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대부분 미화돼. 시간이 지나면서 파스텔 색조로 희뿌여시고, 우리 앞을 캄캄하게 만든 어둠마저 채도를 높여 받아들이지. 너는 내게 잔혹하게 굴었지만 나는 그걸 어느새 추억이라고 말하고 있어. 그게 인간이 지금까지 하루를 부여잡고 버틸 수 있는 비결일지도 몰라. 그래서 일을 하면서도 친구들과 모여 앉아 얘기할 때도 난 내 기억을 믿지 못해. 매사 어떤 일이든 쉽게 단정 짓지 않으려 하지. 세상은 이렇다는 명료한 대답을 신뢰하지 않아. 기억을 되새겨서 뭔가를 떠올리고도 끝내 정확하게 감정을 적지 못하기가 부지기수야. 깨달음은 뒤처졌고 난 비로소 실패라는 낱말을 쥐게 되었어. 세상 쉬운 답은 대부분 거짓말이며 어렵사리 내린 결론도 손바닥 뒤집히곤 하지. 오히려 답을 찾지 못해 주저하는 시간을 더 돌보게 되는 것 같아. 재고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얻는 마음이 귀하달까. 사색의 시간, 밤의 뒤안길은 캄캄하고 지루하잖아. 갈팡질팡하다가 아무런 답 없이 빈손으로 돌아갈지라도 쉽사리 속지 않으려고 노력해야지.
뉴스는 하루가 멀다고 우발적 살인을 보도해. 무표정한 앵커는 누군가의 죽음을 수치화하지. 통계로 이뤄진 세상은 참 명료하지만, 바닥을 치며 울고 있는 남자에겐 그 모든 게 운명으로 다가오지. 순도 백 퍼센트의 비극이야. 한 남자가 피시방에서 난데없이 일어나서 옆자리 청년을 죽였대. 뉴스에 등장한 범죄 전문가와 사회 심리학자는 이 사건을 분석해서 말을 해. 그들의 고견을 들어보니 취업난에 궁지에 몰린 청년이 현실 도피 측면에서 게임에 중독돼서 현실과 분리를 못 해 살인을 저지른 거래. 연이어 게임의 폭력성과 중독성이 화두에 오르고, 한 의원이 게임 규제 방안에 대한 법안을 상정해 놓았다며 인터뷰를 자청하네. 이로써 모든 인과관계가 완벽하게 꿰맞춰졌어. 이 얼마나 명쾌한 해석이야. 인간이란 게 애초에 그렇게 단순한 존재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세상에 풀리지 않는 난제란 없을지도 몰라. 누구에겐 인류 지성이 가져온 승리라는 찬사를 받을 테지. 쉽게 얻은 결론은 SNS와 같아. 글자 하나 읽기 싫어서 이모티콘이 모든 감정을 대체하는 세계. 도서관이 켜켜이 쌓인 책을 무색하게 만드는 명료한 나날. 그래서 어쩌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한 남자가 누군가를 죽이기까지 어떤 마음을 먹었을까. 범인은 그날 아침에 집을 나서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골목에 잠시 멈춰 서서 담배를 태우며 세상의 끝을 그렸을까. 그의 마음을 상상하는 건 문학의 영역이야. 상상으로 그칠 막연한 추측을 서술하는 거지. 하지만 세상의 모든 사실관계는 문학과는 거리가 멀어. 난 종종 참혹한 범죄를 다룬 뉴스를 보며 무력함에 빠지곤 해. 세상은 결코 내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고. 쉬운 단정으로 짚어내는 사실이란 진실의 귀퉁이 근처에도 닿지 못한다며.
이야기에서 입체성은 고전을 향한 칭송과 관련이 있대. 고전엔 클리셰가 덕지덕지 붙어있으니까. 수많은 현대소설이 고전을 사례 삼아 변주해왔고, 그런 이유로 우리는 역사를 배우잖아. 예술의 생명력은 그만큼 시간에 우위를 보이는 법이지. 영화를 많이 보고, 책을 많이 읽을수록 클리셰에 민감해져. 서사가 고민 없이 관성처럼 흘러버리면 ‘킬링 타임’ 이상 의미가 되지 못하니까. 인간의 복잡성을 외면한 곳에선 작은 사려도 있을 수 없을 거야.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쉬운 단정을 경계하는 사람들의 도피처야.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어떻게든 붙들려고 불가능한 시도를 일삼는 그런 놀이야. 우리가 흔히 뉴스에서 볼만한 사건이 발생했어. 평소 눈에 띌 조짐은 없었다고 해. 그렇다면 난 상상을 보태 세상을 미화해버려. 마치 모든 사람에게 전담 변호사가 붙여주듯 각각의 진술을 들어보는 거지. “낙타가 쓰러지는 건 깃털같이 가벼운 마지막 짐 하나 때문”인 것처럼, 그를 짓누른 ‘마지막 짐 하나’를 찾아내려고 글을 써봐. 지난하고 고된 시간이더라도 어쩔 수 없어. 인격이 도외시된 미의 세계를 더듬고자 문학은 그 자리에 존재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