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정성스럽게 혼자 삽니다

나쁜 소녀의 짓궂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by 박민진

내 20대는 혼자인 기억이 대부분이다. 요즘엔 혼자 사는 이들이 예능 프로의 주요 포맷이라 익숙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혼자라는 개념은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관념이었다. 고독이라는 어휘가 부정적으로 쓰이는 한국에서 혼자라는 말은 훼손된 상태를 의미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혼자를 지리멸렬하게 의식했다. 예능에 나온 셀럽은 발랄하게 혼자 즐기지만, 내겐 그의 모습이 다다이즘 화가의 작업물로 보인다. 화려한 주방에서 시간과 공들여 완성한 요리를 혼잣말하며 먹질 않나, 손님을 초대하곤 자기 침실을 소개하는 이해 못 할 짓을 벌인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혼자 사는 집이 청결하다. 그 운동장 같은 집이 티끌 하나 없이 매끈하다.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현실감이 떨어진다.

탄탄한 경제력과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자의식으로 무장한 네오싱글이 이 도시엔 그득하다. 이렇게 수많은 개츠비가 모여 살다 보니 밤은 휘황하고 문학은 자취를 감췄다. 21세기의 집시는 세속적 휘장을 두르고 지하철을 탄 일개미를 굽어본다. TV를 보며 발가락을 후비던 난 리모컨을 소파에 던지고 잘 읽히지 않는 올리비아 랭의 책을 낭독했다. '아 문학적이다' 되뇌며, 어느 예술가의 고독을 우러른다. 잘 소화도 되지 않는 문장을 곱씹었다.

서울의 원룸 오피스텔은 이제 교회당보다 많고, 혼자 사는 가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우후죽순 늘어났다. 모두 예능에 나오는 연기자처럼 잘 먹고 잘살고 있을까. 아니면 나처럼 라면 물을 올리며 세탁기의 종료 신호를 기다릴까. 과거 도시 재개발로 인해 달동네 쪽방촌 거주민이 생계의 귀퉁이에 몰리는 광경을 봤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나. 값싼 연민을 품고 쯧쯧거렸나. 아니면 내 일이 아니라고 안도했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요즘 신림동과 노량진 뒤편 골목길을 산책하다 보면 마치 오피스텔로 이뤄진 벌집처럼 보인다. 달과 가깝긴커녕, 저지대에 자리 잡아 모든 습기를 빨아들인다. 여차하면 떠날 준비를 마친 도시의 이방인들은 단출한 살림과 혹독한 월세를 감내한다. 이 도시의 주인은 따로 있어 뿌리를 내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 벌집을 그저 나쁘게만 볼 수도 없다. 그 작은 공간도 내가 사는 방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하나뿐인 아늑한 보금자리일 테니. 자그마한 침대에 기대 책을 읽고 도마 하나 놓기 어려운 부엌에서 나만의 요리를 한다. 손수 마련한 책장에 꽂혀있을 책을 상상한다. 생활 양태를 일 인분으로 맞추고 세속적 가치에 반목하는 도시의 보헤미아가 느껴진다. 몰 취향을 혐오하고 번지르르한 놈에 콧방귀 뀌는 그런 아나키즘이야말로 지금 이 도시의 집시들이 버텨나갈 수 있는 유일한 축대일 것이다.

최근 자주 가는 종로의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책을 들고나왔다. <나쁜 소녀의 짓궂음>이라는 두툼한 책을 가방에 넣고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다. 읽다 보니 이 책의 화자 리카르도가 나랑 좀 비슷한 녀석처럼 느껴졌다. 역시 문학에 진실이 있나 봐! 바르가스 요사가 그린 한 청년의 삶은 다단하다. 페루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살길 염원한 리카르도는 전문 통역사가 되려고 무던히 노력한다. 거기에 돈이 안 되는 문학 번역도 공부하며 눅진 꿈도 펼친다. 혈혈단신으로 거대 도시 파리에 온 리카르도는 온갖 사람을 만나 기회를 잡고, 노력을 증명해 온전한 혼자로 우뚝 선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20세기 중반의 근현대사를 관통한다. 쿠바 혁명이 미처 전이되지 못한 페루의 혁명을 엿보고, 세속에 찌든 파리, 예나 지금이나 요사스러운 일본까지 바삐 오간다. 이념 전쟁이 미처 끝나지 않은 시절, 뭐든 시도만 하면 한 가닥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기회의 시대가 들끓는다.

리카르도는 운이 좋은 녀석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언어가 일상에 빼곡하다. 전문직에 집도 있으니 다 괜찮다. 하지만 그는 한 여인이 나타나면 삽시간에 무너진다. 어렸을 적 우연히 만난 후 완전히 빠져버린 나쁜 소녀! 리카르도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곡절마다 나타나 그를 뒤흔들고 증발하듯 사라져 버리는 그녀! 밥 먹듯 이름을 바꾸고, 부와 권력을 쥔 남자를 등쳐 먹으며 욕망의 사다리에 올라탄 그녀! 리카르도는 그녀에 빠져 가혹한 사랑의 채찍질을 견딘다. 유혹의 소나타엔 우선 올라타고 봐야 한다는 신의 계시가 그를 채운다. 하지만 평범한 리카르도를 하찮다고 무시하고, 뭐든 시간이 좀 지나면 실증이 나 버리는 나쁜 소녀는 그의 사랑을 매번 무시한다. 그녀를 잡지 못한 애달픈 마음은 리카르도를 자살 충동, 우울과 몽상, 자책과 낙담으로 몬다.

리카르도는 근사한 파리에서 거의 평생을 살지만 결코 그녀를 떠나보내지 못한다. 무수한 여자를 스치지만 종국엔 그녀에게 돌아간다. '이봐 친구, 그런 극단적인 애정은 소설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린다고!' 아무리 외쳐봐도 녀석은 들은 척도 안 한다. 사랑의 광시곡에 질려갈 즈음, 내 불평을 듣다 못한 바르가스 요사가 펜대를 흔들며 내게 훈계하듯 말한다. "이봐 친구,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말도 못 들어 봤나?" 마술과 리얼리즘이라는 형용 모순을 수용하는 남미 문학은 하나같이 다 이런 식이다. 열정적 사랑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꿀 같은 눈동자를 지닌 그녀에 백기 투항한다. 파리에 근사한 고택과 고적한 산책길을 두고 잘하는 짓이다. 쯧쯧.

사랑에도 권력이 있는지 내가 더 좋아하면 상대는 달아나기 바쁘다. 덜 좋아한다는 이유로 맘대로 휘두른다.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걸 파악하곤 잘 상처가 아물 즈음 나타나 삶을 뒤흔든다. 다시 떠날까 두려움에 떠는 날 옥죈다. 문제는 그걸 잘 알면서도 이 패배주의적인 연애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며 구애에 목매는 지긋지긋한 연애. 하지만 이런 방식의 연애는 글쓰기엔 도움이 좀 된다. 리카르도가 그녀와의 지독한 사랑을 글로 남긴 것처럼. 연애가 없는 일상은 권태가 잠식하고, 비록 찍소리도 내지 못하는 무차별한 사랑이라도 영감의 뮤즈를 떠올리며 펜대를 굴린다. 그래서인지 리카르도 역시 정신을 차리고 한 편의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난 혼자 사는 리카르도의 일상을 상상한다. 아마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한 시리얼을 먹고 출근 준비를 시작할 것이다. 키가 멀쑥하게 커서 구부정한 자세로 바지를 주섬주섬 챙겨 입고, 매일 입는 흰 셔츠를 입겠지. 짧은 머리는 대충 빗어 넘기고, 늘 들고 다니는 가방에 소설책 한 권을 챙긴다. 아마 러시아어 사전도 고민 끝에 챙길 것이다. 불룩해진 가방엔 연필도 몇 자루 있고, 가끔 끄적이는 수첩도 하나 자리한다. 누가 봐도 남루한 행색을 한 리카르도는 직장을 출근하기 위해 버스를 탄다. 파리 역시 서울과 마찬가지로 아침은 출근 지옥이다. 지갑 속엔 나쁜 소녀의 사진이 한 장 있다.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몰래 찍어놓았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그녀를 한없이 기다리기보다는, 사진을 보며 그녀를 떠올리고 그녀의 일과를 그리는 데 익숙해졌다. 오늘은 뭘 먹었는지, 괜찮은 남자와 만나고 있는지, 점심 막간에 다홍색 원피스를 휘날리며 산책하는 그녀의 행복을 염원한다. 아니 도리질 치며 내가 없어 불행하길 바란다. 그래야 내게 다시 돌아올 테니까.

오늘은 술자리에서 새벽을 지새웠다. 혼자가 속 편하다고 술자리에서 떠들었다. 자리가 파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애석한 마음에 자꾸 헛소리를 뱉었다. 결국 새벽 술자리는 결핍을 남긴 채 끝이 난다. 가까스로 잡은 택시에 타자마자 매캐한 숙취가 밀려온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창에 기대 한 숨 돌렸다. 그날 한 헛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후회뿐이다. 집에 도착해 대충 씻고 침대에 누웠다. 리카르도가 좋은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참한 아가씨와 더 나은 연애를 하기를. 잠이 쏟아진다.




사진 출처 : 모든 사진은 로베르 두아노가 찍은 파리를 배경으로 한 사진입니다. 문제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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