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맛

by 박민진

커피를 사러 밖에 나서니 햇살에 녹아내렸습니다. 한겨울의 낮 공기는 맑고 청명했습니다. 찬 공기가 코로 들어와 속을 환기했어요. 어제 먹은 술이 거센 트림으로 개운함을 고조시키면서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겨울 공기는 불가사의하고 복잡하며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줍니다. 특히 볕을 쬐며 걸을 땐 강아지의 촐랑대는 엉덩이처럼 생의 활달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겨울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면 표면에 담지 못한, 좀 더 깊은 심층에 자리한 생의 비밀이 섞여 들어오는 느낌이 듭니다. 전 그걸 겨울의 환(幻)이라 칭해요.


고요함에 잠긴 거리가 낯설기 그지없습니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연초인데 마치 망조가 든 디스토피아의 풍광입니다. 과거에 흑사병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갈 때도 이랬겠죠. 사람도 없고 차도 없는 텅 빈 곳입니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찬 공기를 마시니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놓여난 기분입니다. 청신한 바람이 기꺼워 동네를 쏘다녔어요. 말이 산책이지 거의 행군에 가까운 여정이었습니다. 수 시간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골목골목을 구경했습니다. 헬스장에 못 가니 이렇게라도 열량을 소모하고 싶었습니다. 어젯밤 거울을 보니 뱃살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더라고요. 힘을 줘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 두드러졌습니다. 이대로 배 나온 아저씨로 남을 순 없어서 오늘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괄약근에 힘을 주고 빠른 걸음으로 한보 한보에 집중하며 걸었습니다. 걷는 도중에 몇 번씩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김환기' 화백은 대형 캔버스에 점을 찍고 또 찍어 겨울 새벽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새벽 #3>엔 백설이 하얗게 쌓인 아침 풍경이 보입니다. 점과 점 사이에 자연의 질서를 새긴 걸까요. 겨울처럼 창백한 하늘과 새벽달 같은 동그라미가 보이니 마치 태곳적부터 내려온 추위를 머금은 인상입니다. 도시의 네온처럼 형형한 점들이 담백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화백은 아늑한 겨울 정취를 그리면서 하나라도 더 덜어내고 지우려다가 결국엔 지긋이 점만 눌러 담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의 겨울이 화폭에 다 담긴 듯 온전해 보입니다. 진짜 좋은 작품은 그냥 오래 지켜보는 것만으로 좋은 건가 봅니다. 화백은 제 이름처럼 춥기보다는 시원한 그림을 남겼습니다. 전 고작 구글 검색으로 그의 겨울을 탐했지만 부족함 없는 풍광입니다.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소설 <설국>에서 니가타현의 새하얀 겨울을 깨끗하다고 묘사했습니다. 저도 그 표현에 동의합니다. 여름은 눅눅하지만, 겨울은 깔끔한 느낌이 있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변태처럼 온천 거리에서 일하는 기생의 발가락을 보고도 깨끗하다고 평했습니다. 정확하게는 발가락 사이의 오목한 부분까지 깨끗하다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이상하게 그 표현이 관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니가타현처럼 눈의 고장은 아니지만, 강원도행 기차를 좋아합니다. 여인의 발가락 정도는 아니지만 튼튼한 팔뚝처럼 믿음직스러운 풍경이 펼쳐지니까. 지난겨울 강릉 경포대 부근을 걸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분명 짙은 푸른색에 가깝게 보이는 겨울이었습니다. 눈은 없었지만 커피도 맛있고 거리도 쾌청해서 당시에도 설국의 한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그렇게 겨울 공기는 제게 국경을 넘어서는 기분을 안겨줬습니다. 국경이 없는 한국에서 강원도라는 공간은 여타 다른 도시와는 다른 경계선을 갖고 있잖아요. 그건 추운 겨울에만 선명해지는 혹한의 고장이면서 설국으로 불러 마땅한 눈의 지역이기도 합니다. 전방 군부대의 악명만 없었으면 사람들은 강원도를 이국의 땅으로 기억했을 겁니다. 전 동네 공원이건 여느 소설에서건 이제는 세상을 뜬 화가가 남긴 화폭에서까지 겨울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얼어붙은 몸이 풀리면서 한참 발길을 끊었던 옆 동네까지 걸었습니다. 아이폰으로 만 보에 가까워진 걸음 수를 체크하고 멜론을 틀었습니다. 확실히 겨울이라 플레이리스트에 서정적인 곡들만 가득했습니다. 헬스장에서는 빠른 박자가 어울리지만, 산책할 땐 중간 박자가 적합합니다. 돈과 여자 얘기로 가득한 힙합은 겨울과 거리가 멀죠. 쿵쿵거리는 비트에 맞춰 옆자리 장사들과 끙끙 소리를 내며 추위를 잊던 시간도 그립지만, 아무래도 겨울은 찬 공기를 피해 코트 안으로 코를 숨기고 웅크리며 걷는 발라드에 가깝습니다. 구슬픈 가사엔 항상 당신이 있었고, 전 우리 추억을 떠올리며 회한에 젖곤 했습니다.


요즘은 삶이 너무 조용해서 왁자지껄한 술자리가 그립습니다. 친구들과 새벽까지 갈매기살을 구우며 술잔을 기울이는 시간은 언제 다시 올까요. 한창 술을 먹다 조용히 자리를 뜬 당신을 따라나서서 미묘한 얘기를 건넸습니다. 형형색색으로 장식한 핸드폰을 들고 긴요한 분위기에 휩싸이던 당신 표정이 떠올라요. 당신과 함께 연말을 보내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쉬울 겁니다. 우리가 함께 세운 계획이 허물어지니 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방구석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움이 밤새 온 눈으로 하얗게 셌습니다. 그렇게 난 긴 산책을 끝내고 겨울의 환(幻)에 시달리다 집에 들어왔습니다. 종소리가 땡 하고 울리는 것처럼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진귀한 뭔가라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가 서신을 주고받았던 것처럼 정신적인 측면으로도 긴요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잔뜩 미쳐서는 우리 사이를 단테와 베아트리체만큼이나 간곡한 것으로 떠벌리는 글을 써냈습니다. 그렇게 힘 나는 대로 안간힘을 내서 적으며 우리 사이가 지속하기를 염원했습니다. 어느 한순간도 놓치지 싶지 않아서 기억이 나는 대로 다 적었습니다. 다 쓰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토씨 하나하나에 고심하며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사이가 허물어질수록 더 애를 쓰며 시인 못지않은 감성으로 적었습니다. 두드러진 형용사와 부사를 붙이며 전 만족했던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은 큰 의미가 있고 제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드라마가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붙들던 글도 아침이 되면 절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적나라하게 들이치는 햇볕에 비친 제 글은 공허한 소리에 불과했고, 우리 관계도 사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뻔한 얘기라는 게 다 탄로가 나버린 겁니다. 우리 사이에 오갔던 그 진부한 싸움을 지워내니 현실감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흉하디 흉한 폭력과 증오는 다 어디에 팔아먹은 걸까요. 우리 사이를 미화하고 속 편하게 믿고 싶었나 봅니다. 그렇게 꾸며내니 당신이 사라져 버린 건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전 스스로 믿는 방식의 사랑을 썼지, 사실 그대로를 쓰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진부한 소설처럼 뻔해져 버렸습니다.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지만, 확실히 제가 사랑했던 당신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SNS 속 당신은 현실에서 제 갈 길을 가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프로필 사진 속의 당신은 귀중한 시간을 축하하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우리 둘이 함께 시간을 보냈던 곳을 거닐고 있습니다. 제가 모르는 당신 표정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다 사라져 버릴까 봐 두려워서 부득불 뭔가를 적어낸 저를 초라하게 만드는 웃음이었습니다.


굽은 등으로 노트북을 쳐다보며 흩어진 기억을 모아 읽을만한 문장으로 바꾸는 게 요즘 제 일입니다. 올해 나올 책을 준비하며 우리의 지나간 시간을 다시 적고 있습니다. 연애담을 책으로 낼 줄 몰랐지만 결국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미간은 점점 더 구겨지고, 허벅지는 시리지만 한 권으로 묶을 당신을 생각하면서 힘을 내고 있습니다. 매일 몇 시간씩 공들여 쓴 문장에 갇혀서 지쳐가고 있습니다. 언제쯤 원고가 완성될지 모르지만, 우리의 시간이 의미 없이 사그라드는 꼴을 보느니 이렇게 써서 남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형체가 불분명한 감정이 난무하는 글은 어딘지 모르게 먼바다를 부유하는 거무죽죽한 기름띠처럼 보이네요. 오직 당신에게만 폭발적으로 몰입한 글은 유독할 정도로 독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적고 싶었지만, 뜻대로 잘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종결 부호를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도 잘 몰라서 한참 동안 멍하니 문장을 바라볼 때가 잦아졌습니다.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네요. 연인을 위하고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흰 가루가 휘날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부신 시절은 이제 다 지나간 걸까요. 현실에 켜켜이 쌓인 숙제들이 먼지처럼 주위를 부유하는데 당신만 사라져 버렸습니다. 출근, 식사, 회의, 커피 잔뜩, 퇴근 후 독서, 운동 후의 지질한 글쓰기가 다 고스란한데 당신만 지워졌습니다. 이제 당신을 향한 글도 쓸 만큼 다 쓴 것 같습니다. 이제는 끈적이고 질척이는 무거운 감정만 가슴께에 남았습니다. 더 했다가는 꼴이 우스워질 것 같아 이만 줄입니다.


이제 저는 또 다른 글을 써야만 합니다. 새로운 글에 당신 몫은 없을 겁니다. 맥북을 펼치고 두드려서 만든 문장들이 제 탄환입니다. 써야 한다는 강박과 읽어야 한다는 구매 흔적이 거실을 초토화했습니다. 살도 빼야 하지만 이제 뭔가 다른 이야기를 써내야 할 때입니다. 백지를 앞에 두면 고민이 깊어집니다. 떠오르는 상념을 어떻게 단출하게 문장에 녹일 수 있을까요. 몬드리안의 데스테일 작품처럼 단순한 색의 배합으로 온전한 세계를 구축할 순 없을까요. 항상 실패하지만, 글을 쓸 때 유념하는 생각입니다. 너무 너절해지면 안 된다는 다짐을 합니다. 하지만 오늘도 이 글을 봐서 알겠지만 제 의도대로 되진 않았습니다. 전 이제 견고한 질서를 가진 글을 쓰고자 합니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용의 뭔가를 적어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제 곁에 없으니 이제부터는 손에 잡히는 주제로 덧없는 순간을 포착해서 심상한 분위기의 표현력으로 적고 싶습니다. 모든 것을 수용하는 동시에 구조적인 견고함을 더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노란색, 파란색 그리고 몇 개의 선까지. 제 머릿속에 하나의 상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건 겨울처럼 깨끗해서 더할 나위가 없을 겁니다. 당신 없어도 온전해질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