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집, 무라카미 하루키 저
일요일 아침이라 침대에서 비비적대다가 주위에 널려있던 책을 펼쳤어요. 가뜩이나 무거운 눈꺼풀을 누르는 책을 피해서 이리저리 뒤적였죠. 하루키 수필은 이럴 때 제가 즐겨 집는 주전부리예요. 모로 누워 한 발을 베개에 올린 채 읽기에 좋죠. 별 시답잖은 내용이 가득한데 그 별거 없음에 매료돼요. 어깨에 힘을 뺀 하루키의 문장은 좋게 말하면 정갈하고, 나쁘게 말하면 대충 쓴 거 같아요. 통념은 무시하고 뭐든 가볍게 추구하는 맛이 꼭 심심한 잔치국수 같은 맛이죠. 오늘은 하루키가 온갖 곳에 기고한 단문을 모은 <잡문집>을 읽었어요.
잡문이라니, 이렇게 막 쓴 글로도 돈 벌 수 있는 그의 팔자가 부러웠습니다. 전 맹렬히 글을 쏟아내도 세상은 들은 척도 안 하는데, 이 양반은 여기저기 끄적댄 잡문들로도 내 아침을 장악했으니 말 다 했죠. 도무지 특출날 거 없는 문장인데 하루키의 심심한 어투를 흘려들을 순 없습니다. 오랜 세월 읽어온 탓에 신뢰가 쌓여서 이제 알 만큼 아는 형 같이 느낍니다. 지금도 그의 몇 가지 생활방식을 따르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의 식단과 운동 그리고 재즈와 클래식을 듣는 취항 하며 두부 같은 자극 없는 음식을 먹으면서 글을 을 쓰는 것도 다 그의 영향입니다. 그러니 그가 무슨 얘기를 하든 다 귀담아듣습니다. 저는 문학을 말 그대로 재밌어서 읽는데 하루키야말로 무의미에 축제를 한껏 즐기는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그의 산문은 한갓지고 느슨한 게 여러모로 구겨진 내 이부자리와 잘 어우러집니다.
눈이 피로해져서 다시 잠들었다가 깼습니다. 창밖 날씨가 우중충하네요. 잿빛에 가까운 바깥 풍경에 들뜬 기분이 사그라들었습니다. 조금 더 지체하다가는 일요일이 사그라들까 두려워져서 급히 욕실로 향했습니다. 몸이 찌뿌둥하고 허기가 져서 힘이 없었습니다. 이를 닦으며 점심은 뭘 먹어야 하나 생각했지만,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었습니다. 전 왜 일요일 점심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매끼 먹는데 왜 매번 선택지가 있으면 종종거리는지. 이럴 땐 제가 사는 꼴이 하루키의 소설 속 화자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낍니다. 취향, 생각, 외모에 쓸데없는 짓을 좋아하는데 우유부단하죠. 뭐라도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면서도 뭐가 될까 두려워서 자꾸만 선택을 유예합니다. 그래서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극적인 사건을 기대하기보다는 하루키의 화자가 사는 일상을 구경하길 더 좋아합니다. 선택의 순간을 최대한 미루고 안전한 취미에 머무는 꼴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키의 글에서 등장하는 배경음악과 신발 브랜드, 스웨덴산 가구 따위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마치 제품 카탈로그 보는 것처럼 구글로 검색해가면서 소설을 읽는 거죠.
하루키의 인물과 저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소설 주인공은 요리를 수준급으로 한다는 겁니다. 파스타든 삼치구이든 거리낌 없이 해내는 그들은 독거의 달인들이죠. 이것도 제가 배워야 하는 바입니다. 전 기껏 해봐야 김치볶음밥인데 하루키는 태초부터 혼자인 사람처럼 부엌일에 능통하죠. 전 어쩌면 어딘지 모르게 동일시하기 어려운 하루키 적 삶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산문을 읽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속된 것에 붙들리지 않고 늘 몇 발자국 뒤에서 관조하는 시선으로 삶을 관찰하는 태도를 베끼고 있습니다. 당최 불가능한 단독자의 삶을 이루지 못한 저와 달리 유유자적 공원을 소요하는 하루키의 글은 제 대리만족 수단입니다. 고심 끝에 근처 식당에서 백반집으로 향했습니다. 당신과 제가 먹었던 그 생선구이 집 맞아요. 당신이 소주 한 병에 먹었던 그 갈치조림을 시켰습니다.
책에 따르면 하루키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두부를 구워 먹고 달리기를 한다고 해요. 한 시간 정도 동네를 뛰고 샤워까지 하면 그제야 글을 쓰기 시작하죠. 그리고 늦은 오후가 되면 독서를 즐기고, 밤엔 재즈를 들으면서 위스키를 홀짝이다가 초저녁에 잠자리에 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아침이 시작되는 거죠. 전 그에게서 일종의 수도승과 같은 정절을 보곤 해요. 그가 구축한 패턴은 긴 세월을 거쳐도 어느 하나 맛이 변하지 않는 빈티지 와인과 같아요. 이제 누구나 따라 해보고 싶은 브랜드가 되었죠. 거기엔 흘리지 않고 사는 자의 위엄이 있으니까요. 돈과 명성에 아랑곳하지 않고 까치발을 들고 세속적인 태도를 경계하는 삶이 늘 재밌지만은 않겠지만 적어도 비슷하게 정도는 따르고 싶어요. 전 지금으로선 아등바등하며 세상사에서 헤어 나올 수 없지만,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서 대리 만족을 느낍니다. 당신은 하루키적 삶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당신처럼 주색에 미혹하고 방에는 와인병이 수두룩한 사람이라면 이 아저씨가 참 재미없게 보이겠죠. 전 당신 속도 모르고 규칙적인 운동과 루틴을 강조했는데, 조금도 먹혀들지 않았던 걸 보면 우린 애초부터 어긋난 지향을 가진 사람이었나 봐요.
점심때 먹은 칼칼한 순두부가 부대껴서 산책을 나왔습니다. 아직도 숙취가 남아서 편두통이 골을 울리네요. 당신에게 헛소리를 늘어놓은 게 마음에 걸립니다. 비틀거리던 어젯밤 일을 반성했어요. 좀 멋있게 헤어지고 싶었는데 망신스러운 기분입니다. 어젠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잘 기억도 나질 않네요. 철면피처럼 염치없이 굴었던 것 같아 미안합니다. 전 왜 어제 빨리 당신 집에서 나오지 못했을까요. 그냥 밤이 끝나는 게 서글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남 일 얘기하듯이 어젯밤을 구슬려 봤지만 모든 게 불확실하게만 보였어요. 사실 이런 기분은 하루키 소설을 읽을 때 자주 느끼곤 합니다. 미스터리를 바탕으로 독자를 현혹하는 그의 방식은 만취한 새벽의 기억과 닮아있죠. 기억은 듬성듬성하고 사실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신비롭게 느껴지는 아스라한 기운입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사건의 전말은 신기루처럼 흩어지고, 눈을 비비고 보면 홀로 책을 읽는 소년만 눈에 들어오죠. 당신과 만나고 들어온 어제저녁은 제게 모든 게 불확실한 것투성이였습니다. 현실과 픽션이 뒤섞여 기억에 구멍을 냈고, 밀도가 낮은 제스처가 시간을 부유했습니다. 전 제가 어제 당신에게 뱉은 말이 꿈인지 생시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그냥 60촉 백열등에 기대 하루키의 <잡문집>을 마저 다 읽었습니다.
에어팟을 귀에 꽂고 빌 에번스의 ‘포트레이트인 재즈’ 앨범을 틀었어요. 하루키가 <재즈의 초상>이라는 이름으로 낸 에세이와 같은 제목이죠. 하루키는 자신이 쓴 재즈 산문집으로 지극히 사적인 시간을 독자와 공유했어요. 빌 에번스의 서정적인 선율을 듣다 보면 세상은 밤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을 고쳐먹고 세상은 모든 날이 일요일만 같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더할 나위가 없을 텐데 싶었죠. 당신의 오늘 일요일은 어땠나요. 전 그걸 듣고 싶지만, 당신과 이어진 모든 게 차단된 탓에 아무것도 할 수 없네요. 부디 잘 지내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