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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Nov 01. 2018

우주에 오로지 두 사람

나의 눈부신 친구(나폴리 4부작 제1권), 엘레나 페란테 저

작년 가을 3주 동안 이탈리아 여행하던 길에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을 읽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다 저녁 호텔 방에 들어서면 온몸이 축 처졌지만, 그냥 자기는 아쉬워 이 책을 펼쳤다. 재빨리 반바지로 갈아입고 호텔 로비 소파에 몸을 던진다. 당시엔 전자책으로 읽어서인지 한국판 표지를 보지 못했는데, 오늘 카페에서 이 책을 손에 쥐고서야 두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표지 속 릴라와 레누는 나폴리의 한 고적한 바닷가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 난 야만적인 나폴리를 벗어나 그들이 가졌을 아늑함에 안도한다. 소설 속에서 중학교 입학을 앞둔 레누는 릴라의 제안으로 바다를 보러 둘만의 여행을 떠났지만, 정작 릴라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주저한다. 결국 두 사람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바다를 뒤로한다. 늘 두 사람의 어긋남에 마음에 쓰였던 난 이제야 안도한다. 창밖 네온 숲이 자아내는 굉음에 질끈 눈을 감다가도 그네들의 시간에 마음이 놓인다.

나의 눈부신 친구, 엘레나 페란테 저

소설은 릴라의 실종을 접한 레누의 회고로 시작한다. 경륜 있는 작가가 된 레누는 유년 시절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을 글로 남긴다. 레누는 릴라의 비범함과 천재적 면모, 그에 못지않은 괴팍함과 독선적인 이면을 차근차근 적어나간다. 하지만 난 이 책의 제목이 칭하는 ‘나의 눈부신 친구’라는 말이 레누를 향한 릴라의 찬사였음을 기억한다.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지려는 릴라에게 레누는 망각에 저항하듯 긴긴 소설을 바친다. 난 네 권의 긴 소설을 받아 든 릴라의 표정을 상상하며 눈부신 대서사시에 진입했다.


1950, 나폴리


<나의 눈부신 친구>(My Brilliant Friend, Elena Ferrante) 첫 장 제목은 ‘돈 아킬레’다. 그는 나폴리라는 지역성에 기반을 둔 마을의 상징적 인물이다. 돈 아킬레는 귀족을 칭하는 ‘돈’이라는 이름답게 오랜 시간 동안 고리대금업자로 가난한 나폴리 촌 동네를 휘어잡는다. 이탈리아 마피아 카모라와 연관된 인물로 묘사된 그는 나폴리의 취약한 과거에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50년대 나폴리는 가난과 폭력이 넘실대는 공간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가 참패하면서 전 도시 곳곳에 몰락의 기운이 파고든다. 특히 공산당의 전체주의로 말미암은 개개인의 인간성이 파괴된 도시는 극 중 레누와 릴라가 겪는 마을의 폭력적 현실과 맞닿아 있다. 상스러운 부와 가난한 자를 핍박하는 돈의 비린내, 그런 의미에서 고리대금업자인 돈 아킬레는 구시대의 악행을 전이시키는 종양과 다를 바 없다. 이는 한국문학에서 전후 세대의 혼란상을 다룬 ‘최인훈’, ‘조정래’의 고전소설처럼 시대적 폭압이라는 맹수의 등에 올라타 권력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소설이 시작되면 레누 앞에 홀연히 나타난 친구 릴라는 돈 아킬레의 집 문을 다짜고짜 두드리곤 자신들의 인형을 내놓으라고 생떼를 부린다. 이처럼 릴라와 레누는 이 무모한 항의를 통해 시대의 폭력과 가난에 저항할 운명임을 타고났음을 암시한다. 


릴라와 레누


릴라라는 인물은 저항하고 파열하는 행동가다. 그녀를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는 레누는 릴라와 정 반대 지점에서 경직된 사회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지성의 역할을 맡는다. 1권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두 사람의 캐릭터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앞서 말한 바다를 향해 떠나는 둘만의 여행에서 여정을 중단시키는 건 릴라이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나폴리 외부의 경계 앞에서 멈춰 선다. 오히려 그때까지 소심해 보이던 레누가 그녀를 재촉하며 나폴리 밖으로 이탈하려 한다. 또한 레누가 이스키아 섬에서 홀로 여행을 하며 여성으로 성장함과 다르게, 릴라는 신혼여행에서조차 나폴리 인근을 벗어나길 거부한다. 이런 전개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두 소녀의 거리를 의도적으로 갈라놓음과 동시에 릴라를 직관과 통찰의 인물로 한쪽 편에 세우고, 레누를 열등감과 인정 투쟁에 속으로 앓는 내향적인 인물로 그 반대편에 그린다. 릴라의 빛나는 재능으로 이야기를 마치 모차르트를 향한 살리에리의 질투처럼 레누를 힘겹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레누가 학업을 통해 작가로서 자기 발언권을 획득하며 균형추가 맞춰진다.

나폴리 인근 이스키아 섬의 전경, 난 카프리 여행을 했는데 여전히 난 왜 내가 이스키아를 가지 않았는지 알지 못한다.

소설의 말미엔 오히려 레누가 릴라를 앞서기도 한다. 처음으로 자신의 글을 릴라가 읽어주었을 때 끝없이 관찰자에 머물렀던 작가는 관계를 장악한다. 레누가 다소 평범한 인물로 독자가 쉽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엘레나 페란테 작가 본인의 분신으로 느껴지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소설은 오직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세상에 발언을 하고 영향을 끼치는 지성의 힘에 주목한다. 세상에 한 걸음쯤 떨어져 자기만의 생각에 빠진 사람에게 펜촉은 칼보다 정교하다. 학자로서 길을 가는 레누는 사색과 글쓰기를 통해 레누를 자기 안에서 설명한다. 이런 경향은 연애와 사랑의 흐름에서도 드러난다. 릴라는 나이를 먹어가며 그 누구에게도 비견될 수 없는 외적 아름다움을 얻는다. 온 동네 남정네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릴라는 진학을 포기하고 이른 결혼을 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릴라가 선택한 남자는 ‘돈 아킬레’의 아들 ‘스테파노’다. 스테파노는 부유한 사업가지만, 그의 재산은 앞서 말했듯이 돈 아킬레가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검은돈이다. 즉 릴라는 돈 아킬레라는 이전 세대의 영향권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셈이다. 릴라는 스테파노가 자신의 재능에 투자하는 결정을 눈여겨보고 그를 택했지만, 정작 스테파노는 기대를 저버리는 행동으로 릴라의 꿈을 망가뜨린다. 릴라의 이른 결혼이라는 선택은 다소 의아한 지점이 있다. 작품 초반 친구인 파스콸레를 통해 이 나라의 역사에 대해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눈 것을 기억해보라. 파시즘과 극우 왕정복고주의자들이 활개를 치던 그 시절의 나폴리의 취약함에 릴라는 흥미를 느낀다. 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학교의 학문보다, 과거의 악행과 화해하려는 자본가 스테파노와 결혼함으로써 나폴리의 삶을 바꾸고자 했다. 그녀는 부를 통해 나폴리의 낙후된 세계를 개도 하려는 야심을 가진다. 그녀의 실패엔 혁명가의 뒷모습처럼 자가당착과 자기 확신이 결합된 처연함이 서려있다.


두 사람의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인 갈리아니 선생은 릴라의 재능을 처음으로 눈치챈 인물이다. 그러나 릴라가 학업을 포기한 체 자신의 첫 소설 <푸른 요정>을 가지고 찾아오자 낙담한다. 선생은 릴라에게 남은 건 외모뿐이며 곧 사라질 아름다움이라며 폄하한다.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외모가 평범한 레누는 릴라에 대한 열등감에 눈에 보이는 동네 총각과 사귀기도 하나 금세 차 버린다. 왜냐면 그저 흉내 내는 연인관계이기 때문이다. 릴라의 연애를 모방하여 자신의 연인을 만들지만, 거짓된 관계가 주는 감정의 밑바닥에 괴로워한다. 정작 레누가 짝사랑하는 남자는 동네 밖에 거주하는 ‘니노’지만, 이마저도 릴라에게 빼앗겨 충격을 받는다. 이런 실패한 연애를 통해 레누는 사람 감정의 복잡한 측면에 눈을 뜨고, 작가로서의 자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나폴리 도시 전경, 최근 나폴리의 주요 이슈는 마라도나가 아니라 쥐와 범죄율 증가에 따른 도시문제다.

두 여인이 사랑하는 ‘니노’는 동네의 유일한 시인이자 기자인 ‘도나토 사라토레’의 아들이다.  레누가 바라 마지않는 작가와 지성인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니노는 이탈리아의 사회상에 관심이 많지만, 오히려 자신이 사는 나폴리에는 관심이 없는 외부인이다. 니노는 나폴리의 저열한 인간군상을 바꿔보려는 학자 행세를 하지만, 정작 레누가 자신보다 학식을 넘어서는 걸 목격하면 초조해하는 어린 인물이다. 그렇다면 레누와 릴라는 왜 니노를 사랑했을까. 그것은 두 여인이 세상을 개도할 수 있는 지적 체계에 천착해 있으며, 사라토레와 니노의 존재는 두 사람에게 그 표상과 같기 때문이다. 학문의 쓰임과 무용함을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사라토레 부자는 허울뿐인 지식과 변혁의 나폴리를 휩쓴 개혁의 기운을 동시에 머금고 있다.

릴라의 신혼여행지 아말피 해변, 소렌토 절벽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만날 수 있는 아말피 해변은 현재도 최고의 신혼여행지 중 하나다

언론인이자 책의 저자이기도 한 도나토는 레누가 글쓰기의 재미를 알아갈 무렵 그는 이스키아 섬에 나타난다. 도나토는 레누를 범하고 그녀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사후적 측면에서 레누는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한다. 도나토의 손길에 공포와 수치심 외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쾌락을 느꼈다는 성적인 묘사는 니노를 대하는 복잡한 감정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지식인이지만 행동에서는 구린내가 풍기는 모순적인 인물은 레누 그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 발을 저는 어머니의 무지에 늘 열등감을 가졌던 레누가 릴라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나폴리를 벗어나 학문을 통해 계급 상승을 이루려고 하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이든지 나폴리 안에서 승부를 보려고 했던 릴라와 달리 그녀는 외부자의 위치에서 현실을 도피한다. 이런 태도는 니노가 가진 말뿐인 지식의 허무맹랑함과 다르지 않다. 레누는 자신의 첫 글에서 성 삼위일체에서 성령의 역할이 미비함을 지적하는 글을 쓴다. 하지만 릴라는 이 글에 대해 현실에 한낱 영향도 끼칠 수 없는 무용한 노력으로 치부한다. 가난에 허덕이며 날로 상스러움을 더해가는 동네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비싼 학비를 내고 학교에 다녀봤자 하는 소리라곤 현실 세계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지식 놀음이다. 레누는 대학에 진학한 후 릴라의 실패를 듣곤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지만, 정작 레누가 나폴리에서 학문을 뽐내는 순간은 그럴듯한 수사로 동네 사람들을 조종할 때뿐이다. 레누는 지적 허영과 열등감이 빚은 인정 욕구에 목을 맬 뿐, 나폴리의 암담한 현실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결국 레누는 도나토 사라토레처럼 자신의 명성을 통해 타인에게 존중받길 바라는 아린 아이와 다를 바 없다. 그건 마치 성 삼위일체의 성령처럼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 들러리밖에 할 수 없는 그녀의 운명이기도 하다.
 

경계를 넘어


소설에서 ‘경계의 해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인간이 가진 도덕과 가치체계를 넘어선 나폴리 인간들의 무지막지한 행동들은 가끔 릴라의 평상심을 깨뜨린다. 이런 일상의 해체는 그녀가 끝내 나폴리를 떠나지 않는 동인이 된다. 또한 릴라라는 인물이 세상의 불길함을 사전에 파악하여 그와 맞설 수 있는 혁명가의 기질을 가졌음을 암시한다. 릴라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마치 희미한 무언가를 보듯 세상의 균열을 감지한다. 나폴리와 하나 된 릴라는 끝내 행복할 수 없을 테지만, 숙명적인 대상과 마주한 그녀의 선택을 기다린다. 나폴리에서 유폐된 릴라를 바라보는 레누의 마음도 복잡하다. 릴라의 이른 결혼은 레누에게 큰 상처로 남는다. 레누는 릴라의 결혼 준비 과정에서 지독할 정도로 남편인 스테파노에 질투를 느낀다. 두 여성이 나오는 소설이라면 의례 상상하기 쉬운 손쉬운 삼각관계와는 다르다. 레누는 스테파노가 릴라의 육체를 망치고, 더는 이전의 릴라로 되돌릴 수 없으리라는 예감에 절망한다. 이는 명백히 레누와 릴라의 사랑을 암시하는 묘사지만, 작가는 그 이상은 허락하지 않는다. 대척점에 선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고 각자의 우주를 넘어서길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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