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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May 13. 2019

질문, 그 자체를 위하여

영화 <논픽션>

 우리는 늘 믿는 바와 실제 삶의 모순에 직면한다. 목구멍은 포도청이라 생각과 다른 선택을 반복한다. 이런저런 핑계로 적당히 타협한다. 영화 <논-픽션>의 프랑스 원제는 '이중생활'(Doubles vies)이다. 영화는 이념과 실제 사이 딜레마에 선 이들을 무대에 세운다.

 출판사 편집장 알랭(기욤 까네)은 전자책의 비중이 날로 커지는 게 못마땅하다. 지나친 디지털화가 삶에 끼치는 영향에 부정적이다. 하지만 출판사 실적을 위해 전자책 사업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배우 셀레나(줄리엣 비노쉬)는 예술적 자의식에 목마르면서도 인기에 영합해 작품을 고른다. 소설가 레오나르(빈센트 맥케인)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서 외줄 타기를 하듯 글을 쓴다. 무엇보다 앞서 열거한 이들 모두 결혼생활에 애착을 보이면서도 불륜을 저지른다. 체면치레에 바빠 배우자의 외도를 눈치채고도 묵인한다. 현실에서는 변화를 꾀하는 지성인을 자청하면서도 자신에겐 한없이 무디다.

 <논-픽션>을 ‘무엇’에 관한 영화로 특정하긴 어렵다. 디지털과 SNS가 잠식한 삶을 반추하다가 어느새 자리를 옮겨 예술이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논한다. 삶에서 발생하는 의문을 일상 속에 전시하듯 늘어놓는다. 그러니까 <논-픽션>은 대화의 양상 그 자체를 주요 모티브로 삼는다. 마치 ‘100분 토론’처럼 서로 주장이 아슬아슬하게 부딪쳐 시종일관 흥미를 자아낸다. 가령 전자책은 종이책을 대체할 수 있을까.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인터넷 환경이 인류에게 이로운 걸까. 소설에서 타인을 고스란히 옮겨오는 건 윤리적으로 타당한가. 과연 온전하고 지속 가능한 관계란 존재할까. 소셜미디어에 적힌 짧은 글이 문학을 대체할 수 있을까. 영화는 시의적인 질문을 쏟아내지만 정작 답을 구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어차피 삶은 그 자체로 모순 덩어리고 그걸 껴안고 갈 수밖에 없으니까. 외려 인물 간의 갈등을 촉진제 삼아 대화의 질에 공을 들인다. 별다른 기승전결이나 눈에 띄는 사건 없이 오로지 주고받는 대화로 지적 유희를 자아낸다. 물론 거기에 프랑스 지식층의 속물적인 면모를 엿보는 재미는 덤이다.

 우리 삶은 끝없이 변한다. 다가오는 것에 대응하느라 사라지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기술 발전은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그로 말미암은 축약은 상실감을 자아낸다. 누군가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지만 무엇을 주고받는지 깨닫지 못한다. 속도전에 올라타 어디론가 향하지만 맥락은 거세되어 있는 양상이다. 어느새 온 일상은 네트워크가 거미줄처럼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이런 변화에 대응하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가 저열한 인터넷 문화가 자아내는 참을 수 없는 예술의 가벼움을 논하고, <퍼스널 쇼퍼>가 스마트폰을 통해 죽음을 애도하는 시대의 자화상을 그린 것처럼 <논-픽션>은 테크놀로지가 지닌 양면적 의미를 짚어낸다. 어느 한쪽에서는 지나친 디지털화로 우리 삶이 후퇴했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선 오히려 삶의 저변이 된 네트워크가 소통의 벽을 허문다고 평한다. 디지털 시대에 여전히 종이책을 찾는 이가 있고, 아날로그는 다시금 취향의 산물로 주목받는다.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 현재의 과도기는 혼란스럽지만, 그 자체로 좋은 이야깃거리다. 어쩌면 질문에 답을 구하기보다 질문 그 자체가 핵심일지도 모른다. 관성처럼 흘러가는 일과에 제동을 걸고 다시금 삶이 부딪친 모순을 되짚어 볼 때 비로써 디지털 시대도 재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논-픽션>의 가장 큰 재미는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쉼 없이 포개 놓은 대사의 향연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배우들은 마치 어제 술집 한 귀퉁이에서 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아사야스는 스펙터클이 영화의 모든 게 되어버린 요즘 드물게 영화가 삶에 끼치는 영향을 시험하는 감독이다. <논-픽션>은 대체로 어두운 분위기였던 전작들과 달리 욕망에 충실하고 어느 자리에서건 삶을 되묻는 프랑스적 삶을 코믹한 분위기로 펼쳐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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