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 <사이드웨이>
난 아파트를 오를 때 복도 가득 풍기는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냄새를 맡으면 몸서리치지만, 막상 집에 들어와서는 스팸을 굽고 햇반에 플라스틱 통에 담긴 비비고 김치랑 밥을 먹는다. 가끔 집에서 끼니를 챙겨 먹지만 한 번도 내가 요리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식탁의 역사를 표방한 <포크를 생각하다>를 읽고 내가 주방을 둘러싼 역사에 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하다는 걸 깨달았다. 니콜라스 쿠르티는 <부엌의 물리학자>라는 책에 "우리가 금성의 대기 온도를 측정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러면서도 수플레의 속 사정은 잘 모른다는 것은 우리 문명의 슬픈 초상입니다."라고 했다던데, 난 수플레는커녕 멸치볶음이 상했는지에도 영 관심을 가질 않는다. 그러니 주방에서 어떤 식문화와 요리 도구가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할 리 없고, <포크를 생각하다>라는 책을 보고도 큰 감흥은 없었다.
내가 기껏 가장 신경 써서 하는 요리가 있다면, 질 좋은 소고기를 사서 양파 마늘과 함께 구워 먹는 1차원적인 구이요리다. 사실 이건 단백질 보충에 더 가깝다. 매일 사료만 먹을 수 없으니 양질의 단백질로 몸을 키우는 거다. <포크를 생각하다>엔 굽기와 팬의 역사도 나오는데, 나는 커피에서나 로스팅이라는 말을 쓸 줄 알았지 음식을 타오르는 불에 그냥 굽는 걸 로스팅이라고 하는 줄은 몰랐다. 불과 음식 사이에 팬이 놓이면서 식문화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는 걸 이 책이 하도 강조해서 알았다. 내가 비싼 돈 주고 산 고기를 꼬챙이에 끼워서 바로 굽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테팔 프라이팬에 올려놓는 것도 다 문화와 관련된 얘기라니. 요리도 결국 기술의 발전과 맥을 같이한다는 걸 의미한다. 어디 술자리에 가서 써먹기에 꽤 괜찮은 얘깃거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주방에서 그래도 신경을 쓰는 도구가 있다면 프라이팬이다. 엄마가 내게 선물로 준 테팔 프라이팬으로 나는 고기는 물론 달걀 요리, 라면과 햇반까지 해 먹는다. 난 도구 욕심이 없고, 최대한 한 가지 도구로 많은 걸 하길 바라는데 테팔 프라이팬의 들러붙지 않고 금세 달궈지는 속성이 내 삶의 질을 바꿔놨다. 마치 중국 요리사가 쓰는 웍처럼 내 테팔도 재료와 요리를 넘나들며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뛴다. 그건 내가 맛있다고 느끼는 기준이 무척 낮은 탓도 있지만, 달궈진 프라이팬에 담긴 음식이 맛이 없을 리 없다는 것도 한몫한다. 아니면 말 그대로 난 늘 허기져서 요리에 격식이나 장식을 차리기 전에 먹어치워 버린다. 그러니까 난 익히기만 하면 그릇도 쓰지 않고 프라이팬에 담긴 요리에 손을 댄다. 야만스러워 보여도 설거지도 줄고, 우선 그릇을 살 필요가 없으니 나 같은 미니멀리스트를 위한 방식에 적합하다.
난 태어나서 한 번도 레시피라는 걸 찾아본 적이 없다. 얼마 전에는 커피 드립 서버로 라면 물을 정확히 맞춰서 끓여보니 내가 평소 먹던 것보다 훨씬 싱거웠다. 세상의 모든 김밥 천국도 다들 레시피대로 만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난 볶음밥을 하건, 파스타를 만들건, 고기를 굽건 절대 레시피를 보지 않는다. 내가 가진 무식한 선입관은 레시피라는 건 첨가에 첨가할 뿐이라서 식자재 본연의 맛을 가공하는 데 주력한다. 그래서 조미료를 더 치고 양념이 독해져서 칼로리만 높일 뿐, 노력을 들인 만큼 결과를 뽑지 못한다. 이실직고하면 나는 내가 맛있게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다. 빠른 체념은 시간 낭비를 막는 지름길이다. 예를 들면 나는 고기를 구울 때 생짜배기 프라이팬을 달군 후 그냥 굽는다. 들러붙으면 불을 줄이고, 조금 핏기가 사라지면 날름 먹어버린다. 그게 내 방식이다.
집에 냉장고가 있어도 식자재를 넣는 경우는 없다. 난 치킨을 남겨도 몇 시간 정도 뒀다 다 먹어버리기에 남은 음식도 없다. 냉장고엔 한 달 보관이 가능한 달걀과 플라스틱 통에 든 비비고 김치(모든 느끼한 음식을 위한 희석제), 가끔 친구나 여자가 집에 오면 먹을 와인 한 병과 맥주 몇 캔이 다다. 그러니 냉장고는 늘 텅 비어있고, 아침으로 먹으라고 선물 받은 아몬드 브리즈(단백질 함량이 높은 맛)가 다다. 요즘엔 건강 생각하느라고 야채나 과일, 닭가슴살 같은 걸 사뒀지만, 역시 난 남들과 다르게 회사 구내식당 밥을 삼시 세끼 맛있게도 먹는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사랑 초밥을 끊을 수가 없으니 집에서 뭔가 해먹을 일이 거의 없다. 냉장고를 열어서 나 혼자만을 위한 요리를 한다는 건 벅찬 일이다. 그가 내 집을 드나들 땐 평소 안 하던 뭔가를 하기도 했지만, 이제 그렇게 애쓰는 모습은 내게 낯설다. 그래서 내 냉장고는 작지만, 그마저도 텅 비어있는 꼴이다.
한때 유럽 귀족들의 자산 중에는 구리로 만든 갖가지 모양의 젤리 틀이 꼭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 속에서 젤리 유행 또한 사라져서, 지금은 환경을 생각하는 예쁜 분들이 개인용 텀블러 정도를 가지고 다니는 게 다다. 과거엔 고기를 썰어 먹기 위한 개인용 칼도 있었다는데, 지금은 뭔가를 먹기 위한 나만의 도구라는 건 사라졌어. 옛날에 난 플라스틱 틀에 요구르트나 주스를 부어서 냉동실에 얼려 먹길 좋아했다. 뭐든 부을만한 게 있으면 아이스크림으로 먹었다. 여름엔 특히 얼음으로 먹는 게 뭐든 맛있는 법이니까. 우리 어머니가 집 안이 찜통이어도 에어컨도 안 틀고, 아이스크림도 안 사주니 내가 생각해낸 궁여지책이었다. 요즘엔 단백질 가루를 맛있게 먹기 위해 갖가지 물통을 가지고 다닌다. 이른바 '셰이커'라고 불리는 건데, 통 안에 요철로 만든 공이 있어서 걸쭉한 단백질 가루가 잘 섞인다. 난 헬스장에 들어설 때마다 고급 단백질 셰이커를 거세게 흔들면서 나의 우람한 팔뚝을 자랑한다. 몇 킬로든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으로 늘 쇳덩이와 싸운다.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사바랭은 "그대 무엇을 먹는지 말하라, 그러면 나는 그대가 누군지 말해보겠다."라는 말을 남긴 적 있다. 이건 헬스장에서 트레이너들이 많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본래 뜻은 음식을 즐기는 걸 보면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는 말이었겠지만, 내게 있어 이 말은 체중 관리와 근력 증대에 적절한 말이다. 오늘 당신이 뭘 먹는지를 보면 당신의 체형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식습관은 그만큼 건강과 보기 좋은 몸매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아무리 운동을 해봤자 기름지고 짠 음식을 먹으면서 건강한 체형을 유지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매일 술을 마시면서 근력이 붙길 바랄 순 없으니까. 그래서 난 오늘도 달걀과 참치로 볶음밥을 만들어서 먹었다. 근 손실을 막기 위한 매 끼니의 싸움에 당신도 동참해주길 바란다.
나는 일주일에 네 번 정도는 혼자 초밥집에 가서 만 사천 원짜리 a 코스 요리를 먹는다. 광어 초밥 여섯 개, 연어 여섯 개, 새우튀김 한 개, 소우동, 쥐꼬리만큼 주는 샐러드가 나온다. 나는 내가 혼자서 밥을 먹는다는 걸 전혀 의식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회사 구내식당에선 혼자 먹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자연스럽다. 하지만 내가 혼자라는 걸 유독 의식하는 건 동네 초밥집에서다. 저녁 시간에 가면 사방에 왁자지껄 떠드는 직장인이 한가득하다. 하루의 피로를 풀려고 농담을 하고, 누구 험담을 하며 분개하며 시시껄렁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난 거기서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에어팟을 귀에 꽂고 <소프라노스> 시즌 2를 몰입해서 본다. 물론 그게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무척 외롭고, 내가 연고 없는 도시에 혼자 동떨어져 있다는 게 실감이 난다. 이래서 사람들이 결혼하나 싶다. 같이 저녁에 식사하면서 얘기를 들어주려고 가족을 만드는 건가 싶다. 그렇게 혼자서 초밥을 먹을 땐 난 내가 혼자임을 의식한다. 그래도 왓챠와 넷플릭스 덕택에 어색하지 않게 시선 둘 곳을 찾는다. 몰입하면 조급한 마음도 사라지고 초밥 하나 집어 먹고 5분 정도는 소프라노 가문의 흥망성쇠를 구경할 여유가 생겼다.
식사를 사회적인 행위로 해석하는 건 집단 문화의 산물이다. 근데 프랑스 병에 걸린 사대주의자인 나로서는 프랑스 애들이 저녁마다 두 시간씩 주변 지인을 초대해서 먹는 게 또 근사해 보인다. 나 역시 모임을 끝내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모여 즐겁게 떠들면서 먹는 걸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난 평일은 혼밥, 주말은 그래도 누군가와 먹는다는 규칙을 세워뒀다. 난 그마저도 먹을 사람이 없어 긍긍하는데, 내 가까운 지인은 친구가 많아서 평일에도 밥이다 술이다 자정 넘어까지 놀기 바쁘다. 도대체 그러면 개인적인 사색은 언제 하는지 궁금하지만, 그는 술로 망각과 쾌락을 동시에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돈은 돈대로 쓰고 미래에 대한 고민은 다시 내일로 넘겨버리는 꼴이 못내 안쓰럽다.
주말에 모임이 끝나고 종종 술을 먹는데 와인바를 많이 간다. 내가 와인이 몸에 잘 맞기도 하고, 관계를 아늑하게 하는데 꽤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큰 와인잔을 앞에 두고 빙빙 돌리면서 그럴싸한 얘기를 나누면 시공간이 애틋해진다. 거기에 외국에서나 먹었을 만한 스페인 요리라도 하나 시키면, 아 이 맛을 즐기려고 돈을 버는구나, 싶다. 돈 좀 쓰더라도 병째 사서 부족함 없이 마시고, 프랑스서 먹던 시퍼런 치즈를 씹으면 그만이다. 와인을 줄곧 마시는 영화 <사이드웨이>에는 "특별한 날에 와인을 따는 것이 아니라 그 와인을 따는 날이 특별한 날이다."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와인이 이 짧은 저녁을 시간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면 까짓 거 피노 누아 한 병 주문해! 지금도 내 냉장고에는 와인 한 병이 놓여있다. 소중한 사람이 오면 같이 마시려고. 기름지게 밖에서 먹고 한잔하러 들어와서 달콤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오늘 이 글을 쓴 이유는 내가 어떻게 먹고사는지 생각해보고 싶어서였다. 먹는 걸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매끼를 그냥 때우는 식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라면과 햇반은 인제 그만 좀 먹어야 한다. 속 버리겠어. 혼자 사는 내게 먹는다는 건 스트레스라 요즘엔 돈을 아끼지 않고 식사에 투자한다. 건강하고 안전한 음식을 사서 먹으려고 과감하게 좋은 식당에 간다. 조금 비싸더라도 초밥이나 보쌈, 닭가슴살 샐러드 같은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한다. 언제 그가 내게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난 그게 노골적인 프러포즈처럼 들려서 기쁘면서도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요리를 해주고 싶다는 건 사랑의 가장 기초적인 표현 같기도 하다. 같이 식사를 한다는 건 가장 내밀한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관계라는 걸 듯하니까. 내게 그런 마음을 줬다는 게 무척 고맙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내일 나는 평생 내게 맛있는 식사를 차려주셨던 어머니를 뵈러 간다. 아마도 조기구이와 된장찌개가 식탁에 놓을 게 뻔하다. 난 어머니의 질문 공세를 견디면서 열심히 밥그릇을 비울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혼자 산다고 끼니 거르지 마시길. 구운 달걀과 두유라도 아침에 꼭 챙겨 드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