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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Nov 01. 2020

책 서문

프롤로그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제법 숨이 가쁜 일입니다. 나만의 리듬을 지키기도 어렵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기도 쉽지 않죠. 1인분의 몫을 하고 1인분의 시간을 누리고 싶지만 이조차도 가끔 힘에 부칠 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막상 내 삶이 싫은가 자문하면 또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투스카니의 찬란한 태양 대신에 현란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도시지만 익숙하고 편안하죠. 도시엔 수많은 ‘혼자들’이 있어요.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고 삶의 기반을 잡은 그 혼자들은 마치 환경에 맞춰 생물들이 진화하듯, 고독에 적응해서 평온한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화와 책 같은 문화를 친구 삼아서 취향을 바탕으로 느슨한 연대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염려하는 만큼 불행하지도 않아 보여요. 전 그런 미묘한 ‘괜찮음’을 글에 녹여내어 불특정 다수와 공명하려고 합니다이 책을 통해 도시에서 혼자 산다는 것에 관해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이 책은 카카오 브런치에서 연재한 글들을 묶었습니다. 브런치는 제게 규칙적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줬어요. 잠들기 전에 책상에 앉아 한 시간 정도 쓰곤 하는데 그걸 습관처럼 브런치에 올렸죠. 잡념을 해소하려는 마음으로 쓴 글에 구독자가 생겼고, 어느새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의식하며 글을 쓰게 됐습니다. 매일 일기처럼 쓰는 글을 누군가 읽어준다는 게 처음엔 그렇게 신기하더라고요. 구독자를 의식하다 보면 대충 쓸 순 없게 되죠. 형체 없이 그저 수치에 불과한 독자지만 엄연히 내 글을 지켜보는 대상이 생긴 거니까요. 결정적으로 첫 책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을 출간하고, 구독자가 5,000명이 넘어가면서 추가적으로 한 권 더 쓸만한 힘을 얻었습니다. 제게 응원을 보내주시고, 출간을 물어봐주셨던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이 책에 '고독력'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거와 달리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홀로 걷는 걸 이제는 많이들 편해해요. 1997년에 개봉한 영화 <접속>을 보면 피카디리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보던 전도연이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에 급히 극장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만큼 과거엔 혼자라는 걸 유별나게 의식했던 거죠.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혼자서 화장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학생이 있을 정도였어요. 우리 사회가 혼자라는 게 뭔가 사회성이 부족하고 결격한 것으로 몰아붙였으니까요. 하지만 최근엔 문유석 작가가 『개인주의자 선언』에 쓴 것처럼 혼자라는 사실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도 괜찮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유럽식 개인주의가 한국의 도시화에 맞물리면서 빚어낸 양상이죠. 제 주변에도 관계에 복닥거리며 사는 것보다 너른 거리감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아졌어요. 가끔 술자리에서 대화를 하다 보면 혼자 사는 분들이 상당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들과 얘기해보면 각자 나름대로 혼자 살아가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결코 결혼을 못 해서, 돈이 없어서라고 말하지 않아요. 스스럼없이 자신이 독신을 택했고, 즐겁게 살고 있다고 밝힙니다. 평온이 스민 얼굴로 각자 나름대로 고독을 뽐내며 사는 걸 좋아합니다. 전 그들과 강한 유대를 느낍니다. 이 책도 그렇게 도시에서 혼자라고 느끼는 이들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전 기본적으로 영화와 책을 통해 우리 일상을 풀어내길 즐겨요. 이유는 제가 책과 영화를 평가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럴 능력도 안 되고 무엇보다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죠. 제가 영화와 책을 글로 끌어들이는 건 그저 책장을 덮은 후에 진짜 죽인다고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전 ‘오지다 쩐다 찐이다 쓰레기다 별로다 기똥차다 끝내준다’처럼 극단적인 말이 싫어요. 기본적으로 영화를 통과할 때 느끼는 풍부한 감정을 폭력적으로 요약하는 말을 불신하죠. 그건 게으른 태도니까요. 어떤 작품을 보던 감정의 부스러기를 그러모아 들여다보고 싶어요. 좋으면 좋은 대로 별로면 별로인 그 자체로 정확하게 적으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비로소 내 고유한 감각이 문장에 드러나니까요. 그렇게 늘어놓은 문장들엔 평소엔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제가 보입니다. 도시를 에워싼 무수한 사람 중 하나가 아니라, 유려하게 들판을 거니는 오롯한 저죠. 모두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저만이 가진 1인분을 드러내고 싶어요. 그건 제 글쓰기에서 참 중요한 느낌입니다. 


 결국 이 책은 ‘취향’이라는 키워드에 도달합니다. 바쁘고 먹고살기 어려워 내 취향을 포기한다면 나는 껍데기에 불과한 게 아닐까 줄곧 생각했어요. 제게 취향은 곧 존엄이고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고유한 저인 셈이죠. 유머러스하고 과장된 화법으로 글을 쓰지만 말미에는 분명히 고민하는 제가 담겨 있어요. 퇴근 후 세 시간, 일요일 오전부터 텅 빈 하루를 난 뭐로 채우고 있을까. 영리를 위한 일이 아닌 전적으로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전 이 책을 통해 취향이 일상에 스며드는 순간을 적고 싶었어요. 낭만이 사라진 삭막한 도시에서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풀어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엔 스쳐 지나가기 쉬운 것들을 기어코 붙잡으려는 문장이 빼곡합니다. 세상엔 온통 별거 아닌 것 투성인데 이 책은 거기에 일일이 시비를 걸고 있죠. 모두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에 대해 실컷 떠들다 보면 어느새 일상도 꽤 그럴싸해 보입니다. 거대한 담론과 혹독한 직장생활에 지친 분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잠시나마 어깨에 힘을 빼고 딴청을 피울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장담할 순 없는 일이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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