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플라워>,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작가 ‘트루먼 카포티’는 그의 첫 장편소설 다른 목소리, 다른 방<voices, other rooms>(1948)을 펴내며 당시 큰 이슈를 남겼다. 소설의 내용보다 더 화제가 됐던 것은 따로 있었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운 꽃다운 나이의 카포티를 찍은 책 표지 사진이 난데없이 표적이 된 것이다. 표지의 사진을 잘 살펴보면 카포티의 표정과 자세에서 성적인 뉘앙스가 다분했기 때문에 책의 파격적인 내용과 함께 그를 스타 반열에 올려놓았다. 바람 잘 날 없었던 카포티의 인생에 어울리는 첫 단추라고나 할까. 당시 어떤 기자가 카포티에게 “얼굴 사진을 이토록 아름답게 찍는 노하우는 뭡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간단한 일이에요. 당신의 머릿속을 아름다운 것들로만 채워보세요. 그러면 누구라도 아름다운 얼굴이 찍히게 되죠.”
카포티의 사진을 구글에서 검색하면 우아한 얼굴로 마릴린 먼로의 품에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 카포티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그의 표정과는 정반대로 어두운 기운이 가득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큰 상처를 받은 카포티는 말이 거친 아버지와 이해심이 부족한 어머니 모두를 싫어했다. 그들의 1년이 채 안 되는 결혼생활의 종료와 함께 어린 트루먼은 먼 친척들의 집을 전전하게 된다. 이후 찾아온 성 정체성의 혼란(그는 잘 알려진 대로 게이였다.)과 친구가 없는 외톨이 생활로 인해 혼돈의 귀퉁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배회한다. 시작부터 꼬여버린 카포티의 삶은 버려지고, 버텨나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마치 위대한 문학가가 되기 위해선 이 정도는 당연하다는 듯 시끄러운 사건들이 연이어 그를 괴롭혔다. 카포티가 유일하게 도망칠 수 있었던 공간은 백지 위의 문학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피아노 레슨을 받고, 교유들과 야구를 할 때, 카포티는 혼자 집에서 매일 세 시간씩 글을 썼다. 내가 세 번이나 읽기를 포기했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심취했던 아이. 머릿속을 아름다운 것들로만 채우길 원했던 이 아름다운 미소의 소년은 오로지 글을 통해서 인생을 버텨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술의 힘이란 이런 것일까.
내가 새삼 잊고 지냈던 트루먼 카포티를 내 블로그로 불러온 이유는 영화 <월 플라워>에 관한 소회에 때문이다. ‘월플라워’란 사교성이 없고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해 고립된 사람들을 의미한다. 영국의 시인인 ‘윈드롭 프레드’의 시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사교 회장에서 짝 없이 홀로 떨어진 사람을 의미했다. 하지만 현재는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남과의 소통에 불편함을 겪는 외톨이들을 말하는 단어로 통용되기도 한다. 영화의 주인공 찰리는 이런 월 플라워의 전형이다. 항상 혼자 다니고, 늘 대문호의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작가의 영감 속을 헤엄친다. 찰리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기에는 너무나 소극적이고, 뛰어난 예술가의 새싹을 찾아내기에는 야심이 적은 이름 바 사회적 루저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찰리에겐 아름다운 재능이 있다. 그 누구보다 멋진 글을 작문할 수 있었고, 유달리 발달한 감수성이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했다.
마침내 이 비루한 왕따 찰리에게 두 아이가 다가온다. 패트릭과 샘, 마치 연인처럼 보이는 두 아이는 사실 이복남매다. 샘과 패트릭은 '고독한 섬'이기를 선택한 아이들의 모임에 찰리를 초대한다. 비로써 찰리의 글을 읽어줄 수 있는 외톨이들이 생긴 것이다. 상처와 고통이 만연하는 미국의 소도시 고등학교에는 월 플라워가 넘쳐난다. 이들이 모여 만든 고독한 섬에서 찰리는 돋보이는 자신의 재능을 모두에게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모임 속 아이들 역시 자신의 섬에서 자존감을 지키고 사는 고독한 방랑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데이비드 보위’, ‘스미스’의 음악과 산문의 자유가 주는 유토피아를 아는 다소 어른스러운 월 플라워들이다. 자의식이 듬뿍 담긴 글을 써도 부끄럽지 않고, 유치하게 차에서 손을 벌리고 자유를 외쳐도 아릿다운 10대의 풋풋함이 눈부시다. 글의 생명력이란 자신의 글을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부터 시작되고, 작가의 창작의욕은 절실한 피드백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각각의 아이들은 서로에게 예술적 레퍼런스가 되어 온 몸을 내어준다.
‘록키 호러 픽쳐 쇼’를 직접 연기하며 흥분하는 10대, ‘더 스미스’의 음악으로 ‘빌리 할러데이’의 영혼에 접신하는 우울한 청년들. 라디오에서 믹스테이프를 만들어 편지와 함께 선물하는 오글거림과 예술로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용기들. 이제는 사라져 버린 90년대의 감성이 무척 정겹다. 남김없이 무시당한 성 정체성조차 슬픔 섞인 목소리로 증오할 수 있는 그들의 섬에 놀러 가고 싶어 진다. 내가 10대 시절에 그들처럼 취향을 솔직히 고백하고,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엄두를 낼 수 있었다면 더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살 수 있었을까. 그 상상만으로도 영화는 나를 유쾌하게 만들어줬다. 영화 속 패트릭은 남다른 성적 정체성의 문제로, 샘은 서툰 외로움에 그리고 주인공 찰리는 말로 할 수 없는 과거의 비밀로 고통받는다. 어째 영화 속 이런 고통들을 듣고 생각하고 나면 그들의 선배 뻘 되는 작가가 ‘트루먼 카포티’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트루먼 카포티는 소설 속에서 이런 말을 했다.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카포티처럼 소파에서 속된 얼굴을 스스럼없이 노출할 수 있다면, 이들 역시 위대한 예술적 영감으로 인생의 고난을 글로 풀어낼 수 있을지도. 글과 문학 그리고 음악과 서툰 시의 읇조림. 그것이 대문호 트루먼 카포티와 영화 월 플라워가 가진 얇디얇은 접점이다.
영화 <월플라워>의 즐거움은 명곡들이 즐비한 OST의 활력이다. 70~80년대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팝 명곡들을 한데 모은 이 레코드는 영화만큼이나 사랑스럽다. 정식 발매가 되었으니 모두가 즐겨 보시길. 특히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Heroes’는 영화의 핵심적인 정서가 되는 곡이기 때문에 영화와 책을 즐긴 후 들어보시면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 짐작한다. 그리고 배역진의 활력 역시 눈에 띈다. 재능이 충만한 세 명의 재능을 보는 순간 눈이 확 떠지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특히 <케빈에 대하여>를 통해 관객에게 깊은 쇼크를 줬던 ‘에즈라 밀러’는 이 영화에서 역시 본인만이 할 수 있는 남다른 느낌의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한다. 마술봉 없이도 아름다운 헤르미온느 ‘엠마 왓슨’은 이제 완전히 정극 연기자로서의 자리를 느낌이고, <퍼시 잭슨> 시리즈를 통해 알려졌던 ‘로건 레먼’ 역시 그만의 자기장을 가진 믿음직한 배우임을 증명해 보인다. 이 영화는 연출의 기초적인 부분에서 허점을 드러내지만, 연기와 음악 그리고 영화 외적인 느낌들이 주는 시대적 감흥 덕분에 훨씬 더 근사한 영화가 되었다.
원작 <월플라워>도 짚어보자. 저자인 ‘스티븐 크보스키’는 이 작품 외에 별다른 히트작이 없는 작가다. 그는 자신의 이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하여 영화감독으로서 주목받았고, 최근엔 줄리아 로버츠를 주연으로 한 영화 <원더>의 연출과 시나리오를 맡았다. 최근(18년 1월) 한국에서 상영 중인 이 영화 역시 소년의 성장에 주안점을 둔 작품으로, 감독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관이 영화 속에 확고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P.S.영화 카포티에서 트루먼을 연기한 고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을 기억하시는지. 섬세하고 이해심이 풍부하지만 자기 도취에 빠져 있는 냉정한 이기주의자이기도 한 이 남자를 호프먼은 완전히 체화하여 세상에 픽션으로 내보냈다. 카포티가 생전 늘 냉혈한 논픽션 작가로 살아왔다는걸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내 책장의 트루먼 카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걸출한 로맨스 소설을 보고 있노라면 더더욱.
표지 사진 : 영화 <월플라워>,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