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진 May 29. 2018

주춤거리는 사람들

케이크메이커, The Cakemaker, 2017

다들 실손 보험은 들어야 한다고 해서 사인을 했다. 다들 연금보험이라도 해놔야 노후에 좋다고 해서 펜을 들었다 놨다. 매달 몇 만 원씩 내 코 묻은 돈을 가져가는 보험이라는 녀석. 통장에서만 그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이 녀석. 마치 보험이란 내게 불행이 닥쳐오길 고대하는 저주처럼 보인다. 녀석의 존재감을 의식하는 순간이란 내게 닥쳐온 삶의 발톱을 드러내는 순간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 어머니가 편찮으실 때마다 치과보험이니 상해보험이니 하며 꼬박꼬박 돈을 대주는 보험의 위력을 무시할 순 없다. 어릴 적 기억에 어머니는 무슨 보험을 그리 많이 가입하느냐는 아버지의 잔소리에 못 들은 척 바닥을 훔치셨다. 아버지의 작은 월급봉투를 더 초라하게 하는 녀석을 꿋꿋하게 지지했다. 그것들이 지금에야 빛을 보고 있으니 아버지는 말이 없으시다. 몸이 종종 편찮으신 어머니는 그때부터 자신의 고단한 노후를 예견하고 계셨을까. 대비와 예방으로 점철된 삶이란 그녀에게 어떤 것이었을까. 몇 해 전 병원에서 마주친 환자복을 입은 어머니의 모습은 날 당혹하게 했다. 바닥을 훔치던 건강한 어머니의 활력이 사라진 자리에 초라한 미소가 스몄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토마스의 작은 카페, 케이크가 잘 팔리는 이 곳에서 토마스는 오렌을 만난다.

나는 보험 차원에서 매일 아침 오메가 3을 먹는다. 가끔 트림을 할 때마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바다표범이 프렌치 키스를 하는 것처럼 불쾌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호랑이띠 독거남의 건강관리란 이렇게 단출하고 조악하다. 약을 주어 먹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햇살이 따가운 성수동으로 향했다. 내 몸이 이끄는 대로 한 커피가게에 앉았다. 분명히 이 근처에 양푼이 김치찌개 집이 있었는데, 내게 추억이 있는 공간인데 사라져 버렸다. 성수동은 요즘 갤러리와 값비싼 커피가게들이 골목마다 빼곡하다. 공장지대의 흔적은 사라지고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힙스터들이 옷 자랑을 한다. 잘 나가는 그들은 내가 사랑하는 김치찌개를 앗아갔다.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


이리저리 골목을 걸어 다니는 와중에 고급스러운 어느 화랑에서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 보았다. 흰 캔버스에 검정 사각형, 1915년 소련의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이 작품을 어느 화랑에 걸고 절대주의 미술의 시작을 알렸다. “절대주의에 의해, 나는 예술에 있어서 순수한 감상이 절대라는 것을 주장한다.” 순전히 추상적이며 비 묘사적인 회화의 등장이다. 세계를 암시하는 시각적 단서를 없애고 비구상의 개념을 논했다. 이는 그림 너머의 의미를 탐구하지 않는 관람객들에게 보내는 도전장이었다. 결단코 봐야 할 것은 없다, 말레비치는 '없음'으로 수렴하는 사각형 하나를 통해 극도의 정적임을 선보였다. 예술이 지닌 대상이라는 짐을 내려놓고, 관객이 스스로 능동적인 연상작용을 해주길 바랐다.  그는 새로운 추상성의 개념을 팔았다.

이차원의 공간에 그려진 순수한 색감을 가진 도형은 자율적인 실재를 가진다. 그 실재란 관객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미술이다. 관객의 감각에 의해 순수한 감정 표현이 발생하고, 이때 비로써 회화가 완성된다. 무수한 관람객들은 그들 각자의 시각으로 이 그림을 받아들인다. 말레비치는 이 사각형이 흰 캔버스와 조화를 이뤄 인생의 삼라만상을 담았다고 믿었다. 인생의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침묵을 열망했다. 말레비치는 관람객의 내면에 자리하는 여러 세계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팔레트에 물감을 짰을 것이다.

말레비치의 검정 사각형, 누군가는 개념을 팔고 아류들은 그것을 모방한다

흰 캔버스에 그려진 검은 사각형은 내게 회한의 감정이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특정 순간을 이입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애처로움이라면 적확할까. 누구에게나 회한은 있지만 난 그 감정을 즐겨 떠올린다. 늘 노트에 적어두고 가지 못한 길의 형태를 그린다. 만약 그랬었다면...이라는 가정으로 시작되는 생각들은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를 한껏 높인다. 난 회한의 감정이야말로 인간 종의 위대한 점이자 한계라고 생각해왔다. 늘 현재라는 무거운 과제가 엄습하는 삶에서 특정한 기억에 머무는 건 인간만이 하는 짓이다. 턱을 괴고 현재를 머리에서 지운다, 곧 주변 공간은 지워지고 시간적 맥락을 거세될 거히다.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 주춤거림이란 삶에 관한 낭만적인 부연설명이다.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그림에 가두는 화가처럼, 마지막 4중주를 작곡하는 귀머거리 베토벤의 펜촉처럼 매혹적이다. 회한은 어쩌면 늘 한 번뿐인 인생을 마주해야 하는 인간의 부박한 일상을 위로하는 매개일지도 모른다.


영화 케이크 메이커


성수동을 떠나 2호선을 타고 늘 가던 종로 일대로 향했다. 2호선 지하철을 통해 뚝섬을 지나며 익숙한 거리 풍경을 살폈다. 고소한 햇빛이 눈에 엄습하고, 광고판에는 어마 무시한 연이율의 대출 광고가 걸려있다. 폰으로 근처 영화관의 개봉작을 살폈다. 약속 없는 일요일에 보는 영화는 뜬금없는 집중력을 유발한다. 오늘 내가 관심을 줄 대상은 너 하나 뿐이야. 이런 마음으로 영화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케이크 메이커>, 영화의 주인공은 독일 베를린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토마스라는 남자다. 흰 피부에 다부진 체격을 가진 이 남자는 유독 케이크를 잘 만든다. 주방에서 반죽을 하고, 파티시에(Pâtissier)의 면모를 드러낼 때 과거 프랑스에서 자주 찾던 단골 카페 주인이 생각났다. 생 세르넹 대성당 앞에 자리한 그 카페에서 얼마나 많은 더블 에스프레소를 축냈는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근사한 케이크를 선물로 주고, 돈도 받지 않았던 ‘흐멍’이 그립다. 영화 속 토마스의 가게는 베를린의 이미지처럼 정갈하고 멀끔하다. 프랑스의 카페들이 너저분함을 분위기로 가진다면,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바우하우스의 후예들답게 매끈한 곡선을 가진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열심히 반죽을 하는 토마스 앞에 더블 에스프레소와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를 주문하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이름은 오렌, 그는 아내를 위한 과자를 챙기고 본격적으로 케이크를 즐긴다. 그리고 토마스는 이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영화의 마지막에 아나트는 독일로 가서 오렌을 바라본다. 말도 걸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그가 떠나가는 모습을 본다.

유부남이자 이스라엘 사람인 오렌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토마스를 찾는다. 어느 날 불운한 차 사고로 오렌이 죽는다. 토마스는 베를린을 떠나 오렌의 흔적을 찾아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찾는다. 단순히 훔쳐보기만 하던 토마스는 오렌의 아내 아나트가 운영하는 카페에 파티시에로 취직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진다. 이 영화에서 독일과 이스라엘, 가톨릭과 이슬람, 유럽 문명과 중동국가라는 간극은 각 인물들 사이를 헤집는다. 단적인 예로 유대인들의 코셔 문화를 들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코셔를 의식하지는 않지만, 거의 대부분이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장사를 하려면 코셔 인증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토마스는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오븐조차 건드릴 수 없다. 영화 후반부 토마스의 케이크가 유명해지자 카페의 코셔 인증이 취소되기도 한다. 또한, 코셔 아파트에 들어가면 유대인이 아니어도 코셔 규칙을 따라야 한다. 사사건건 사생활을 감시하고, 그들의 문화를 지키길 강요하는 시선은 영화 내내 사람을 옥죈다. 사랑을 잃고 그 상실감에 낯선 땅을 찾은 토마스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고생길을 자처한다. 마치 수도사의 삶처럼 치욕으로 점철된다. 토마스는 오렌의 삶 속으로 들어가 역사의 간극을 이겨내고 이스라엘에 정착하기를 바랐다. 그 감정이란 순수하고 우둔한 그의 외모처럼 피학적이다. 게이이면서 비유대인인 토마스는 이스라엘의 유대 문화의 제약 앞에서 스스로를 고통 안에 몰아넣는다. 그건 추락에 대한 매혹이자, 자학이 주는 쾌감일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형벌을 주고 위로를 얻을 때가 있다. 몸을 혹사하며 상처를 지우고, 일에 몰두하며 그를 떠나보낸다. 토마스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반죽을 할 때 상처를 짓이기는 미련한 자의 형상이 드러난다.

작가의 이전글 낭만이 머물던 익명의 공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