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가는 여름

by 박민진

일을 시작한 첫해 전 정신이 없었습니다. 엄격한 규율로 통제된 회사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서 늘 벙벙한 상태였거든요. 내키지 않는 복종을 하니 입만 삐죽 나와서 퇴근만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신입이라는 터울에서는 언제 풀려날 수 있는지 감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참신함을 강요받는 상황도 버거웠고, 끝없이 쏟아지는 프로젝트는 제 기만 죽여놨죠. 그냥 하루하루 수습하기 급급했던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묘한 반발감이 들었지만 별수 없었습니다. 절 굴종시키는 초짜라는 지위를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어요.


불볕더위가 셔츠를 적시던 8월 어느 여름날이었을 겁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야근하던 저는 오늘도 책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눅눅한 공기와 울적한 기분이 뒤섞여서 사무실엔 타자기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댔습니다. 다행히도 함께 야근하는 동료가 있어서 견뎠습니다. 남훈이 형은 실실 웃으면서 칼같이 퇴근한 팀장 욕을 맛깔나게 했고, 저는 맞장구를 치면서 분을 풀었습니다. 퇴근 삼십 분 전에 회의를 소집하고, 퇴근 시간 즈음에 일거리를 던져주는 고약한 분이셨죠.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윙윙거리고 녹음으로 둘러싸인 창밖은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사무실 구석에는 그간 제가 쓴 보고서가 켜켜이 쌓여있었습니다. 전 물끄러미 서류 더미를 보며 앞으로 이 회사에서 보낼 앞날이 그려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때 저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요. 눈앞의 것을 수습하느라 거울을 보지 못했던 시기였습니다. 제 모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 앞에 놓인 일거리가 저를 가득 채운 그런 느낌 이해하시나요. 그땐 두려움과 초조함에 매일 동기랑 술을 마시러 나갔던 것 같습니다. 그날도 9시 전까지 보고서를 끝내고 근처 '투다리'술집에서 꼬치에 맥주를 마시기로 한 상태였습니다. 이어폰 볼륨을 잔뜩 올리고 막판 스퍼트를 시작했습니다. 답도 없는 보고서에 답을 주렁주렁 달면서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죠. 근데 그때 문자 하나가 왔습니다. ‘야 J형 죽었데. 너 들었어?’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토막 같은 문장이 생각납니다.


야한 농담을 잘하던 J형. 어슴푸레하게 형 얼굴이 떠오른 건 연락을 받고 오 분 정도 지났을 때였습니다. 전 퍼뜩 ‘왜’라고 답을 보냈지만, 한동안 답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왜 죽었는지 그 친구가 알 리 없습니다. 십 년이 넘은 지금도 잘 모릅니다.

그 해 간혹 입사 동기끼리 술자리를 갖곤 했습니다. 왜 '한밤의 기억'이라는 술집 기억나나요. 고추 튀김이랑 녹두전을 잘했던 곳 있잖아요. 우린 거기 모여서 밤새 맥주를 마시며 놀았습니다. 쥐꼬리만 한 월급이었지만 찬란한 앞날을 꿈꿨던 것 같습니다. 스물 중반의 아이들이 하는 얘기들이란 게 다 시시한 것뿐이지만 그때 우리는 사회 초년생의 고충이라는 얘기가 끊길 일 없는 소재가 있었습니다. 오히려 지금 그때 동기들을 만나면 집 얘기 차 얘기 여자 얘기처럼 뻔한 소리만 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참신하게 상관 욕을 할 수 있는지 경합을 벌이던 그 시간이 그립네요. 우리가 그렇게 허황한 소리를 뱉고 있으면 J형은 꼭 분위기 깨는 소리를 했습니다. 우리의 무딘 현실감각에 경종을 울렸달까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이었는데, 요즘 같으면 어색해서 견딜 수 없을 만한 질문이지만, 아직 대가리가 덜 여물었던 우리는 침묵 속에서 질문의 답을 찾았습니다. 계획이라든지 목표라든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누구를 만나서 연애를 하고 십 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지 진지하게 얘기했습니다. 사실 전 형의 그런 질문이 싫었습니다. 누구보다 진지한 얘기를 좋아하지만 우리는 그런 얘기를 나눌만한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전 먹태를 씹으면서 계속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정신은 딴 데 가 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형은 딱 봐도 엘리트로 보이는 희고 갸름한 얼굴이었습니다. 술은 잘 못 했지만 단정한 입매와 사무적인 말투로 천연덕스럽게 짓궂은 농담을 뱉으며 저를 놀라게 했죠. 왜 조용하면서도 대화를 주도하는 그런 사람 있잖아요. 형이랑 따로 대화한 적은 없었습니다. 모임 아니면 볼 일이 없는 사이였거든요. 동기라는 집단에 묶여서 만나지만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기엔 형이 좀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도회적이고 차가운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그저 제가 몇 살 적다는 이유로 의례적인 친근감을 드러냈고, 전 그에 화답하듯이 형의 허벅지를 툭툭 치면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문자를 받고 경황이 없어서 급히 사무실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그때 답장이 왔습니다. 일하다가, 라는 짤막한 문자였죠. 사람이 일하다가 어떻게 죽을 수 있지. 전 더 물어보지 못했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땐 경황이 없어서 금세 갈게, 라고 바로 답을 보냈어요. 근처 사는 동기들을 모아서 아반떼에 일곱 명이 타고 성남으로 향했습니다. 그날도 참 오늘처럼 더웠는데.

성남 귀퉁이에 자리한 자그마한 대학 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거의 열 시가 넘은 밤이었습니다. 장례식장엔 비통함보다는 어리둥절한 당혹감이 부유했습니다. 전 거기서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은 응어리진 침묵을 마주했습니다. 전 뭐가 두려웠는지 고개만 숙인 채 빈소에 발을 디뎠습니다. 에어컨 탓인지 그 여름에 바닥이 어찌나 차가운지 전 엄지발가락을 구부리고 어색하게 조문을 했습니다. 그때 사람들 표정을 당신이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그 굳어버린 얼굴이 저를 잡아먹을 것처럼 무시무시하게 느껴졌습니다. 거기엔 죽음이 엄연했고 달리 도망칠 구석은 없었습니다. 사실 그 이후로는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놈의 육개장을 먹고 무슨 얘기를 나눴겠죠. 사인은 과로에 의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라고 하던데 전 믿지 않았습니다. 격무에 시달리던 형은 매일 야근을 하다가 느닷없이 쓰러져 죽었다는데 말하는 사람도 적당히 알아들으라는 표정이었거든요. 유서도 없이 미스터리만 남기고 죽은 형. 견디기 힘든 곡소리와 번갈아 침묵의 아우성이 절 밀쳐내는 기분에 시달리다 자정 전에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죽음과 멀찍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뉴스 속에 나오는 그 흔한 죽음도 다 먼 얘기였죠. 우습게도 그날 밤 전 컴컴한 극장에 틀어박혀서 팝콘이나 씹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걸 거부했나 봐요. J형의 죽음은 어쩌면 제가 어른이 되어 처음 맞이한 끝이었던 겁니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린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낭만이나 그리움이 없는 그처럼 새카만 밤은 제가 원하는 밤이 아니었습니다. 삶에 절대적인 종결 부호가 있다는 걸 처음 실감한 날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삶이 그렇게 상처를 남기고 없어진다는 게 절 옥죄어왔습니다. 제가 막연한 낙관으로 그럭저럭 잘 구축해놓은 듬직한 삶이 부서질까 두려웠습니다. 그날 밤새도록 빈소를 지킨 동기들과 달리 전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샤워하고 맥주를 마시며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머니가 깎아주신 사과도 먹였죠. 실없이 웃다 잠들었습니다. 다음 날도 주말 거리의 생생함을 느끼고 싶어서 일찌감치 시내로 나섰어요. 운구를 부탁하는 동기의 문자를 무시하고, 끝내 형의 입관도 외면한 채 살아있다는 걸 즐겼습니다. 저녁에는 친구랑 만나서 한참을 떠들다가 자정이 다 돼서야 들어갔습니다. 어디에서도 형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전 죽음에서 놓여날 수 있었습니다. 죽음의 기척을 떨쳐내려고 정처 없이 쏘다녔던 거죠.


최근에 우연한 기회로 J형 아버님이 만든 네이버 카페를 들어가 봤습니다. 형을 추모하는 문장을 몇 자 적고 나왔습니다. 사진첩에는 형의 유년기부터 직장을 다닐 때까지 사진들이 곡진한 사연과 함께 올라와 있었습니다. 전 그다지 친하지도 않던 형의 인생을 복기할 수 있었어요.

독서를 하며 죽음을 다룬 수많은 작품을 읽어왔습니다. 여전히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죽음에 관해 읽고 있으면 전보다 덜 두렵다는 걸 느낍니다. 병실 앞에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이나, 모로 누워 책을 읽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글로 쓰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스산하기도 한 그들의 늙음에서 죽음의 기운을 봅니다. 제 근원이자 생명의 발원인 그들이 소멸해가고 있다는 느낌은 아프지만 엄연한 사실이라 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계절의 순환처럼 자연스러운 거라며 짐짓 의연한 척해봤자 소용없지만 그래도 죽음이 지척에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날 더 위로해줬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주는 위안이 있거든요. 당신과 헤어지고 나서도 전 죽음을 떠올리며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당신과의 이별은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좌표평면에 고작 한 지점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며 그리움을 물리쳤습니다. 아침에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할 수 없을 때 이러다 병나면 어쩌나 싶었지만, 죽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통증은 죽음과는 엄연히 다릅니다. 이별은 관계의 죽음이지만 추억은 버튼 하나만 딸깍 켜도 살아 숨 쉽니다. 당신과 데이트를 하고 집에서 사랑을 나눌 때 전 살아있음을 느꼈는데 그게 사라지니 배 언저리에 동공이 생겼습니다. 당신을 안고 토닥이고 다정한 말을 속삭이던 순간이 더는 없다고 생각하니 그 큰 구멍으로 찬 바람이 흘러들어옵니다. 이렇게 저물어가는 여름에 당신을 만났고, 그 더위가 미처 사라지기 전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