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반복을 겪으며 살아가나

by 박민진

이번 편지도 잘 읽었습니다. 가을 편지는 언제 읽어도 참 아늑하네요. 기회가 되면 당신 책도 사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숱한 이별을 반복하는 것에 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당신의 생각이 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종종 첫 이별을 떠올리는데, 그건 중학교 때였습니다. 당시엔 교환일기를 쓰는 게 학교에서 유행이어서 인기 많던 중근이가 몇 개의 일기장을 처리하는 게 힘들다며 거들먹거리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성 친구와 일기를 쓴다는 건 무척 긴요한 일로 보였어요. 여자애들의 로션 냄새나 짧은 치마에 민감하던 때라 그녀들의 속내를 글로 읽을 수 있다는 건 저한텐 꿈처럼 여겨졌습니다. 과연 어떤 얘기들이 적혀있을지가 무척 궁금했죠. 사실 더 궁금했던 건 여자애들끼리 나누는 대화였습니다. 그녀들이 궁금했고 그녀들과 어울리고 싶었죠. 저도 반에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지만, 일기장을 사서 내밀 정도로 용기는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저는 눈에 띄지 않는 그저 그런 애였거든요. 반에 보면 맨 뒷자리에 앉아서 이문열의 삼국지 따위나 읽으면서 시간을 축내는 이도 저도 아닌 애 있잖아요. 틈만 나면 엎드려서 자느라 수업 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나 얼굴 보기 어려운 어두컴컴한 애가 저였어요.


그때 나름 책 읽는 티를 내려고 독서 노트 같은 걸 적던 게 생각납니다. 스프링 노트에 읽은 책을 기록해두고, 별점을 매긴 후에 온갖 있어 보이는 단어로 책을 평가했죠. 헤르만 헤세에게 빠져서 잘 이해하지도 못 했던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 문고본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습니다. 공들여 읽은 책을 까먹지 싶지 않았거든요. 늦은 밤까지 침 닦아가며 읽은 책이 머릿속에서 지워질까 봐 겁이 났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왓챠피디아'나 블로그에 서평을 기록해두는 것과 비슷한데, 당시엔 펜으로 뭔가를 적고 있는 제 모습이 그냥 좋았습니다. 특히 학교 쉬는 시간에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뭔가를 적는 게, 반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었던 저를 내보이는 유일한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아무도 제가 뭘 하는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런 허영이 저를 그 먼지 나는 교실에서 버티게 했습니다.


당시에 저를 알아봐 주는 친구가 현아라는 아이였습니다. 교복 치마를 궁둥이에 딱 붙게 줄여 입고 화장까지 하고 다니던 터라 학생주임이 예의 주시하는 흔히 말하는 문제아였죠. 꽤 예쁘게 생겨서 많은 남자애가 힐끗거릴만한 친구였습니다. 당시에 건너 동네에서 전학을 왔는데, 강제로 왔다는 소문이 무성했죠. 눈에 확 띄는 외모 때문인지 반에서 좀 논다는 친구들도 현아를 경계했습니다. 뭐 어느 학교에서 남자애랑 사고를 쳤다느니, 쌈질해서 아구창을 망가뜨렸다느니 소문도 살벌했죠. 하지만 그런 소문과 달리 누구와도 허물없이 잘 지냈던 아이였습니다. 제가 학교에 다닐 당시엔 반에 무리라는 게 명확하던 시절이라 늘 어울리던 친구들과 놀지, 자신이 속한 패거리 넘어서는 말도 잘 안 걸고 그랬는데, 현아는 참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잘 놀았던 것 같습니다. 근데 전학생이 그렇게 눈에 띄면 탈이 생기기 마련이죠. 어느 날부터 학교에서 싸움 좀 하는 일진 패거리한테 맞고 돌아오는 현아를 볼 수 있었습니다. 막 전학 온 애가 나댄다고 소문이 맞고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폭력이 반복됐어요. 한 번 찍히면 무슨 사달이 날 때까지 괴롭힘이 반복되고, 현아는 굽히는 스타일도 아니어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녀석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고, 활기가 사라져서 더는 눈에 띄지 않게 되었죠. 아마 그게 녀석이 살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흔한 말로 깝죽거리지 않고 꼭꼭 숨어 있어야 괴롭힘을 피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당시엔 그런 일이 참 빈번했습니다. 저는 쿨한 척하느라 다른 애들이 뭐하건 신경 안 쓰는 척했지만, 얼굴이 벌겋게 맞고 들어온 현아는 눈여겨봤습니다. 저처럼 뒷자리에 앉아서 말이 없는 애들은 반 아이들을 관찰하길 좋아하는 애들이거든요. 안 듣는 척하면서 표정 하나 몸짓 하나까지 다 살피고 있었습니다. 현아는 그렇게 주변부로 밀려났습니다. 한 달 정도가 지나고 자리를 바꾸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현아는 제 앞자리에 앉게 됐습니다. 멀리서만 지켜보던 아이가 제 앞에 앉아 있으니 무척 긴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돌아서서 말을 걸면 뭐라고 할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1분단 창가 맨 뒤편이었는데 잠깐 정신을 놓고 창밖을 보면 혼쭐이 나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매일 아침 8시부터 기운 넘치는 아이들을 조그만 교실에 몰아넣고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가르치고 있으면 고개가 창밖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현아와 저는 그렇게 창밖을 멍하니 보다가 불려 나가 함께 혼나면서 친해졌습니다.


현아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길어졌고, 자연스럽게 우린 교환일기를 쓰는 사이가 됐습니다. 현아는 자리를 바꾼 다음 날부터 제 독서 노트에 관심을 보였는데, 그때 저는 불현듯 현아랑 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전날 문구점에서 사뒀던 스프링 노트를 내밀면서 같이 일기를 쓰자고 제의했습니다. 편지 형식의 글은 그때가 처음이었죠. 누군가에게 읽힐 생각을 하며 쓴 첫 글이기도 했습니다. 현아는 제 인생의 첫 독자였고, 제 글에 응답해준 사람이기도 해요. 그때부터 학교 가는 게 즐거워졌습니다. 진정한 교실 이데아는 연애가 시작되니 완성된 셈이죠. 방과 후에도 교환일기를 쓰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현아는 제 글을 좋아하는 척하면서 저랑 가까워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그가 소중히 여기는 데 말을 걸어주면 된다는 걸 현아는 잘 아는 애였죠. 아무 관심이 없었던 제 글과 독서에 관심을 두며 왕따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어느 여자아이도 현아랑 놀아주지 않았거든요. 왜 그런지 생각해봤더니 얄미운 면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거의 공부를 안 하는 문제아 같은데 성적은 늘 반에선 상위권이었고, 얘기할 때 느껴지는 총기가 대화에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집안 사정이 좋아서 입고 다니는 옷은 고급이었고 그런 여파로 교사들의 눈 밖에 나지도 않았습니다. 근데 지속적인 외로움은 그 총기마저 꺾어놨습니다. 일진 애들한테 찍힌 여파로 다른 애들까지 현아를 기피하면서 완전히 고립된 거죠. 그러고 보면 스스로 단독자라고 우기던 저를 꾀었으니 눈치도 있는 친구였습니다. 현아는 느닷없이 닥친 외로움을 저와 사귀면서 해소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뒷좌석에 앉아서 온갖 허세로 글을 쓰던 저라면 내밀한 속내를 고백하고, 방과 후에 같이 학교를 나설 수 있는 친구로 적절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사실 이렇게 예쁜 애가 급히 다가오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습니다. 처음 손을 잡아봤고, 늦은 밤까지 산책하며 시간이 가지 않기를 바랐어요. 하루하루가 꿈결같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얘가 없으면 살 수 없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습니다. 음습하기만 했던 하루가 달리 보였고, 암울하게만 느껴졌던 앞날도 연애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낙관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때부터 더더욱 공부를 안 했고, 그때부터 더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근처 공원에서 산책했고, 수다를 떠느라 새벽이 다 돼서 집에 가곤 했습니다.


이별은 현아네 가정 위기로 찾아왔습니다. 현아는 집안 사업이 흔들리면서 아이의 기분을 뒤숭숭하게 만들었습니다. 현아가 점점 더 집에 안 가려고 하니 새벽까지 같이 있다가 헤어지곤 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맞벌이하셔서 늦은 시간에 들어가는데 더 좋았는데 집에 갈 시간이 되면 현아의 얼굴은 어두워졌습니다. 당시 현아네 부모님의 불화에 하나뿐인 언니가 가출하면서 집안이 풍비박산 난 상태였습니다. 애가 점점 더 엇나가기 시작했어요. 우린 노래방을 갔다가 공원에서 팩 소주를 마셨는데, 저는 그걸 말리지도 못하고 취한 애를 붙들고 집까지 들여보내는 게 참 고역이었습니다. 집이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만 갈 수 있는 먼 거리라서 하루는 몰래 제 방에서 재운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나누던 교환일기에는 그런 복잡한 감정이 빼곡하게 쓰였고, 분량도 점차 길어졌습니다. 제게 참 많이 의지했는데 저는 그게 부담스러워서 싸운 적도 자주 있었습니다. 소설에서는 온갖 똥폼 잡는 인물들 얘기까지 끈덕지게 다 들어주면서, 정작 현아가 힘들어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니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제가 못나게 굴었습니다. 딴청을 피우며 모른 척하고 싶었거든요. 누군가를 위로하는 법을 모른다는 게 얼마나 한심한 일이고, 어깨를 토닥이며 할 수 있는 말이 뭔지 배우는 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현아가 대전으로 이사를 하면서 이별이 앞당겨졌습니다. 사실 그 후에도 교환일기를 쓰면서 그리움의 편지가 오갔지만,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니 점차 멀어졌습니다. 당시엔 그게 꽤 충격이었는지 심하게 어려웠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서 드디어 골치 아픈 문제에서 놓여났다는 개운함도 있었습니다. 혼자 버려진 느낌에 온갖 구슬픈 발라드를 다 들으면서도 다시 찾은 고요함에 안도했습니다.


제가 당신이 물어보는 '반복'이라는 화두에 현아 얘기를 꺼낸 건 이런 이별이 반복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모든 관계에 있어 세세한 추억이나 이별의 방식은 다 제각각이지만 현아처럼 가까워지고 현아처럼 멀어진 이별이 꽤 많이 쌓였습니다. 그건 서로의 취향에 반해서 가까워지고, 글을 쓰면서 더 농밀해지고, 거리가 멀어지면서 이별하고, 아파하면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런 패턴 안에 있는 거죠. 관계에 대해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제가 낡고 닳아버린 느낌이 들 때가 자주 있습니다. 실패가 반복되고 이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생의 다의적이고 입체적인 뭔가가 손에서 스르륵 빠져나가는 느낌에 시달립니다. 저 자신이 이제 시시해지는 기분이랄까요. 전 늘 실패하고 말 사랑을 하고, 더 나은 인간이 되지 못하면서, 이렇게 몸이 끓어오르고 외로움에 애달파서 같은 관계를 반복하나 싶습니다. 다시 고꾸라지는 연애를 하면서도 뭔가 더 나아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는 두렵지 않지만, 누군가의 이별처럼 뻔해질까 봐 힘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인생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게 허무와 권태인데, 당신이 제기한 '반복'이라는 주제는 저를 늘 옭아매고 부담을 주며 이 새벽에 머물게끔 하네요. 한 뼘도 성장하지 못했다는 건 제 착각에 불과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요즘 사랑을 배우고 갈고닦으려고 노력합니다. 학습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들끓는 제 감정을 쏟아내던 미숙한 짓은 인제 그만두고 싶습니다. 뒤틀린 격정을 마치 숭고한 감정인 양 유치하게 들이대는 짓도 더는 부끄러워서 못하겠습니다. 돌발적인 분노로 이미 떠난 이를 옭아매려 했던 미숙한 저를 돌아봅니다. 사랑만큼 좋은 게 없다는 걸 알면서 그간 너무 대충 생각하며 산 것 같습니다. 사랑에 더 애쓰다 보면 반복되는 이별에도 어느 날 마침표를 찍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어제저녁에는 페이스북에 현아의 이름을 검색해 봤습니다. 세상에 정말 수많은 '현아'들이 살더군요. 다들 웃는 얼굴인 걸 보니 당신도 아마 잘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전 대전이라는 도시로 좁혀 당신을 더 찾아볼까 하다가 그만뒀습니다. 미숙했던 그때도 틀렸지만, 과거를 그대로 두지 못하는 지금도 틀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렇게 긴 얘기를 써낼지 몰랐는데, 그래도 당신의 편지에 이렇게나마 답신을 드릴 수 있어 개운합니다. 다음에도 계절과 어울리는 편지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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