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의 사생활
정류장에 한참을 서 있었다. 어디 갈만한 동네가 없나. 짝다리를 짚고 노선표를 살폈지만, 의욕이 나지 않는다. 지독하게 쓴 커피가 필요했다. 어제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데이비드 랜들’ 작가의 <잠의 사생활>을 읽은 게 화근이었다. 잠에 관해 읽으면 쉽게 잘 줄 알았는데, 내 의식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난 코골이와 무호흡증이 수면의 질을 좌우한다는 저자의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이게 문제일지도 몰라.' 잠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무섭고 신비롭다. 저자 역시 자신이 심각한 몽유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서 이 책을 썼다고 서문에 밝힌다. 그는 몽유병 증세로 집을 돌아다니다 벽에 부딪혀 크게 다친다. 자신의 냉철한 이성이 닿지 못하는 곳 있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저자는 잠으로 고생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무언가 해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자답게 발 빠른 취재로 사례 조사와 이론적 영역까지 섭렵한다. <잠의 사생활>은 잠을 한층 더 우리의 일상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대중 교양서다. 하지만 그가 할 만큼 하고 내린 결론은 사뭇 단순하다. 잠은 여전히 인류가 밝히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난 불가지론에 가까운 말에 실망해서 책을 집어 던지고 늦은 새벽에야 어렵사리 잠이 들었다. 간밤에 커피를 너무 마셔댄 탓인지 계속 뒤척였다. 저자는 잠을 자다가 딴짓을 해서 문제고, 나는 잠을 못 자서 문제다. 몇 해 전 갱년기 증세로 불면에 고생했던 어머니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꿈자리도 뒤숭숭해서 한참을 시달리다 몸을 일으켰다. 꿈속의 한 여자는 내가 아닌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녀가 찾는 게 내 품이 아니라 어떤 누군가라는 것을 깨달았다. 난 내가 나라는 데서 꺼림칙함을 느끼며 깨어났다. 기묘한 꿈이었다. 도대체 난 어떤 생각을 하고 살기에 이런 꿈을 꾼 걸까. 아무리 떠올리려 해 봐도 여자의 얼굴은 물음표에 불과했다.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버스들이 지독한 매연을 내뿜으며 여의대방로를 어지럽힌다. 난 눈살을 찌푸리다 잽싸게 종로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안국의 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어제 읽던 <잠의 사생활>을 좀 더 읽었다. 모임까지 두 시간 정도 남았으니 마저 다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카페는 책을 읽기에 좋은 조명을 제공한다. 책을 읽을 때는 500㏓가 적당한데, 여기가 딱 그 정도가 아닐까 짐작한다. 인류는 인공조명이 나타나기 전까진 하루에 잠을 두 번 나눠 잤다. 어두워진 초저녁 한 번 자고, 새벽 3시쯤 깨서 쉬다가 다시 잠을 청했다. 그래서 섹스도 많이 했다고 한다. 모닝 섹스가 얼마나 기분 좋은지 과거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토록 근사한 삶이라니. 하루의 끝 지친 상태로 하는 섹스가 곤히 자고 나서 하는 섹스보다 나을 리 없다. 하지만 두 번의 잠도 결국 에디슨 때문에 사라졌다. 여태까지 조명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촛불을 켜고 좀 더 낭만적인 사랑을 나눴을까. 전구가 없으면 야근도 확 줄었을 거고, 한국의 OECD 성 만족도 순위도 꼴찌를 면하지 않았을까. 오늘 모임에서는 알랭 드 보통의 책을 다뤘다. 뻔한 연애 얘기를 철학적 이론으로 있어 보이게 만드는 신통방통한 작가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자신이 쓴 글과 작가의 책, 몇몇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거론하며 연애의 주변부를 탐색했다. 글로 배우는 연애는 무용하지만, 알랭 드 보통의 문장은 지적 허영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잘 팔리겠지.
모임 뒤풀이까지 끝나고 늦은 밤이 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빨리 자야 하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라면 두 개를 끓여 먹었다. 허기와 공허가 내 배에 붙어서 떨칠 수 없었다. 내일 아침 출근길부터 속이 부글부글할 걸 알았지만 달걀까지 풀었다. 밤에 혼자가 되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라면 한 냄비가 배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을 느끼며, 오늘도 일찍 자긴 글렀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자장가를 기다리듯 팟캐스트를 켰다. 김영하 작가의 처진 목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늘 같은 패턴이다. 어제도 이러다가 늦게 잤지. 그러고 보면 잠과 고독은 연관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어떤 꿈을 꾸려나. 어제 꿈을 꾸다가 침을 잔뜩 흘려서 베개 냄새가 지독하다. 오늘은 비가 오니 빨래는 내일 해야지. 고등학교 때 유독 야한 꿈을 많이 꿨다. 그 시절의 꿈들이 가장 즐거웠다. 특히 몽정을 하며 꾼 꿈들은 야동에 가까워서 깨고 나면 오히려 피곤할 정도였다. 마치 하루키 소설 속에 나오는 기기묘묘한 섹스신처럼 몰입도가 상당했다. 지금도 당시 아침에 일어나 팬티를 보고 당황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데이비드 랜들에 의하면, 잠은 피로의 회복을 넘어 마음과 기억의 어지러운 배열을 도미노처럼 바르게 쌓아주고, 가끔은 필요 없는 잔여물을 소거까지 해주다고 한다. 그래 그땐 억누르기 힘들었지. 요즘은 소설에나 쓸법한 사건들이 꿈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짓고 싶다는 마음을 반영한다. 내 무의식이 내 바람을 따라줘서 기특하다. 단잠을 자고 난 이후 영감이 떠올라 예스터데이를 작곡한 폴 매카트니가 된 기분이다. 작가 스테프니 마이어는 한 소녀와 아름다운 뱀파이어가 이야기를 나누는 꿈을 꾼 뒤 세계적 베스트셀러 '트와일라잇'을 집필했다. 나도 힘을 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