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딱 한 번 점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꽤 안 좋았거든요. 그야말로 패배감에 젖어서 지나가는 사람을 물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태였습니다. 사귀던 친구에게 차이고 직장에서는 상사에게 찍혀 난 마음 둘 곳이 없었죠.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고, 지금 돌이켜보면 제 인생 최대 암흑기였습니다. 그때 전 과도하게 운동에 몰입해서 근육통을 달고 살았고, 주말이면 정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영화관에서 두문불출했어요. 하지만 모두 헛된 시도였던지 생전 없던 위염이 생겨서 설사를 달고 살았죠. 그렇게 모든 수분을 다 빼내고 나면 정신이 쏙 빠져서는 모든 게 흐리멍덩했습니다. 그때 유일한 위안을 줬던 게 학자금 대출 상환이었어요. 세상에 남긴 내 빚을 다 지워내는 걸 사명처럼 여기고 출근을 버텨냈어요. 그렇게 대출금을 몇 달 만에 다 갚고 은행 앞에서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심호흡을 서너 번 했어요. 이제 뭘 기틀 삼아 나아가야 할지 몰랐거든요. 이제 빚이 없으니 삶에 빛 좀 내려주라 기도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은 뭐랄까, 차라리 절에 들어가서 수도승 같은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비건 식단에 차나 한잔 하고 부처께 공양을 드린 후에 책이나 읽는 삶을 바랐습니다. 그리고 글을 실컷 쓰고 싶었어요. '다 죽었어! 내가 진짜 죽여주는 거 하나 써서 나온다.' 이런 치기를 노트에 적으면서 소설 집필에 몰두하곤 했습니다. 허구의 세상에서 현실을 잊고 스펙터클 하게 다 깨부수는 이야기를 짓고 싶었습니다. 그게 내 살길처럼 느껴졌고, 아마 그때 직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웠으면 지금 빈곤하더라도 전업 작가로 살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용기 없는 저는 일요일 밤의 우울감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배짱 없는 처지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아침 회의에 기어서 들어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주말이면 동네 친구들이랑 피시방에 가서 빌런 사냥을 했습니다. 지긋지긋하고 꼴 보기 싫은 놈들이었지만 안 보면 허전한 녀석들이라 계속 붙어 있었습니다. 놈들과 저녁마다 맥주 한 잔 때리고 말도 없이 게임만 하다 헤어졌습니다. 인생의 퇴로가 안 보이던 시기에 녀석들은 그래도 제게 큰 위로가 됐습니다. 지금도 가끔 덜떨어진 목소리로 '일 킬, 이 킬' 거리면서 긴긴밤을 소모하던 시절이 그립긴 합니다. 근데 그땐 새벽에 게임을 하다 들어오는 제가 한심했습니다. 그 짓도 일 년 정도 하니 질리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집에 틀어박혀서 텔레비전만 봤습니다. 쇼 프로를 보면서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저를 보고 생전 관심도 없던 어머니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셨습니다. 젊은 놈이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뭔가 이상해 보이셨겠죠. 저는 기다렸다는 듯이 짜증스러운 말투로 그런 일 없으니까 말 시키지 말라고 버릇없이 되받았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뭔가 생각이 났는지 방에서 불상이 그려진 철학관 도사의 명함을 내미셨습니다. 요즘 특별 할인 기간이니 점을 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어요. 여기는 믿을만하고 얼마 전 취업한 우리 형도 도사의 점괘 덕택에 잘된 거라고 했습니다. 나는 형이 잘 된 꼴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불신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어머니 딴에 걱정이 되셔서 하는 말이니 그냥 듣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뭔가 안 풀릴 땐 이런 거라도 해보는 거라고 절 설득했고, 전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에 내진 않았습니다. '점괘를 보는 거랑 잘 풀린다는 게 무슨 상관이지. 사주는 정해진 거잖아. 근데 그걸 보면 대체 뭐가 달라진다는 건데. 무슨 부적이라도 사서 팬티에 넣고 다니면 인생이 나아진다는 그런 소린가. 가뜩이나 박봉인데 부적까지 사면 내 적금은 어떻게 부을 것이며, 요즘 돈 없어서 지질하게 다니는데 더 없어 보이면 여자 친구도 안 생길 거 아냐. 근데 엄마는 내가 잘 안 풀리는 건 어떻게 안 거지. 내 브런치를 염탐하나.' 그렇게 관심 없다는 표정을 하며 다시 무한도전 재방송을 봤습니다. 명함도 본체만체하고 작은 탁자에 던져뒀습니다. 근데 텔레비전을 보는데 자꾸 그 붉은색 글자가 새겨진 명함에 눈이 갔습니다. 전 생겨 먹기로 타인을 잘 믿지 않고 의심이 많은 성격인데 그땐 힘들긴 했는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했나 봅니다.
결국 제가 직접 도사님을 찾아가진 않았습니다. 전 호기심이 많은 편인데도 도통 점집에 들어갈 맘은 들지 않더라고요. 당시에 <불신지옥>이라고 역술인이 나오는 공포 영화를 본 터라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으스스한 점집이 무서웠습니다. 아마 스티븐 킹이 내한하면 한국의 점집을 방문하고 거기서 영감을 받아 구백 쪽짜리 소설을 몇 권씩 써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명리학은 저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대신 어머니가 저 대신 점을 봐주셨습니다.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를 보는 것처럼 전 어머니에게 결과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사의 진단은 제게 어느 정도 도움을 줬습니다. 어머니는 제 사주가 고민할 게 없고, 앞으로도 일사천리에 탄탄대로라고 했습니다. 전 그 양반 헛다리 짚은 거 아니냐며 의심을 했지만, 원했던 대답이라 입꼬리는 슬며시 올라갔습니다. 근데 어머니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았습니다. 제 점괘는 최상인데 우리 형 괘가 너무 안 좋다고 난리셨죠. 이기적인 저는 제 사주만 좋으면 장땡이라서 형 따위는 아랑곳없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우리 형이 언제 잘 풀린 적 있어? 엄마는 왜 유난을 떨고 그래.’ 근데 더 신기한 건 암울하기만 했던 제 인생이 사주를 본 이후로 다 잘 풀렸다는 겁니다. 기억이 만들어낸 윤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로 기분도 좋아지고 여러 가지로 운 좋은 일들이 생겼습니다. 제 사주가 원체 좋은데 그간 잘 몰라서 이 지경이었던 건가 싶을 만큼 모든 게 더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저 미지의 누군가로부터 내 삶에 일말의 희망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걸지도 모릅니다. 얼굴도 뵙지 못했지만 그 용하기로 유명한 도사님이 무척 고마웠습니다.
근데 최근에 다시 점을 볼 일이 생겼습니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서 다짜고짜 점을 봐달라고 졸랐습니다. 어디 용한 철학원 없냐고 재촉했죠. '뜬금없이 웬 점?' 어머니는 의아한 눈치였지만 안 그래도 용한 도사가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평생 점을 보러 다닌 어머니를 구박했는데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지난번에는 못 이긴 척 봤지만 이번에는 내가 스스로 요청한 거라 더 민망한 기분이었습니다. ‘저도 알죠, 어머니. 누구보다도 제가 더 황당해요. 그냥 한 번 봐주세요. 나름 지성인을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저도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건 믿지도 않는 유물론자를 자처하는 제가 점이라니 쑥스러웠습니다. 그런데도 명리의 힘이라도 빌려야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당신이랑 헤어지고 절박하고 힘들었거든요. 이러다 죽겠다 싶으니 자연스럽게 다시 어머니의 그 용하다는 역술인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변심해서 어머니의 철학관 방문을 취소시켰습니다. 제가 돈까지 부치면서 옆구리를 찔러놓고 그냥 어머니 용돈 하시라고 말렸습니다. 근심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더 우스워지고 싶지 않아서 체념하기로 했습니다. 여러 우연을 모아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걸 인생의 비밀처럼 믿는 이들을 그렇게 욕해놓고 인제 와서 요행을 바랄 순 없었습니다. 사라진 식욕처럼 이별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억지를 부리기에는 당신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연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망 없는데 목메는 제 모습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고, 제 운명을 역술인에게 맡기고 지금처럼 무너지는 감정에 이유를 달고 싶지 않았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건 그냥 그대로 재가 되는 걸 두고 보는 게 순리 같았죠. 그때부터 짐을 챙겨 들고 카페에 가서 글을 썼습니다. 당신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를 잔뜩 쓰고 집에 돌아왔죠. 전혀 나아지지 않았지만 버틸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피시방을 다니던 동네 친구들을 소환했습니다. 범계역 호프집에서 오랜만에 생맥주에 치킨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외출이 꽤 오랜만이라고 생각하며 오이도 방향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전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으로 약속 장소에 다다랐어요. 정든 시가지가 눈에 들어오자 호기로운 기분이 들었어요. 범계역에 이렇게 예쁜 애들이 많았나 싶고 당신 때문에 계속 집에만 처박혀 있었던 게 무척 억울했습니다. 그런 생각도 잠시, 딱 봐도 여자 친구가 없을 것 같은 남루한 행색을 한 친구들이 하나둘 나타났습니다. 다들 주말에 약속이 없었는지 일찍부터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녀석들은 제가 힘들 때 전화를 걸어줬는데, 그간 귀찮아서 전화를 피했던 게 생각났습니다. 전 오늘은 내가 한턱내겠다고 생각하며 맥주랑 치킨을 시켰습니다. 녀석들에게 피시방은 절대 안 간다고 선을 긋고, 말도 없이 한 마리를 해치웠습니다. 그리고 요즘 사는 얘기를 나눴어요. 얘기는 궁상맞았지만 다들 한결같이 열심히들 살고 있었습니다. 전 뭔가 힘이 나는 걸 느끼면서 요 모양 이 꼴인 내 연애도 녀석들에 비하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저는 결심했습니다. 사주팔자 따위 연연하지 말고 우선 다음 책을 빨리 쓰기로 했습니다. 당신의 코를 납작하게 할 만한 기가 막힌 책을 출간하면 모든 게 좋아질 겁니다. 미간을 잔뜩 구기고 인생의 우울함과 서글픔에 대해 실컷 써내고 나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요. 무라카미 류는 소설 <69>에서 이런 말을 남겼죠.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의 복수는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그들의 귀에 나의 즐거운 웃음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전 집에 돌아와서 소파에 누워서 공허한 마음을 문학으로 승화시키기로 다짐했습니다. 베토벤의 마지막 4중주라 불리는 14번 현악 연주곡을 들으면서 당신을 마지막으로 떠올렸습니다. 당신을 제 핏줄처럼 느꼈었는데 실은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생각을 멈추고 잠을 청하는 것뿐입니다. 더는 당신의 피드를 기다리지 않고, 프로필을 훔쳐보지도 않을 겁니다. 그저 우리가 팔자소관대로 살아가길 바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