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 게임의 법칙

엘르Elle, 2016

by 박민진

어린 날의 기억

어렴풋한 기억이다. 그 날의 기억은 손상된 파일처럼 군데군데 흠집이 나 있다. 이른 아침 잠들어 있던 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볼 것도 없이 난 혼자였다. 남의 집 문을 두드릴 땐 보통 작고 공손하게 목소리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벨이 있음에도 문을 두드리는 건 뭘까. 난 조심스럽게 걸어가 문을 열었다. 누군지 묻지도 못했고, 스스럼없이 문을 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사무적인 미소를 내게 부모님이 계신지 물었다.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자 거칠에 안으로 들이닥쳤다. 이후의 기억은 희미하다. 빠르게 집을 헤집는 사무적인 움직임.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말도 붙여주지 않았기에 방에서 우두커니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봤다. 안방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거실에서 왜 수군대는지에 신경을 기울였지만 몸은 미동조차 하지 못했다. 이후의 난 그 사건을 인격적 훼손이라고 정의한다. 달리 설명할 수 없는 무너짐과 모든 것이 끝날 것만 같은 예감이 잔뜩 묻어있었다. 놓쳐버린 게 뭔지도 모르면서 난 굳게 그런 생각을 했다.

엘르Elle, 2016

그 날의 기억이 가진 의미가 뭔지는 지금은 다 알고 있다. 조금 더 자라고 조금 더 알고 나니 그다지 놀라울 것도 없더라. 지금까지 우리 집은 그 여파를 수습하며 살지만 이내 덤덤하고 만다.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건 어쩌면 당연했다. 응당 피해야 할 이야기였고, 홀로 간직하는 게 맘이 편하다. 그 이후로 난 문소리만 들으면 사지가 굳는다. 그 날의 기억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영화와 소설을 수도 없이 읽은 내가 각색한 지점도 있을지 모르겠다. 왜곡된 기억이 잊힌 상처와 함께 윤색됐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있지도 않은 일을 단순히 특정한 이미지와 끼워 맞춰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그 날의 일을 자주 떠올리며 살았고, 이제는 나의 한 부분이 되어 내 몸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글로 써보아야겠다고 늘 생각했지만 쉽게 그러지 못했다. 글로 적으면 그 날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고, 단단한 무언가가 되어 날 옥죄일 것이라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여러 번 생각하다 보니 이 기억이 얼마나 윤색됐는지 잘 모르겠다. 만약 내가 기억하는 그 날이 망상에 불과한 허구라 할지라도 지금은 나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 기억은 내가 끌리는 영화와 소설을 마주할 때 작동하고, 내가 글을 적을 때 문장에 영향을 끼친다. 길을 걷다가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할 때 저 골목을 지나 다른 얼굴이 있을지 모른다며 몸서리친다.


엘르Elle, 2016

내 안의 기억 타령을 하는 이유는 은밀한 기억을 자극하는 영화를 종종 만나기 때문이다. 종종은 일 년에 한두 번이라고 해두자. 난 그 종종을 위해 영화와 소설을 읽는다고 과장해 말한다. 그리고 지난달 본 <엘르>는 날 헤집어 놓았다.


엘르, 그녀는 전문직의 잘 나가는 여성이다. 큰 게임회사의 사장이고, 거대한 저택에서 혼자 화려한 삶을 살아간다. 나이에 비해 아름다운 외모로 친구의 남편을 꼬시고, 낯선 남자의 관심 어린 시선을 여유 있게 리드한다. 그 우아함과 자신감이란. 직장에선 젊은 직원들을 노련하게 리드하며, 철없는 어머니의 경제적 지원군이 된다. 물론 어둠도 있다. 그녀의 자족들은 엘르의 인생을 철저하게 비난한다. 전남편은 자신을 배반했고, 직장 동료는 그녀를 합성한 성폭력 동영상을 사내에 유포한다.


여성혐오의 전복


어느 날 그녀의 집에 괴한이 침입한다. 강간을 동반한 거친 폭행에 그녀는 잠시나마 충격을 받지만, 이내 침착하게 신변을 정리한다. 병원에 가 임신 가능성을 없애고, 직장에선 하던 일을 계속한다. 다음 날 저녁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말한다. 나 강간당했어. 경찰에 신고하라고 부추기는 친구들 곁에서 태연 작약한 그녀는 정확하게 그 제안을 거절한다. 우린 이 이상행동 앞에서 그녀의 과거를 떠올리는 몇몇 몽타주를 만날 수 있다. 온 동네 사람들을 죽인 살인마의 딸. 한국으로 따지면 유영철의 딸이 살아남아 30년이 지난 상태를 떠올리면 될까. 늘 혼자였고 계속해서 혼자이길 원하고 그 누구의 도움이나 환심도 원하지 않는 그녀를 이해하는 작은 단초이다. 이 기억은 영화를 복잡한 상념 속으로 빠뜨린다.

영화에서 그녀를 속내를 추측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다. 아버지의 살인과 관련하여 지독한 어둠 속에서 자랐지만, 지금은 건강한 사회인이 되었다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그녀가 강한 사람임에 분명한다. 사건과 그 날을 기억하는 언론 기사 속의 단신은 파편화되어 우리에게 전시된다. 희미한 몽타주는 지금 벌어진 사건의 여파를 추측하게 할 뿐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 영화는 보편적 가치인 성장, 회복, 변화에는 관심이 없으며, 오로지 우리가 생각지 못한 그녀의 복수가 짜릿하게 전개된다. 모든 예측을 뛰어넘어 발화하는 엘르. 그녀는 게임회사를 운영하며 자신이 만든 게임에 노골적인 강간 장면을 삽입하고, 자신을 성적인 농담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사람의 바지를 벗기고 비웃어준다. 그녀는 폭력이라는 압제에 완전히 적응된 인간이고, 자신에게 폭력으로 대응하는 사람에게 더 강한 폭력으로 우위를 획득하는 사람인 것이다.

엘르Elle, 2016

우리는 영화의 진행 내내 그녀의 복수를 괴물 같은 혐오로 볼 수도 있고, 그 태연한 잔인함에 동정심을 보낼 수도 있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녀가 누군가의 힘을 통해서도 아니고, 스스로 이 문제의 해결을 원한다는 점이다. 공권력은 불신의 것이고, 언론은 따라붙으면 귀찮다. 흥미롭게도 남자들이란 성적 욕구의 해결 대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결코 그녀를 지킬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오히려 그녀는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자신에게 폭행을 가했던 남자를 호출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엘르가 선한 행동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위선을 가진 인간도 아니다. 기억은 절대로 내 상처를 도려내지 못할 것이며, 영원히 명치 앞에 붙어서 그녀를 뻐근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현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도 못한다. 그녀는 직감을 실체로 확신하고, 추상적 대상에 모호한 호감을 표하는 말을 되내인다. 그녀는 환로서 함부로 자가진단을 한 후, 의사의 면상에 주도면밀한 유혹을 내뱉는다.


살인자의 기억법


난 자신의 어둠 속 기억을 염세하지도 회의하지 않는 이 영화의 태도를 지지한다. 그리고 그녀가 끝내 이룩한 복수가 비록 실제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서사적으로 완벽한 쾌감으로 나아갔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기억은 여전히 매혹적이고, 그건 타인을 미혹한다. 낯선 형식은 의심스럽고, 욕망으로 오염된 단어로 나를 포장하는 건 역겹다. 하지만 이 영화는 허구로서 기꺼이 고백한다. 이 서사의 구동 속에서만큼은 타자들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음을. 기억을 선별하고 축조하여 그로부터 인생을 규정하는 건 얼마나 기만적인가. 스스로 자아도취, 자기연민의 늪에 빠지는 꼴이다. 난 내 비겁함의 극복을 영화에서 본다. 이자벨 위페르가 연기하고 폴 버호벤이 주조한 엘르라는 캐릭터는 자신의 기억을 그대로 인정하고 틈입하는 현실의 생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는 쪽을 택한다. 내가 하지 못한 과감함에 난 탄복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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