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제 손흥민 선수가 골 넣은 장면을 몇 번씩 돌려봤습니다. 새벽까지 졸린 눈을 비비면서 본 터라 피곤했음에도 복권이라도 당첨된 사람처럼 실실거리면서 출근 준비를 했죠. 웃으며 출근하니 아침 커피도 맛있고 지루한 회의도 금세 잘 풀렸습니다. 말 그대로 손 선수 덕분에 종일 행복했어요. 손 선수는 복도 많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나이부터 유럽 생활을 하며 겪은 고생담이야 다큐멘터리를 여러 번 봐서 잘 알고 있지만, 잘생긴 외모에 서글서글한 성격 하며 동료들에게 사랑을 받는 센스 넘치는 말솜씨까지 보고 있노라면 저건 다 조상님 은덕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손흥민 선수의 영향으로 오늘 헬스장 가는 길도 가뿐했습니다. 헬스장 문을 열어젖히자 가슴이 벅차올랐죠. 월요일은 가슴 운동하는 날이라 우선 벤치프레스 기구로 향했습니다. 주말에 잔뜩 먹어서 가슴이 쪼그라든 기분에 계속 전전긍긍했거든요. 한두 세트 반복할수록 몸에서 불끈불끈 힘이 솟았고 흉부가 단단해지는 기분이 왠지 모르게 일주일을 살아낼 힘을 얻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뭐에 들렸는지 기존 루틴보다 10킬로는 넘게 들 수 있었습니다. 역시 손흥민 선수 덕분일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신나게 운동을 하던 중에 지난 초여름에 파주에 다녀온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몇 달 전 주말 이른 아침에 아버지께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진 제가 핑계를 대며 거절할까 봐 조바심을 내시면서 꼭 들어줘야 하는 부탁이라며 사실은 반강제적인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내용인즉슨 일요일 아침에 큰아버지를 따라 산소에 가서 벌초하고 오라는 겁니다. 전 무척 곤란한 척했지만, 속으론 자유로를 따라서 파주까지 드라이브하는 광경을 떠올렸습니다. 최근 유산소 운동이 부족했으니 벌초를 깔끔하게 한 후에 근사한 카페에서 글을 쓰고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껏해야 두 시간이면 족하지 않나 싶었거든요. 덤으로 큰아버지가 사주는 비싼 밥도 얻어먹을 수 있으니까 나쁠 게 없었습니다. 물론 일요일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장거리 운전을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이참에 효자 노릇 한 번 하는 기회로 삼기로 했습니다. 최근 성묘를 가지 못했던 죄스러운 마음도 떨쳐내고, 경건한 마음으로 조부모님께 절을 하고 오면 다 좋아질 것 같았습니다. 조상님 기운을 받아 기가 막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집안의 영원한 이방인 신세를 털어내고 다른 가족들한테 뻐길 수도 있었을 겁니다. 앞으로 두 달 정도는 부모님 댁에 들르지 않아도 욕을 먹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별별 계산이 다 서서 보니 벌초는 꽤 괜찮은 선택이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매일 헬스장에서 몸 만들어서 뭐 하겠어요. 조상님 은덕이라도 쌓아아 싶었던 것입니다.
전 일요일 아침부터 서둘러서 시간에 맞춰 파주 광탄에 도착했습니다. 날씨는 더웠지만 그래도 맑은 하늘을 보니 기분이 개운했습니다. 파주는 청량한 도시라서 미세먼지도 거의 없었습니다. 광탄면에는 우리 집안 조상님을 모신 야산에 산소가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갔던 장소라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특히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제 손으로 흙을 퍼내고 안장해드렸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처음 경험한 상태여서 어안이 벙벙했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도 흐르지 않던 울음이 갑자기 터져 나와서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삽질을 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산소 주위에 도로가 없어서 진창을 해치고 올라가느라 꽤 고생했었는데 요즘은 파주도 도로 정비가 다 되면서 편하게 트럭으로 산소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처음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 큰아버지가 트럭을 가져오신 걸 본 순간이었습니다. 전 왜 파주까지 오는데 트럭이 필요한지 알지 못했습니다. 평소 큰아버지가 운전하시던 승용차는 어디로 간 걸까 싶었습니다. 트렁크에 낫 두어 개랑 포댓자루 정도를 생각하고 있던 저는 트럭에 가득 실린 뗏장을 보고 사태를 파악했습니다. 전 잔디를 그렇게 대량으로 구매해서 싣고 온다는 걸 상상도 못 했던 겁니다. 그리고 옆에 놓인 정수기 물통들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습니다. 뭔가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현실을 부정하려는 이성이 몸부림치기 시작했습니다. 저 정도 잔디라면 나뿐만 아니라 형이랑 사촌까지 다 오는 게 맞는데, 라는 말을 감히 입 밖에 꺼낼 순 없었습니다. 큰아버지의 단호하고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보면서 이건 아버지가 내게 정확한 정보를 흘리지 않은 게로구나,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두 시간을 예상한 제게 여덟 시간의 작업이 주어졌습니다. 전 볼품없어진 조부모님 묘지를 일정량 파내고, 거기에 건강한 잔디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삽을 들고 땅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잔디가 잘 안착하려면 땅에서 불순물을 빼내고, 물로 축축하게 적신 후에 다지는 작업이 중요했습니다. 전 끝이 안 보이는 작업량이 믿기지 않아서 큰아버지를 빤히 쳐다봤지만,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일을 하시는 통에 엄살을 피울 수 없었습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잡아본 적 없는 삽질이 익숙해지면서 작업에 속도가 붙었습니다. 조상님 무덤 위에 올라가서 흙을 퍼낸다는 게 초현실적으로 느껴졌지만, 손주가 산소를 예쁘게 꾸미려고 애를 쓰는 것이니 어여삐 봐주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삼두근과 전완근, 광배와 척주 기립근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와 형은 저만 파주 땅에 보내고 얼마나 안도했을까 분했습니다. 전 툴툴거리면서도 삽과 물아일체가 되어 미친 사람처럼 잔디를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심고 두드리고 물을 실어 와서 뿌리는 작업을 수십 번 반복하고 나서야 겨우 끝이 보였습니다. 목 뒤가 까맣게 탔고, 혼자만 벙거지를 쓰고 온 큰아버지가 얄미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 흰 피부가 꺼멓게 탔고, 신고 온 나이키 운동화랑 아디다스 운동복도 모두 흙구덩이에 처박은 것처럼 엉망이 됐습니다.
작업을 마치기 전에 잠깐 쉬는데 큰아버지가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제가 대견하고 기특하셨는지 이런저런 농담을 하셨습니다. 사실 큰아버지와는 길게 대화를 해본 적도 없고, 친하지도 않아서 어색했지만, 같이 흙밭을 구른 정이 생겼습니다. 큰아버지가 갑자기 산소를 대대적으로 정비하시는 덴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식 된 도리로서 산소를 손보는 건 자연스럽지만, 그렇다고 잔디까지 새로 심고 흙까지 파낼 정도로 망가진 상태는 아니었거든요. 이유인즉슨 큰아버지가 최근 사업에 부침이 있고, 여러 가지로 실타래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셨어요. 그게 곤혹스럽고 낭패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일이 계속 발생해서 지친 상태셨습니다. 근데 큰아버지가 얼마 전부터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겁니다. 꿈에서 큰아버지는 명절에 산소에서 평소처럼 제사를 지내고 계셨답니다. 근데 이상한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저 밑에 쪽 산 중턱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앉아 계시더래요. 큰아버지는 산소에 누워있지 않고 밖에 나오신 아버지를 보고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멀쩡한 무덤을 두고 밖에 계신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큰아버지는 꿈속에서 그게 그렇게 슬프고 희한한 노릇이라 애타게 할아버지를 부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고개를 돌린 할아버지는 미동도 없이 뒷모습만 보이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만 계시더래요. 그게 너무 불편해 보이고, 심기가 언짢으신 거 같아서 큰아버지는 놀라며 잠을 깨셨습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큰아버지는 이후로도 산소에 관한 꿈을 자주 반복해서 꾸셨습니다. 그리고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뒷모습을 보이며 허공만 보시던 할아버지가 떠오르셨대요. 그런 꿈을 연거푸 꾸고 나니 산소를 찾지 않을 도리가 없어진 겁니다.
그렇게 그날도 흉흉한 꿈을 꾸고 홀로 산소를 찾은 큰아버지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꿈속에서 할아버지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계시던 산 중턱 지점이 실제로 움푹 패어 있었던 겁니다. 큰아버지는 그게 너무 이상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수소문했지만 누가 야산을 올라가는 걸 본 사람은 없었답니다. 이상함을 느낀 큰아버지는 산소를 다시 둘러보셨어요. 근데 산소를 감싸던 풀들도 점차 죽어가는 게 보였고, 산소에 덮인 흙도 버석거리는 게 눈에 들어온 겁니다. 큰아버지는 자신이 산소를 돌보지 않아서 자신에게 계속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런 확신이 드니 더는 산소 정비하는 일을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산소에 눕질 못하시는데 어떻게 맘 편히 살 수 있겠어요. 그래서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손주인 제가 함께 삽질을 하러 파주로 떠난 겁니다. 영문도 모르고 유유자적 자유로를 달려온 저는 불평불만을 갖고 일했지만, 결국 멋들어진 산소를 할아버지에게 선물해 드릴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산소에서 파낸 흙을 포댓자루에 담아서, 할아버지가 불편하게 앉아 계셨던 움푹 팬 곳에 쏟아 메웠습니다. 큰아버지와 저는 한결 개운한 마음으로 큰어머니가 싸주신 제사 음식을 맛있게 먹고 하산했습니다. 그리고 근처 식당을 찾아 친척 어르신이 하는 식당에서 만둣국을 먹었습니다. 온몸이 쑤시는데 속에 맑은 국물이 들어가니 살 것 같더라고요. 정말 살 것 같았습니다.
맛있게 밥을 먹고 운전을 하고 돌아오는데, 생전 뵌 적도 없던 할아버지가 산 중턱에 불편하게 앉아 계시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눈에 선할 만큼 그 장면이 그려지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뭐라 말할 수 없이 서글픈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산소에 다녀온 게 너무 다행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땅을 파고 잔디를 심고 그곳에서 간단하게 제사를 지내는 과정이 제겐 제 나름의 상처를 치유하는 의식처럼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누울 잠자리를 봐 드리고, 움푹 패어 있던 곳을 흙을 쏟는 과정을 다 몸으로 겪어낸 거잖아요. 그 육체적인 실감이 제게 기운을 가져다 줬습니다. 물론 그날 이후로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당신이 해준 말처럼 조상님 은덕으로 여기까지 잘 버텨온 것 같습니다. 제가 당신과 우연히 모임에서 만나고, 함께 벅차오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다 조상님 덕이었을까요. 이제 올해도 추석이 다가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혼자만 고생한다고 생각했지, 제 근원이자 발원인 조상님이 있었다는 생각은 결코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최근 들어 조부모님의 인생은 어땠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들려준 얘기를 생각하면서 고단했을 두 분의 인생 곡절을 떠올려 봤습니다. 그렇게 제 이야기가 흘러서 여기에 이른 거라니, 참 유교적인 생각이지만 그들의 묫자리에서 한껏 몸을 비비고 나니 제 존재가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그리고 부모의 산소를 보존하려고 애쓰는 큰아버지의 모습에서, 그는 제가 알고 있는 마지막 고전주의자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전통이 파괴되는 가정에서 묵묵히 어떤 신성한 믿음을 고수하며 사시는 어른의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산소에 다녀온 지 며칠 후에 큰아버지가 문자로 산소의 잔디들이 푸르게 잘 자라는 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고화질로 보니 진짜 뿌듯하더라고요. 제가 애쓰고 치열하게 작업한 잔디들이 땅에 잘 붙어서 청명한 빛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름 모를 산 중턱 바위에서 멋진 한 컷을 남긴 큰아버지 사진도 받았습니다. 큰아버지께 할아버지가 꿈에 다시 나왔는지 묻진 않았지만, 보내신 메시지 안에 담긴 다정한 기운에 전 안심했습니다. 그렇게 전 당신을 잊고 조상님 은덕으로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헬스장에서 한 시간 가량 가슴 운동을 했습니다. 마치 20kg짜리 바벨봉을 조상님이 들어주시기라도 한 것처럼 가뿐했습니다. 최근 당최 느껴본 적 없는 강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이게 다 조상님 덕분입니다. 이번 명절은 저 혼자 집에서 보낼 것 같습니다. 제사도 못 지내고 조용한 동네에서 커피나 마시겠죠. 그래도 전 이상하게 마음이 좋고 편합니다. 이래서 효도하고 살아야 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