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지 않을 편지

by 박민진

책 서론


서른 초입에 잠시 프랑스 툴루즈에 살았다. 난 말로만 듣던 프랑스에 와서 수업은 뒷전에 두고 여행을 하며 유유자적했다. 세상 모든 게 다 아름답게 보이던 시기였다. 허파에 바람이 들어갔는지 세상이 그렇게 살만한 곳이라고 느꼈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건 아마도 당시 처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에, 배울 만큼 배운 대학원생들과 수업을 듣고, 학생 식당에서 블루치즈를 바게트 빵에 얹어 먹고 있으니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았던 거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가는 프랑스산 노을을 보면서 인생의 절정을 만끽했다.

주말마다 여행을 다녔다. 잔여석처럼 남은 저가 항공 티켓을 헐값에 사서 스페인이나 이태리, 런던에 갔다. 모든 게 처음이라 오히려 시간은 더디게 갔다. 새로운 문화를 마주했고, 점점 더 유럽 대륙에 익숙해졌다. 니체는 평생 유럽 대륙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데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있었다. 유럽은 내게 완전한 공간이었다. 책을 읽는 사람들과 소박한 자동차 그리고 유서 깊은 산책길이 눈앞에 고스란했다. 하지만 그렇게 처음 몇 달의 설렘이 지나가고 혼자 하는 여행이 점차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여행지에서 호텔 대신 한인 민박을 찾기 시작했고, 다시 돌아가면 내가 마주할 미래를 구체적으로 떠올렸다. 세상에, 내가 유럽까지 와서, 이런 호사를 누리면서 향수병에 걸린 거야? 나는 부정하려고 했지만 점점 더 주눅이 들었다. 학교에서 만난 알레한드로, 고탄, 마엘과 같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언어에 한계가 있었다. 서로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진솔한 얘기를 할 순 없었다. 농담 따먹기를 하며 놀았지만, 정작 나누고 싶은 얘기를 꺼내놓진 못했다. 어학 공부를 좀 더 했어야 했는데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녀석들은 꽤 진지하게 나를 대해줬다. 나를 편히 해주려고, 나를 늘 끼워주려고 매번 노력했다.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건 피자 한 판을 시켜주거나 분위기에 맞춰서 호들갑을 떠는 것뿐이었다. 다 재미있고 추억이 되었지만,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서 마음도 건조해졌다.

그날도 네덜란드 전역을 다녀와서 지친 몸으로 툴루즈 블라냑 공항에 내렸다. 속으로 이제 다음 주부터는 여행을 멈추고 집 앞 카페에서 책이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상한 미술관도, 관광객으로 득실거리는 로마네스크 성당도, 인공적인 냄새가 나는 호텔방도 지겨워진 참이었다. 거대한 트렁크를 옆에 두고 버스에 파묻 듯이 몸을 뉘었다. 잠시 졸던 차에 버스가 시내를 통과하는지 상당한 인파가 올라탔다. 그때 한 동양인 여성을 발견했는데 상당한 미인이라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창가에 앉은 그의 폰을 훔쳐보니 카카오톡 창이었다. 툴루즈에 한국 관광객이 다 있어? 나는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다. 심히 경계하는 얼굴이었다. 피로에 찌든 더러운 얼굴을 애써 웃음으로 치장하며 인사를 나눴다. 수작을 거는 것처럼 보이기 싫어서 별말은 못 하고 헤어졌다. 그녀의 눈에 난 방금 툴루즈로 관광 온 뜨내기로 보였으리라. 버스 밖에서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바삐 걸어가는 그녀는 애석하게도 나를 잠시도 보지 않았다. 버스는 그렇게 지나갔다.

주말 동안 비워진 방에 불을 켜고 식탁 위 노트북을 켰다. 씻기도 귀찮아서 냉장고에 있던 사과를 씹어 먹으면서 네이버를 둘러봤다. 프랑스에 오니 한국 뉴스가 더 재미있었다.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궁금했고 내 동네가 그리웠다. 교육을 중도에 끝내고 돌아가고 싶을 만큼 외로웠다. 무작정 외국에 살면 다 좋을 줄 알았는데 나도 한국인이 맞았다. 멜론으로 향수병에 어울리는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곡을 틀어놓고 감상에 젖었다. 이때 자주 듣던 푸디토리움(김정범)은 지금도 내 플레이리스트에 있다. 그의 <멋진 하루>, <러브 토크> 앨범은 내 외로운 저녁을 근사하게 꾸며줬다. 그렇게 새벽까지 노닥거리다 침대에 뉘면 검은 생머리 여성이 자꾸만 떠올랐다. 자자의 <버스 안에서> 가사처럼 도도해 보이는 그녀와 만나는 광경을 떠올렸다. 유학생일까. 롱부츠에 청바지에 코트를 입은 모양새가 여행객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버스에서 내릴 때 기사에게 인사를 거는 자연스러움이 딱 현지인에 가까웠다. 난 메신저 톡으로 여성분의 정체를 찾아 헤맸다. 우선 아는 한국 유학생과 같이 교육을 온 동료들에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수소문했다. 이 작은 도시에서 한국인이 몇이나 되겠는가. 찾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동료를 통해 그녀의 이름을 알아냈다. 그리고 난 노트북 화면에 그녀의 페이스북 사진을 띄워놓을 수 있었다. 그녀의 프랑스 이름은 리코였다.

리코에게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락을 취했다. 겁을 먹거나 경계하리라 생각했지만,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SNS를 통해 서로의 신상을 어느 정도 파악하면서 다 괜찮아졌다. 리코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런던에서 살았고, 프랑스 파리에서 대학교를 다녔으며, 알 수 없는 이유로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툴루즈에서 살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곳으로 보아 시내에 거주하며, 사진을 돌려보니 도시 외곽 한인 식당에서 일하며 찍은 사진이 보였다. 아, 일요일 그 늦은 시간 버스를 탄 이유가 퇴근 때문이었구나. 리코에 관한 몇몇 정보를 알아내자 난 신이 나서 계속 말을 걸기 시작했다. 지극한 외로움의 발로로 그를 찾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메신저로 연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리코가 참여하는 한국인 모임을 알아냈고, 난 거의 막무가내로 모임에 참석했다. 모임은 리코의 집에서 열렸고, 난 꽤 비싼 와인을 들고 문을 두드렸다.

리코의 집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주황색 스탠드 불빛이었다. 천장 불은 꺼두고 스탠드 불빛에 의지한 실내등을 이때부터 좋아한 것 같다. 사람 얼굴이 따듯해 보이고 마음이 한결 보들보들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건물 중간이 원형으로 뚫린 구조라서 창문 정면으로 맞은편 집이 다 보였다. 난 어색하게 와인을 건네고 너스레를 떨었다. 불청객이 되지 않아야 했고 리코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다행히 자리에 아는 후배가 있어서 나를 한껏 치켜세웠고, 난 자연스럽게 대화에 녹아들었다. 각자가 가지고 온 요리를 먹으며 타지 생활의 고충을 나누는 분위기였다. 리코는 깔깔 웃으면서 적극적으로 대화를 주도했지만, 중간중간 눈길로 나를 살피는 게 느껴졌다. 난 잘 마시지도 못하는 와인을 연거푸 들이켜면서 상기된 얼굴로 대화에 참여했다. 온몸의 세포가 봉기하는 게 느껴졌다.

8평 남짓한 공간인데 침대를 겸하는 소파 하나와 하프시코드처럼 생긴 작은 피아노가 있었다. 피아노 위에 히사이시 조의 악보가 펼쳐져있었다. 초보자도 치기 쉽다고 여겨지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주제곡 악보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 내가 아는 곡이 그거뿐이었다. 내가 유심히 악보를 보고 있으니 리코가 다가와서 좋아하는 곡이 있느냐고 물었다. 난 드뷔시나 슈만의 곡도 알아볼 수 있었지만, 무식이 탄로 날까 두려워서 연신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운드트랙 얘기만 늘어놨다. 내가 허둥지둥 정신없이 바보처럼 떠드는 걸 리코는 별말 없이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전자레인지가 종을 울리자 요리를 꺼내러 가는 검정 원피스를 입은 리코를 잠시 지켜봤다. 자세히 보니 원피스에 회색 털이 잔뜩 묻어있었다. 주위를 유심히 보니 래그돌로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가 소파 밑에서 낯선 이를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화장실 옆에는 캣 타워가 있었고, 구석에 고양이용 모래통도 보였다. 여기가 리코가 작은 고양이 넛지와 사는 공간이구나. 난 이 아늑하고 취향이 묻어나는 집이 좋았다. 집을 구경하다가 책장에 멈춰 서서 당시에는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셰릴 스트레이드의 책 『와일드』의 원서를 발견했다. 문고본 책이 조금 부풀어 오른 걸 보니 많이 아껴서 읽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책의 내용으로 미루어 리코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추측할 수 있었다. 책장은 생각보다 더 많은 걸 말해주기도 하니까.

책은 영어로 읽고 프랑스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는 리코를 보니 새삼 대단해 보였다. 마른 몸이지만 곧아 보이는 자세에다가 콧소리가 섞인 웃음소리에 난 완전히 매료됐다. 그날 이후로 학업을 놓고 거의 총공세에 들어갔다. 여행도 안 가고 리코 곁에 머물렀다. 리코가 일하는 한국 식당을 찾아가고, 퇴근하면 시내로 불러서 맥주를 마셨다. 리코가 골라주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리코가 평소 걷는 거리를 따라 걸었다 일주일 후에 우린 연인이 됐고, 리코와 난 매일 보는 사이가 되었다. 연말이 오고 있었고, 난 글쓰기를 좋아하는 리코에게 앞날의 약속을 암시하는 몰스킨 노트를 선물했다. 우린 교환 일기로 하루를 정리해서 나눴고, 새벽까지 서로의 인생사를 들려줬다. 프랑스가 지겨웠던 나는 잊히고 이제 하루하루가 너무 아까운 사람이 되었다. 한시도 삶에서 눈을 떼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얼마 후에 연말을 맞아 한국에서 딸을 보러 오신 리코의 어머님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난 식당을 예약하고 가장 좋은 옷을 골라 입고 긴장한 얼굴로 커피를 마시며 어머니를 기다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면접 준비를 하는 것처럼 표정과 말을 연습했다. 리코 못지않게 미인인 어머니는 홀로 타지에 있는 리코의 안위를 부탁하셨다. 막상 어머니를 만나니 그녀는 나에 관해 궁금해하기보다는 리코는 상처가 많은 아이이니 잘 보살펴달라고 하셨고, 난 무공훈장을 받는 군인 같은 표정으로 격하게 고개를 흔들며 그 말을 받아들였다. 마치 바통을 넘기는 주자처럼 그녀는 마음을 한결 놓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책임감을 들쳐 메고 식당 밖을 나섰다.

리코 덕에 앞날을 향한 근심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굳이 좋아하는 걸 하며 살지 않아도 괜찮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극도로 행복하니 현실감각과 멀어졌고 매일 까치발을 들고 사는 기분이었다. 여차하면 날아오를 채비를 하며 툴루즈 시내를 걸었다. 살아가다보면 이 순간은 평생 잊을 수 없겠다는 걸 알아챌 때가 있다. 리코와 데이트를 하던 때가 딱 그랬다. 일요일 아침 무작정 떠난 보르도 여행에서 비를 맞으며 거리를 뛰던 시간과 아침 산책을 하며 레바논 식당을 찾다가 쳐다본 무구한 하늘이 그랬다. 무엇보다 리코가 좋아하는 와인을 사서 나누는 매일 밤이 즐거웠다. 난 술은 잘 못해도 와인은 좋아했는데, 리코는 기가 막힌 와인을 매번 사 왔다. 리코가 가장 사랑한 와인은 피노 누아였다. 그 섬세한 맛이 그리워서 요즘도 가끔 와인집에 가서 피노 누아를 마시곤 한다.

그렇게 두 달의 시간이 지나니 우리 관계도 점차 현실감각을 찾아갔다. 이제 서로의 미래를 생각해야 할 때였다. 난 몇 달 후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리코도 시민권이 없어서 더는 프랑스에 머물 수 없는 처지였다. 태어나서 처음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엄연한 리코의 보호자이고 싶었다. 리코의 과거를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나와 다른 그의 아픔이 내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그 시절의 호기는 실로 대단해서 난 다 잘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1년에 가까운 유럽 생활은 내게 근거 없는 낙천성을 선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리코는 나를 철석같이 믿었고 나는 인생의 다른 구간으로 접어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 사이에 갈등이 시작된 것은 다 내 탓이다. 균열을 눈치채고도 살피지 않은 것도 내 안일함 때문이었다. 무심하다는 말이 알고도 모른척하는 것이라는 걸 난 몰랐다. 다 내 입장에서 생각한 추측에 불과하지만, 내가 리코에게 한국에서의 삶에 관해 자세하게 터놓기 시작하면서 많은 게 달라졌다.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미래를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장밋빛으로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사정에 관해서만 들을 땐 프랑스에 남겨놓고 떠날 수 있는 상처에 불과했던 근심이 한국에 있는 나의 사정으로 옮겨 붙자 리코나 나나 속이 시끄러웠다. 리코는 나라는 사람과 함께할 청사진을 한창 그리고 있었는데 거기에 현실이라는 검은 얼룩이 튄 모양이었다. 난 내 삶의 고민과 근심을 함께하고 싶어 털어놨지만 그게 리코에게는 부담스럽게 여겨졌다. 마치 내가 짊어진 근심이 그녀가 나를 따라 한국에 간다고 결정했기에 내가 느꼈을 부담감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나와 겪을 삶을 향한 확신이 허물어지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난 지금도 그때도 잘 모른다. 미심쩍은 기분을 터놓고 얘기하지 않았기에 모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정말 리코의 어두운 낯을 보지 못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리코는 우리가 이별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난 한국에 돌아와서야 원망하기만 했던 리코의 속내를 조금은 추측할 수 있었다. 그녀와 나눈 대화를 되짚으면서 리코의 심정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무차별적인 그리움도 얼마 못가 바쁜 일과와 함께 누그러졌다. 나와의 한국행을 검토하던 시점에 그녀는 돌아가서 할 일이 마땅치 않아 고민했다. 직업을 가져야 했던 리코는 한국에 가면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아르바이트 수준이라는 것에 실망한 눈치였다. 외국어에 능통한 리코는 인터넷으로 호텔과 같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한국에 불어닥친 경기 침체와 혹독한 사회 분위기를 감지한 것 같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리코에게 행복을 담보하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우리의 한국행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아마 그 시점부터 리코는 다시 프랑스에서 살아갈 방도를 알아보기 시작했으리라. 내게 말도 없이 지인을 통해 이민자의 영주권 문제를 해결할만한 통로를 찾고 있었다. 난 나대로 귀국 후의 삶이 두려워서 미세하게 식어버린 리코의 태도를 모른척했다.

리코는 런던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파리에서 대학교를 나왔다. 하지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터전을 잃었고, 마땅한 직업을 구하지 못해서 웨이트리스 일만 전전했다. 부모의 이혼 과정에서 짐짝처럼 버려진 것에 아파했다. 돌아갈 곳이 없는 처지가 된 리코는 말 그대로 유럽 땅에 혈혈단신으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남자와 결혼을 하면 시민권을 딸 수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젊고 예뻤던 리코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와 동거를 시작했다. 직업을 구할 시기를 놓쳤으니 결혼을 통해 가정을 꾸리는 게 현명한 처사였다. 리코는 계획했던 것처럼 전문직 백인 남성과 이십 대 초반에 약혼을 했으나 이후로 삶은 더 꼬여만 갔다. 남편의 가족들은 리코를 프랑스 사람이 되어보려고 공부와 연구밖에 모르던 아들을 꼬신 여우로 취급했다. 계속된 결혼 반대로 리코는 남편과 식을 올릴 수 없었고, 법적으로도 한낱 동거인에 불과했다. 리코는 시댁 식구들과 함께한 식탁을 악몽과 같은 기억으로 떠올리곤 했다. 그녀만 무시한 채 그럴싸한 프랑스적 삶에 관해 떠드는 백인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증오했다. 체구가 작은 아시아 여성은 보모나 종업원으로밖에 보지 않는 이들 사이에서 접시를 나르고 눈치나 살피는 자신의 나약함을 자조했다.

사이가 좋던 남편과 틀어진 계기도 분명했다. 리코는 아이를 갖고 싶어 했지만 남편은 이를 거부했다. 리코가 시민권을 위해 아이를 이용한다며 비난했다. 아이를 낳아도 결혼을 해줄 것 같냐면서 비아냥거렸다. 그렇게 집에만 갇혀 지내는 시간이 계속됐다. 그리고 남편은 그녀의 몇 안 되는 유럽 친구가 있는 파리를 떠나 대형 연구 단지가 즐비한 툴루즈로 이직하여 그녀를 고립시켰다. 우울감이 치솟던 그녀는 남편이 데리고 온 새끼 고양이를 키우면서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보이지 않는 앞날을 견디지 못하고 독립을 선언했다. 남편이면서 결혼도 해주지 않고 아이도 원하지 않는 남자를 멀리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게 혼자서 툴루즈 시내로 나가 독립하여 살던 시기에 나를 만났다. 아무것도 정리할 게 없어서 몸만 빠져나온 그녀는 힘겹게 생계를 유지했고, 남편과 5년을 살았지만 그녀 앞으로 돌아온 자산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코는 프랑스에서 온전히 혼자 설 수 없는 처지였다. 시민권이 없는 리코는 혼자 집을 구할 수도, 보증금을 낼 수도 없었다. 혼자만 살 뿐 남편에게 모두 의지해야만 했다. 웨이트리스 생활은 고됐고 집세를 보내고 나면 남는 돈도 얼마 없었다. 지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리코는 매일 레스토랑에서 요리사가 그날 남은 재료로 만들어준 간단한 요리로 저녁을 해결하고 녹초가 되어 귀가했다. 잠이 오지 않아 와인을 마시고 잠이 들었고, 주말이 되면 클럽에 춤을 추러 나가며 방종한 삶을 즐겼다. 세상 모든 근심을 술로 잊고 사는 얼굴로 행복하게 문을 여는 리코의 표정을 기억한다. 빠져나갈 구멍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더 측은하게만 보였던 마른 얼굴. 난 그때 사람을 무너지게 하는 건 불안이라고 생각했다. 홀로 1인분을 마련할 수 없을 때 느껴지는 자괴와 허탈함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리코에겐 고양이 한 마리가 가족이었고, 나는 리코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갈 구원자였다. 책임이 막중했다. 하지만 난 구원자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난 크리스마스 즈음 한국에서 온 부모님과 2주간 파리 여행을 하고 다시 리코를 만났다. 뭔가 달라진 얼굴을 한 리코는 나를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 난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그걸 묻지 못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이 두려웠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은 나는 리코의 집에서 짐을 다 뺐다. 며칠을 집 앞에 머물며 매달렸지만, 리코는 아무런 말도 없이 우리가 살던 집을 비웠다. 난 매일 수업이 끝나고 그 텅 빈 집 앞에 죽치고 있었다. 난 그녀에 관해 알고 있는 게 거의 없었다. 함께 아는 지인도 없었다. 리코가 일하던 식당에서도 리코는 그냥 잠시 일했던 사람일 뿐 아무 정보도 없었다. 난 점점 말라갔고 종일 무너져있었다. 그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을 뿐이었지만 그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의 페이스북 친구에게 모조리 친구 신청을 해서 아이디가 정지당했다. 비이성으로 치닫는 나 자신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간 밥도 못 먹고 좀비처럼 시내를 배회하다가 집에 돌아와서 누우면 천장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어느 날 기억의 한 토막이 떠올랐다. 헤어지기 며칠 전 우린 둘 다 수업과 출근 때문에 아침 일찍 나설 준비를 한 참이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서려는데 고양이 넛지가 바닥에 토를 해놓은 게 보였다. 넛지를 안아보니 꽤 심각하게 고통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너무 놀란 우리는 함께 수의사를 찾기로 했다. 사람들이 바쁘게 걷는 툴루즈의 아침 풍경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린 분주히 붐비는 버스 정류장으로 인파와 함께 휩쓸려갔다. 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내서 막 오르려던 참이었다. 근데 갑자기 리코는 나를 제지하며 혼자 가겠다고 우겼다. 황당하게 쳐다보는 내게 넛지는 자기 고양이이니 내가 수업을 빼먹으면서까지 올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얼굴은 단호했고 분명히 내게 선을 긋고 있었다. 난 순간 화가 나서 차갑게 알겠다고 말하고 돌아서서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난 버스 뒷자리 창가 자리에 올라타서 리코를 보았는데, 그녀는 내게 뒷모습을 보인 채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표정 없는 얼굴로 앞만 응시하며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에 돌아갈 곳 하나 없는 여자였다. 나는 왜 그 곁에 서지 않았을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후회로 남은 장면이다. 설마 하니 내가 그렇게 리코와 헤어지기를 바라왔던 건 아닌지. 그녀를 책임져야 할 한국에서의 삶을 겁내고 도망친 건 아닌지.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뭐가 됐든 난 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아니, 엄연히 내 마음대로 놓아버렸다.

몇 년이 지난 주말 아침에 이런 글을 적은 이유는 내 처지가 처량해서 그렇기도 할 것이다. 아침 스타벅스에는 공부에 열중인 학생들과 명절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는 직원들이 보인다. 난 이들을 애틋한 얼굴로 바라보며 외로움을 털어냈다. 가족들이 모이는 날에 알 수 없는 이유로 혼자 고립되기를 택한 나는 과거에 내가 잘못 그은 선을 유심히 바라보며 회한에 젖어있다. 후회 없는 삶을 살라는 선현의 가르침을 매번 외면해온 회피형 인간답게 비겁함에 관해 열심히 적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마음도 일부 보탰다. 나를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기억 하나 붙잡고 아련해질 수 있게 날 사랑해준 그 사람들이 고맙고 미안하다. 부디 내가 달아난 당신들의 삶에 고귀한 빛이 깃들기를 기도한다.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내 못남도 시간이 다 용서해주기를 염치없이 바라본다. 결국 내가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당신과 나의 공간도 너무 누추한 기억이지만은 않기를 염원한다.


본론


몇 년 전 엄마한테 내 연애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생전 처음이었죠. 하도 답답해서 해본 말이었는데 엄마는 빨래를 개다 말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되지도 않는 곳에 힘쓰고 있네. 그 시간에 다른 애나 만나겠다." 그 말에 저는 버럭 화를 냈습니다. 마치 남 얘기하는 것처럼 위로의 기미도 없는 말투였거든요. 무슨 엄마가 저러나 싶었습니다. 물론 엄마 딴에는 안타까워서 한 말이었겠지만 그래도 아들이 괴로워하면 위로해줘야 마땅하지 않나 생각했던거죠. 조금 오그라들더라도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봐줄 줄 알았습니다. 저도 다 압니다. 다 끝난 사이라는 건 제가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얘기를 들어줄 엄마가 필요했습니다. 엄마는 제 투정에 잔말 말고 밥이나 먹으려고 통박을 줬어요. 전 밥상머리에서 그간 짓눌려있던 울분을 모조리 짜증으로 풀어냈습니다. 그러고나니 좀 낫더군요.


이별의 과정에서 가장 힘든 건 되돌리는 것입니다. 놓치고 나서 원상복구 하려면 대책 없는 기다림이 필요하죠. 자꾸만 머릿속으로만 리와인드하니 금세 피로해집니다. 불교 경전을 외우며 참선하는 도승이라도 된 기분입니다. 자꾸만 머릿속에 아른거려서 속 편히 누워있지도 못합니다. 그럴 땐 우두커니 절 가로막은 천장만 눈에 들어옵니다. 흰 벽지에 온갖 상념이 떠올면서 내가 뱉은 모든 말을 다 모진 막말로 몰아갑니다. 그러다가 참지 못하고 내일 아침이면 후회할만한 메시지를 보냅니다. 시도 때도 없이 가리지 않고 전화를 걸고, 차단을 풀어 달라고 애원하죠. 어쩔 땐 이제 다 끝났다고 엄포를 놨다가도 몇 시간도 안 돼서 후회를 합니다. ‘1’이 지워지기라도 하면 잔인한 희망고문이 시작됩니다. 이런 진상의 무한루프에서 빠져나오기까지 참 오래 걸렸습니다.

며칠을 그렇게 답도 없는 텔레파시를 쏘니 저 혼자 지쳐 떨어졌습니다. 상식선을 한참 넘어서서 허둥지둥 사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저라는 사람의 밑천이 드러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망가졌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화장실 거울에 제 얼굴을 비춰봤더니 퀭한 눈에 푸석푸석한 피부가 영락 없는 폐인이었습니다. 전보다 열 살은 더 늙어 보였습니다. 그때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이러다가 완전히 맛이 가겠구나. 내가 스무살 이후로 어렵사리 지켜낸 로틴도 다 망가지겠구나. 퇴근하면 잠들 때까지 침대에 누워있었고, 평소 관심도 없던 유튜브만 잔뜩 몰아봤습니다. 시종일관 날 웃기는 인스타그램 피드를 넘기다가 잠에 들었습니다. 당신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한 번 들러서 '좋아요'를 눌러주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제가 하는 건 연극으로 치면 모놀로그더군요. 고독한 독백은 메아리처럼 제 방을 울렸습니다. 회사 동기가 제 상태를 보고 상담을 받아 보라고 했습니다. 상대는 콧방귀도 안 뀌는데 이렇게 절절하게 구애를 퍼붓는 건 위험한 수위라고 했죠. 도파민과 세로토닌 수치가 문제였을까요. 지금이라도 약을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터널을 빠져나와 다시 일상을 되찾았다고 믿을 정도로 나아졌습니다. 입맛이 돌면서 몸에도 피가 도는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집구석에서 벗어나서 산책을 한다든지 밀린 빨래를 하면서 기운을 냈습니다. 말 그대로 바닥을 쳐야 솟아오를 힘이 생기는 걸지도 모릅니다. 당신에 대한 사랑도 딱 이 정도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우습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했습니다. 절절한 그리움이 고작 시간에 수그러드는 게 신기했습니다. 곧 죽을 것처럼 굴다가도 미련이 사그라들면 새로운 사람이 눈에 들어겠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히죽히죽 웃으면서 소개팅을 할 것입니다. 시간이 가져다준 안식에 취해 정상 몸무게를 되찾을 날도 머지 않았습니다.

요즘에는 의식적으로 당신을 배제한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태양력은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하루를 스무 조각 넘게 쪼개 놔서 날이 다 저물 때까지 한참 걸립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당신 사진을 보던 짓도 더는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을 추억하는 글을 썼더니 책 한 권 분량이 되었습니다. 제 글을 책으로 내준다는 출판사의 연락을 받았거든요. 당신을 잊기 위해 허벅지를 콕콕 찔러가며 쓴 글에는 애처로운 마침표만 가득하지만 그걸 읽어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구두점을 찍고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간 살아오며 여러 번의 헤어짐을 겪었습니다. 이별의 고통은 반복돼도 익숙해지질 않더라고요. 어떤 모임에 가서 연애는 다 똑같다고 일갈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전에 모르던 고통이 찾아오는 걸 보니 사랑은 다 제각각인 모양입니다. 이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가까워지는 과정이 두렵기도 합니다. 지겹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번거롭고 부산스럽다는 느낌도 듭니다. 당신이 그리워서 허벅지가 저릴 정도로 앓던 밤을 자꾸 떠올립니다. 제가 점차 소멸하는 시간이었죠. 저는 사라져도 괜찮으니 당신만 달라고 신께 애걸하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고통은 더는 겪기 싫습니다.


엄마가 '되지도 않는 일'이라고 단언했던 것처럼 당신은 결코 어떤 연락도 주지 않았습니다. 전 앙심을 갖고 더 보란 듯이 살고 싶어졌고요. 이제 저 자신을 돌보고 자존심도 챙겨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한동안 손도 대지 않은 흰 셔츠를 챙겨 입고 시내 복판에 위치한 카페에 앉아서 글을 썼습니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에 톡톡 두드리면서 유행가도 따라 불렀습니다. 창밖으로 계절이 옮겨간 게 눈에 들어왔고, 오늘 밤은 버텨내기가 어렵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기분이 말끔해지고 창밖 풍경이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엄마는 제게 언젠가 이런 말도 해줬어요. '살아다가 보면 영원히 떨쳐내기 싫은 관계도 올 거야.' 당시에 전 콧방귀를 뀌었지만, 종종 길을 걷다가도 이 말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죠. ‘엄만 그래서 저 답답한 아버지하고 여태 사는구나. 그냥 떨쳐내기엔 마음에 걸리고 지금까지 들인 품이 커서 놓치긴 아쉬운 거구나.’ 엄마는 요즘 제 모습을 보면 어떤 말을 해주실까 궁금합니다. 여전히 쓸데없는 데 힘을 뺀다고 구박을 하실지도 모르죠.


당신도 알다시피 한 자취방에 오래 살았습니다. 서울에 방 하나를 구해서 단출하게 살았죠. 미니멀리즘이 유행하기 전부터 세간 없이 살았습니다. 방 하나에 작은 거실이 딸린 아파트였는데 작은 베란다까지 있어서 제겐 너무 큰 집이었습니다. 저는 그 집을 거의 잠자는 용도로만 썼죠. 종일 외출했다가 잠자리에 들 시간에 들어와서 씻고 바로 눕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집이라기보다는 숙소에 가까운 장소였습니다. 방에 머물지 않으니 살림살이가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근데 당신을 만나고 그 집을 가꾸게 되었습니다.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우고 세간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부지런히 바닥을 닦고 빨래도 자주 했습니다. 당신이 온다는데 신이 나서 집에 머무는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그 시절이 제가 집에 있기를 즐겼던 유일한 시기였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커피 도구를 들여놓고, 아늑한 협탁에 스탠드를 놓았죠. 처음으로 내 집이라는 걸 갖고 싶었나 봅니다. 전 매일 당신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데 감격했습니다. 사람들이 이래서 결혼을 하는구나 싶었던 것입니다.


이별 후에 그 집은 다시 방치됐습니다. 당신이 사라지니 무용지물 창고가 되어버렸습니다. 당신만 쏙 빠지고 이별의 잔해만 남았습니다. 혼자 남겨지니 집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별은 한동안 제 계절과 여유를 앗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대한 공백기처럼 느껴집니다. 분명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유예된 채 끌려가기만 했거든요. 간신히 출근해서 가까스로 아침이 오길 바라며 밤을 버텨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패닝 된 채 무의미하게 몇 달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다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침대 주위에 쌓여있던 책들을 다 박스에 넣었어요. 그러다가 무심결을 책 한 권을 펴서 읽었죠. <커플>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영원히 인구에 회자될 운명적인 연인들을 다룬 에세이 책인데 내용을 보니 눈이 돌아간 채 서로를 향해 돌진했던 커플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온갖 시련을 겪고도 기어이 서로에게 미쳐서 세기가 주목한 사랑을 완성해낸 거죠. 가만히 보면 떠들석한 커플들은 온갖 기행을 저지르면서도 사랑밖에 모른다는 식으로 굴었습니다. 광기와 집착으로 이룬 처절한 연애랄까요.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온순한 사랑을 했던가요. 사랑을 위해 기꺼이 삶을 파괴했던 커플들에 비하면 우린 그저 살짝 균형을 잃었던 것뿐입니다. 전 이제 더는 사랑 때문에 균형을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전 대체로 연애소설을 싫어했습니다. 낯 간지러운 판타지를 즐기기엔 현실이 너무 암담하니까요. 그래도 좋아하는 연애서가 있다면 연애의 여파를 다룬 작품이 대다수입니다. 사랑이 한 사람에게 뭘 남겼는지 곱씹는 작품을 읽는 걸 좋아합니다. 주인공은 회한에 빠져서 복기하며 뉘우치지만 끝내 뭘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하기도 합니다. 다 끝났는데 감도 못 잡고 매달리는 식입니다. 그런 책을 보면 남일 같지 않아서 심란해지지만 얼토당토 않게도 큰 위안을 얻습니다. 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나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같은 소설이 딱 그런 종류의 작품입니다. 영단어 회한(“remorse”)의 어원이 라틴어로 한 번 더 깨무는 행위라고 하더군요. 전 어젯밤 침대에 누워서 입술을 깨물고 과거를 복기해봤습니다. 책을 덮고 고개를 돌린 채 창밖을 보며 평상심을 찾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도 커튼 사이로 보이는 가로등을 보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됩니다. 밤새 제가 놓친 게 뭔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이게 다 어젯밤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