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분자
오늘 일어난 일을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주말이라 일찍이 나서 시내를 걸었습니다. 날씨가 좋아 몸이 가뿐했죠. 새로운 도시가 궁금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전국 어디나 똑같을 거로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미세하게 다른 형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선 중심가에서 커피집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누군가가 추천해준 갈비찜 맛집에서 점심을 하고, 저녁에는 이 동네 아트하우스에 들를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누구도 만나지 않고 시내를 빠져나가고 싶었습니다. 깔끔하고 재빠르게 도시를 숭숭 지나칠 생각을 하니 신이 났습니다.
근데 모든 건 계획대로 되지가 않았습니다. 고작 하루짜리 계획인데 말이죠. 아직도 혼밥을 하면 주위 눈치를 봅니다. 가려던 커피집은 딱 봐도 인스타그램 감성이라 테이블이 너무 낮아서 책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근처 스타벅스에 둥지를 텄습니다. 점심도 갈비찜을 먹으러 식당에 가니 다 가족 단위 손님이라 혼자 4인용 테이블을 차지하기가 뭐해서 그냥 옆집 수제버거를 먹으러 갔습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연기하는 기택은 제 아들이 세운 허접한 계획을 칭송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실토하는 장면이 오버랩했습니다.
목을 좀 축일까 들른 조용한 카페에서 어제 쓰던 글을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바 형태의 테이블에 앉아서 새벽에 쓴 글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감정이 너무 도드라져서 추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조금 담백하게 다듬느라 애를 썼습니다. 들끓는 기운을 완전히 죽이진 않는 선에서 다독였습니다. 평소 단백질이 풍부한 담백한 식단을 선호하면서도 글은 왜 자꾸 기름져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한참 공들여 쓴 글이 칼로리만 높고 영양소는 형편없는 까르보나라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책에서 발췌한 문장을 따다가 제 방식대로 바꿔 넣고, 멋진 어휘를 몇 개 골라 토핑을 얹었습니다. 꽤 그럴싸한 로그라인도 덧붙여서 더 잘 읽히는 글이 되게끔 만들었습니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면서 퇴고는 이렇게 싫은 걸 보니 좋은 작가가 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문 카페가 크고 조용해서 좋았는데 손님이 없어야 마땅할 만큼 커피가 비쌌습니다. 이곳도 인스타그램에 저장해뒀던 곳인데 사진보다는 분위기도 별로였습니다. 그냥 스타벅스나 갈 걸 그랬나 싶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나온 김에 댓글에서 그렇게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던 시그니처 메뉴를 시켜봤습니다. 단 음료를 마시고 책가방에서 아베 코보의 소설 <타인의 얼굴>을 꺼냈습니다. 이번 주에 다 읽고 서평도 써야 하는 책이라 마음이 급했습니다. 근데 오늘처럼 화창한 날에 읽기엔 너무 침울한 내용이라서 도통 기분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꾹 참고 한쪽 다리를 꼰 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책장을 넘겼습니다. 개폼을 잡으면 책이 더 잘 읽히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요. 누누이 말했지만, 독서는 제게 허영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이동진 작가는 욕조에 누워 7시간 내리 독서를 한다는데, 전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집중이 잘되는 사람입니다. 제가 책 읽는 모습을 누군가 지켜본다는 느낌만으로도 얻어지는 고양감이 있습니다. 믿음직스러운 표지를 가진 책을 보란 듯이 쳐들고 허영을 뿜어내는 모습이지만 그런대로 봐줄 만합니다.
일본 작가 아베 코보는 위키피디아로 검색해 보니 재밌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생전에 의학을 전공하고 철학에 심취한 데다 사진까지 잘 찍었는데 결국 소설가가 되었다는 소개 문구가 독특했습니다. 첨단 기술에도 밝아서 일본에서 처음으로 워드프로세서를 써서 글을 쓴 작가라고 하더라고요. 거기에 연극 연출가에 시인 노릇도 했다니 참 호기심 넘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멋진 건 혼자 다 하는 스타일 있잖아요. 사진을 보면 생긴 건 야쿠자인데 미시마 유키오랑 일본 전후 문학의 기수로서 일본 문학계의 전설로 남았다고 합니다. 역시 작가는 신비주의 노선이 통하나 봅니다. 아베 코보를 구글로 검색해보면 그의 사진을 볼 수 있는데 죄다 흑백에다가 고개를 반쯤 숙이고 찍은 게 대부분입니다. 일본의 카프카라는 멋진 별명도 있고, 그의 작품 <모래의 여자>는 내가 아는 몇몇 사람이 인생 소설로 부를 만큼 열혈 팬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아베 코보는 뭔가 사유하는 고독한 작가의 분위기를 풍기는 탓에 카페에서 고독을 씹어먹으면서 커피를 즐기는 나 같은 독자에게 꽤 어필할만한 스타일이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유머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골목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역 앞 교보문고에 들러서 베스트셀러 순위를 살피고, 손님이 휑한 문학 코너도 들렀습니다. 다들 어떤 번뜩이는 수단으로 독서를 하는 걸까요. 요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어떤 목적 위주의 실용적인 독서가 대세가 된 것 같습니다. 돈 좀 벌고, 처세를 잘해서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려면 성공한 사람들의 요령이 궁금하기도 할 겁니다. 진짜 폼나는 걸 하려는 사람은 책과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윤택한 삶이라면 책을 붙들기보단 지금이라도 당장 실전으로 뛰어드는 게 확실히 나을 것입니다. 책은 저같이 실속 없는 사람이 지적 허영을 채우려고 읽는 데 불과합니다. 서른을 훌쩍 넘겨서도 소설을 읽으며 감격에 젖는 한량을 위한 취미로 적합하죠. 저는 폼나고 싶어서 독서를 한 터라 책을 옆구리에 끼고 카페를 들락거리는 게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제가 자기 계발서를 신뢰하지 않는 건 마치 인생에 무슨 비밀이라도 있다는 냥 과장하기 때문입니다. 모두 그렇진 않지만, 책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식의 말투는 우습게 느껴집니다. 마치 허무맹랑한 점괘처럼 삶이 벌써 다 정해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사는 게 복잡하다고 책 한 권에서 그럴싸한 답을 찾으려는 건 게으른 태도입니다.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어려움을 책이 해결해준답시고 만 오천 원에 내놓는 출판사의 장삿속도 눈뜨고 보기 어렵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에 아무리 밑줄을 그어봤자 그게 삶을 뒤바꿀 리 없고, 탁자에 앉아서 메모장을 꽉꽉 채울 만큼 청사진을 그려봐도 현실과는 먼 얘기입니다. 제게 독서는 그냥 여가생활에 불과합니다. 직접 경험해볼 수 없는 걸 책으로라도 읽으면서 호기심을 채우는 놀거리입니다. 허랑방탕한 짓을 하기엔 늙었으니 픽션을 보면서 킥킥대는 맛이 있는 겁니다.
몰스킨 노트에 다음 주 계획을 세웠습니다. 늘 해야 할 게 많은데 간신히 버티는 식으로 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늘 무사히 지나갈 수 있으면 다 내일로 미루고, 못 버틸 것 같으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대충 해치울 수 있는지 간을 보며 살고 있습니다. 근데 그게 다 독서나 글쓰기에 시간을 내려고 대충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게 문학에 몰두할 수 있는 틈새를 찾기 위해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는 전 주객전도를 넘어서서 제 정체성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제가 어디에 가까운 사람인지 명확하게 알지만, 용기가 없어서 주와 객을 헷갈리고 있다는 말이 정확합니다. 직장인과 작가 사이를 오가며 뭐가 제 본업이 될지 가늠하고 있습니다. 둘다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힘을 양분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세상엔 읽을 책과 쓸 글이 너무 많거든요.
작년 이맘때쯤에는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봤습니다. 대만 뉴웨이브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찼던 저는 그 정적이고 고단한 연출 방식이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장장 4시간의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였는데 길어서 중간에 끊어서 보기도 했습니다. 관객들은 상영 도중에 인터미션이라도 된 것처럼 우르르 일어나서 이게 그렇게 유명한 영화가 맞는 거나며 의구심 어린 표정으로 화장실로 갔습니다. 마치 훈련을 나가기 전에 위장 크림을 찍어 바르는 얼굴처럼 심란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본 에드워드 양의 대표작 <공포분자>는 예상과 다르지 않았지만 역시 이번에도 힘든 관람이었습니다.
어두운 타이베이 시가지로 시작된 영화는 노을이 드리울 즈음에 일어난 총성, 예기치 않은 곳에 닿은 장난 전화, 직장에서의 성공을 위해 모든 걸 잃은 남자, 누구도 읽어주지 않는 소설을 쓰는 작가, 세상을 진지하게 살 줄 모르는 아이, 사진으로 모든 걸 남기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찾지 못하는 소년을 엇갈리며 비춥니다. 전 요즘 우리 사는 모습과 다르지 않은 그들의 옷차림, 제가 하는 고민과 정확히 맞닿아있는 이야기에 넋을 놓고 보다가 나왔습니다. 영화관을 나서며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이 절 알아주지 않고, 사회에서도 보잘것없어도 제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외로움도 그럭저럭 버틸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도시의 적적한 기운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으니 혼자 죽는소리하는 짓은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늘 허공에 뱉는 기분이 드는 제 글도 누군가가 읽어주고 거기에 말을 보태준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도 없을 것입니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 오늘 쓰던 글을 고치다가 누웠습니다.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팀 아이텔의 그림을 구경했습니다. 그 작은 화면으로도 충분히 즐길만했습니다. 제가 처음 팀 아이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다 신형철 작가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그의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 표지에서 팀 아이텔의 그림을 봤고, 이후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으며 본격적으로 팀 아이텔을 찾아보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한 미술관에서 그의 단독 전시를 관람하고, 이후로도 그의 SNS 계정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구경했습니다. 이후에도 팀 아이텔의 그림들을 표지로 쓴 황현산 선생님의 책을 서점에서 들고 왔습니다. 황현산 평론가의 <밤이 선생이다>의 표지 속 민머리 노인의 뒷모습은 선생님을 기억하는 하나의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 다 제가 내가 좋아하는 문학평론가라서 그런지 팀 아이텔의 작품을 향한 애정이 더 커졌습니다. 이때부터 팀 아이텔의 그림이 그려진 책의 표지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종이책을 구매하는 의미에는 책 표지에 그려진 작품 하나를 산다는 느낌도 함께 있습니다. 제임스 설터의 작품에 들어가는 던컨 한나의 작품이라든지 줌파 라히리의 소설의 표지를 장식한 에이미 베넷의 그림은 한 작가의 정체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정경이 되었습니다.
팀 아이텔은 누군가의 뒷모습을 그려내서 좋아합니다. 큰 여백과 반쯤 가려진 얼굴 그리고 대부분 혼자인 인물이 어우러져서 쓸쓸한 기운을 자아냅니다. 발걸음을 옮겨도 자꾸 생각이 나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팀 아이텔의 그림을 찬찬히 보면서 저는 매일 빽빽하게 글을 쓰면서도 그림 속에서는 고요한 여백을 찾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비움'이 제겐 문학과 가까워 보였고, 제 일상과는 너무 멀어서 슬펐습니다. 저는 그래서 요즘도 구글에서 고화질로 그의 그림을 보면서 쉬어가곤 합니다. 이왕이면 유럽의 미술관을 로드뷰로 검색해서 그 공간의 분위기까지 엿보려고 합니다. 당신의 주말은 어땠나요. 당신도 참 좋아했던 작가였잖아요. 이번 주말도 기분 좋게 놀았나요. 한 바닷가에서 포즈를 취한 당신 사진을 한 번 띄워봤습니다. 당신의 사진은 로드뷰보다는 흐리지만 제가 떠올린 당신은 고해상도에 또렷한 색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음에도 베어지는 기쁨이 눈에 다 들어왔습니다. 전 당신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하고 기꺼이 듣고 싶지만 사진을 보고 추측하는 것으로 줄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