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매드 사이언스 북 (레토 슈나이더 저)
심리 실험을 주제로 한 책들을 읽다 보면 평소 무심코 지나쳐버린 일상의 지나침에 통찰 어린 답을 주는 경우가 있다. 레토 슈나이더(Reto U. Schneider)의 <매드 사이언스 북>은 130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기록될만한 111가지 실험들을 다루고 있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땐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인간들의 기록을 내가 코웃음 치며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저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시종일관 흥미를 놓치지 않고 실험들을 섭렵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인 레토 슈나이더는 취리히에서 공과대학을 나왔지만, 결국엔 저널리스트 학위를 따낸 사람이다. 그는 실험의 분석보다는 저널리스트로서 이 실험이 갖고 있는 사회적 반응에 기민하게 반응해 글을 적는다. 실제는 레토 슈나이더는 스위스 주요 일간지인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에서 이 책의 바탕이 된 칼럼을 연재한 것을 비롯해, 독일의 언론사에서 다년간 과학 저널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죄수의 딜레마(게임이론),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흔들 다리에서의 사랑의 감정 등 사회과학과 심리학 서적에서 두루 다루고 있는 문제들도 레토 슈나이더의 글 솜씨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지루한 장르인 과학교양서적이 독자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현상에서 이야기를 뽑아내는 글 솜씨가 수반되어야 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기상천외한 수많은 실험들 중에서 내가 관심을 가지는 지점은 심리 실험의 일환으로 무지몽매한 인간들에게 들이댄 사회적 척도의 결과들이다. 1달러짜리 지폐를 경매에 부치면 얼마에 낙찰될까? 침팬지와 아기를 함께 기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작업’을 거는 가장 성공적인 멘트는 무엇일까? 이런 실험들은 레토 슈나이더의 적절한 농담과 평시에서 써먹을 만한 실험들의 결과를 왜 아직도 난 몰랐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그렇다고 옆자리 여성에게 이 내용을 써먹을 것도 아니면서 줄을 꾹꾹 긋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 책은 읽다 지치는 감이 있다. 몇 번을 끊어 읽었는지 모른다. 최대한 흥미 위주로 주제를 정하고, 문체를 간결하고 유머러스하게 구성한들 과학적 지식이 동원되고, 오로지 실험의 결과만을 위한 이 명제들이 소설처럼 쉽게 읽힐 리 없다. 하지만 파블로프의 ‘고전적 조건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 및 일반상대성이론, 준비 전위 실험 등 오늘날의 과학을 만든 역사적인 실험들을 빠르게 책장을 넘기며 흥미 위주로 읽어낼 수 있는 건 대단한 성취다. 이처럼 과학 교양서로서 서술에 강점이 있는 책을 만나기도 어렵다. 좋게 얘기해줄 때 주의 깊게 듣는 거다. 다시는 만나기 어려운 의제들을 듣는 것도 이번 한 번뿐이라며 참고 들어본다. 게다가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상식들까지 곳곳에 있어 이 두꺼운 책을 다 읽고 나면 느껴지는 성취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가장 재밌는 실험으로는 1달러 지폐를 경매에 부치면(1970년)이라는 제목의 실험이다. 이 실험에서 학생들은 1달러 지폐 경매에서 80센트, 90센트를 넘어 결국 1달러를 넘어서까지 값을 제시한다. 주변의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1달러를 넘어서까지 값을 불러야 하는 그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그가 1달러 10센트를 부르자, 강의실이 술렁였다. 1달러를 사려고 1달러 10센트를 지불하다니, 바보 아냐? 10센트나 손해 보잖아? 하지만 입찰을 포기하면 90센트를 잃는데? 그렇게 일은 점점 커졌고, 두 사람은 폭탄 돌리기를 멈출 수 없었다. 결국 1달러 지폐를 위한 싸움은 20달러까지 올라갔다. 베트남 전쟁도 마찬가지였다.(237~238쪽) 이 흥미로운 실험의 결과는 시스템이 인간에게 채운 굴레가 얼마나 정상의 인간을 비정상의 영역까지 몰아가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비슷한 사례로 콩코드 오류라고 불리는 프랑스와 미국의 공동 합작 프로젝트를 떠올릴 수 있었다. 초음속 콩코드 여객기는 1962년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개발된 거대한 사업이었다. 두 거대 국가는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대표 여객기를 원했고, 그로 말미암아 69년 5조 원을 투자해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를 합작 제작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100석에 불과한 좌석과 비현실적인 연비 등 경제성이 없는 사업으로 평가를 받았음에도 영국과 프랑스는 국가의 위신을 생각해 대량 생산을 밀어붙인다. 그들은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실패가 두려워 매몰비용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요즘 주식하는 사람들, 하다못해 잘못된 취지의 보고서를 폐기하지 못하는 직장인들, 무리한 사업 확장에도 두 귀를 닫아버린 자영업자들이 참고할 만한 실험과 사례지만, 역사는 반복되고 실수는 줄지 않는다. <매드 사이언스 북>의 강점이라면 18세기부터 시작된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궁금증과 실수들이 여전히 우리의 일상에 내재된 체 유통기한을 앞둔 달걀처럼 악취를 풍기며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20세기 후반부터 책이 재밌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현대 과학이 어느 정도 정립이 된 이후의 궁금증들은 현실과 밀접한 영역에서 동작하기 시작한다. 그로 말미암아 궁금증이 점점 더 사라진 인간들은 초점을 눈에 보이지 않는 초현실의 영역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세상을 정량화하려는 노력이 우리의 사고를 정립했다고 볼 수 있다. 가령 영화 21그램을 떠올리게 하는 영혼의 무게 실험을 예로 들어보자. 서양의 영혼을 숭배하는 종교학과 동양의 윤회설을 믿는 인간들이 가질 수 있는 궁금증이 포괄된 실험이다. 정량화할 수 없을 때 빚어지는 추상적 개념이 예술과 문학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는 현대미술이 피카소의 입체주의에서 시작해서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개념주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느낌과 묘한 상상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알길 갈망하고, 내가 그린 것이 어쩌면 우주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믿어버리는 매드 사이언스는 이제 예술과 과학 그리고 일상의 다반사들을 하나의 것으로 엮어주는 것 같아 내심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