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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Sep 17. 2018

가식과 환멸로 지탱되는 세계

몰락하는 자, 1983, 토마스 베른하르트 저

올 초 오스트리아를 여행할 때가 생각난다. 저녁 7시, 프라하에서 버스를 타고 비엔나로 막 넘어온 참이었다. 을씨년스러운 하늘은 사정없이 눈을 퍼붓고, 떨리는 몸을 이끌고 비틀거리듯 시내로 향했다. 짐짓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던 난 과연 이 도시가 <비포 선라이즈>의 그 도시가 맞는지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제시와 셀린느는 온대 간데없고 생계와 싸움 중인 그들의 무심한 표정이 날 위축시켰다. 미리 가기로 했던 호스텔을 급히 취소하고 중심가의 한인민박으로 발길을 돌렸다. 동유럽 여행 2주 차, 여행의 설레는 맘은 사라지고 외롭고 서글픈 맘이 들기 시작한 참이었다. 따듯한 밥과 한국인 여행자들의 들뜬 목소리가 듣고 싶었으나, 때는 2월 비수기라 그런지 민박집은 적막만 가득했다. 저녁식사 시간도 끝나서 밥도 나가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아연해진 나. 그 돈가스 비슷한 슈니첼이라는 걸 먹어야 하다니, 따끈한 라면 국물이면 족했는데. 사장님의 얼굴은 종일을 허탕 친 장사치의 마음처럼 메말라있었다.     

오스트리아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1931~1989)

다음 날 일찍 클림트와 에곤 쉴레의 작품들을 보러 벨베데레 미술관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금가루를 뿌린 걸작들을 보면서도 창밖에 펼쳐진 회색 도시의 소음이 나를 지치게 했다. 이른 오후, 눈도 부칠 겸 일찌감치 짐을 싸서 잘츠부르크행 기차에 올랐다. 모차르트의 도시, 그 작은 역 앞에 내린 나는 대단한 걸 기대한 건 아니었다. 곡진하고 촘촘한 작은 마을의 정다움이 필요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 아닌가. 하지만 한 겨울의 잘츠부르크는 내 기대와는 달리 휑뎅그렁한 절단면만 드러냈다. 굳은 표정의 사람들과 차갑게 식은 음식에, 맥주나 실컷 먹고 취해있기에도 어딘지 딱딱한 분위기의 식당까지. 며칠 전까지 머물렀던 독일의 편안하고 친근한 분위기가 내심 그리워졌다. 이런 곳에서라면 작가들은 날씨를 핑계 삼아 방에 틀어박혀 하루 20매의 원고를 척척 냈을지도 모르지, 교향곡을 작곡하는 음악가는 고독을 발판 삼아 걸작을 토해냈을 것이다. 하나 동유럽의 나치즘과 빈곤한 사회주의라는 얄팍한 지식에 젖은 나는 이 예술의 도시에서 우울증을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자기복제


90년대 말에서 금세기 초는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이 언론 뉴스에 자주 등장했던 시기였다. 사회 저명인사부터 기업인, 연예인들의 연이은 자살로 9시 뉴스는 요란했다. IMF의 여진,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 지존파의 등장 등 사회적 요설들이 사람들의 머리를 가득 채우던 무렵이다. 자살은 빠른 속도로 개개인의 뇌리에 파고드는 것은 물론, 묵시록의 문학들이 서점을 휩쓸었다. 17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21세기가 된 지금까지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단순하다. 죽음은 죽음을 모방하고, 그 시절의 베르테르는 수많은 모방 속에 지금 이 시대의 자살을 신화화하였다. 한국은 OECD 자살률 1위라는 레떼르를 가진 나라다. 사실 올해만 해도 가슴 아픈 자살사건이 내 아침 출근길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자살은 한 인간의 역사를 한 방에 뒤덮는 블랙홀과 같다. 그간의 맥락과 쌓아온 역사의 흐름에 종지부를 찍는 압도적인 낙인이다. 이는 문학이 자살을 다루는 방식과 흡사하다. 비극의 정점이자, 모든 세상사를 초월하는 막강한 드라마가 아닌가. 영원한 무의 영역 앞에 선 자의 숙명적인 뒷모습은 그를 추종하는 뒤이은 망자를 양산한다.

몰락하는 자, 토마스 베른하르트, 문학동네

오스트리아 역시 한때 한국처럼 자살자가 급증해 골머리를 썩은 적이 있었다. 특히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벼랑 끝까지 몰린 1980년대 중반 이후, 기차로 투신하는 사건이 유행처럼 번졌다. 당시 미디어는 그 사건들을 세세하고 면밀하게 묘사하여 특종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처음 오스트리아 정부는 스크린 도어를 설치하는 것으로 연이은 비극을 막아보려 했다.(왜 이리 기시감이 드는가) 하지만 여의치 않자 자살을 보도하는 언론보도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언론윤리라는 것이 정착되지 않은 그 시절의 오스트리아는 자극적인 언론 뉴스가 정적인 도시의 유일한 오락거리였다. 보도의 통제는 결과적으로 자살자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마치 도시의 면면에 비닐하우스를 씌워 파리 꼬이는 악취에 위장막을 씌운 것과 같았다.


오스트리아의 대문호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설 <몰락하는 자>는 1980년대 오스트리아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소설이다. 소설은 서사라는 것을 배제한 비문학적 색채를 가지고 있지만, 화자가 끊임없이 생각하는 과거의 파편들이 픽션의 영역에 머물러 있어 아리송하다. 이야기의 시작은 화자의 오랜 친구 베르트하이머의 자살이다. 화자는 친구의 장례식의 참석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화자는 오스트리아의 부유한 재력가의 아들이지만, 고국을 경멸하기에 스페인에 떨어져 살고 있다. 경멸의 이유는 예술가를 배척하는 오스트리아 정부의 태도에 기인한다. 화자는 과거 친구 베르트하이머와 빈의 한 음악학교에서 동문수학 한 바 있다. 당시 두 사람은 글렌 굴드라는 걸출한 예술가와 마주하는 경험을 하는데, 이것이 비극의 씨앗이 된다. 비슷한 나이 때의 이 천재 음악가는 화자와 베르트하이머에게 저주와도 같은 충격을 선사한다. 빛나는 태양이 모든 것을 삼키듯, 압도적 재능은 음악가를 꿈꾸던 두 청년을 파괴한다. 글렌 굴드는 베르트하이머를 본지 얼마 안 있어 ‘몰락하는 자’라고 부르기 시작하고, 마치 주술적인 칭호처럼 베르트하이머는 이후 스스로 나락의 삶을 밟아나간다. 화자는 과거를 회상하며 베르트하이머의 자취를 쫓고, 자살로 끝난 친구의 삶의 족적을 더듬는다. 베르트하이머의 몰락하는 삶을 통해 현재 자신의 비루한 삶을 위로하는 것 역시 빼놓지 않는다, 비겁한 새끼 같으니.


자기모멸의 예술가


이 소설에서 비극이 시작되는 시점은 마치 모차르트를 만난 살리에르처럼, 두 음악 청년이 천재 글렌 굴드를 만나면서부터이다. 소설의 첫 문장 "우리의 친구이자 금세기 최고의 피아노 대가 글렌 굴드도 쉰한 살까지 밖에 살지 못했지..."라는 말엔 어쩐지 비굴한 자조가 섞여있다. 그만큼 위대하지 못했지만 결국엔 살아남은 자의 굴종이다. 이처럼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이 소설에서 두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실마리가 된다. 유튜브에서 글렌 굴드의 스튜디오 연주를 검색해보면, 마치 피아노에 용해되듯, 한 몸이 된 예술가의 굽은 등을 마주할 수 있다. 마치 열광에 빠진 신도처럼 맹목적이며 어찌 보면 병적이기까지 한 예술을 향한 투신이다. 그 곁에서 절대치를 넘은 예술의 궁극을 맛 본 두 청년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음악 교수나 하면서, 학생들 앞에서 허세나 떨고 사회적 기득권 세력으로 남아 51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글렌 굴드를 비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예술의 기치에 모든 것을 건 이 두 젊은이는 결국 음악가를 포기하고 자기모멸 속으로 도망친다.  

피아노 연주자 글렌 굴드, (1932~1982)

베르트하이머는 왜 자살을 했을까 라는 물음에 답은 있을 수 없다. 화자는 어려가지 이유를 추측하듯 써내지만, 그 마저도 확신할 수 없다. 유일한 단서인 베르트하이머가 죽기 전 남긴 쪽지들 역시 모두 불태워졌다. 다만 작가가 고백하듯 쓴 소설 속 몇몇 문구를 통해 우리는 그 느낌을 교감할 수 있다.

“허영과 위선, 가식과 환멸로 지탱되는 세계의 위장막 앞에서 그는 벌거벗고 소리친다. 그 외침은 그러나 자신을 더 커다란 고독의 상자 속에 가두는 울타리가 된다. 고독의 농도가 짙은 만큼, 울타리 속의 공기는 더 팽팽하고 첨예하다. 내밀한 소리로 응결된 음표들이 그 안에 잔뜩 부유한다. 공허가 딴딴하게 뭉쳐지면 칼날이 되고, 분노가 안으로 삭으면 섬려 한 가시가 된다.”     

때론 삶에 대한 분노가 일상을 지탱하기도 한다. 어떤 예술가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견뎌낸 삶으로 나아간다. 최근 영화로 치면 ‘나홍진’이 그렇고, 유럽 대륙으로 눈을 넓히면 ‘라스 폰 트리에’가 내겐 분노의 뻘밭에서 뒹구는 치들이다. 내가 삶을 한없이 낙관하는 자들을 믿지 못하는 것은, 생의 음습한 뒷모습에 눈을 돌리지 않는 게으른 자들이라는 의심 때문이다. 난 그래서 죽음과 비참한 생의 이면을 거침없이 마주하는 예술가에게 일종의 동경을 가진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말한다, 조국 오스트리아는 나치즘이 청산되지 않은 돼지 소굴이며, 문화 예술은 밟아 죽이는 몰염치의 소산이다. 소설 속 화자의 친구 베르트하이머는 영웅주의와 사회주의 신화화에 물든 고국이 양산하는 자살자들의 스테레오 타입과 같다. 죽음을 미화하고 거기에 빠져들어 자살을 일삼았던 일본 고전 특유의 사소설처럼,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묘사한 오스트리아의 비참한 현실은 비트겐슈타인에서 쇼펜하우어가 남긴 염세주의의 명맥을 잊는 동유럽 문학의 짙은 인장을 가지고 있다. 섣부른 낙관과 긍정의 신호들이 가지는 허무한 표피를 벗겨낸, 거친 고함 소리들이 소설 속에 가득하다. 지속되는 모멸과 증오의 언어들은 금기의 시대와 파열하는 쾌감을 가진다.   

   

소설을 읽으며 지속적으로 글렌 굴드의 연주곡을 들었다. 소설과 달리 연주 중에 쓰러졌다가 병환으로 세상을 달리 한 이 젊은 예술가의 현란한 손놀림을 구경한다. 그는 13살 나이에 베토벤 협주곡 4번을 완벽하게 쳐낸 이후로, 20대를 연주여행을 하며 음악의 지평을 넓혔다.(소설 속에선 호로비츠에 하사를 받았다는 설정이 있지만, 이는 허구이다) 하지만 그는 32살이 되자마자 더 이상 청중 앞에서 라이브 연주를 하지 않기로 한다. 이는 명백히 세상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었다. 난 그가 대중 앞에서 연주를 막 끝낸 모습을 상상해본다. 마지막 연주 날, 굴드는 하나의 연결점을 상실한 느낌에 몸이 굳는다. 조는 청중, 저녁 식사를 기대하며 급히 자리를 뜨는 치들, 다음날 이곳에 있었다는 말을 떠벌이기 위해 자리를 채운 속물들... 악보를 챙기며 공연장을 천천히 둘러보던 굴드는 연주장에 와 있는 사람들에게 지독한 염증을 느낀다. 눈과 입으로만 들을 줄 아는 이 무지의 소산들을 더 이상 마주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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