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대로 괜찮은 마음

by 박민진

얼마 전 옛 친구들을 만나려고 와룡동에 갔다. 난 이 동네가 왜 이리 좋은지 틈만 나면 찾는다. 한옥집들 사이 좁디좁은 골목에 자리한 커피집에 약속을 잡았다. 곧 서울을 떠나는 친구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이게 축하할 일인가 싶었지만, 이런 구실 없이 만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역 화장실에서 나름 잘 보이려고 왁스도 묻히고 백탁 크림도 발랐다. 도착해보니 연락이 뜸했던 애들이 죄다 모여 있었다. 옳다구나, 반가운 마음에 호들갑을 떨었다. 근황을 묻고 잘 됐다며 연신 너스레를 떨었다. 영재로 커가는 아이, 골드 싱글의 화려한 연애, 초고속 승진, 강남 아파트 분양권에 화룡점정으로 돌싱까지. 어쩜 다 이리도 잘 지내는지 몰라. 마치 행복한 이유를 대야만 이기는 게임에 참여한 기분이었다. 인스타그램 피드처럼 비현실적이고, 불행 따위는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녀석들 얼굴은 지나치리만큼 현실적이었다. 이제 푸석푸석하고 쭈글쭈글해진 면상엔 과장이 없었다. 속으로 나 정도면 동안이라고 생각하며 뿌듯해했다. 오후 내내 그들과 공원 언덕배기에서 온갖 얘기를 나눴던 때가 떠올랐다. 그땐 뭐가 그렇게 좋다고 쉼 없이 고민을 털어놨을까. 근데 왜 지금은 할 얘기가 없을까. 하나둘씩 시계를 살피는 녀석들이 괜히 야속해 식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오후 두 시에 조금 못 미친, 여름 기운이 물씬 풍겼다.


다들 하나씩 좋은 소식을 터뜨리는데 난 도통 할만한 얘기가 없었다. 친구들의 해맑은 표정을 보니 내 순탄치만은 않은 삶을 털어놓기가 망설여졌다. 그냥 끄덕끄덕과 아 그게 정말이야, 를 반복했다. 역시 술을 먹어야 했나. 난 하루키 소설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축출을 당해 순례를 떠나는 다자키 쓰쿠루가 된 기분이 들었다. 색색깔을 한 녀석들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나의 무채색 삶을 생각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던 차에 예나 지금이나 매사 질문이 많은 한 친구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아무리 찾아봐도 우리들 얘기는 찾을 수 없던데." 무슨 말인가 했더니 내가 작년에 쓴 책에 자기 얘기가 없다는 소리였다. 생각해보니 정말 이들과 함께 동고동락한 한때가 마치 시식을 위해 도려낸 수박 한쪽처럼 빠져있었다. 첫 책이니만큼 내 짧은 인생 전반을 고루 녹였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스무 살을 갓 넘긴 뜨거웠던 시기를 누락했다. ‘그땐 생각 없이 살아서 글도 안 썼잖아’라며 장난스레 눙쳤지만, 그의 표정엔 약간의 섭섭함이 서려 있었다.

굳이 대면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 있다. 글에는 어떤 상처나 어둠도 녹일 수 있다고 막연하게 믿었지만, 도통 손이 가지 않는 시간도 있더라. 그 시기를 돌보기 싫어 그냥 못 본 척하고 종국엔 방치한다. 다시 복기할 수 있는 어둠이란 끝내 미덕이 있어야 하는데, 어떤 때는 구제할 길이 없어 회피해버린다. 인생의 저점, 다시 생각해봤자 좋을 게 없다는 방어기제가 글을 쓸 때마저 발동한다. 부끄럽고 부족하고 구차하고 어리석고 치기 어린 그런 시간을 옷장 한구석에 처박아두고 잊고 살았다. 언제가 정리되겠지 하면서, 어쩌면 그냥 잊고 살았으면 싶어서.

한때 한 전기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갑자기 목돈이 필요해져서 몇 주만 알바를 뛰기로 마음먹고 갔지만, 상황이 악화되면서 어쩔 수 없이 몇 달을 버텨냈다. 요즘처럼 더워지기 시작할 무렵에 들어가서 외투를 걸치기 시작할 즈음 나왔으니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업무 강도가 혹독해 늘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방구석엔 도망칠 데가 없었다. 집에만 가면 속이 시끄러웠고,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 침대에 누워 이어폰을 꽂고 추리소설만 줄곧 읽었다. 지옥에서 춤을 추는 기분으로 밤늦게까지 범인을 잡다가 지쳐 잠들었다. 물론 아침에 깨면 죽을 것 같이 피로했지만 그래도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게 든든했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돈으로 음반도 사고, 극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땐 뭔가 구실을 하고 사는 기분이 중요했다.


그 회사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무거운 마음으로 타는 아침 만원 버스다. 사람 사이에서 끙끙거리다 보면 하루를 등지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기분이 든다. 죄다 지쳐있는 얼굴로 얼이 빠져있는 사람들 틈에서 시달리면 힘이 다 빠진다. 공장 같은 지하 사무실에 도착하면 칸막이 하나 없는 책상에 앉아서 작업을 기다린다. 맥심 모카골드로 아침을 대신하고, 긴 하루를 떠올린다.

정부 과천청사는 멀찍이서 보면 거대한 건물 하나로 보이지만, 그 주위로 온갖 기관이 들어선 종합단지다. 내가 일한 곳은 한 정부 기관 시설을 관리하는 하도급 업체였다. 내 직무는 전기공이었지만, 말이 전기공이지 사실은 잡일 하는 알바생에 불과했다. 지역 내 온 사무실 형광등 교체와 전기 배선, 몰딩과 같은 잡무를 도맡았다. 작업 요구가 끊이질 않았고, 조금만 지체돼도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다. 쉽사리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됐다. 한순간도 속 편히 쉬지 못했지만, 시급이 쌔서 그것만 보고 견뎠다. 내게 그 시기는 마치 검은 타르를 끼얹은 것처럼 칠흑과 같다. 난 회사를 다니는 내내 체력적인 부침이나 스트레스보다 인생이 더 나이질 게 없다는 무기력에 시달렸다. 말할 때마다 세상이 다 고꾸라졌으면 싶은 냉소를 곁들였다. 결국 목적한 돈을 벌어 회사를 떠났지만, 일을 그만둔 후로는 단 한 번도 그 시절을 떠올리지 않았다. 때마침 내게 달콤한 나이 때가 도래했고, 일상은 늘 바쁘고 흥미롭게 흘러갔다. 그 시절은 가족의 위기이자 인생의 유예였으며, 곧 잊힐 젊음의 모라토리엄 기였다. 이 경험이 내게 준 억지 교훈이 있다면, 그건 경제적 자립이다. 돈을 모아두지 않으면 곤경에 빠지고, 결국엔 지치고 만다. 누군 방학이라고 유럽을 쏘다닐 때, 난 윙윙거리는 기계실에 바닥에 앉아 홀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어 취업한 후로 여태껏 혼자서 몸을 굴려 밥을 벌어먹는다는 걸 늘 기쁘게 생각한다. 내 집에서 깨어나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작은 창문으로 창밖을 보면 떳떳한 기분이 든다. 그게 얼마나 달콤하고 평화로운 느낌인지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다.


며칠 전 우연히 출장차 과천을 지나가다 정부청사에 차를 세웠다. 황당하게도 그리움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매일 아침 걸어가던 출근길이 눈에 들어왔고, 땅만 보고 걷던 걸음걸이도 떠올랐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오만상을 찡그리며 무슨 생각을 했지. 근처 여고의 고즈넉한 형태와 가지런한 가로수길이 눈에 익었다. 날이 유달리 좋아 청사 뒷길로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그해 여름, 내 주위를 후광처럼 감싸든 초라함이 눈에 익었다. 한참을 걷다 청사 역 주변에서 설렁탕도 한 그릇을 사 먹었다. 시동을 걸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것대로 괜찮은 마음이 되었다.


"나는 시간 속에 정착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살 수 없는 곳이었다. 영원을 향해 몸을 돌려보았다. 발을 딛고 설 수조차 없는 곳이었다."(독설의 팡세 중, 에밀 시오랑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