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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Nov 20. 2016

'마션'을 읽는 몇가지 우회로

 앤디 위어의 소설이자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마션'에 대하여

소설과 영화로 만들어진 <마션>

미 항공우주국의 화성 탐사 프로젝트 아레스 3에 참여한 마크는 동료들과 함께 화성 표면에 성공적으로 착륙한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모래 폭풍이 휘몰아치면서 임무는 중단되고, 아레스 3은 탈출 절차를 밟는다. 하지만 거친 모래 폭풍 속을 헤매던 마크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고, 화성에 고립무원으로 남겨진다. 죽음의 위기를 간신히 벗어난 마크는 어딘가로 떠날 수도, 지구에 구조를 요청을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삶을 포기할 수 없었던 마크 특유의 긍정적인 기질로 스페이스 카우보이를 자처한다. 죽음과 생존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상황에서도 디스코를 듣고, 감자를 스스로 재배하는 이 남자. 마크는 일기를 쓰며 생존을 위한 알고리즘, 공학도의 감성과 식물학자의 지식으로 휩싸인 사고들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탈출을 위한 조건들은 하나둘씩 해결되고, 어처구니없게도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헤피엔딩으로 귀결되기에 이른다.     

이 난해한 프로젝트엔 화성에 버려진 주인공 ‘마크 와트니’의 정체성이 중요하다. 식물학자이자 기계공학자인 마크는 전문지식을 가진 한 인간이 화성에서 살아남는다는 미션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한 인간의 생존기라는 문학적 소재를 배신하듯 철저한 지식의 고증과 복잡한 계산식으로 점철된 이 작품은 스스로 문학사에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왜냐면 대부분의 조난을 그린 작품들이 인물을 겪는 고생 담을 구경하는 데 그치지만, <마션>은 실존과 감정상태를 최대한 자제하고, 탈출을 위한 계산식에 거의 모든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저자 '앤디 위어'에 관하여

잘 알려진 대로 저자 앤디 위어는 잘 나가는 실리콘밸리의 프로그래머였다. 그에게 소설은 블로그에 집필하는 수준의 취미였지만, 공짜로 아마존에 배포한 <마션>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넘어 영화로도 제작된 블록버스터 급 작품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마크 와트니를 생각할 때 맷 데이먼을 떠올리며, 앤디 위어를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와 비교하기까지 한다. 앤디 위어는 공학도로써의 기초지식으로 이 작품을 집필했다고 밝힌 바 있다. 공학을 문학의 영역으로 확장했다느니, 나사보다 화성을 더 잘 아는 우주인이라니 하는 극찬은 소박한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그저 피자를 입에 물고 포스팅을 하고, 구글링을 하다 심심하면 글을 쓰는 흔한 프로그래머일 뿐이다. 그에겐 입자물리학자인 아버지, 전기기술자인 어머니가 있지만 나사엔 가본 적도 없고, 우주에 관한 책이라고는 우연히 본 화성 지도뿐이라고 한다. 

마션의 저자 앤디 위어

영화 마션은 맷 데이먼 주연에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소설은 과학적 지식들로 중무장한 작품이라 영화보다는 확실히 어렵다. 소설이 감성적인 표현을 자제하고, 생존을 위한 계산 과정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는 반면, 영화는 실제 이 계산식을 행하는 노동의 강도를 맷 데이먼이라는 호남을 통해 이행한다. 영화는 각색 과정에서 이 생존에 꼭 필요한 과정들만 간략하게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앤디 위어는 육체적 노동에 관심이 없고, 영화는 전문지식을 배제한 상태를 선호한다. 이는 대중성의 차이지만 내가 보기엔 마션이라는 텍스트를 다각도로 즐기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패키지 세트와 같다. 그리고 책의 일기체 형식의 유머들도 맷 데이먼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면서 훨씬 더 대중적으로 변모했다. 스스로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구어체로 이름 모를 대상과 대사를 주고받는 맷 데이먼의 1인극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는 앤디 위어의 떨어지는 문장력을 보완하는 것과 동시에 어려운 공식들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마치 스타크래프트의 전략을 세우듯 절차대로 이행되는 즐거움, 계획에 어긋나는 오류가 생기면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 프로그램을 디버그(debug)하는 여유. 이 화성에 부정적 기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마션The Martian, 2015

혼자 사는 남자의 전형

마션은 최근 유행하는 ‘나 혼자 산다’의 전형이다. 혼자 밥을 먹고, 영화와 음악을 즐기며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전문직 싱글남의 표본이다. 그곳이 뉴욕이 아닐 뿐이지 외로움이 아닌 고독의 즐거움을 엿볼 수 있는 스토리다. 그에게 실존은 생존을 앞설 수 없다. 생존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숭고한 가치다. 이 시대의 우주영화(인터스텔라, 그래비티)들이 우주적 공간(우주의 대기, 웜홀, 블랙홀 등)을 통해 철학과 삶의 가치에 대해 사유하는 반면, 마션은 철저하게 화성을 독립된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조건으로 활용할 뿐이다. 앤디 위어에게 지구는 그저 따듯한 밥이 있는 목적지일 뿐이고, 그 흔한 가족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만나게 될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어쩌면 혼자 배낭여행을 하다가 난관에 부딪쳐 히치하이킹을 하고, 자동차를 수리해서 나아가는 로드무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외부요건을 다루는 앤디 위어의 태도 역시 재밌다. 마크의 구조엔 중국 항공우주국의 협조와 나사 내 정치적 고려들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앤디 위어는 내가 모르는 건 패스하겠다는 의지를 점철시킨다. 우선 중국은 과학자들의 논리로 미국에 무상 협조한다. 또한 나사에서 역시 연구진 중 한 명의 돌출 행동으로 어쩔 수 없이 프로젝트가 가동된다. 마크를 위해 목숨을 거는 동료들은 어떤가. 마크를 구하기 위한 정치적 고려들은 모두 무시해버리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엿보인다. 이는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화성 안에서의 생존기 외엔 고민하지 않겠다는 집중력이 작품을 오히려 시원하게 한다. 마크가 화성 안에서 자신의 지식 외에 외부적 요건에 의해 도움을 받는 부분은 인간적인 온기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마크와 통신하는 모든 내용들은 마크의 (혹은 앤디 위어)의 우월한 문제 해결 능력, 지식을 뽐내는 경우 외엔 별다른 소통이 없다. 그는 철저히 혼자 사는 남자다.

마션 The Martian, 2015

왜 살아야 마땅한가

앤디 위어의 삶의 기조는 작품의 마지막 화성 탈출을 위한 MAV의 개조 과정에서 드러난다. 나사에서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기기를 파손하는 수준의 개조를 요구하고, 마크는 이에 순순히 응한다. 추진 동력을 위해 기기의 거의 보조 생계수단들을 제거하고, MAV엔 뚜껑 대신 천 하나를 얹어놓는다. 이에 대해 마크는 황당한 웃음을 보이지만, 주저함은 없다. 정작 이 기기의 과학적 훌륭함과 외관의 위용이 해체되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말이다. 이는 생존을 위한 선택에 있어서 현대 과학의 영향력을 놓치지 않으려는 작가의 태도로 보여 흥미롭다.

어처구니없게도 소설 마션은 영화보다 더 감동적이다. 끝에는 찡한 눈물이 새어 나오니 당혹스러웠다. 그저 철저한 계산을 통해 이 모든 과정에서 승리한 것뿐인데 나도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건 그가 결국엔 혼자가 아닌 동료의 힘으로 뭔가를 성취했다는 흔해빠진 깨달음이 아니다. 결정적인 건 인간이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마크는 지식과 논리적 사고를 통해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많은 이유를 댈 수 있지만, 우리가 매일 일하고, 읽고 있는 현실적 상황엔 답하지 못한다. 그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생존이라는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냈다. 한 번도 절망하지 않았으며, 그 어떤 비꼼도 없이 생존을 경탄했다. 감자 한 알을 씹고, 칼로리를 계산해 인간이 가진 전문지식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을 바라보게 한 것이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저

최근에 읽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도 비슷한 감동이 있었다. 이 책은 90년대 후반 미국 컬럼바인 고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사건의 가해자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가 쓴 에세이다.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이 사건을 이제 와서 왜 책으로 냈는가에 대한 의구심은 이 책을 사게 만들었다. 아들이 연쇄살인범이 된 상황에서 저자이자 엄마였던 '수 클리볼드'는 절망했다. 가족들은 점점 멀어지고, 사회는 그녀를 악의 근원으로 규정했다. 아니 어떻게 아들이 대학살을 벌였는데 어미가 그것을 모를 수 있냐는 비난은 평생 그녀를 따라다닌다. 그 상황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자살해야 숭고한 것일까. 대역죄인이 되어 펼생 종교에 귀의할 것인가. '수 클리볼드'는 공부를 택한다. 아들의 선택, 살인, 자살을 이해하기 위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로 한다. 인간이 앎이라는 영역을 통해 난관을 극복해가는 모습은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한 사람인지와 관계없이 존엄의 대상이 된다. 그것이 어쩌면 <마션>이라는 이야기가 스스로 걸작이 된 방법은 아니었을까. 그것이 인간이 숭고해질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수단 중 하나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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