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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May 18. 2018

낯선 곳과 연결되는 방법

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 2016

프랑스에서 맞을 아침이 얼마 남지 않았다. 침대에 멍하니 누워서 몇 달간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에 관해 생각했다. 문득 스페인의 한 축구장에서 옆 좌석에 앉았던 노부부의 얼굴이 떠올랐다. 히혼이라는 항구 도시에서 축구 경기가 있다기에 들른 참이었다. 좋아하는 팀도 아니었고, 그다지 크지 않은 경기장에 앉아서 나는 경기장의 분위기를 즐겼다. 보통 축구경기를 맥주와 함께 여흥으로 삼는 사람도 있고, 경기장이 주는 활기에 잿밥에 관심을 두는 이도 적지 않다. 나처럼 혼자서 찾은 사람은 선수들의 움직임에 몰두하기 마련이다. 무용한 것이 주는 아름다움을 논할 때 스포츠만 한 것이 있을까. 근육과 살을 부딪쳐서 전진하는 그들은 전투가 불가능한 시대의 스파르타 전사들을 자처한다.      

많은 시간을 걷고 지켜봐온 툴루즈 퐁네프 다리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경기를 보다가 옆 좌석의 노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영어를 쓰는 것으로 보아 스페인 현지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 역시 여행을 하다가 그저 축구경기가 보고 싶었으리라. 선수들의 면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심지어 잔디 상태에 대해서도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난 슬쩍슬쩍 그들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그런 나를 의식했는지 할머니께서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하셨다.      

일요일 아침 내 누추한 침대에서 눈을 떴다. 반복적으로 울리는 알람 소리를 들으면서도 멍하니 창밖만 응시했다. 지금 이 시간 왜 난 노부부를 떠올렸을까. 여행 이후 한 번도 그들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보통 일요일 아침에 침대에서 떠올리는 것들은 장 보러 갔을 때 살 것과 오늘 입을 옷, 어제 읽은 책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내가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난데없는 기억은 내 이마로 틈입했다. 난 이어 노부부가 맞이하고 있을 아침을 떠올렸다. 부엌 한 구석에서 킁킁대는 커피메이커와 순하게 생긴 레트리버를 생각했다. 노부부와 나는 단 두 시간 히혼의 한 작은 구장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 것뿐이지만, 오늘 내 기억 속으로 소환되었다. 그들과 나는 불현듯 다시 조우했다.


가끔 공허가 어린 사소한 것들이지만, 의미심장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프랑스에서의 삶이 끝나면 이제는 그리움을 멈출 수 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익숙한 동네에서 커피를 마시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 벌어진 손에 꼽을만한 기억들을 뒤로하고 잘 먹고 잘 살아갈 것이다. 서울의 내 침대에서 난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


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 2016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운명에 꽁꽁 묶여 있다. 우리는 우리가 태어난 장소라는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 문장은 밀란 쿤데라의 것이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게 서울이라는 공간은 태어난 곳이자 언제나 마음이 품고 있는 집이다. 익숙한 시간이 흘러가고, 거리의 남루한 모습을 떠올리는 곳이다. 2호선 건대를 지나 뚝섬에서 드러나는 성수동의 황량함을 좋아하고, 종로에 내려걸을 때 속속들이 마주치는 낡은 가게들을 좋아한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는 영국의 축구 도시가 아니다. 미국 뉴햄프셔주에 있는 또 다른 맨체스터도 아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위치한 자그마한 해안 도시다. 인구는 채 1만 명이 안 되고, 주민의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들이다. 난 이 근처에 가 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지만 영화 한 편을 통해 이 공간을 유심히 볼 수 있었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리’라는 남자가 형의 부고를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는 의사에게 형의 죽음을 듣고는 욕설을 늘어놓는다. 그리고는 이내 후회하듯 고개를 숙이고는 의사와 주변 사람들에게 사과한다. 의사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 준다. 리에게 서울로 느껴지는 곳이 맨체스터라는 작은 마을이다.

리는 과거 가족과 이웃 친구들에 둘러싸여 행복하게 살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맨체스터를 떠나 근처 낯선 도시로 이사를 간 리는 작은 아파트 관리인으로 홀로 일하며 삶의 저점을 버텨나가고 있다. 그는 마음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감수하고 자신이 살던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돌아간다. 그는 밀란쿤데라의 말처럼 그곳에서 꽁꽁 묶이게 된다.

어쩌다보니 버디무비가 되어버린 두 사람

삶이 늘 그렇듯 슬픔을 마주할 시간이 없다. 땅이 얼어서 장례식이 지연되고, 언 땅이 녹을 때까지 형의 시신을 냉동고에 보관해야 한다. 형이 남긴 배 한 척의 처분도 건방진 조카의 고집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그 바쁜 와중에도 과거의 기억들은 암시나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영혼을 박살 내버린 그 사건과 리의 주변을 둘러싼 부수적인 기억들이 파편처럼 이 남자를 습격한다. 살을 찢고 기억을 난도질하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그는 죽지 못해 살고 있으며, 삶의 언저리를 배회하며 누군가의 처단을 기대하고 있다.   

작은 도시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사색을 위한 산책길로 그들을 안내한다.

묵묵히 형이 남긴 과업들을 처리하던 리는 우연히 전 처 랜디와 마주친다. 그녀는 사건 당시 자신이 리에게 했던 무수한 말들을 사과한다. 절절하게 자신의 잘못을 토해내는 그녀에게 리는 이렇게 말한다. “난, 이걸 이길 수가 없어” 인생에 완전히 항복한 자의 실토다. 영화는 그에게 조금의 나은 결말도, 용서와 화해라는 보편타당한 개선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에 몰입했던 나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엔딩 크레디트를 마주했다. 작은 마을의 술 취한 사람들, 바다의 시퍼런 바람들이 목전에서 요동쳤다. 리와 달리 난 맨체스터와 어떤 관련도 없다. 이 작은 도시가 내게 다가올 연유도 없다. 하지만 난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강하게 연계된 느낌을 받았다. 내가 매일 걷는 그 어떤 거리보다 더 밀착되는 느낌에 젖어 있었다. 난 구글 지도를 펴고 이 작은 마을에다가 빨간색 점을 찍었다.    


정든 툴루즈와 작별하며


며칠 전 오랫동안 만나지 않던 한국 친구와 방에서 두 시간 넘게 대화를 했다. 술 한 잔을 핑계로 그간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었다. 공통된 소재가 없었기 때문에 두서없는 말들이 오고 갔다. 그때 녀석은 이런 말을 했다. 정말 소중한 기억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퇴색되고 만다고. 난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소중한 기억은 절대 퇴색되지 않는다. 선물 같던 순간과 수줍던 미소를 한 번 더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할 뿐이다. 일요일의 아침에 떠오르는 난데없는 기억처럼 빛나는 순간들이 내 기억 속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나는 조만간 프랑스에서의 짧은 삶을 잊을 것이다. 그간 내가 거처 온 수많은 나의 공간처럼 그것들 역시 기억 안에 보존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이곳을 찾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내 관심사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말해두고 싶은 것은 기억 속에 고스란히 보존될 것이라는 희망이다. 낯선 거리를 지나갈 때면 툴루즈의 작은 카페를 떠올릴 것이고, TV에서 허름한 골목길을 비출 때면 손의 감촉을 의식하며 걷던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툴루즈는 조금만 걷다보면 작은 공원과 마주할 수 있다.

몇 주 전 런던에서 렌터카를 빌려서 영국의 동부 소도시를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피곤하면 낡은 호스텔에서 잠을 자고, 근처 식당에서 계란이랑 감자를 집어 먹고 나왔다. 특별히 찾는 것도 없었고, 해안 끝까지 간 것도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평평한 들판과 거대한 잿빛 하늘을 바라보고 싶었다. 어느 순간 나는 지도에서 나오지 않은 길을 달리며 기분 좋은 아늑함을 느끼고 있었다. 30분 동안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따금 내 차의 엔진 소리에 놀라 속도를 줄이며 창밖을 두리번거렸다. 이윽고 나는 도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차를 세웠다.      

낡은 나무집과 바람을 막아 주는 가름 막이 있는 황량한 들판이었다. 서너 그루의 나무들을 등지고 꽁꽁 언 거친 내 손을 비비며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곳은 내가 끝내 찾아오지 않을 공간이다. 난 잠시간 환상에 가까운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이 낯선 공간이 나와 연계된 그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이쯤이면 유럽 대륙과 근사한 이별을 고한 셈이다. 다시 차로 돌아간 나는 잠시 타이어를 살핀 후 좌석에 올랐다. 그리고 헤드라이트와 반사된 검은 유리창 속 나를 응시했다. 이곳에서 얼마나 행복한 시절을 보냈는지 미처 다 깨닫지 못한 체 급히 차를 출발시켰다.


My Foolish Heart - Bill Evans

늘 고개를 숙이고, 가끔은 담배를 피우며 연주에 몰두했던 빌 에반스.

* 지금까지 본 매거진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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