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거리를 배회하는 포식자들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저

by 박민진

난 이십 대 초입부터 혼자 살았다. 집에 세간은 없고 냉장고는 늘 텅 비어있었다. 집이 싫어서 늘 시내로 나가 북적거리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영화관과 서점을 전전하는 버릇이 생겼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글을 쓰고, 시끄러운 거리에서 이어폰을 꽂고 늦은 밤까지 걸어 다닌다. 내 취향은 전적으로 늦은 밤 커피잔 앞에서 길러졌다. 종종 24시간 카페에서 새벽까지 맥북을 붙잡고 무수한 헛짓거리를 했다. 이어폰으로 취객들 사이에서 소음을 차단한 채 굳이 혼자가 되려고 용을 썼다. 귀를 틀어막으면 왁자지껄한 분위기도 분주한 점원들도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시뻘건 눈으로 노트북과 씨름하는 나만 남는다. 이런 의도적인 고립은 내게 혼자 노는 재미를 선사했다. 새벽 카페에서 뭔가 열심히 적고 문고본 책을 읽고 구글링도 하고 심지어 쇼핑에 딴생각까지 일삼는다. 이제 그렇게 홀로 침잠하는 시간을 꽤 즐긴다. 대도시의 붐비는 삶에서 어떻게든 분리된 시간을 갖는 요령이다. 집에 있으면 더 조용하고 더 사색하기 좋을 거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백색소음이 웽웽거리는 도심 한복판에서 혼자가 된다는 건 특권이라고 믿는 쪽이다. 무수한 인파를 뚫고 나 자신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니까.


밤거리를 배회하며 느낀 건 도시엔 수많은 혼자가 산다는 사실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고 삶의 기반을 잡은 고독자들은 마치 환경에 맞춰 생물들이 진화하듯, 고독에 적응해서 평온한 삶을 보낸다. 난 가끔 주말에 익선동 부근을 걷다가 혼자 거니는 이들을 본다. 난 종종 그들과 취향을 바탕으로 느슨한 연대를 느낀다.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제법 숨이 가쁜 일이다. 내 리듬을 지키기도 어렵고, 남 시선을 신경 쓰지 않기도 쉽지 않다. 제 몫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고 싶지만 이조차도 가끔 힘에 부칠 때가 있다. 하지만 막상 이 삶이 싫은가 자문하면 또 그렇지만은 않다. 토스카나의 찬란한 태양 대신에 현란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도시지만 익숙하고 편안하다. 조심스럽게 고백하건대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염려하는 만큼 불행하지도 않다. 난 그런 미묘한 ‘괜찮음’을 자주 생각한다.


97년에 개봉한 영화 <접속>을 보면 피카디리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보던 전도연이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에 급히 극장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만큼 과거엔 혼자라는 걸 유별나게 의식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혼자서 화장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학생이 뉴스거리였다. 우리 사회는 혼자서 뭘 하면 사회성이 부족하고 결격한 것으로 몰아붙였다. 하지만 최근엔 '문유석' 작가의 <개인주의자 선언>처럼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도 괜찮다는 인식이 생겼다. 유럽식 개인주의가 한국의 도시화에 맞물리면서 빚어낸 양상이다. 관계에 복닥거리며 사는 것보다 너른 거리감을 선호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가끔 술자리에서 대화하다 보면 혼자 사는 분들이 상당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들과 얘기해보면 각자 나름대로 혼자 살아가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결혼을 못 해서, 돈이 없어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스스럼없이 자신이 독신을 택했고, 즐겁게 살고 있다고 밝힌다. 평온이 스민 얼굴로 각자 나름대로 고독을 뽐내며 산다. 난 그들과 강한 유대를 느낀다.


영화 <소공녀>에서 '미소'라는 캐릭터는 저녁에 마시는 위스키와 담배 한 모금을 위해 거주지를 포기한다. 비록 한 칸짜리 월세방이지만 한겨울에 방을 뺀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선택에 그녀의 지인들은 혀를 차지만, 미소는 아랑곳하지 않고 취향을 위해 남의 집을 전전하기로 한다. 난 미소라는 캐릭터가 택한 극단적인 방식을 '그건 영화니까'로 해석하지 않는다. 나도 종종 고민하는 문제다. 바쁘고 먹고살기 어려워 내 취향을 포기한다면 나는 껍데기에 불과한 게 아닐까. 내게 취향은 곧 존엄이고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고유한 나인 것을. 영화는 유머러스하고 과장된 화법을 지니고 있지만 그걸 충분히 상쇄할 만한 고민을 도드라지게 연출했다. 퇴근 후 세 시간, 일요일 오전부터 텅 빈 하루를 난 뭐로 채우고 있을까. 영리를 위한 일이 아닌 전적으로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난 취향이 일상에 스며드는 순간을 포착해서 글로 적는다. 낭만이 사라진 삭막한 도시에서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곱씹는다.

‘쓰레기다. 별로다. 기막히다. 끝내준다.’처럼 극단적인 말이 싫다. 풍부한 감정을 폭력적으로 요약하는 단어를 불신한다. 그건 게으른 태도다. 감정의 부스러기를 그러모아 들여다보고 싶다. 서두르지 않고 좋으면 좋은 대로 별로면 별로인 그 자체로 정확하게 생각하고 싶다. 비로소 나만의 고유한 감각이 드러날 때까지 제대로 생각하고 싶다. 평소엔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문장을 선호한다. 도시를 에워싼 무수한 사람 중 하나가 아니라, 유려하게 들판을 거니는 오롯한 나를 쏟아내고 싶다. 나만이 가진 무늬를 글에 드러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