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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Nov 12. 2016

한류의 민낯을 엿보는 재미

한류에 관한 책 <코리안 쿨> 그리고 영화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가끔 인터넷에서 정이 가는 음악을 검색해 보곤 한다. 주로 라이브 무대나 뮤직비디오를 즐기기 위해서다. 재밌는 점은 검색 결과에 한국 음악에 대한 반응 일명 '리액션 영상'을 스스로 찍어 올린 외국인들이 딸려 나온다는 것이다. 이 웃긴 녀석들은 대부분 ‘고져스’와 ‘오 마이 갓’을 남발하며 한국음악이 좋다고 입에 침을 바르고 격찬을 한다. 처음엔 이 영상을 꽤 즐겼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무려 유럽, 중남미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니. 세상에 이름도 못 들어본 나라 사람들도 있어! 늘 한국의 대중문화가 상대적으로 유럽과 북미에 비해 취약하다 생각했던 나로선 흥미롭게 느껴졌다. 난 그 흔한 아이돌 팝 음악을, 아니 그 음악을 즐기는 외국인을 보며 주모들과 둘러앉아 국뽕 한 사발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모양새가 좀 이상하더라. 유심히 보니 그들의 조회수를 올려주는 건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심리가 한류의 영향력을 자랑스러워하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도 보였다. 자부심과 우월감에 젖어 외국인들의 반응을 감상하는 모습이란, 댓글 몇 줄만 읽어봐도 타국의 팬들을 의식하는 K팝 사절단들의 으쓱거림이란, 팔짱 끼고 모니터를 바라보는 책상 앞 그들의 모습이란, 왠지 모르게 우스꽝스러운 기행이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음악이 아닌 한류라는 현상에 열광하는 한국인들. 아니 한류라는 현상을 어떻게든 찾아내 스스로 자위하는 우리의 모습. 이것이 어쩌면 문화예술의 변방 한국인이 콤플렉스를 제대로 파고드는 하나의 단면일지도 모르겠다.

코리안 쿨 (세계를 사로잡은 대중문화 강국 '코리아' 탄생기)

최근에 사서 읽은 책은 한국계 미국인이자 언론인 유니 홍씨가 쓴 <코리안 쿨>이다. 미국 시카고에서 유년 시절을, 한국에서는 청소년기를 보낸 저널리스트 유니 홍은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 등의 매체 기고 경험을 가진 작가다. 그러다 보니 한국을 내부와 외부의 시선에서 다각도로 조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단순히 한국의 문화를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로 이해에 닿으려는 지점들이 이 책의 강점이다. 80년 후반 한국의 도상국 면모부터 16년 ICT 최강국 한국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본다. 한국을 전혀 모르던 사람이라도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일종의 한국 입문 서적으로도 손색이 없다.

미국 대중을 대상으로 쓴 책답게 <코리안 쿨>은 객관적 지표와 각계각층의 전문가의 인터뷰를 통한 증언들을 동력으로 삼는다. 내가 저널리스트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팩트 이외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철두철미 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폭력적으로 요약하자면 한류란 한국인 특유의 집단의식이 빚은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첫째로 문화예술계의 수입이 내수 차원에서 한계에 다다르자 수출산업에 목숨을 건 박정희 정부를 조명한다. 둘째로 무에서 유를 창출할 수 있는 대중문화 중흥을 국가적 비전으로 제시했던 김대중 정부의 선택으로 넘어간다. 그러니까 한국은 늘 국가차원에서 대외를 향한 구애를 펼쳐왔다. 국위선양에 대한 목적의식이 자연스레 외국인의 입맛에 맞는 문화 콘텐츠의 개발로 이어진 셈이다. 국가예산이 엔터테인먼트 업체에 집중적으로 투자되어도 국민들은 한류를 위해 기꺼이 그 비용을 충당한다. 그녀는 이 한국적인 집단의식이야말로 게임, 영화, 산업 등 전 방위적 영향력을 자랑하는 한류의 근본적인 힘이라고 분석한다.

한국의 전통적인 유교문화 속에서 뿌리 깊게 새겨진 엘리트주의 정서가 대외적 인정투쟁의 욕구를 불러왔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경쟁을 하나의 기본소양으로 갖춘 한국인들은 외국인에게 그럴싸한 스펙을 갖추기 위해 투쟁한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계속된 외구의 침략으로 인해 늘 서구를 향한 열등감과 동경 의식을 동시에 지녀왔다. 그래서 내수용보다 수출용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생겼다. 저자가 제시하는 한국 다움이란 말하자면 ‘한’과 ‘수치심’의 정서다. 일제 식민 지배 경험, 6.25 전쟁, IMF 사태 등 늘 약자의 위치에 익숙했던 한국인들의 열등감은 집단적 무의식 속에 깊이 뿌리 박혔다. 김대중 정부는 문화콘텐츠 수출로 인한 부가이익의 창출이 목표가 아니었다. 정확하게 국가의 패배감을 회복하고 우리 괜찮다며 어깨를 으쓱할 수 있어야 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돈보다 한국인 자체의 인정 욕구를 회복하여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첫 과제였다는 분석이다.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현 인천지법 부장판사 문유석이 여러 언론사에 기고한 글을 모은 <개인주의자 선언>(2015, 문학동네)이란 수필집을 읽었다. 코리안 쿨과 거의 동시에 읽었기 때문에 사실 이 책의 시점이 한류를 바라보는 유니 홍의 시점과 겹쳐 묘한 연쇄작용을 일으켰다. 문유석이 말하는 개인주의자란 합리성을 동반한 개념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의 특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최소한의 개인 시간, 사생활 보호를 통한 집단의식의 탈피가 요지다. 문유석은 오래된 공직생활 중 자신이 접한 여러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 한국사회의 병폐에 대해 진저리를 친다. 특히 개인의 권리에 대해 무관심한 천박한 민주주의의 이면이 얼마나 한국 사람들을 옥죄는지 말한다. 민주주의부터 파고들어간 그의 문제의식이 다소 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개인주의에 대한 한국인의 오해와 그로 인해 우리가 겪는 폭력적인 상황들은 충분이 날 자극했다. 가기 싫은 회식에 참석해 즐거운 척 연기하고, 조직을 위한 희생을 마치 국가를 위한 사명으로 포장하는 그런 문화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집단주의와 성과주의로 요약되는 한국의 문화는 한류와 묘하게 비슷하다. 한류는 전 국민적인 지원과 지지가 만든 현상이다. 우리가 만든 콘텐츠들은 지나치게 바다 밖을 의식하고 있다. 외국인 멤버를 영입해 위화감을 없애고, 해외에 진출할 때는 그 나라 말로 녹음한 특수 버전을 제작한다. 메이저리그 진출과 할리우드 영화 출연, 해외 시상식 수상, 빌보드 차트 입성을 마치 국가적 차원의 영광으로 인식한다. 외부자의 시선을 통해서만 행복을 얻는 부잣집의 맏아들처럼 늘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다. 타인의 평가 없이도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없이 이 열기가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한류의 열기가 식어버리면 우리는 스스로 또 타국에 인정받기 위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인정투쟁을 위해 힘쓸 것이다.

영화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Mistress America, 2015 감독 노아 바움벡

올해 광화문 시네큐브로 가서 본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는 제목만큼이나 미국다운 시각을 가진 작품이다. 내 친구라면 절대 가까이 두고 싶지 않은 대책 없는 '트레이시'는 늘 일만 벌이고 다닌다. 내키는 대로 돈을 빌리고, 맘대로 옛 남친 집에 가서 신세한탄을 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격의 없이 인사를 건네지만 결국엔 과도한 의탁으로 상대를 곤혹스럽게 한다. 그녀의 진정한 문제는 남을 의식 않고 일을 저지르는 이기주의에 있다. 일종의 성장영화인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는 결국엔 어디까지가 내가 누려야 하는 사치이고, 어디까지가 남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인내임을 깨닫는 어느 뉴욕 여성의 이야기다. 이 영화의 감독 노아 바움벡은 전작인 <프란시스 하>, <위아영>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남 따라 하면 다리 찢어지고, 내 것을 지키려면 다소 뻔뻔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뻔뻔함에 깃든 불편함과 노여움은 결국 감당해야 할 자신의 몫이라는 다소 냉담한 목소리다. 실로 당연하고도 천연덕스러운 이런 이야기가 왜 그리 내 맘을 파고드나 생각해보니 이 영화가 개인주의자와 이기주의자를 가르는 지점을 성장의 구분점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트레이시는 인정의 욕구에 목말라 있지만,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법을 손에 쥐자 어깨를 펴고 상대와 대화할 수 있게 된다. 가장 미국적인 시각으로 그린 성장영화라는 점에서 트레이시가 한국인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개개인의 섬을 이룬 상태에서 서로의 끈을 놓지 않은 상태를 이상향으로 삼는 이민자의 도시 미국은 어쩌면 한국과 정 반대편에 놓인 국가다. 영화의 트레이시가 스스로 자가 진단한 문제가 한국에서는 고쳐지기 힘든 국민적 과제라고 말한다면 내내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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