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도 않고 요약본 읽고서 얘기하던 때가 있었어. 그때 좋아하던 애 앞에서 자랑이랍시고 아는 척하느라. 아마 내 독서의 발원은 허영이 분명해. 너는 그걸 거짓말이라고 쏘아붙일 테지만 요즘은 다들 안 그러나? 난 요즘도 유명하고 두꺼운 책 읽고서 독서 모임에 나가서 아는 척하는 게 좋거든. 예전처럼 요약본을 읽진 않지만 잘 이해도 못 하면서 누군가가 써놓은 글을 보면서, 아 맞아 나도 이렇게 생각했지 하면서 마치 내 의견인 양 말하는 경우도 더러 있어. 근데 요즘 따라 클래식이라 불리는 책을 기회 삼아 읽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허영은 잊고 어느새 사랑스러운 기분이 들어. 최근엔 카뮈의 몇몇 산문과 장 그르니에의 책을 읽었는데 보기 드문 기쁨이 있었어. 너도 장 그르니에 산문 좋아하잖아. 사실 네가 <섬>에 관해 물어봤을 때도 아는 척했는데, 사실 주워들은 얘기(카뮈의 섬에 관한 서문)만 알았지 잘 몰랐었거든. 몇 장 읽다가 뭐 이 아저씨는 이렇게 멋있는 척을 하냐고 집어던졌었지. 아는 척하고 싶어서 발휘한 허영이 나를 다시 장 그르니에의 문장을 붙들게 했어. 개운하고 튼튼한 기분이 들고 그래. 허영을 지적 고양감으로 승화시킨 드문 경우로 해두자.
요즘 모임에서 느끼는 건 고전 문학에 대한 경외감 같은 게 없더라고. 경외가 없으니 허영이 깃들 틈이 없지. 그래서 나 같은 허세를 지닌 이들이 적더라고. 현실에 접목하기도 어려운 고전이 무슨 도움이 되냐는 말도 들어. 사실 그 말에 근사하게 반박할 만한 말도 없어. 고전에 대한 동경이 없다는 걸 순순이 받아들이는 게 신기하지만, 사실 나조차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잘 몰라. 그냥 좋으니까 읽는다고 말할 수밖에. 고전이 아무리 좋다 한들 박상영이나 권여선의 소설만 하겠어. 그렇다고 고전을 읽어서 풀리지 않는 인생의 미스터리가 풀리겠어. 뭔가 답을 찾고 싶다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우주의 기운을 받으라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말지. 굳이 어렵고 딱딱한 고전을 찾아 읽진 않겠지. 그런데도 마음 한편에서 고전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덴 거부감을 가져. 내가 예술의 목적을 타인 지향의 인정 욕구 수단으로 여겨선가 봐. 여기에 대한 네 의견이 궁금해. 난 문학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정치와 윤리에 무관하다고 단정하는 말에 동의할 수 없어. 요즘 문학에 대한 평론 자체를 읽지 않는 분위기도 의심스러워. 더는 문학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논하지 않고, 심심풀이로 소비한다면 나는 문학에 어떤 허영을 갖지 못할 거야.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문학의 쓰임을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손사래 치고 끝날 문제는 아니겠지. 내가 처음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뭔가 뭔지도 모르는데, 거기에서 뭔가를 봤다고 말한다면 그거야말로 귀신 신나라 까먹는 소리일 거야. 그럼에도 그런 말밖에 할 수 없으니 내 말이 이렇게 길어지나 봐.
예나 지금이나 인기 있는 플롯은 전형에 가까운 인간이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얘기야. 나도 글을 쓸 때 많이 유념해. 그런 드라마는 널리고 널렸지만, 난 그런 걸 만들 수 없다는 걸 알아. 그래도 구독자를 늘리고 댓글 하나라도 달리고 싶으니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볼만한 글을 써보려고 해. 독자가 읽었을 때 편히 읽히고, 맞닥뜨렸을 때 정겨운 글이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 과거엔 반골 기질이 다분하고 매사에 불만이 가득한 글이 젊은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내 글에서 따사롭다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 요즘 베스트셀러만 보면 한숨이 나오지만, 거기에 편입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다분해. 내 내공으로는 인위적인 뭔가가 없이 글이 제대로 서지 못한다는 느낌이 드니까, 어디선가 기가 막힌 묘사를 읽으면 적어놨다가 따라 써봐. 전에는 메시지가 돌출하는 글에 대한 거부감이 컸는데, 요즘엔 마치 깔때기처럼 플롯이 한 곳으로 모이는 그런 글도 실험 삼아 써보곤 해. 늘 내가 가진 고유한 뭔가를 끄집어내려고 책상에 앉아 있으면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문체로 문장을 만드는 게 요즘 일과야. 그래도 내가 피하는 게 있다면 딱 봐서 멋있다 하는 건 잘 안 써. 내가 선호하는 건 뭔가 후지고 너절한 게 맞더라고. 남들이 잘 안 살피고 거둬들이지 않는 감정을 쓸 때 난 해방감을 느끼나 봐. 거기엔 실용적인 구석이나 감동을 줄 만한 건 없지만, 내가 미세하게나마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어. 고전을 읽을 때 그 옛날에도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사는 인간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자체로 감동을 받을 때가 있어. 지금 내 고민이 역사적으로 골치가 아프단 게 증명이 되는 기분이랄까. 금기를 넘나들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뭔가 대단한 걸 해냈다고 환희 웃다가도 뒷맛이 개운치 않은, 복잡하다는 말밖에는 쓰기가 어려운 감정이 그 옛날 책상에서도 현현했던 거니까.
매일 오후 세 시간, 그리고 주말에는 한나절 동안 책을 읽고 영화를 본 걸 글로 적곤 해. 그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라는 느낌이 들어. 내겐 장래 계획이란 게 없어. 그렇다고 어떤 불안이나 조바심이 없는 건 아냐. 나를 옥죄는 건 미래 따위가 아닌 것 같아. 그보다는 오늘 저녁 노트북을 폈을 때 아무것도 할 말이 없다는 게 더 큰 공포야. 그런 순간이 닥치지 않도록 읽고 생각하는 데 공을 들여. 머릿속에서 아둔하게 흘러가는 똥 덩어리를 게워내고, 정교하게 현상을 뚫고 나가는 감각을 그러모아. 책을 많이 읽을 순 없어도 여러 권을 돌려 읽으면서 혼미한 마음을 가라앉혀. 책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어.
오늘 긴 사각형 모양의 동네를 거닐었어. 주위에서는 연인들이 서로 부드럽게 속삭이며 지나쳤어. 눈에 익은 얼굴들이야. 나는 그들을 전혀 모르고, 앞으로 알 리 없지만 어떤 친밀함을 느껴. 오늘 날씨가 맑고 서늘해서 자꾸 하늘을 봤고, 솟아오른 건물들이 어우러진 정취를 느꼈어. 주류에 편입되기 위한 승부에서 탈락했다는 의식에 겁을 집어먹었던 때를 생각났어. 요즘 네가 불안에 젖는 그런 느낌과 비슷하다고 하면 이해하려나. 사회의 구심점에서 멀어졌다는 기분에 울컥해서 밤거리를 배회하던 시기. 요즘엔 그런 걱정 없이 문학을 읽는다는데 벅찬 기쁨을 느껴. 속 편한 고민을 하면서 유유자적 살고 있다는 데 죄의식이 들면서도, 이렇게 살길 오래전부터 바라 왔다는 걸 알고 있어. 그래서 오늘도 네가 해준 말들을 생각했어. 우리가 나눴던 대화가 계속 생각났어. 난 네가 따지듯 했던 말에 다른 답안을 적어보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걸 알았어. 내가 납득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 말이야. 의심할 게 없이 뭔가가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따랐던 내 생각을 떠올렸어. 한참을 적다 다 지웠고, 다시 문장을 되살려서 비문을 골라냈어. 이렇게 지워낼 건 아니라고 느껴지더라고. 오늘 산책은 동네를 더 길게 돈 기분이야. 무엇 하나 녹록지가 않지만 난 업로드 버튼을 눌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