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어떤 어른으로 살고 있나. 최근 여러 사람과 커피를 마시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어. 난 어른들과 어른 세상 얘기를 하는 셈이지. 근데 그게 괜히 답답할 때가 있어. 일상에서 세속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어른들은 세차게 휘둘리는 사람들이잖아. 나 역시 다를 바 없이 섣부른 추측으로 대화를 오염시키곤 해. 내 미천한 생각에 미뤄 속단하면 이야기는 뻔해져. 보잘것없는 통념에 비춰 무언가를 생각하는 버릇을 끊지 못하니까. 상대가 어떤 말을 해도 고개가 삐딱해지고, 짐짓 고개를 주억거리며 언어의 순수한 기능을 받들고자 하지만 쉽지 않아. 이럴 때일수록 단어의 조탁이 미숙해도 천연한 말을 하는 사람이 눈에 확 띄어. 마치 너처럼 언어를 순수하게 붙들고 사람 기분을 예민하게 의식하는 사람이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어. 내가 지금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건, 그렇게 너와 가졌던 눈에 띄는 예민함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야. 현학적 어휘를 써도 말에 묻은 먼지를 고이 털어내며 답을 하는 네게 호감을 느꼈어. 그런 사람은 글쓰기에도 도움을 줘. 너도 알다시피 너를 만나고 내 분량이 확 늘어났잖아. 평소 즐겨 사용하는 말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문득 새로운 어감을 손에 쥐기도 하니까. 난 동경 어린 눈으로 너를 바라봤어. 너의 언어를 늘 읽고 싶어서 절절맸지.
이번 주에 만난 친구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차선 변경을 시도한대. 옆자리에 앉아있던 친구는 결혼으로 인생 2막을 맞겠다며 입매를 가다듬고 웃고 있어. 누군가는 직장의 처우가 불만스럽다며 목덜미를 긁고, 난 그들 속에서 못지않은 어려움을 토로해. 과연 내 뜻이 고이 전달되기는 했을까. 대화라는 것이 말이라는 게 하면 할수록 그 진심이라는 걸 전달하기 어렵잖아.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해. 전엔 쉽게 쓴 글이 무조건 좋은 글인 줄 알았어. 잘 읽히는 단문 위주의 쉬운 문장에 끌렸으니까. 힘 있는 문장은 인생을 가지런하게 정돈하는 힘이 있어서 내게 큰 도움이 됐어. 요즘엔 다른 생각도 해.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생각을 끌어내는 작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 그들은 쉼표와 부사로 문장을 늘여 의미를 쌓아가면서 핵심을 놓치지 않아. 아니 오히려 길고 다채롭게 그런 와중에도 정확하게 의미에 다가서. 다채로운 결을 머금고 의미를 다각화한달까. 일류 작가들은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며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어. 가령 포크너의 소설은 눈을 감고 허공을 헤집는 것처럼 무력하지만, 내 의식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고 믿게끔 하지. 이야기의 얼개가 듬성듬성해지면 독서는 성기지만, 책장을 덮은 후에 다가오는 것과 마주할 수 있어. 상상의 여진은 삶이 변모할 수 있게 여지를 남기니까.
요즘엔 최소한의 먼지만 피우다 죽고 싶다고 생각해. 너와도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얘기한 적이 있었지. 너도 비슷한 얘기를 했어. 오래 살고 싶지 않다고. 결혼해서 딱 육십까지만 건강하게 살고 싶다고. 난 결혼 얘기를 피하고 싶던 터라 말을 아꼈지. 나도 동의하는 바야. 요란 법석한 삶보다는 자족하고 유의미한 삶을 짧게 살고 싶어. 할 만큼만 하다가 조용히 세상에서 지워지고 싶어. 고색창연한 야심은 사라진 지 오래고, 이제 취향의 시대라 하잖아. 내가 황새를 쫓아가기엔 애초에 날지도 못한 암탉임을 잘 알고 있어. 미처 늦기 전에 씨암탉 정도라도 되려고 바삐 눈을 돌리며 사는 꼴이지. 날 끌어당기는 것에 마음을 쏟기에도 시간이 모자라. 목구멍은 포도청이지만 최소한의 선택지는 거머쥐려고 해. 통념에서 이탈해 최소한의 위엄을 가지고 싶어. 커피가 차갑게 식어가네. 우선 주린 배라도 채워야지. 그럼 나중에 봐.
에필로그
그와 우연히 마주쳤다. 헤아려보니 그를 마지막으로 본 지가 2년 가까이 됐다. ‘용케 단번에 알아봤네.’ 그는 단정한 셔츠와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눈에 익은 차림이었지만, 머리의 길이와 색이 모두 달랐다. 직장 선배 결혼식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가벼운 인사말과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의 옷차림뿐만 아니라 눈웃음도 나에겐 익숙한 것이었다. 우린 둘 다 당황하기보다는 꽤 능숙하게 대했다. 헤어질 때까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눴다. 몸에 밴 말투와 제스처가 우리 사이의 거리를 안전하게 확보해냈다. 서로의 속내를 추측할만한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고 헤어졌다. ‘그래, 다음에 기회 되면 보자.’ 깔끔한 조우였다.
나는 기억을 되감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는 베이지색 치마를 입은 채 45도쯤 위를 보며 걷는 뒷모습이다. 평소 그는 목이 안 좋아서 늘 고개를 젖히며 앓는 소리를 냈다. 모두가 권하는 무난한 학교에 가기 위해 독서실에서 거북목이 되는 걸 감수했다. 늦은 밤 편의점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시고 들어가는 게 낙이었던 시절,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목을 뒤로 젖히고 “대학만 가면.”이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럼 없는 서생들이 다니는 대학을 가고도 그의 목 통증은 계속됐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바랐기에 해야 할 게 많았다.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취업했고 혼삿길도 챙겨야 했다. 그가 열심히 살수록 목은 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었다. 나와 만나던 시절의 그는 고개를 위로 살짝 올리는 버릇을 달고 있었다. 결국 그 버릇이 그와 이별할 때 본 마지막 장면이 되었다.
삶이 늘 텅 비어있던 나는 별생각 없이 살았다. 생각이 복잡해지지 않기 위해 많은 걸 배제했다. 가령 미래의 목표라든지 거창한 대의명분 같은 것을 가까이 두지 않으려고 했다. 늘 유유자적 재밌는 것만 하면서 살고 싶었다. 생계를 위한 직업이야 그렇다 쳐도 퇴근하고서까지 미래를 위한 담금질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내 건강한 목이 그 게으름의 영향인지도 몰랐다. 늘 뻐근함을 안고 살았던 그는 삶이 통증을 수반한 것이었다. 하지만 늘 개운한 몸을 지닌 나는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 삶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그와 나는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연애를 하고 헤어졌다. 난 그와 헤어진 후에 그에게 보내는 편지를 여러 편 썼다. 그에게 전한 글도 있었지만,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가 더 많았다. 그 글들을 모아 책을 냈는데, 그는 아마도 내 편지를 다 읽었을 것이다. 그는 오늘 결혼식에서 5만 원짜리 봉투를 내고 뷔페에서 연어나 탕수육 따위를 집어먹으며 내 생각을 했을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저 그런 하루였을까. 내 귀에선 비가청 주파수로 그날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모든 게 평화롭고 무난했던 일요일 오후의 소란이었다.
난 그와 연애를 하다가 그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별다른 준비를 하지는 않았다. 서로 부담 갖지 말자고 한 자리였으니까. 별생각 없이 그날이 다가왔다. 하지만 그제야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에게 물어봤다. 옷은 뭘 입지. 흰 셔츠에 면바지면 되겠지. 무슨 말을 하지. 너 말 잘하잖아. 이게 무슨 면접이냐. 긴장하지 마. 주의할 게 있을까. 아니, 그런 건 없고 그냥 평소처럼 오빠가 잘하는 대로 싹싹하게 굴면 되지 않을까. 방문하기 전날이 돼서야 퍼뜩 생각난 건 선물이었다. 처음인데 들고 갈 게 있어야 했다. 백화점을 갈까 하니 비가 왔고, 검색창에 ‘집 방문 선물’을 쳐봤지만 가당찮았다. 신경을 쓴다는 것과 시간을 쏟는 건 또 별개라서 결국 ‘무난함’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의 집 근처에서 화사한 꽃다발을 사고, 보관 중이던 값비싼 양주를 가져가면 딱 맞는다고 생각했다. 누구처럼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와 누구처럼 양주 한잔을 하며 잠을 청하는 아버지를 둔 그가 고마웠다.
일요일에 역에 도착하니 1시간쯤 여유가 있었다. 갑자기 수업 종이 울리는 것처럼 긴장됐다. 당최 무슨 연유인지 정체 모를 불안이 감돌았다. 주문처럼 외우던 말을 떠올렸다. ‘최대한 웃으면서 듣기만 하자.’ 과묵하고 듬직한 미스터 서글서글 역을 맡기로 했다. 그가 마중을 나오겠다는 걸 마다하고 미리 검색해둔 꽃집으로 향했다. 역에서 5분 거리라던 아파트 단지는 거의 15분 가까이 돼서야 도착했다. 셔츠에는 벌써 땀이 차오르고 있었다. 개천 주위로 늘어선 벚나무가 흐드러졌다. 단지 주변으로 초중고교가 다 있었고, 소담한 공원과 회색 상가건물이 가지런했다. 전국 어디나 똑같이 생긴 아파트 단지였다. 익숙하고 뻔한 공간에 오니 불안이 사그라들었다. 그냥 애인과 공원에서 커피나 마시며 노닥거리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누군가는 도시의 일률적인 면모에 질색하지만, 획일화된 환경은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그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내가 살던 동네랑 거의 똑같았다. 단지 앞에 설치된 자전거 거치대만 봐도 기시감이 들었다. 복도식 아파트를 층마다 뛰어다니고, 단지 공원에서 뒤로 걷는 아주머니를 구경하며 놀던 기억을 떠올렸다. 상가건물 2층에 놓인 오락기를 하려고 동전을 잔뜩 가져왔다가 동네 일진 형한테 털렸던 기억이 났다. 거의 다이소에 가까운 다채로운 품목을 보유한 동네 문방구도 보였다. 새삼스레 내가 그를 왜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아마도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몇 가지 상을 정할 때 하나쯤 딸려 나올만한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그의 가족은 평범한 중산층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난 적 없었고, 나도 못지않게 비슷한 환경을 거쳐왔기에 느낄 수 있는 유대가 있었다. 우린 둘 다 구김 없고 적당히 요즘 애들처럼 굴었다. 돌출부를 최대한 마모시키고 평탄한 관계를 구축하는 걸 미덕으로 삼았다. 그에게 유별난 건 오직 연애뿐이었다. 그는 마치 삶의 지루함을 연애로 풀기로 작정한 것처럼 분방한 연애 편력을 자랑했다. 그걸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난 소탈하게 자신의 연애담을 늘어놓는 그의 모습을 좋아했다.
아파트 상가에서 미리 검색해둔 꽃집을 찾아냈다. 머리에 두건을 두른 사장님이 추천해준 꽃을 들고나왔다. 요즘 제일 잘 팔리는 종이라고 했는데, 마음이 급해서 이름도 묻지 않았다. 희고 우아하게 생긴 이 꽃 이름이 뭐더라. 사실 나는 꽃에 관심이 없다. 내게 중요한 건 ‘꽃’이라는 기호였다. 꽃은 누군가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선물일 뿐이었다. 꽃을 보고 환히 웃는 그의 미소를 좋아했지, 꽃의 속성은 나와 무관했다. 꽃을 향한 미적 감각이 왜 죽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예술을 즐기려고 노력하면서 식물을 향한 애정은 왜 갖추지 못했는지 아쉬움이 들었다. 문자메시지로 가격을 확인하니 33,000원이 찍혀있었다. 이 꽃이 그만큼의 값을 해줄지 의심스러웠다.
양손에 준비한 선물을 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거울 속의 매무새를 점검했다. 난 무난함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숨고 있었다. 같이 엘리베이터에 탄 여자가 내 앞에 가로막고 거울을 봤다. 여자도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는 눈치였다. 색깔을 맞춘 핸드백과 웨지힐, 땡땡이 셔츠에 은색 펜던트가 달린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서른 중반쯤 됐을까. 단정하고 무난한 차림이었다.
3층. 초인종을 누르고 “저 왔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모니터에 잘 꾸며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년간의 회사 생활로 다져진 표정이었다. 매일 아침 회의 시간마다 방패막이가 되어준 은신처이자, 커피 한 모금을 목구멍으로 넘기면서 따분함을 이겨내는 가면이었다. 문을 열자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4인 가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긴장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남동생은 적당히 심술궂어 보였고, 아버지는 배가 조금 나온 대기업 과장처럼 생겼고, 어머니는 평생 주부로 살아온 걸 티 내는 것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가족들을 보자 다음부터는 아주 쉬워졌다. 아침에 잔뜩 마신 커피가 준 각성 상태로 건실한 청년 역할을 너끈히 소화했다. 할 말을 찾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이 나는 쉴 새 없이 말하고 화답했다. 어디서 봄직한 삼십 대 중반의 샐러리맨이 되어 그 나이 때의 남자라면 으레 할만한 말을 골랐다. 적당히 쑥스러워하고 너스레도 떨면서 밥도 배부르게 먹었다. 자기 그릇에 담긴 사과에 맥심 커피도 마셨다. 다들 하하 호호 재미나게들 웃었다. 여자 친구의 남동생이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는 게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빨리 군대나 가라.’ 여자 친구도 나를 흘낏흘낏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입을 살짝 벌린 얼굴로 신기한 듯 쳐다봤다. 어쩌면 좀 우스웠거나 살짝 안쓰러웠을 수도 있겠다. 그만큼 나는 애쓰고 있었다.
잠깐 그의 방을 구경할 때 둘만 있을 수 있었다. 그는 내가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고 길게 키스했다. “귀여워서 그냥 둘 수가 없네.”라고 했다. 야마하 피아노 위에 그가 그린 그림들이 놓여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앙리 마티스의 작품을 습작한 것들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가 내 복잡한 속내를 알아본 것 같아서 안심됐으나 그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자연스럽지 못한 내가 스스로 거슬렸다.
모든 게 예측과 다를 게 없었다. 뻔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오갔다. 고리타분한 상투어가 난무하는 식사였지만 난 안심했다. 그의 가족들은 선을 지키는 데 능통했으니까. 내 예상을 넘어서는 질문은 없었고, 애초부터 불편해질 모든 가능성을 벗어난 대화였다. 거기엔 모종의 합의 같은 게 깔려있었다. 설사 내가 돌아간 후에 어떤 얘기가 나올지라도 지금 이 자리만큼은 피차 피곤해지고 싶지 않다. 이럴 때 인습이란 얼마나 편한 것인가. 인습은 어색한 사이에 가장 좋은 무기가 되어준다. 그의 부모님은 등산을 즐기시는지 산에서 찍은 사진들이 액자에 걸려있었다. 어쩜 이렇게 모든 게 다 전형적인지. 가을 풍경 속에 안긴 두 사람의 얼굴엔 어디서 봄직한 행복이 있었다. 어쩐지 두 사람은 이런 좋은 시절이란 금방 지나가고야 만다는 걸 다 아는 사람처럼 환히 웃고 있었다. 오늘 이 평범한 30평 아파트 거실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누구나 예측할법한 조화로운 세계였다.
하도 미소를 지었더니 얼굴에 경련이 날 것 같았지만 그쯤에서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나는 시간이 늦어 가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따라서 나온 여자 친구는 별말 없이 내 옆을 걸었다. 오후 내내 잘하려고 노력한 탓에 쌓인 피로가 극심했다. 신경이 곤두선 나와 달리 그는 모든 게 평온해 보였다. 집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피로에 걸맞은 침묵이 우리를 맴돌았다. 같이 저녁을 먹고 산책도 했는데 별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우린 보통의 날을 보냈으리라. 그 이후에 우린 얼마 못 가 헤어졌다. 헤어진 이유를 대라면 몇 가지 얘기를 꺼낼 수 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의 집을 방문했던 날을 떠올린다. 묘하게 서걱거리던 이물질이 물 위에 둥둥 떠있는 느낌이랄까. 내가 좋아했던 한 가정의 평범한 딸과 그의 번듯한 가족들. 거기에 적당히 어울렸던 나. 그날 우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느슨한 주색잡기에 탐닉하던 우리 데이트도 전과 같지 않았다. 별말 없이도 풍성했던 스탠드 불빛 곁도 더는 아늑해질 수 없었다.
그와 역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인생이 얼마나 쉽게 전혀 다른 것이 되는지, 운명은 우연의 산물일 뿐인지, 이렇게 될 거였다면 인연이란 얼마나 우연에 불과한지. 이런 생각을 글로 적어보고 싶었다. 많은 일이 반복되는 인생에 있어서 내가 겪은 우연들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으니 글로 늘어놓고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오늘 늦잠을 잔 탓에 밤새 생각이 많아서 자꾸만 쓸데없는 얘기를 털어놓고 싶어졌다. 침대에 누워 카톡으로 그의 프로필 사진을 봤다. 어느 식당에서 환히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인스타그램에나 나올법한 환한 카페 테이블에 그가 좋아하는 밀크티가 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