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서스의 인구론이 떠올라

엔드 오브 왓치End Of Watch, 2012

by 박민진
“도대체 맬서스는 어떤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맬서스는 19세기를 유토피아적 환상으로 낙관하던 사람들의 낭만적인 꿈을 앗아가 버렸다. 그는 인류가 환희에 넘치는 미래를 맞기는커녕 인구 과다로 인하여 사회 붕괴와 소멸을 맞게 되리라고 전망했던 것이다. 언론은 맬서스를 심판하였고 즉각 그에게 유죄 선고를 내렸다. 새로운 세기를 맞는 감격적인 순간에 맬서스는 재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아 흥을 깨어 버렸던 것이다. 맬서스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 중 일부는 애도하러, 일부는 그가 정말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왔을 것이다.”(토드 부크홀츠)


맬서스의 인구론


영화 <엔드 오브 왓치>를 말하려 한다. 형사물은 보통 어떤 범죄조직을 상대로 총격전을 벌이며 영웅이 되는 이야기를 생각하겠지만, <엔드 오브 왓치>는 직업인으로서 경찰 내부적 공기를 훑는다. 물론 페이크 다큐멘터리지만 일류 배우들이 만들어낸 형사의 세계가 그들의 직업적 고충들과 함께 현장의 채취를 획득한다. “형사는 범인을 잡아넣는다.”라는 말에 생략된 사실들이 있다. 형사들도 가족이 있는 사회 구성원이고, 돈을 벌어야 결혼도 할 수 있으며, 퇴근 후의 일상에 모든 것을 거는 직장인일 뿐이다. 무턱대고 총을 갈겨 목숨을 내놓을 수 없고, 쉽게 범인들을 잡아들여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할 수도 없다. 그들이 살아내야 하는 생계전선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영화 속 형사들은 그 사실에 별 관심이 없다. 형사는 항상 목숨을 바쳐 일해야 하고, 그들의 일상이란 관심 밖의 영역이다. <리쉘 웨폰>의 괴짜 경철이나, 죽으려고 용을 쓰는 <다이하드>의 마초 경찰 캐릭터가 지극히 할리우드 영화의 클리셰 안에서만 작동하는 사실도 우리의 경찰을 향한 이미지를 배려놨다. 한국 영화는 어떨까. <공공의 적>의 부패한 강철중과 작년 한국에 개봉한 <공조>의 적당한 비타협적인 이미지들은 한국 영화 <투캅스>가 가져온 후예들이다. 우리가 매체를 통해 접하는 형사들은 일반인과는 다른 괴짜나 비윤리적인 캐릭터들이 대부분이다. 장르적 재미를 위해 희생되는 무수한 경찰공무원의 신세란.


엔드 오브 왓치 End Of Watch, 2012


영화 엔드 오브 왓치


<엔드 오브 왓치>는 딱지를 끊고, 위협을 당하고, 주말 계획을 세우며, 여자 얘기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는 경찰의 일상을 따라간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고민 없는 일상을 감내할 수 없는 그들의 운전석에 통행한다.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극 중 형사로 출연한 '제이크 질렌할'의 여자 친구인 '안나 케드릭'과 동료 경찰 '마이클 페냐'의 가족들이 단란한 시간을 갖는 장면이다. 마치 액션 영화의 주인공처럼 긴장 속에 살던 이들이 주말 일상 속에서 미소를 지을 때, 무언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기운과 함께 지금 이 순간은 비극을 위한 바탕으로 영화적 아늑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노량진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경찰공무원이 되기 위해 좁은 고시방에서 밤을 새우고 있다. 컵밥을 먹으며 허기진 배를 달래고, 커피 한 잔 사 먹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생계 문제로 자신의 직업적 자존심을 포기한 이들을 뉴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저 돈 때문에 돈 때문에 지겨운 돈 때문에. 난 개인적으로 이 사회의 부도덕함을 말하고 싶다. 범죄자를 양산하고, 궁핍한 생을 방치하는 복지란 우리가 보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뿐 여전히 거리 곳곳에 상존하고 있다. 법을 어겼기에 처벌해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히 한 인간의 부도덕을 몰아붙일 수 있는 것일까.


엔드 오브 왓치 End Of Watch, 2012


맬서스의 인구론


<인구론>의 창시자이자 영국의 경제학자인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1766.2.14. ~ 1834.12.23.)는 그 이론적 잔인함 때문에 많은 지탄을 받았다. 우리가 알다시피 오늘날 그의 이론이 학계의 정설로 굳어지기 전까지 고초를 겪었다. 인구의 증가는 기하급수적이고, 그에 대응하는 식량은 점점 더 줄어든다. 의료기술은 점점 발생하고, 고령화된 사회에서 인구의 증가는 막을 수 없다. 결국 생산량이 한정된 이 지구 상에서 질병, 전쟁, 저 출산과 같은 사회문제는 필요악이 분명하다. 마치 영화 <설국열차>에서 꼬리칸 저 계급자의 폭동이 인구 조절을 위한 수단으로 매개한 것처럼 말이다. 전쟁을 옹호하고, 저출산을 장려하는 것이 아닌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상으로 인구론은 작동한다. 맬서스의 이론은 인류는 어느 수단으로든 그 개체수가 재조정에 사력을 다한다. 인간의 우성인자와 국가와 계층 그리고 인종과 종교 간의 차이를 두고 적정 수는 제거되어야 인류는 생존 가능하다. 빈민과 난민이 유럽 대륙을 패닉에 빠뜨리고 있는 요즘, 영국이 EU를 탈퇴하여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결정한 지금 <인구론>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그 누구는 평화를 외치고, 어떤 부호들은 기부를 하여 질병을 막으려 한다. 전쟁을 막으려는 움직임은 왕관을 쓴 성괴들한테까지 세계평화를 외치게 하였다. 모두 좋은 일들이다. 하지만 결국엔 더 큰 비극이 발생할 수 있는 전초전에 불과하다. 일부의 인간이 죽어야 남은 인간이 살아낼 수 있다. 이 인구론의 지극히 잔인한 진리가 영화 <엔드 오브 왓치> 안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엔드 오브 왓치 End Of Watch, 2012


경찰이라는 직업군은 자연스러운 인류의 기능을 역행하는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한다. 경찰이라는 직업은 막을 수 없는 재앙 앞에 놓여서 진저리를 친다. 인구의 증가로 범죄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는 결국 하층민들의 개싸움이 지속된다. 저소득층의 증가와 상위 계층만을 위한 세금법, 종교단체의 이기적 돈세탁과 밀수, 인신매매, 반인륜적인 행태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여전히 생생하다. 그것을 막으라고 내보낸 경찰들은 그들과 같이 희생되고, 죽임을 당한다. 영화는 그 과정을 신날 하게 보여준다. 무력한 이 모습 앞에서 평온했던 일상은 모두 갈가리 찢어진다. 이 참혹한 광경 앞에서 맬서스가 예측한 인류의 불안한 미래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난 영화 <엔드 오브 왓치>를 보며 묵시록의 기운을 감지했다. 신화 속 괴물들의 소멸처럼, 범죄와 선행에 앞선 자들이 가진 을과 을의 개싸움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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