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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Nov 19. 2016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성곡미술관 '비비안 마이어'전

우연찮게 성곡미술관에 다녀왔다. 경희궁길 주변을 자주 걸어 다니면서도 성곡미술관은 처음이었다. 서울 역사박물관과 이어진 경희궁은 늘 텅텅 비어있어 산책하기에 좋다. 예술영화관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영화를 보고 커피 한 잔을 들고 그 옆 인디스페이스를 지나가면 아무도 관심 없는 현재 상영 중인 독립영화 포스터를 구경한다. 경희궁길 골목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무한리필 돈까스 백반집이 있고, 좁은 골목길엔 사이사이 출판사와 신문사들이 가득하다. 미술관은 그 골목길의 끝부분에 위치한다. 작은 골목길엔 어마무시한 가격의 커피집이 가득하지만, 성곡미술관 만큼은 남루하고 초로한 모습으로 조용히 서 있다. 근처 대림미술관이 알 수 없는 서촌 관광열풍에 휩쓸려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걸 생각해보면 성곡은 잘 버텨준 셈이다.

미술관 내 야외조각공원이 꽤나 크다. 걷기를 독려하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 서서히 둘러보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데 대형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헐렁한 셔츠에 무표정을 한 '비비안 마이어'정사각형 프레임 속 그녀는 이 모든 게 싫다는 듯 시큰둥함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다. 늘 옆에 두고 있던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듯 우리는 공간에 숨겨진 이면을 알아채지 못한 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곡미술관은 내게 문득 그런 장소로 보였다. 그 평범한 외관과 무미한 체취에 눈길을 끌지 못했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자신이 가진 내력을 알아봐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미술관을 가기 몇주 전 '비비안 마미어'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다큐였는데 사실 끝까지 다보지 못했다. 그녀는 흥미로웠지만 다큐멘터리는 그 흥미를 앉고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저 그녀가 죽어있던 50년간 변해버린 세상을 완곡하게 원망하고 있었다. 죽었는데 지금에 와서 호들갑떨어 뭐해 그런 생각만 들었다. 비비안 마이어는 그 이름만큼이나 평범한 외모를 지녔고, 그녀의 사진들은 일상을 찍어낸 사진답게 평온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사진을 굳이 시간 내 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사진매체를 신뢰하지 못하는 난 그녀의 사진이 한낱 블로거의 솜씨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았따. 전문가들의 호들갑은 주목받지 못한 예술가를 향한 동정의 눈길로 느껴졌고, 거기엔 꼭 감성팔이의 싸구려 상술이 있을 뿐이다. 

사진전 제목은 <비비안 마이어 x 게리 위노그랜드>다. 게리 위노그랜드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본 작가다. 개인적으로 사람을 찍은 사진들을 좋아하는데, 두 사람은 사람의 얼굴과 제스처를 공들여 찍는 유사점이 있어 보였다. 비비안 마이어가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풍기는 냄새에서 시대를 읽는 작가라면, 위노그랜드는 여성의 성적인 매력이 드러나는 사진들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모든 눈길이 <비비안 마이어, 내니의 비밀>로 쏠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난 그녀의 이야기를 알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뻔한 가치에 몸을 맡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녀가 찍은 도시의 사람들은 그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있어 마치 종로 거리를 같이걷는 기분이었다. 그 큰 사진기를 들고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면서도 어떻게 저런 가식이 없는 표정을 뽑아낼 수 있었는지 신기했다. 비비안 마미어는 차림에서 보듯 가난한 여자였고, 직업은 유모, 가정부, 공장노동자 등 대우받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퇴근 후 남는 시간엔 뉴욕 거리를 쏘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한동안 시카고에도 거주했으며 8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다니며 찍은 사진들도 방대한 양이 전시되어 있었다. 영화와 인터넷을 보던 것과 다르게 그녀가 찍은 사진들은 그 하나하나에 거대한 생명력을 움켜잡은듯 꿈틀거리는 매력이 있다. 도시가 드러내는 사람들의 고된 마음과 들뜬 기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생명력이다. 

비비안 마이어는 평생 자신의 사진을 그 누군가에게도 팔거나 전시한 적이 없었다. 이는 전적으로 그녀가 사진을 즐기고, 그것을 소유함으로서 얻는 무언가가 있다는 방증이다. 존 말루프 감독이 그녀의 사진을 구입해 인터넷과 전세계 사진전, 영화를 통해 그녀를 드러내놓은 것은 합당한 권리지만, 과연 그녀가 자신이 만 천하에 드러나길 원했을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가족도 집도 그 흔한 인연도 없었던 그녀는 홀로 도시에 숨어 사람들을 찍으며 자신의 깨어있음을 실감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과거를 지우기 위해 늘 이상한 말투로 대답하고, 끈임 없이 자신의 이름을 바꿔 부르며 도시에서 은둔하길 원했던 그녀는 흥미롭지만 더 알고싶지는 않은 그런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난 그녀의 과거를 추적하는 영화엔 거부감이 들었고, 그녀의 사진을 마주하고 그 냄새를 맡은 후에야 그녀를 보았다고 적었다. 그녀가 주로 찍은 뉴욕 거리는 늘 분주한 인간들로 가득했고, 비비안은 그 언저리에 앉아 셔터를 바삐 눌러댔다.

재밌는 점은 그녀는 자신을 직접 찍는 것보다 그림자나 거울 속 모습을 찍은 간접적인 자화상을 꽤 많이 남겼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거기 없었지만, 늘 다른 이들의 얼굴을 통해 자신이 거기에 있기도 했었다는 마음일까. 잘 찾아보면 스쳐 지나갔던 흔적을 잡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신호일까. 일종의 유머러스한 장난으로 보이기도 하고, 의식의 통로라는 의미심장한 용어를 남발하게 하는 흥미로운 사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늘 집에만 보관했던 그녀의 사진들을 이렇게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녀는 노년에 이르러 빚 독촉에 시달리다 못해 이 사진들을 헐값에 팔아치웠는데, 결국 이 사진들은 떠돌아다니다 2007년 시카고 역사에 대한 책을 쓰던 존 말루프의 손에 들어간다. 우연히 동네 경매장에서 15만장의 네거티브필름이 담겨 있는 박스를 구입한 것이다. 이 사진은 평범한 이들이 그 가치를 인정해주고, 인터넷을 통해 유명세를 탔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점이 있다. 세상이 이 드라마에 열광할 수 있는 지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흥미롭고 슬픈 마음이 동시에 드는 건 평생 상업적으로 사진을 이용하지 않았던 그녀의 사진들이 이제 돈다발이 아른거리는 진흙탕 소송으로 비화되었다는 점이다. 그녀의 사진의 권리를 사들인 역사학자 존 말루프는 돈방석에 앉았다. 그녀를 향한 세상의 구애를 뛰어난 사업 감각으로 치환했다. 그녀의 사진집과 그녀의 인생을 담은 책, 영화는 세계적인 히트작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한국역시 사진기가 보편화되면서 전 국민이 사진작가인 시대가 오면서 그녀는 소리 소문 없이 인구를 통해 화자 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녀의 권리를 갖기 위한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그녀의 먼 친척들이 권리의 분배를 요구하고, 존 말루프의 지나친 상업화에 대한 비난도 끊이질 않는다. 하긴 비비안 마이어가 세상을 멀리하고 사진기를 통해 조명하려 했던 게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깨닫는 사람들이라면 그녀의 얼굴을 크게 찍은 사진을 책으로 출간할 생각은 못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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