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제퍼슨에서 오바마까지

Killing Them Softly, 2012

by 박민진

<킬링 소프틀리> 속 추악한 미국

쓰레기가 온 동네에 휘저어져 있고, 먼지가 흩날리는 보스턴의 뒷골목. TV에서는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의 연설이 흘러나온다. 오바마는 제퍼슨의 건국이념을 이야기하며 ‘위대한 미국’에 대해 언성을 높인다. 대중들은 환호하고, 위대한 미국은 오늘도 건재하다.

51b865300d8319cbdcc34b96617d3d56-killing-them-softly.jpg 킬링 소프틀리Killing Them Softly, 2012

영화 <킬링 소프틀리>는 미국 자본주의의 허상을 보여주기 위한 블랙코미디다. 부드럽게 죽여준다는 말의 모순된 표현처럼, 영화는 작심하고 오바마가 말하는 미국의 부드러운 경제민주화의 이상과 돈을 위해 사람을 도매가로 죽여 나가는 더러운 현실을 병치 구조로 나열한다. 영화에서 돈만 아는 우아한(?) 킬러로 등장하는 코건(브래드 피트 분)의 대사를 들어보라.

"토머스 제퍼슨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말해서 성인 대접까지 받았지만, 정작 자기는 그 말을 믿지 않았어. 노예제를 그냥 방치했지. 그 새낀 그냥 영국인들한테 세금 바치는 데 신물 난 백인 속물이었을 뿐이야. 제가 지어낸 그럴싸한 말에 순진한 서민들이 목숨을 바칠 동안 자기는 편하게 와인이나 마시면서 노예 여자나 따먹었겠지. [TV에서 당선 연설을 하는 버락 오바마를 가리키며] 저 작자는 지금 우리가 하나 된 공동체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데, 웃기지 말라 그래. 우린 미국에 살고 있고, 미국에선 제 밥그릇은 제가 챙겨야 돼. 미국은 국가가 아냐. 기업일 뿐이지. 그러니까 씨발 돈이나 내놓으라고. “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 '토마스 제퍼슨'의 모순된 인생

통렬한 대사를 킬러 코건이 인용한 이유는 오로지 살인에 대한 청부 금을 더 받아내기 위해서다. 최고 강대국인 미국의 '건국 아버지'라고 불리는 토마스 제퍼슨(1743~1826)은 "모든 이들은 평등하다"는 연설을 통해 현재까지 거쳐간 모든 미국 대통령들의 연설문에 인용되었다. 하지만 이 미국 민주주의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제퍼슨을 일개 킬러인 코건은 노예나 따먹은 한심한 작자로 매도한 것이다. 이 영화는 미국의 건국 시초부터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토머스 제퍼슨이 위대한 연설가 일지는 모르겠지만, 코건의 말대로 그의 인생은 그의 연설처럼 위대한 것은 아니었다. 토머스 제퍼슨은 수백 명이나 되는 흑인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한 평생 안락하고도 고상한 생활을 영위한 버지니아의 대농장주였다. 물론 제퍼슨처럼 명민한 지성의 소유자가 노예제의 문제점을 모를 리는 없었다. 하다못해 흑인을 노예로 부리다 보면 백인의 정신이 타락하게 된다는 실용적인 이유 때문에라도, 그는 노예제가 언젠가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고 누누이 말해오곤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상에 불과했고 현실은 별개였다. 제퍼슨이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실제적인 노력을 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미국의 가장 큰 죄악인 노예제도는 제퍼슨 사후 수십 년 뒤 링컨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리고 그 부산물인 인종차별의 폐지는 그로부터 100여 년이 더 지나서야 비로소 가능했다. 언행 불일치 토머스 제퍼슨의 인생은 이 영화가 말하려는 미국의 추악한 현실의 모습과 유사한 것이다.

Killing-Them-Softly1.jpg 킬링 소프틀리Killing Them Softly, 2012

미국의 위기를 진단하려는 영화인들의 노력

이 영화를 연출한 엔드류 도미닉 감독은 미국의 대표 배우 중 하나인 브래드 피트의 입을 통해 1929년 경제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에 빠진 현재의 미국에 경각심을 일깨우려 한다. 빈부격차로 인해 높게 증가한 범죄 발생률과 흔해빠진 마약 중독자들, 심약한 도덕관념 그리고 무너져버린 중산층과 같은 산적한 사회문제들을 영화에 간접적으로 끼워 넣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는 보스턴의 풍경을 복합적으로 둘러보며 현재의 미국을 진단하려 한 것이다. 결국 입이 거친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을 제대로 인식할 줄 아는 성숙한 태도다. 그런 의미에서 그럴싸한 말로 연설문을 통해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는 미국의 대통령은 영화가 비판하려는 중심에 서 있다.

사실 영화를 통해 자국의 현실을 진단하고, 통렬히 비판을 가할 줄도 아는 이 영화가 내심 부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타란티노의 <장고>, 스필버그의 <링컨>과 같이 미국의 역사를 뒤돌아보며, 잘못된 것은 없는지 영화를 통해 국민들과 의식을 공유하는 영화인들의 성숙한 모습에 내심 감탄하게 된다. 문화계 전반이 점점 더 정치와 먼 거리를 유지하는 한국의 현실에 비춰볼 때, 더욱 대단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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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에 관한 우화, 영화 <특별시민>

자국의 행태를 비판하는 영화는 한국에서도 유효하다. 박인제 감독의 <특별시민>은 흥행하지 못했지만,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보여주었던 정치적 욕망이 개인의 삶에 녹아들어 가는 과정을 한국적 시각에서 풀어냈다는 점이 좋았다. 물론 진부한 상상력과 클리셰의 연쇄 추돌로 끝까지 흥미롭진 못했지만, 극강의 캐릭터를 만들고, 우리의 대선이 그렇듯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이 선거전에서 출몰할 때 권력 우선의 인간이 택하는 비도덕적 선택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시종일관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다. 또한 그가 악행 끝에 처벌받는 구조가 아닌 지속적인 권력의 화신으로 끝까지 살아남는 영화의 마지막 제스처도 기록할만하다. 현실 고발이라는 사회성 획득을 위해 한국의 정치환경에서 길어 올린 디테일들은 영화의 현실 반영이라는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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