 안티에이징에 관해 해 줄 수 있는 얘기가 없었다. 내가 왜 글을 쓰기 어려운지 감이 잡혔다. 난 세속적 삶에 관한 에피소드가 사라진 존재였다.
난 독서모임 친구들의 이야기를 흘려들으며, 풀이 죽어서는 술집을 나왔다. 그리고 그날 밤 출판사에 새 책은 일 년 뒤로 미루자는 메일을 보냈다. 못하겠다는 말을 듣기 좋게 적으려고 애를 썼더니 소라향 트림이 거칠에 입에서 쏟아졌다. 속이 다 시원해지면서 바다내음이 내 방을 잠식했다. 난 어릴 적 가족들과 며칠을 보낸 경포대 근처 한 호텔의 호젓함이 그리워졌다.
이제 정말 할 일이 사라진 백수 상태인 나는 운동에 매진했다. 러닝과 헬스가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시간이다. 그렇게 간신히 버티고 서 있던 시절, 어느 날 저녁 선용이에게서 강연 초대 문자가 왔다. 그는 인플루언서이자 강연자로 새 삶을 시작한 터였다. 대구에서 가장 큰 커뮤니티를 운영하던 친구가 새로운 삶을 모색한다기에 나는 그의 무료 강연을 들으러 교동으로 향했다. 하루 일정이 텅 비어 있었기에 갔지, 난 강연이라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때였다. 그렇게 대충 듣고 집으로 가려는데 녀석이 나를 불러 세웠다. 차 한잔하고 가.
교동 근처 낙타커피라는 곳에서 난 선용이와 마주했다. 내가 입은 후드티에 어제 먹은 김치찌개 국물이 새겨져 있었다. 침을 발라 휴지로 지우고 있는데 선용이가 심상하게 아예 새로운 일 해보지 않겠냐고 말했다. 내가 하던 커뮤니티 너도 해봐. 내가 가진 사업자는 법인이라서 넘길 순 없고, 그냥 지금 네가 하던 독서모임을 이어서 해보는 게 어때. 지금 있는 멤버들과 해도 월세는 나올걸. 대구 시내에 오피스텔 많잖아. 다 풀옵션이라서 책상만 가져다 놓으면 할 수 있어. 월세 70만 원만 써서 시작해 봐. 너 모임 중독자잖아. 놀면서 할 수 있잖아.
딱히 뭘 할 게 없었던 나는 다음날부터 생각지도 않았던 모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정력적인 기운을 가진 당시 여자친구가 힘을 보탰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동네 오피스텔을 물색하러 다녔다. 운동도 중단하고 당근으로 가구를 사고, 우리 멤버들에게 홍보를 시작했다. 무턱대고 시작한 탓인지 그냥 내 방에 있는 책과 최근 본 영화 그리고 늘 쓰던 브런치 글쓰기 주제를 바탕으로 모임을 제작해서 우선 올려봤다. 주변에 흘러가는 것들을 붙들어서 만든 모임에 돈을 내고 신청할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계속 올렸고, 두 명만 모이면 그냥 열고 진행했다. 다행히 그간 내 모임에 와줬던 이들이 하나둘씩 나를위함에 가입했다. 월세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는 수입이 생겼다.
그 시기에 내게 벌어진 일을 설명하자면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삶이 내게 너클볼을 던졌고, 난 가까스로 팔을 쭉 뻗어서 그 공을 잡았다. 화가 나고 혼란에 빠졌고 환멸과 두려움을 느꼈었지만 그 또한 우연에 불과했다. 이 시기의 경험 이후로 난 삶에 어떠한 계획도 잘 세우지 않고 산다. 삶은 어떻게든 풀려가는데 절대 계획대로는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나니, 뭐든 별로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용의주도한 계획을 세우는 동안 일어나는 우연의 출몰이 내게 주어진 인생일 테니까. 군인으로 사는 삶이 더는 싫어졌을 때 내 삶에서 도망쳤지만, 바로 그 도망침을 통해 새로운 국면이 펼쳐졌다.
스무 살 내 사십 대는 소령으로 한창 부대장을 하면서 연금 정도를 타내기 위해 복무하는 군인이었다. 군인으로 살면서도 문유석 작가처럼 개인주의자라고 선언하면서 현실을 외면하는 자발적 아웃사이더의 개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삶은 한 순간에 휙휙 변해서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만든다. 이쯤에는 설마 결혼도 했겠지, 식장에 끌려 들어가서 장모님께 큰절이라도 했겠다 싶었지만 어디 그게 쉽던가. 나는 여전히 결혼을 바란다는 친구들 앞에서 코딱지를 파면서 그게 왜 그렇게 하고 싶냐고 묻고 있다. 뭐가 그리 급해? 왜 그리 초조해?
나는 회피형 인간으로 많은 것들에게서 도망쳐왔다. 때론 누추하고 돼먹지 못한 뒷모습을 보였지만, 도피처에서도 새로운 길은 늘 나를 분주하게 만들었다. 나를위함의 3주년이 기쁘다. 그때 함께 시작한 이들과 지금은 자주 보지 못하지만 지금이라도 길에서 만나면 손을 잡고 마구 흔들고 싶다. 네 덕이야. 고마워. 어벙하게 몰린 나에게 손을 내밀어줘서 고마워. 함께 읽고 쓴 시간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느껴. 이 바쁜 와중에도 책을 읽고 여기 와줘서 경의를 표하고 싶어. 나 이제 나를위함 안 하는데? 그래도 고마워.
이 글은 다음 달 지역 로컬 크리에이터 강연을 준비하면서 지역 관공서에 사업자등록증을 제출하다가 벌써 3주년이 다가오는 나를위함은 개업 날짜를 보고 감회에 젖어 감상적으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