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호 작가의 <미생>
만화책을 안 보던 내가 미생에 푹 빠져 있었던 때가 있었다. TV 드라마로 만들어진 <미생>도 좋아했지만, 그보다 앞서 몇 년간 ‘윤태호’ 작가가 연재하던 웹툰 <미생>을 출퇴근길에 읽었다. 미생의 배경이 기업 사무실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 대사 하나하나가 내 사무실 공기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이 작품 덕분에 많이 힘을 얻었기에 늘 윤태호 작가와 장그래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바둑 기사가 되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한 한 청년 장그래는 높은 프로의 장벽에 막혀 실패한다. 결국 지인의 도움으로 대기업에 낙하산으로 입사한다. 우여곡절 끝에 입사 면접을 통과하고 2년 계약직으로 근무를 시작한다. 이제 이야기는 이 친구의 성공스토리로 흘러간다. 물론 그렇다. 미생이라는 제목 자체가 완성으로 가기 위한 귀결을 염두에 둔 제목이니까. 그렇다면 중요한 건 과정이다.
내가 미생을 좋아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미생>이 순수문학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장편소설이 가능한 서사를 웹툰으로 옮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웹툰이라는 매체 특성상 매주 마감일에 시달리며 독자의 구독 수로 승부를 보게 된다. 하지만 <미생>은 장편소설에나 있을법한 서사를 주간 연재물에 풀어놓았으니 아무래도 짜고 단 맛은 적다. 바로 그런 이유로 호흡이 길고 각 인물에게 쏟는 공이 상당하다. 서사의 기반에 해당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쌓아올리는 과정에서 문학을 읽는 재미를 느꼈다.
또 다른 미덕은 <미생>에선 선과 악의 경계가 희미하다. 시스템의 부정엔 비판적 시선을 가지고 있지만, 상사맨(세일즈맨)이라는 직업윤리에 대한 공손한 태도가 있다. 비정규직, 성차별, 직장 내 폭언, 갑질 문화 등 직장인들이 공분을 가질 소재들을 잔뜩 안고 가지만, 그 시선은 이성적이고 치밀하다. 사회구조가 인물에게 강요하는 압박감이 사실적으로 그려지다보니 기업의 생리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들이 있다. 하지만 결코 그 모든 부담을 인물에게 덮어 씌우지 않는다. 부정을 저지른 동료든, 배신한 동기든 그들 각자의 연유가 존재하고, 작가는 그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건 이 사회를 그들 각자의 바둑판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가능한 연출이다. 마치 모두에게 마이크를 한 번 씩 돌려서 스스로 변명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이 사회의 구성원인 내게도 한 번의 발언 기회는 가질 수 있다는 위안으로 다가왔다. 내 보잘것없는 책상, 한쪽 귀퉁이의 다이어리, 며칠을 고민한 기획안들이 결코 분쇄기의 먼지처럼 하찮지만은 않은 것이라고 믿게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나쁜 버릇 중에 “상대적 행복감”을 찾는 행동이 있다. 내가 곤란해지고, 견딜 수 없이 힘들 때 나보다 나쁜 상황에 처한 이들을 떠올리며 스스로 위로하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이의 삶에 이입해서 쟤들도 저렇게 아등바등 열심히 사는데 지금 내 상황은 별것도 아냐. 이런 식으로 상처 위에 다른 이의 상처를 덧발라서 안심하는 짓이다. 이 버릇은 학창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자위하는 방식으로 작동됐다. 스스로 비겁하고 웃긴 일이라도 자조하면서도 이 버릇은 늘 작동했고, 난 그 힘을 받아 다시 회복되고는 했다. 장그래가 조직 내에서 미약한 위치를 느끼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때 아마도 난 그것에 위안을 받았으리라. 난 정규직이니까 괜찮아. 그래 난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여전히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무실이 있잖아. 그런 생각들로 지금의 보잘것없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다. 미련하고 조악하지만 그래도 살려고 이런 생각들을 한다. 그래서 장그래가 잘되길 빌었다. 작품 내내 윤태호 작가에게 납득할만한 결론을 원했다. 현실 세계에서 성취 불가능한 결말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위로를 그에게 주길 바랐다.
내가 미생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은 ‘장그래’가 다시 한국 기원을 찾는 신이다. 장그래는 부서 상사 오 차장에게 하루 10만 원을 받아 들고는 미션을 받는다. “이 돈으로 무엇이든 사서 이윤을 남기라” 하지만 누군가에게 필요를 판다는 것은 내 맘 같지 않은 일이다. 결국 퇴근 시간 가까이 몰리자 장그래의 선택은 자신이 평생을 거쳐 살아온 기원을 찾는 것이었다. 기원에 근무하는 이들은 모두 장그래를 어려서부터 지켜봐 온 직원들이다. 7살 때부터 거의 평생을 바둑만 두다가 사회에 몰린 청년 장그래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장그래를 동정과 연민으로 바라본다. 코너에 몰린 장그래가 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 기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장그래는 아무것도 팔지 못하고 그곳을 나온다. 이후 아무런 성취도 없이 회사로 돌아가는 장그래는 서울 시내를 한참 걷는다. 장그래의 머릿속을 떠다니는 수치심과 애처로움, 외로움과 분노 같은 감정들이 거리에 흩뿌려진다. 복잡한 상념을 식히기 위해 동정 없는 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이 장면에 유독 천착했던 이유는 아마도 내게 비슷한 종류의 경험이 있어서이다. 난 대학시절 부족한 학비를 매우기 위해 거리에서 복숭아를 판 경험이 있다. 거리에서 노상 판매를 하는 상인을 돕는 알바였다. 높은 기본 시급과 판매한 만큼 더 준다는 말에 혹해서 2주를 한다고 나섰다. 하지만 학교 친구들이 이리저리 보이는 거리에서 땀을 흘리며 무언가를 판다는 행위는 난처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처음에는 모자를 푹 쓰고, 딴짓만 했다. 헛된 자존심이 작동했고,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남들은 방학이라고 해외여행에 어학연수에 바캉스에 잘만 놀던데, 지금의 내 상태에 수치심이 들었다. 그저 좋은 경험이라고 하기엔 스스로를 불쌍하다며 몰아붙였던 것이다. 한때 짝사랑했던 선배 누나가 그 복숭아를 사갈 땐 감정이 극도로 상했다. 하지만 하다가 보니 적응이 되더라. 표정이 점점 살아나고, 거친 노동과 하루의 잠을 맞바꾸는 시간의 충족감을 얻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가졌던 어두운 감정과 이후의 알 수 없는 성취의 느낌을 글로 풀기란 어렵다. 확실한 건 일정 나이를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직업윤리를 먼저 배웠다는 생각을 했다. 진짜 창피하다는 것과 무엇이 부끄러운 것인지 식별할 수 있게 되었다.
장그래는 내가 느낀 부끄러움을 회상할 수 있게하는 사람이다. 장그래가 실패감을 가지고 혼자 걷는 시간들은 날 애틋한 기분에 젖게 한다. 꼰대처럼 나도 저런 시절 있었는데, 너 지금 되게 불쌍해 보이니까 난 기분이 좋다. 사실 이런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난 누구나 겪게 되는 보편적 성장의 시간을 그 장면에서 보았다. 서사에서 감정이란 보잘것없어도 속을 태우며 쫓아가는 마음이고, 난 장그래가 터덜터덜 회사로 향할 때 나의 걸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사실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난 다시 혼자가 되었다. 여전히 한 구석이 휑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제 운동을 하러 갈 시간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기운을 찾게 된다. 식욕이 붙고, 다시 몸 구석구석을 단련시키는 생활로 돌아왔다. 내년 이맘때쯤 지금 이 시점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