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
편지 잘 받았습니다. 근황을 물어봐 줘서 고맙네요.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한다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납니다. 답장을 빨리하지 못한 건 생각하느라 바빴습니다. 한동안 글도 안 쓰고 욕조에 누워 그간 사뒀던 책만 읽었습니다. 당신은 옷이 많은 사람입니다. 옷을 정리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니 어쩐지 반갑네요. 당신이 입던 노란색과 분홍색 옷들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전 당신의 스타일을 좋아했습니다. 과감하고 알록달록한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 센스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전 '곤도 마리에'라는 정리 컨설턴트의 책을 좋아합니다. 꽤 심취해서 그녀가 쓴 비슷한 책을 여러 권 읽었습니다. 제 생각에 정리정돈에 가장 큰 걸림돌은 옷가지와 책더미입니다. 옷은 아무리 버려도 줄지를 않거든요. 입는 건 고작 몇 벌 되지도 않는데 자꾸 미련이 남아 버리질 못합니다. '살을 좀 빼면 어울릴 것 같은데.' '이건 근사한 자리에선 입을 수 있지 않을까.' 살 땐 평생 입을 줄로만 알았던 가죽 재킷과 프랑스에서 사 온 양복바지는 선뜻 수거함에 넣기가 망설여집니다. 기억이 묻어있는 옷이 영영 사라진다는 게 섭섭한가 봅니다.
책도 물론 버리기 어렵습니다. 중고로 팔 걸 골라내려 해도 자꾸만 제자리에 그냥 꽂아둡니다. 그렇다고 다 읽을 것도 아니면서 옆에 두고 보면 그냥 좋습니다. 책이 쌓여있는 생김새도 좋고, 제목만 읽어봐도 든든합니다. 집이 좁아 책으로 인해 질식할 것만 같아도 그냥 같이 삽니다. 이제 책이 부모님 댁까지 가득 차서 감당이 안 될 정도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은 책더미 속에서 사는 게 영 못마땅하신 모양인데, 그렇다고 그걸 다 팔아버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장서가도 결국 집이 커야 하나 봅니다. 부동산이 금값보다 비싼 이 나라는 서가를 꾸밀 수 있는 것도 특권입니다.
늘 소유욕이 적다고 믿고 살았는데 장서를 향한 열망만큼은 사그라들지가 않습니다. 곤도 마리에에 의하면 설레지 않으면 버리는 게 맞다고 합니다. 근데 전 마루에 주저앉아 책 겉면만 만져봐도 기분이 좋으니 큰일입니다. 얼마 전 이동진 작가는 이만 권에 가까운 장서와 소장품을 정리한 <파이아키아>라는 작업실을 공개했습니다. 동명의 책과 유튜브 채널까지 내놓았더군요. 그를 보면서 사람 자체가 이야기로 보였습니다. 서사와 맥락 사이에서 씨실과 날실을 놓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전 핸드폰으로 온갖 지식을 찾아보지만, 구슬은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그걸 이야기로 만들지 못하니 금세 사라지고 맙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익스플레인 : 뇌를 해설하다>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암기를 할 때 어떤 규칙과 질서를 만들면 더 쉽게 외워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규칙과 질서는 세계관이 되고 자연스럽게 서사로 번지는 것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대목을 유심히 봤습니다. 플롯이 생기면 굳이 암기할 필요가 없이 저장된다는 말에 전 독서를 떠올렸습니다. 이야기에 나를 이입한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세계관을 습득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전 늘 이야기에 편재한 삶을 살려고 합니다. 채워지지 않는 지적 허영을 조금이라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읽어서 제 협소한 세상을 넓혀내야 합니다. 일류 작가가 근사하게 적은 소설을 붙들고 희희낙락하면 이야기는 금세 제 곁을 지키고 서 있습니다.
집 정리를 마치고 오랜만에 아이클라우드를 열어봤습니다. 그러다가 충동적으로 과거 사진을 거의 다 지워냈습니다. 밤만 되면 침대에 누워서 사진을 보다가 잠을 설치기를 반복하다가 오늘 큰맘 먹고 휴지통을 비웠습니다. 진즉에 그랬어야 했는데 미뤄둔 건 지긋지긋한 미련 때문입니다. 몽글몽글한 감정에 휩싸인 새벽은 고통입니다. 그러다가 수면 부족 상태로 깨면 진짜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아침에 지각할까 봐 급히 운전하면서 내가 미쳤지를 반복했습니다. 특히 메일함을 열고 당치 않은 소리를 지껄이는 게 제일 두렵습니다. 당신을 당혹하게 할 쪽지를 보낼까 봐 무섭습니다. 클라우드에 담긴 당신을 향한 편지들까지 다 지워내니 정말 속이 다 시원하네요. 과거를 꺼내 보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내처 달아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지면 피해야 합니다. 눈앞이 흐리멍덩해질 만큼 집착한다는 신호거든요.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소멸을 지켜보지 못해 종잇장을 앞에 두고 한없이 연연하게 됩니다. 당신을 마치 신처럼 떠받들고 자연, 삶, 생명에 대한 경외처럼 막연히 우러르곤 했습니다. 벗어날 길 없는 그리움에 붙잡혀서 절절맸죠. 그래도 이제 정신을 차리고 욕조에서 소설을 읽고 당신을 배수구로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이 빠지는 소리가 짜릿하기까지 합니다. 당신은 아직 바닥에 흥건하지만, 내일이면 다 마르리라 생각합니다.
요즘 감기에 취약한 시기인데, 잘 견디고 계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주변에 그렇게 당신을 걱정해주는 분이 많다는 건 축복에 가깝죠. 저도 혼자 산 지가 이제 십 년이 훌쩍 넘어서 잘 압니다. 아픈 상태로 혼자 있다는 게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모릅니다. 서글픈 것을 넘어서 위험하기도 하니 꼭 주위 친구에게 생사 확인을 부탁해둬야 합니다. 전 편두통이 잦아 타이레놀을 달고 사는데 머리를 싸매고 어둑한 침대에 혼자 누워있으면 느닷없는 불길함에 시달립니다. 며칠 전에는 새벽에 혼미한 상태로 깨서는 작년 겨울 잊어버렸던 자전거 열쇠가 생각나서 온 집안을 뒤졌습니다. 근데 또 새벽에 깨면 뜨신 커피가 당기고, 후후 불어 마시면 유치한 글이 술술 나오니까 그건 그것대로 좋습니다. 그런 하릴없는 방치 상태가 창작의 원천이 되기도 하니까 위안으로 삼습니다. 일상에 그런 틈마저 없다면 어찌 글을 쓸 수 있겠습니까.
부쩍 늙었다는 소리를 달고 삽니다. 감정적으로 식어버린 요즘 같은 상태가 노화의 증거처럼 여겨집니다. 전보다 삐딱하고 건방진 말이 자주 나옵니다. 차라리 위선을 떨며 젠체하던 때가 더 귀여웠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냥 투정 많은 노인네처럼 주위 사람에게 불평을 전이시키는 존재입니다. 요즘 그래서 소비로 제 마음을 달래려고 계속 구매 버튼을 누르고 있습니다. 공허함과 헛헛함을 위해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갑니다. 물을 빨아들이는 배수구처럼 제 돈을 세상 어딘가에 흩뿌립니다. 우는 아이 달래는 마음으로 내 월급을 기성품과 바꾸고 있습니다. 카드를 긁어도 영수증은 보지도 않고 구겨 버립니다. 어제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이승우 작가 신간을 주문하고, 아이허브에서 영양제를 잔뜩 샀답니다. 오래 살고 싶나 봐요. 요즘 책을 읽느라 글을 통 못 썼는데, 당신 덕에 이렇게 근황을 남깁니다. 다시 한번 제 근황을 궁금해해 줘서 고마워요. 새해가 되면 당신과 니가타현을 여행하고 싶었습니다. 관동과 관서를 나누는 시미즈 터널을 빠져나오는 기차를 타고 밤의 밑바닥이 드러나는 순간을 상상했었죠. 이제 올해도 생각만 하다 매조지어 가네요. 당신을 많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