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샤워를 하고 바로 누웠습니다. 종일 이 동네 저 동네를 걸어 다녔더니 꽤 지친 모양이에요. 근데 이상하게 잠이 올 기미도 없어서 결국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지난 수년간의 경험으로 불면에는 글쓰기만 한 게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실 처음 글을 쓸 때도 외로움을 달래려고 뭔가를 적었던 것 같습니다. 공개된 다이어리에 나 좀 봐달라는 식으로 온갖 감상적인 말을 쏟아냈습니다. 제 시커먼 속내를 흰 백지에 넣고 보면 마치 기도를 하는 것처럼 어떤 염원이 생겼습니다. 그 기도문엔 일말의 바람과 약소한 진실이 있고, 한 순간 고요해지면서 내가 만든 세계가 보였습니다. 게시글에 댓글이라도 달리면 그게 그렇게 위안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뭐라도 적지 않으면 잠들기 어려운 밤엔 좀처럼 기운이 나질 않는데 불특정 다수와 상호 의존성이 생기면서 마음이 포근해졌습니다. 오히려 행복할 땐 글을 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내 불행을 누구나 납득할 만큼 길게 풀어내면 개운해지곤 했습니다. 물론 다음 날 아침이면 후회와 치기가 덕지덕지 뭍은 글이 민망했지만, 과잉된 감정이 흉하게 일그러져 있는 게 딱 내 모습 같았습니다. 왜 위로의 댓글이 달렸는지 알만했습니다.
발라드 가수는 결혼을 하면 창작의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잦다고 합니다. 생활이 너무 안정되니까 우울과 몽상이 옅어지고, 결여가 없으니 상처를 노래하기가 쑥스러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발라드는 이별의 여파로 인한 애처로운 정서가 핵심인데 매일 화목한 가정에서 뜨신 밥을 먹고 나면 처연한 뭔가가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작업실에 틀어박혀서 과거 연인을 떠올리며 가사를 적고 노래를 부른다는 웃픈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별의 아픔을 어떻게든 구슬려서 떠올리는 광경이 조금 우습지 않나요. 뭐 어쨌거나 그렇게라도 해야 심금을 울리는 슬픔을 내비칠 수 있다는 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제가 종종 과거 연애담을 글로 쓰면 질색했었죠. 근데 저도 글이 나오지 않을 땐 몸이 뜨거웠던 때를 복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애 감정과 이별의 상태야말로 아무리 우려먹어도 진국이 나오는 사골 같거든요. 술자리에서 다들 그렇게 과거 연애를 떠벌이는 심리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뭔가 특별한 게 없으니 내가 유일하게 삶의 주역이었던 연애를 떠올리는 거죠. 비련의 주인공으로 자신을 상정하고 마음껏 감상에 취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런 감상이 주위 사람들에게는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유치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어쩔 수 없이 최근 이별의 아픔에 시달리는 유치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일그러지고 흉한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 당신을 향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허공에 외치는 기분이지만 기분에 한껏 취해서 구슬프기 그지 업습니다. 당신은 저와는 다르게 연애가 아니라 과거에 함께 지낸 친구들과의 일화를 토막글로 쓰길 좋아했습니다. 미처 돌아볼 새 없었던 당시의 시공간을 점유하고 마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 생생한 글을 썼습니다. 과거를 세밀하게 묘사하니 기억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기분이 드는 글이었습니다. 둘만 아는 버릇이나 의식하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든 습관을 짚어낼 때 당신이 그려낸 관계는 고유했습니다. 그래서 전 혼자만 볼 수 있는 블로그에다 뭔가를 적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정갈한 문장을 가졌음에도 글에 별 관심이 없는 게 의아했죠. 제게 글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수단인데, 당신은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적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좋은 글을 쓰지 못한다는 초조함에 노트북을 켤 때, 당신은 당신 자신을 위해 글을 고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 글은 스스로에 수렴했지만, 제 글은 다분히 의존적이라서 누군가 읽어주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잠이 안 와서 계속 이불 위에서 뒤척였습니다. 차오르는 우울을 해소하지 못해 갓 잡은 고등어처럼 버둥거리는 꼴이죠. 별 기대 없이 살아보려고 해도 쉽지가 않습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는 사람이 부러울 지경입니다. 경망한 말이지만 한 주간 근심을 그러모았다가 주일에 웅장한 교회당에 가서 마음을 풀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습니다. 요즘 같아서는 찬송가가 울리는 고요한 공간에서 서경별곡처럼 애절한 가사를 외고 싶습니다. 다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위로도 받고, 국수라도 함께 먹으면서 토닥여주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더는 글쓰기에 흥미를 갖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쓰지 않아도 살만하다면 더 쓸 이유가 없을 테니까요. 왜 한국의 거목 김승옥 작가도 새벽 잠자리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고는 절필하셨다고 하잖아요.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더는 뭘 쓸 수 있겠습니까. 저는 쓸 수 없다는 상태를 두려워하면서도 그런 순간이 오길 고대하기도 합니다. 불안과 우울을 안고 가야 할 팔자라 그런가 봅니다.
당신도 저 못지않게 불안한 성정을 지닌 사람입니다. 당신 역시 신앙 없이 밤을 보내는 외로운 사람이죠. 그렇다고 저처럼 기를 쓰고 글과 책에 매달리지는 않습니다. 당신에게 종교는 뭘까요. 당신은 무엇으로 어떻게 응어리를 풀고 사는 걸까요. 제가 보기엔 당신에게는 술이 묘약으로 보입니다. 자정에 다다라 술자리가 파할 것 같으면 불안에 시달렸던 당신 얼굴을 떠오릅니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흥미가 떨어져 시계를 살피면 당신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같이 마셔만 준다면 어떤 얘기든 기꺼이 나눌 용의가 있어 보였죠. 당신에게 두려운 건 누구도 더는 술을 마셔주지 않고 택시를 부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열띠게 술잔을 들고, 다음 날 출근은 아랑곳없이 흥을 띄우려고 애쓰는 거잖아요. 저는 아직도 술병이 바닥나니 직접 카운터까지 가서 와인 한 병을 들고 오는 당신 모습을 기억합니다. 발그레한 얼굴로 실실 웃으며 마시라고 종용하는 당신은 조급해 보였죠. 팔에 힘이 없어서 붉은 와인이 콸콸 흘러넘치는 데도 전혀 모르고 까르르하던 당신. 비록 후회할만한 아침에 이르더라도 감수하겠다는 태세였습니다. 왜 그런 당신이 좋았을까요. 아마도 당신 말투엔 위로와 공감이 버무려져 있었고, 거기엔 병적인 구석이 있어서 눈을 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술자리는 당신 맘처럼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순간 방심한 틈을 타 사람들은 제멋대로 파해버렸고, 별안간 어두운 감정이 치솟은 당신은 멍한 상태로 길바닥을 휘청이며 걸어갔습니다. 어렵사리 택시를 잡아 태우면 허탈에 가까운 여진이 골을 울렸고, 결국은 결핍을 남기고 침대에 몸을 뉘었습니다. 아무리 달콤한 밤이어도 다음 날 아침이 오면 참혹한 기분에 시달렸습니다. 당신을 더는 알아주지 않는 시간은 어김없이 오고 말았거든요. 당신은 세상 환희를 온몸에 품었던 어젯밤과 달리 잔뜩 풀 죽은 아이처럼 어쩔 줄 모르고 출근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어제 한 말을 떠올리지 못하면서 주섬주섬 노란색 티셔츠를 챙겨 입는 모습을 기억합니다. 역 앞 출근길 버스 안에서는 간밤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잊히고 암담한 현실이 당신 속을 헤집어 놓았겠죠. 고민할 게 켜켜이 쌓인 당신의 미래가 우두커니 서있고, 그렇게 청승을 떨다 또 다른 술 약속을 잡으며 불안을 달랬습니다. 당신에게 술은 마치 엔트로피처럼 마시면 마실수록 마음이 혼탁해지는 무질서의 공간인가 봅니다. 종국엔 재만 남을 혼돈과도 같을 것일까요. 그렇게 다 망쳐버리고 놀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을까 상상해보곤 합니다. 전 가끔 홀로 앉아 당신의 취한 말들을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 파괴와 세상을 향한 애정이 동심원을 이루는 무중력의 시간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당신이 퇴근 후에 혼자 술을 먹고 있다는 얘길 들으면 슬퍼지곤 했습니다. 허름한 식당에서 침울한 얼굴로 해장국에 소맥을 마시면, 옆자리에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가 말을 걸어오는 우울한 광경입니다.
우린 낯선 도시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술을 마신 적이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와인 몇 병에 과자 부스러기를 사 왔지만 술은 무섭게 동났습니다. 밖에서 감자탕에 소주를 마신 탓인지 당신은 벌써 만취해 있었어요. 당신은 그날 기분이 꽤 좋았는지 이상하게 과음을 했습니다. 그리고 취한 상태로 제게 험한 말을 쏟아냈습니다. 우선 평소에 칭찬 일색이었던 제 글에 악담을 늘어놓았죠. 내가 같은 궤도를 빙빙 돌며 글을 쓴다고 말했습니다. 언어 사용에 부주의하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건 당시 원고를 다듬으며 심각하게 고심하던 바와 맞물리면서 절 심하게 자극했습니다. 당신은 술에 취하면 솔직해지고, 거짓 없는 말을 뱉는다는 걸 알기에 그 말은 절 관통했습니다. 토라져서 이런저런 언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당신은 희한하게 밝은 얼굴로 혼자 자작을 하며 창가를 서성였습니다. 등을 보이며 남은 한 방울까지 다 마셨습니다.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당신의 말에 싹이 돋아나서 더 선연하게 들립니다. 요즘도 그게 남아서 동어반복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 기를 쓰고 단어를 고르면서 글을 씁니다.
얼마 전 당신은 한 동창 친구와 술을 마셨습니다. 당신 전화에 전 그 자리로 불려 나갔잖아요. 전 전날 과음을 해서인지 그 자리에서 조금만 마시고 일어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오래 앉아 있게 되었죠. 아니 당신이 집에 가기 싫어하는 것 같아서 꾹 참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멈추지 않고 마셨고, 늘 그랬듯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그날은 유독 더 흐트러졌습니다. 전 표정이 굳어가는 걸 숨기지 못했습니다. 술은 남녀 간의 성적 긴장감을 전제로 하잖아요. 건너편에 앉은 남자는 절 경계했고, 우린 술집을 나와 설왕설래를 했습니다. 그 남자 표정을 당신이 봤어야 했습니다. 택시를 탄 당신은 방금 겨우 돌려보낸 녀석과 통화를 했습니다. 전 역겨운 생각과 함께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었죠. 아마 그때부터 당신이 연락이 안 되면 초조해지고 계속 전화를 걸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과 술을 마시던 그 친구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자기 평생에 술자리에서 결코 먼저 일어나자고 말을 하는 걸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모르는 당신 얘기를 듣는 게 거북했습니다.
제 기억 속의 당신은 그렇게 부서질 듯 처연합니다. 물론 밝고 정겨운 모습이 더 잦았지만, 기억에 각인된 건 이상하게 그렇게 초췌한 모습뿐입니다. 밝은 웃음 안에 베어지는 슬픔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제가 줄곧 당신을 위태롭게 바라보며 만나왔다는 걸 느끼는 요즘입니다. 제 가지런한 일상에 당신이 들어와서 휘저어 놓았기에 쉬이 잠잠해지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만날 때마다 전 제가 망가질까 봐 두려웠고, 또 마음 한편에서는 당신이 없다면 얼마나 지루할까 생각했습니다. 또 당신에게 술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고민과 근심이 가득한 일과를 끝내고 한 잔의 쾌감으로 이 밤을 지새울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게 아닌가 상상했습니다. 저처럼 술맛을 모르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신을 섬기고자 일요일 새벽부터 벙벙한 상태로 기도문을 외는 것보다는 주정뱅이가 더 당신다운 게 아닐까요. 저처럼 감상적인 글을 쓰고 득의양양한 것보다는 그게 더 속 시원한 구원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잔에 가득 담긴 백포도주의 청량함을 느끼는 당신을 떠올리곤 합니다. 당신이 생을 향한 갈증을 풀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한때 술을 꽤 마셨던 적도 있었습니다. 불안을 삭히는 법을 몰라서 아예 망각을 택한 시기였습니다. 술이 가진 파괴력으로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게 좋았습니다. 잔뜩 취해 들어와서는 씻지도 않고 침대에서 자는 걸 즐겼습니다. 외로움을 이기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써 술이 꽤 효과적이라는 걸 알아 챈 것입니다. 목청껏 '키아'라고 외치며 찜찜한 기분을 떨쳐내는 맛은 떨치기 힘든 즐거움이었습니다. 지금은 의도적으로 술을 멀리하는데, 아침에 맞이할 씁쓸한 기분이 두려워서 그렇습니다. 그냥 글이나 쓰는 게 저 다운 속풀이인 것 같습니다. 그래요, 결국 다시 제자리라는 말입니다. 새카만 앙금이 공책에 빽빽하게 남아있지만 그런대로 볼만 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