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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Nov 19. 2016

잊혀진 해리슨 포드를 추억하며

영화 <도망자>, <헨리의 이야기>를 통해 본 90년대 헐리우드 영화들

영화 도망자 그리고 90년대 영웅 해리슨 포드

요즘엔 덜하지만 주말의 명화에 단골손님이었던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 <도망자>(The Fugitive, 1993)를 정말 좋아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영화가 늘 그리워 가끔씩 찾아서 구해보곤 한다. 대체적으로 상투적인 전개의 액션 영화인 데다, 내용은 물론 장면 하나하나까지 다 외우고 있는지라 새로울 게 없지만 난 습관적으로 이 영화를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내 맘을 끄는지는 모르겠다. 모든 좋아하는 영화들이 그런 것처럼 몇몇 장면의 공기가 사로잡는다.

도망자 The Fugitive, 1993

영화 초반에 아내를 살인한 누명을  저명한 의사 리처드 킴블(해리슨 포드 ) 교도소 수송버스를 탈출하여, 어느  시골 마을의 병원으로 잠입하는 장면이 있다.   새벽부터 복부가 찢기는 상처를 안은 채 아이오와의 굴곡진 숲과 거센 강을 헤치고 겨우 병원에 다다른 터라 몸과 마음이 지친 그는 서둘러 어느 병실로 몰래 잠입한다. 그는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병원에서 은거하기로 한 것이다. 환자의 병실에서 옷을 훔치고, 허기진 배를 잠든 환자의 아침식사로 때운다. 그리고 외과 전문의라는 그의 직함답게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는 모습도 빠질  없다.  장면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가 전문직 남성이라는 자각과 도망자라는 신세라는 급박감이 섞여있때문이다. 도둑질하고 고픈 배를 우는 방식에도 살아온 흔적이 묻어난다.

 그는 아내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자신의 의사로서의 경력을 되짚어야 하며, 스스로 조직 안에서 구축했던 인간관계를 털어내야  터이다. 의사를 비롯한 화이트칼러 직군의 남자가 이런 액션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의 단골 소재가 되는 이유는 기술을 가진 인간이야말로 모든 이들이 가장 인간답다고 느끼는 삶의 매혹이기 때문이다.

영화 중반부터 90년대 액션 영웅답게 신분증을 위장하여 청소부로 잠입하여 범인에 대한 정보를 빼내는 장면도 일품이다.  장면은 아주 공들여 찍고 있는데, 그는  멕시코 청소부의 신분증을 위조하여 병원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범인의 실마리를 잡는  번째 단계가 있다. 이후 시카고의  카운티 병원에 깔린 경찰들을 피해 도심 시가지로 달아나는 장면 역시 드라마틱한 장관이다. 초록색 빛의 시카고 강과  패트릭의 (Saint Patrick's Day) 군중들 틈에 섞이는 추격전은  당시 인파와 교통의 통제를 자신했던 할리우드 시스템의 성공사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카운티 병원에서도 아픈 환자들을 그냥 지나치지 모해 죽어가던  소년을 살리기까지 한다. 그걸 눈치  의사(특별 출연한 줄리앤 무어) 신고를 무시하고 또다시 추격전을 벌이는 흐름이  흐르듯 짜임새가 있다. 쫓기는 와중에도 영웅 됨에 주저함이 없는 90년대 영웅의 품격이다.

도망자 The Fugitive, 1993

근사한 백인 도망자 해리슨 포드는 고역의 나날에도 생명을 중시하고, 자신의 평소 덕망을 품위 있게 유지하며 끝내 억울한 누명을 스스로 벗긴다. 영화는 시카고를 중심으로  영화답게, 시카고 힐튼&타워스의 옥상에서 화려한 액션신  다채로운 볼거리로 마무리한다. 내가 시카고를 배경으로  영화  샌드라 블록의 <당신이 잠든 사이에> <도망자>를 좋아하는 공통적인 이유지역 로케이션을 촘촘하게 섞어 넣은 몇몇 장면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다소 어설픈 후반부의 액션신을 차치하고라도 제약회사의 음모와 친구의 질투심을 이용한 막판 결말은 치밀한 각본의 전형이다. 특히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작은 마을의 샛방에 은신하고, 허름한 공중전화로 형사에게 적절한 정보를 흘리는 디테일한 재미는 공들인 각색의 묘미다.

 해리슨 포드의 긴장한 얼굴과 깨끗한 도시풍경이 보는 재미, 타미  존스의 매력적인 썩소까지 눈에 선하다.  시절의 해리슨 포드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이 대스타였다. 무뚝뚝한 표정에 절대 늘지 않는 연기력을 뒤로하고,  매력적인 미소와 시니컬한 농담을 날린다. 어설픈 발차기와 느린 뜀박질을 무시하는 거친 호통의 박력과 상류층의 인텔리를 연기하기에 적절한 말투를 지니고 있다.  편한 복장에도  역할을 다하는 탄탄한 몸과  다리는 어떻게 그가   년간 주연 자리를 해먹을  있었는지 <도망자> 보여준다.

도망자The Fugitive, 1993

해리슨 포드의 영화 중 좋아하는 영화를 더 꼽으라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제외하면 <헨리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인터뷰집에서 <도둑들>의 최동훈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추천하기도 했던 이 영화는 <도망자>보다 해리슨 포드의 연기력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는 미니멀한 영화다. 이 영화는 기억상실증, 가족관계의 회복 등을 통해 도시의 감성이 어떤 방식으로 휴머니즘과 조우하는지 보여준다. <도망자>와 <인디아나 존스>의 공통점은 사회적으로 저명한 위치의 인간이 사고로 추락을 맛본다는 것이다.

헨리의 이야기Regarding Henry, 1991

추락의 차가 크면 클수록 드라마의 진통은 강해진다. 게다가 잘생기고, 매력적인 미소를 가진 남성이 바보가 되어 천진한 표정으로 달걀 요리 하나에도 미소를 지을 때 그걸 지켜보는 감동은 더 크게 느껴진다. 해리슨 포드는 이 영화에서 기억상실에 관한 기억할만한 메서드를 선보인다. 예를 들자면 상류층의 잘 나가는 변호사에서 도시의 괴한에게 총을 맞고 바보가 되어버린 체 깨어난 상황에서 해리슨 포드는 본인이 가진 다층적인 이미지가 잘 살려낸다. 세련됨과 순진함의 양면을 가진 이미지는 그 전 순간의 차가운 변호사에서 멍한 표정으로 리츠 크래커를 정성스레 그리는 모습과 대비대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여성의 모성본능 자극하는 순수한 미소로 극의 분위기를 잡아간다. 단순히 머리스타일과 표정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 옷의 스타일부터 걸음걸이, 말투까지 할리우드 스타에게 바라는 천진난만함이 좋다. 하나의 상품으로써 어떤 방식으로 관객에게 자신을 세일즈 해야 하는지 영리하게 흡입했던 배우다.

인물이 낯선 상황에서 무구해야 하는 연기는 무서움과 공포가 동반된 자연스러운 감정의 분출이지만, 그것을 연기로 보여주는 것이 단순할 순 없다. 가령, 비교할 대상은 아니지만 최근에 본 다큐멘터리 <목숨>이라는 영화는 평범한 일상을 살다 갑자기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의 실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전락의 감성을 표현하는 색은 채도가 낮다. 죽음을 앞에 두고 오열하고 감정의 밑바닥을 그대로 노출한다. 하지만 할리우드 상업 영화는 한 남자의 몰락을 앞에 두고도 따듯하고 유머러스한 시선을 유지해야 한다. 적절하게 슬픔을 자극하면서도 곧 되살아날 희망을 품어야 관객을 헤피 앤딩의 종결로 유도할 수 있다.

헨리의 이야기Regarding Henry, 1991

<헨리의 이야기> 속 설정은 그 이상으로 참혹하지만, 가족드라마의 역할 상 재활원의 분위기를 바닥으로 떨어뜨릴 수 없다. 있는 그대로 슬퍼할 수 없는 할리우드 드라마에서 스타 배우는 낮은 채도에서도 웃음을 주고 감동을 위한 한 방까지 준비해야 마땅하다. <헨리의 이야기>의 해리슨 포드는 영화 <도망자>와 마찬가지로 한 배우를 지켜보는 즐거움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헤리슨 포드가 죽음과 기억 그리고 다시 가정을

 위한 복귀까지 그려내는 몸짓을 보고 있노라면 이 배우가 얼마나 박한 평가를 받아왔는지 느낄 수 있다.

위 두 영화는 헐리웃이 전 세계 관객을 휩쓸던 80에서 90년대 중반까지의 가장 전형적인 영웅상이다. 마블 히어로와 SF 장르가 출몰하기 전 가장 낭만적인 정조를 가진 작품으로 기억된다. 이 당시 해리슨 포드는 탐 크루즈, 멜 깁슨 등과 함께 액션과 휴머니즘을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최고의 몸값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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