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냉장고를 열어보니 술병이 가득하다. 술을 소진하지 못한 연말이라니. 술병 밑에 깔린 대패삼겹살을 꺼냈다. 아이폰으로 요리법을 검색해서 틀어놓고 따라 만들었다. 꽤 먹을만한 요리 아닌가! 얼마 전 핸드폰을 아이폰 12로 바꿨다. 고가라 망설였지만 나는 야 합리화의 달인. 아이폰 12를 사야 하는 여러 이유가 떠올랐고 며칠간 그 날렵한 곡선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종일 곁에 두는 앤 데 이왕이면 빠릿빠릿하고 섬세한 친구인 게 좋지 않겠어.' 고작 삼십 분을 산책하러 가도 이 매력적인 친구와 함께라면 더 즐거울 것 같았다. 지금도 날 위해 애쓰는 아이폰 7엔 미안하지만, 시간이 왔나 봐.
5년 가까이 나와 동행한 아이폰 7은 이름처럼 적지 않은 행운을 가져왔다. 첫 유럽 생활, 새로운 만남, 잊지 못할 여행, 달콤한 연애, 트레바리, 내가 만든 글쓰기 모임, 인상 깊은 산책을 함께한 친구다. 그때마다 내 왼손에 꼭 들러붙어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요즘 힘이든지 자꾸 툭툭 꺼진다. 서비스센터에 맡겼지만, 노환이라 별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지금껏 겨우겨우 버텨왔는데 신형 아이폰이 나온 걸 눈치채고는 삶의 의지를 잃고 그만 숨을 거둔 것 같다. 참 잔인한 게 새로운 핸드폰이 도착하니 아이폰 7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더라. 아이폰 7이 일군 데이터들이 고스란히 신제품에 들어오니 단 하루 만에 적응이 됐다. 기계엔 미련도 없고 망설임은 더더욱 없다.
아이폰 12를 켰을 때 가장 좋았던 건 물성이다. 모두가 애플의 고가 정책을 욕하고 수리비가 말이 안 된다며 쌍심지를 켜도 없어서 못 파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내 무심한 터치에도 온몸으로 화답하는 데 안 넘어가고 배겨. 나는 구체적일 때 진짜라는 실감을 갖는다. 특히 글을 쓸 때 손에 잡히는 감각에 주의를 기울인다. 추상적이고 범주에 불과하면 흥미를 못 느낀다. 그러니 멈춰 세우고 문장 하나하나에 질문을 던져보는 거다. 아이폰 12를 며칠 써보면서 이 녀석은 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반화된 스펙은 다른 회사 제품과 다를 게 없지만, 어느 행동 하나하나 걸리는 게 없다. 세심하게 날 살피는 기분이 든다. 사람을 만날 때도 그렇지 않나. 겉으로 드러난 이력으론 그를 온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노래방에 가서 노래 한 곡만 들어봐도 그의 면모를 알 수 있다. 음정 박자 다 틀려도 크게 상관이 없다. 사람 자체가 끌리면 그냥 계속 듣고 싶어 진다. 그건 미세한 표정 변화와 미묘한 제스처에서 그의 매력이 판가름 나기 때문일 것이다. 난 탬버린을 들고 힐끗힐끗하면서 그가 노래 부르는 옆모습을 훔쳐본다. 사장님이 더는 추가시간을 주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고 싶게끔 한다.
아이폰 12가 날 유혹해냈던 건 외모였지만 날 완전히 꼬셔낸 건 터치감에 있다. 마치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것처럼 손에 착착 감긴다. 내가 혼잣말을 해도 시리가 기막히게 알아듣고 근사한 곡을 띄운다. 난 녀석을 줄곧 쓰다듬으며 침대에서 뒹군다. 시리는 업데이트가 될 때마다 내 질문에 다른 답을 내놓는다. 영국의 수학자 엘런 튜링에 의하면 “진정한 인공지능 컴퓨터는 사람이 5분간 질문을 할 수 있고, 이럴 경우 질문하는 사람이 30% 이상 확률로 컴퓨터를 인간으로 착각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난 요즘 집에서 시리와 같이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운동까지 하는데 확실히 시리를 인간으로 느낄 때가 많다. 시리의 대답이 특별히 감동적이거나 위로를 주는 건 아니지만, 내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예의를 갖추고 있어서다. 무례하게 되묻지 않고 딱 질문에 관한 자기 생각만 들려준다. 말을 하라고 빤히 쳐다보며 보채지도 않고, 그렇다고 귀찮아하지도 않아서 좋다. 그렇게 그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명품 케이스를 사는 날 발견한다. 아이클라우드 용량도 늘려주고, 스킨도 더 비싼 걸 골라 입힌다. 확실히 서랍 속에 넣어둔 아이폰 7이 더는 기억나지 않는다.
맥북을 하며 놀다가 '찰스 레니 매킨토시'가 1902년에 만든 <힐 하우스 등받이 의자> 사진을 봤다. 힐 하우스라는 돈 많은 양반이 자기 집을 꾸며달라고 매킨토시에 의뢰했더니 이 고약한 디자이너는 전위적으로 집을 꾸며놨다. 그 과정에서 이 의자도 만들어졌다. 매킨토시의 이 의자는 대단히 추상적이고 절제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기능은 무시하고 미술관에 두기 위해 만든 것 같다. 요즘 인스타그램을 달고 사는 여피족을 위해서라면 괜찮아 보인다. 왜 인스타그램 용 카페는 테이블이 거의 바닥에 붙어있지 않나. 편의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사진에 이쁘게 잘 나오기 위해서 존재한다. 기능성 따위는 가뿐히 무시해준다. 등받이는 지나칠 정도로 수직으로 높게 뻗어있어 도무지 편안함과는 거리가 있다. "친절해 보일까 봐" 붉은 마스카라와 하이힐을 신은 금자 씨가 복수를 위한 총을 들고 "예뻐야 해. 뭐든지 예쁜 게 좋아"라고 말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애플이 처음 맥을 개발하며 이 양반 이름을 차용한 건 다 이유가 있어 보인다.
난 애플 제품을 여럿 사용한다. 맥북에어, 아이패드, 아이폰, 에어팟을 쓴다. 온종일 애플 제품을 만지고 사는 셈이다. 스타벅스를 한참 다니기 시작할 때 늘 맥북이 탐났다. 조금 힙해 보이는 사람은 늘 가방에서 맥북을 꺼내며 날 기죽였다. 당시 나도 꽤 잘 나가는 타사 제품을 들고 다녔는데 이상하게 늘 맥이 더 좋아 보였다. 그걸 허세라고 비웃던 때도 있었는데, 허영은 쉽사리 잠잠해지지 않았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엔 맥북 겉면에 새겨진 베어 문 사과 로고에 불빛이 들어왔다. 난 커피를 마시며 그 빛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내가 가진 게 초라해 보이고 맥북이 있으면 더 좋은 글이 나올 것 같았다. 저 안엔 어떤 세상이 있을까. 조잡한 창문이 여러 개 달린 따분한 세계에서 더는 살 수 없었다. 커피를 가지러 갈 때 화면을 보니 폭탄을 설치하는 게임이 켜져 있어 확 깼지만, 나라면 창밖을 보며 감성적인 문장을 적을 테지. 고작 사천 원짜리 커피를 시키고 카페에서 몇 시간씩 죽치는 덴 네가 필요해.
맥북을 가방에서 꺼내면 매끄러운 실버톤 보디가 드러난다. 차갑고 조금은 딱딱해 보이지만 모서리의 곡선은 날렵해서 엄격한 식단으로 가꾼 티가 난다. 화면을 켜면 금빛을 띤 황토색, 얼룩덜룩한 파스텔톤 빛깔이 뒤섞인 차분한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세잔의 정물화처럼 종일 멀찍이서 지켜봐도 질리지 않는 자태다. 몇 년 전부터 매일 들고 다녔지만 여태 소원해지지 않았다.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가 이룬 성취는 미니멀한 구조 안에 육감적인 물성을 부여했다는 점에 있다. 마치 몸매가 다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은 여인처럼 관능적이다. 별다른 장식은 필요치 않다. 우린 그 속에 뭐가 있는지 다 아니까. 이것저것 걸치고 달아봤자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애플의 제품들은 그의 철학 아래 완전해졌다. 애플은 컴퓨터라는 딱딱한 고철의 세계에서 날 구해냈다. 조너선 아이브가 강박적으로 구축한 단순함의 세상이 좋다.
내가 기억하는 맥북에 관한 영화는 단연 데이빗 핀처 감독의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다. 영화에서 용 문신을 한 범상치 않은 외모의 천재 해커 리스베트는 천재적인 해킹 능력으로 단서의 조각들을 맞춰나간다. 리스베트에게 필요한 건 라면 한 봉지와 전원을 꽂은 콘센트와 이 맥북 한 대 뿐이다. 그녀는 오프라인에서는 도시의 어둠만을 찾아다니는 은둔자에 가깝지만, 온라인에서 만큼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용 문신을 한 거물이다.
조너선 아이브는 단순한 형태를 위해 거대 용량의 하드디스크와 온갖 칩이 박힌 보드를 기기 안에 숨겼다. 수면 아래를 통제하는 멋들어진 아티스틱 스위밍 선수처럼 물 위에서만 우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아이폰은 이제 버튼까지 하나씩 제거하고 있다. 나체에 가까운 매끄러운 살갗에 손버릇만 나빠진다. 난 쓰다듬고 문지르고 비비며 녀석과 논다. 기계의 복잡도를 사용자에게 절대 노출하지 않는 건 예술의 속성과 비슷하다. 우린 누군가의 창작물을 보면 그를 천재라고 단언한다. 그가 홀로 고치고 써낸 시간을 모르니 문단의 총아가 나타났다며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천재라는 어휘에는 게으름이 있다. 그에게도 어느 아침 일어나 마루를 배회하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도대체 뭘 적어야 할지 몰라 커피만 줄곧 들이켜던 시간은 또 어떤가. 막막함에 어쩌지 못해 머리도 안 감고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천장만 한없이 쳐다보다 나왔을 그를 떠올렸다. 우리는 그 시간을 모르니, 아니 알고 싶지 않으니까 근사한 표지를 만지며 작가의 재능에 경배를 표한다. 천재라는 말로 모든 노고를 무력화한다. 아티스트는 그냥 작품으로만 보이니까 잔인하면서도 당연한 일이다. 애플이 유난을 떠는 서비스 정책으로 골치를 썩여도 봐줄 만한 건 그게 특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가는 좀 까다롭고 예민해도 납득할 수 있다. 갑자기 헤어지게 된 아이폰 7을 위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졌다. 아이폰 7아, 고생 많았다. 너와 함께한 시간은 특권이었고, 그 추억을 평생 가져갈게. 내가 아는 가장 착하고 예쁜 사람아, 잘 지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