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어릴 때부터 몰려다니는 걸 싫어했어요. 교실에서도 무리에 있는 게 불편해서 이어폰을 꽂고 혼자 창밖을 보는 일이 잦았습니다. 시끄러운 놈들과 선을 긋고 외따로이 노는 허세가 그때부터 있었죠. 특히 내 또래 남학생들이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었었습니다. 편 먹고 치사하게 굴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비부터 거는 자식들이었으니까요. 전 당시의 저 자신을 싫어했어요. 중학교 시절의 저는 인간도 동물도 어중간한 영장류에 가까웠거든요. 몸은 뜨거운데 온갖 괴상한 생각이 끊이질 않으니 매일 속이 시끄러웠어. 당시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아무에게도 그걸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지 않았어요. 불균질한 속내를 삭히면서 학교에 다녔던 것 같아요.
친하게 지냈던 애들도 있긴 있었습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 혼자 실망했던 것 같아요. 전 거슬리는 것도 많고 불편한 건 더 많은 놈이었으니까요. 그걸 입 밖에 내진 않으면서 표정만 굳어있는 식이었으니 친구가 곁에 남아나질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애들도 대놓고 저를 피했어요. 전 무리가 뱉어낸 외톨이들과 교실 구석에서 어울렸습니다. 딴 애들이 성가시지 않도록 조용하게 얘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가령 기억나는 건 브리트니 스피어스 뮤직비디오나 유럽 축구 얘기를 하며 키득거렸어요. 지금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별반 다를 건 없습니다. 나름 이제 사회생활을 하며 융통성 수치를 높여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아무리 버텨도 싫은 게 좋아지진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겨우 적당히 맞춰나갈 뿐이지 매일 반복되는 일정량의 모욕과 위선을 견디고 돌아오는 게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아마 다들 비슷하겠지만 전 가끔 숨을 턱턱 막히곤 했습니다. 제가 가진 반골 기질까진 아니더라도, 불편한 자리는 말도 없이 피해서 도망치는 버릇이 시작된 것도 이즈음부터입니다. 이런 겉도는 성향이 크게 불편하진 않지만, 요즘처럼 외로울 땐 별생각 없이 낄낄거리던 시간이 그리워집니다. 교실 귀퉁이에서 속된 얘기나 늘어놓으며 학교를 벗어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낙관했던, 당시엔 끔찍하기만 했던 학창 시절이 가끔 생각납니다.
제가 직장을 다니며 뭐가 제일 어려운지 꼽아보자면 목표가 희미하다는 겁니다. 성공에 대한 기준이 뭔지, 행복하게 사는 게 뭔지 잘 모르겠거든요. 자아실현은 개뿔 하나님의 십계명처럼 사회생활을 철두철미하게 통제해 왔습니다. 사무실에 앉아있으면 남들 사는 만큼 살려고 제가 포기한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월급은 먹고사는 생계의 문제이니 최소한의 것만 하자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제 마음대로 조절이 되지 않았습니다. 끌려가기도 덕을 보기도 하면서 능숙한 샐러리맨으로 살아갑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성공한 인생의 표준이 제겐 잘 와닿지 않아요. 잘 나간다는 게 도대체 뭔지, 본받아야 하는 이상적인 삶이라는 게 있기나 한지 믿을 수가 없는 거죠. 이러니 남들 하는 대로 엉거주춤 따라가면서도 늘 겉도는 신세입니다. 무엇보다 야밤에 집에 들어와서 마음이 삐걱거리는 걸 막을 순 없더군요. 저는 그냥 유유자적 독서나 하면서 늦은 밤까지 산책하며 살고 싶나 봐요. 그게 지나치게 속 편하고 유별난 바람이라는 건 알지만 불가능해 보이진 않아서 자꾸 마음이 쓰입니다.
전 어릴 적부터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 좋았어요. 통념에 휘둘리기보단 제 식대로 볼 줄 아는 사람에게 호감이 갔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관심을 둔 것도 세속 도시에서 까치발을 들고 걷는 게 예뻐 보였기 때문이었어요. 그건 당연한 걸 당연하게 보지 않고, 남들이 잘 보지 않는 사소한 데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당신은 뭐든 잘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상엔 울퉁불퉁한 일이 무수하니까 만사가 귀찮은 사람은 뭔가를 들여다보는 게 어렵습니다.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는 우선 피로감부터 불러일으켜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도록 강요하죠. 근데 당신은 감정을 훈련하는 사람처럼 순수하게 느끼려고 노력했어요. 세상 통념에 반 발짝쯤 떨어져서 사는 것 같았어요. 누군가가 상정해놓은 패턴대로 살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습니다. 당신은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종국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나요. 저도 마찬가지로 갇히지 않으려고 자주 생각을 고쳐먹는데 그건 당신의 영향을 받은 바가 큽니다. 아직 실패를 덜 해본 당신의 눈을 좋아했어요. 제 탁한 시야와 달리 눈에 불을 켜고 사는 당신을 따랐습니다.
당신은 저와 함께일 때 온 힘을 다했습니다. 자연의 조각 하나에 열띠게 호응하며 우리 사이를 굳건히 했죠. 누군가를 완전히 믿는다는 것이 주는 기쁨에 관해 자주 말했던 걸 기억합니다. 제겐 그 모습이 위태롭게만 보였는데 그건 너무 의심의 여지가 없는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매사 의심과 불안을 거두지 못하는 저 보란 듯이 당신은 어색하거나 걸리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감정에 작위가 없어서 자꾸 당신의 시선을 의식하게 했죠. 예를 들면 당신은 오해를 방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몇몇을 사람을 제외하고는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직장에서 상사가 당신을 곡해해도 그냥 넘겨버렸습니다. 타인은 어차피 당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리라 생각했죠. 저는 그걸 포기하는 태도라고 여겼지만, 당신은 감수하는 것이라고 정정했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굳이 해명하거나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죠. 인정 투쟁용 글을 쓰는 저를 무색하게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제 눈에 그건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되드니 차라리 생각 없이 사는 애라고 불리겠다는 치기로 보였습니다. 그런 호기가 이 사회에서 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의 곁에 서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흉측한 저 자신의 모습을 글로 적나라하게 전시할 때 위로를 받는 것과 달리, 당신은 글을 쓸 때도 잘 꾸며진 자신을 보이길 원했죠. '구구절절'과 '구질구질'을 모토로 삼는 나와 달리 깔끔하게 정제된 당신만 드러냈죠. 그러고 보면 우린 참 다르고 그 다름이 좋았고 종국엔 그 다름으로 헤어졌습니다.
당신은 가만 보면 인스타그램으로 세상을 판단했습니다. 당신의 기분을 올리고, 그걸 보는 사람들을 확인하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 그 네모난 창으로 뭐든 떠올리며 즐거워하는 당신이 신기했습니다. 인스타그램으로 식당을 찾고, 전시를 보고, 이사할 집을 찾고, 구매할 물건을 저장하고, 누군가의 취향을 가늠했죠. 제가 한 번은 당신 인스타그램 계정은 껍데기에 불과한 게 아닌지 묻기도 했었죠. 그 가상의 공간에 꾸며낸 건 진짜 당신과는 상관없는 게 아니냐며 공격적으로 캐물었죠. 근데 당신은 무슨 그런 말을 하냐는 투로,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지금 내 진짜는 인스타그램 속에 다 있다고 말했습니다. 확고한 어투로 게시글에 올라간 사진과 글귀를 스스로와 동일시했죠. 그건 제게 깊은 인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후로는 저도 당신의 영향을 받아서 딱 인스타그램 사이즈로 세상을 가늠하는 버릇이 생겼거든요. 아침에 일어나면 올라온 피드를 스르륵 내려보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감을 잡고 있습니다. 앱을 지워보고 계정도 끊어봤지만 어떤 미련인지 인스타그램은 저를 붙잡아 다시 세상에 발붙이게 했습니다.
당신은 제게 비밀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가감 없이 털어놨습니다. 당신의 다단한 가정사를 남에게는 철저히 숨기면서도 제겐 꼭 얘기해줘야 마땅한 것처럼 굴었습니다. 제겐 이상하게 모든 얘기를 다 털어놓을 수 있다고 했죠. 당신의 속사정을 들으면서 저는 우리 사이가 어떤 고리에 꿰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신 덕분에 저도 제가 지닌 어두운 속내를 말로 꺼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우린 어떤 의식을 치르듯 밀착했습니다. 마치 아이처럼 우린 매일 밤 상대에게 약한 부분을 하나씩 꺼내놓으며 서로를 믿어갔습니다. 일종의 신앙과 같은 의식처럼 새로운 비밀을 털어놓을 때마다 은밀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전 우리가 줄곧 서로 진실을 숨긴 체 각기 다른 욕망을 품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미래에 관한 얘기를 나눌 때는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각기 다른 앞날이 보이니 솔직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저 자신을 확신할 수 없었던 저는 당신의 바람을 충족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자주 뉴욕, 시카고, 런던, 파리에 관해 말했지만, 저는 지금과 다르지 않을 미래만 떠올렸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당신이 허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실과는 거리가 먼 어린 생각으로 치부했습니다. 서구 예술과 개인주의 문화를 찬양하는 당신을 못마땅하게 봤죠.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전혀 인정하지 않고, 멀고 먼 이상에 턱턱 발을 내딛는 당신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비관을 숨기고 당신만큼 조도를 높였지만, 색이 바래기만 할 뿐 큰 효과는 없었습니다. 그런 대화가 끝나면 서로 다른 책을 펴고 돌아누웠습니다. 그때 눈은 글에 있었지만 뭔가 찜찜한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였는지 절 돌려세우고 방금 한 말이 무슨 의미냐고 재차 물었죠. 전 호롱불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넘겼습니다. 안심하는 당신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원래 이런 맛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