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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미처 몰랐지 '송강호'

영화 <밀정>, The Age of Shadows, 2016

by 박민진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송강호의 등장


당연한 말이지만, 앞날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있을 리 없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초등학교를 졸업할지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그저 막상 닥쳤을 때 애써 적응하며 아 이렇게 변해가는구나 읊조릴 뿐이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울며 뒤로했던 '서태지'가 떡하니 돌아와 결혼도 하고 애도 낳을 줄도 몰랐다. 신격화가 깨어진 영웅을 보는 것만큼 시간이 지나감이 애석해질 때가 있을까. 비루한 하루, 따분한 TV, 빌어먹을 인스타그램, 앞 날은 알 수가 없다.

송강호는 무려 홍상수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비슷한 예로 '송강호'라는 배우가 있다. 내가 처음 송강호를 본 건 아마도 90년대 중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데뷔작인 <초록물고기>였을 것이다. 깡패로 등장한 그는 이상한 제스처와 말투로 내 눈길을 확 끌어당겼다. 단순히 웃기는 배우가 아닌 아 저건 정말로 칠성파든 서방파든 제대로 된 깡패를 캐스팅했구나 감탄하며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한석규를 다짜고짜 줘 패고는 경박스럽게 웃는 그 첫 인상의 강렬함이란. 이후 얼마 못 가 각목으로 뒤통수를 맞고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졌지만, 작품 내내 그의 잔상이 떠나지 않았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가면 홍상수 감독의 불세출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우연히 과거 대학동창인 의성과 만나 담배를 피우며 안부를 묻던 그 친구. 뭔가 야비해 보이는 웃음을 짓던 그에겐 몇 마디 대사도 없는 쓸쓸한 출현이었다. 순수예술, 시대의 변혁이라는 화두를 지나 돈과 세속이 도시를 싸고 돌 때 기민하게 움직일 줄 알아 여기까지 버텨온 그런 사람처럼 보였다. 그 특유의 제스처와 말투 만으로도 그런 짐작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었다. 기괴한 극의 분위기 속에서도 난 저 배우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궁금해졌다. 작은 단역이었지만 지금은 너무도 친숙한 송강호의 얼굴이 한국 영화판에 등장한 역사적인 순간이다.

2.jpg <밀정>의 한 장면, 카메라는 진득하게 송강호의 무표정을 따라 다닌다.

그러니까 송강호가 90년대 후반 송능한 감독의 <넘버 3>의 깡패로 등장하기까지, 이상한 말투로 스타가 되기까진 그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던 몇몇 장면들이 존재했다. 마치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지만 이제 시간이 지나 난 그의 과거를 이리저리 붙여보며 의미를 부여중이다. 그는 뭔가 달랐다며 이마를 탁 친다. 시간이라 게 그런 건가 보다. 결과론으로만 말하는 야구 해설자처럼 무력하다.

송강호가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을 땐, 벌써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등 주류 감독의 페르소나로 자리 잡고 있었다. 21세기 초의 가슴 설레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올드보이>, <반칙왕>, <살인의 추억>을 보며 충무로 키드가 되었으니 감회가 남다르다. 지금까지 이들은 현재 한국영화의 거역할 수 없는 존재감이 되었고, 그 과정엔 송강호라는 얼굴을 거쳐 간 수많은 몽타주가 존재한다.


영화 <밀정>, 송강호의 얼굴


어제 김지운 감독의 신작 <밀정>을 두 번째로 보았다. 처음엔 스토리에 집중해서 보았고, 두 번째는 송강호라는 사람의 연기를 즐기고 싶었다. 그의 표정, 말투, 제스처, 걸음걸이까지 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살펴보고 넘어가자.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답게 시작부터 총질이 시작된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여한 의열단원 김상옥(박희순 분)을 끝내 포위한 총독부 경감 이정출(송강호 분)은 그를 회유하기에 이른다. 과거의 친구, 죽이고 싶지 않았을 터. 하지만 그를 쥐새끼라 칭하는 상옥에게 정출은 이내 실망한 듯 우선 살아야 할 것을 권한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끝내 항복을 거부하는 친구를 저버린다. 영화의 중반 또 다른 의열단원 우진(공유 분)과의 술자리, 정출은 경부로 살기까지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다 이런 말을 한다. 사내는 자기를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며, 친일파가 아닌 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그저 입에 풀칠할 뿐이라는 것. 그는 조직과 생계라는 당위를 통해 죄의식을 씻고 싶어 술 한잔마다 변명을 늘어놓는다. 조선과 일본 사이의 회색지대를 사는 이정출의 옆모습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때마다 송강호는 속내를 읽을 수 없는 허스키한 말투와 표정으로 화면의 장력을 조정한다.


이정출은 조선이 독립할지 예상할 수 없었다.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 분)이 그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그는 그저 이 일들(의열단이 폭탄을 경성으로 반입하는 행위)을 묵인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취기인지, 상옥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치고 들어오는 후배에 대한 견제 때문인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이정출은 모호하게 처신을 해버렸다. 하지만 정출의 과거(한국인, 의열단원과의 친분)를 문제 삼아 늘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던 총독 부장 히가시는 그를 감시할 인원을 추가로 배치함으로써 그의 입장을 더욱 옥죈다.

3.jpg 내가 좋아하는 장면, <밀정>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장면이다. 그는 앵겨붙는 의열단 동생에게 '처 드시오'라며 면박을 준다.

김지운 감독은 의열단원들을 영웅화시키는 작법에는 관심이 없다. 친일과 애국을 동시에 취해 회색지대에 머물길 원했던 이정출이 영화의 포인트다. 이는 에스피오나지 장르를 한국적으로 비트려는 김지운이 택한 연출적 방향이다. 여기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이도 저도 아닌 입장을 연기해야 하는 송강호다. 이 캐릭터는 굳이 뭔가 하지 않아도 내면에서부터 갈등이 끓어오르는 방식으로 연기해야 한다. 마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게리 올드먼'이 연기한 노쇠한 요원 '스마일리' 무심한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 있다. 정출은 조직의 논리를 믿었지만, 그에겐 친일과 애국이라는 코드가 마치 오래전에 제거한 암처럼 몸에 그 흉터를 남겼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부채의식이 그에게 안일한 입장을 선사했다. 우리는 모든 결말을 다 아는 상황에서 그의 선택을 그저 지켜볼 뿐이다. 한 인간이 최소한의 존엄을 가져가는 것을 목도하는 것이다.


정출의 얼굴에 스치던 무수한 번민과 갈등들을 비웃듯 역사는 아무도 예측치 못한 결과를 불러들였다. 영화 <암살>, <덕혜옹주>가 그랬던 것처럼 친일파라 불리던 이들은 제각기 살기 위한 선택을 했다. 더 가능성이 높은 세력에 줄을 서는 승진에 목맨 관료처럼 아주 당연하게. 결국 <밀정>이라는 영화가 비슷한 주제를 가진 영화보다 더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지점은 사실 그대로의 역사 위에 장르적 카타르시스를 섞어 넣었던 것에 있다. 역사의 거역할 수 없는 물줄기에 돌 하나를 건져올린 사람들. 역사책에 단 한 줄로 적힌 한 남자의 군상. 그리고 그 중심엔 송강호가 빨아드린 시대의 공기가 자리한다.

우리는 역사에 어설프게 기입된 한 인간의 속내를 영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다. 송강호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스크린을 응시할 때 우리는 마음을 빼앗긴다. 그가 스쳐온 무수한 캐릭터들의 응축된 얼굴이 스크린을 응시하는 나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영화 <밀정>은 우리가 사랑하는 송강호의 얼굴에 선사하는 일종의 경의처럼 보인다.

4.jpg <백 투 더 퓨처>에 등장하는 호버보드와 추진력을 가진 나이키 신발.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는 '마이클 제이폭스'에게 미래를 입혔다.

응답하라 <백 투 더 퓨처> 시리즈


몇 년 전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의 20주년을 기념해 상영 행사와 각종 기사들이 쏟아졌다. 당시에 그린 미래와 지금은 어떻게 다른가를 맞춰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에서 내 눈길을 끌었던 건 미래에 그린 모습은 거의 다 실현되었지만, 막상 미래를 묵시록적으로 암시하는 구성에는 차이가 있었다. 그만큼 미래에 대한 예측은 누구나 그 알 수 없음에 대체로 비관적으로 흐른다. 하지만 어디 인간이 그런 존재인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어도 어느 정도 수준의 세상을 보존하고 있다. 미래라는 목적지를 과거의 흐름을 통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할지 몰라도, 흘러가는 시간을 뒤트는 행위는 신의 영역에 미뤄두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저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며 뒤늦게 하는 탄식이 바로 영화의 역할이다. 요즘 거리를 보면 영화에서처럼 공중에 뜬 체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두발로 가는 호버보드를 종종 목격한다. 마이클 J 폭스가 타던 간지와는 거리가 먼 넥타이 아재들의 산책용 도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시간은 30살의 어린 마이클 J 폭스에게 파킨슨 병이 주어질 것이라는 걸 예측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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