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자유의 언덕>
가끔 계절의 변화가 지겨울 때가 있다. 또 작년이랑 별다를 게 없는 봄이 오는구나. 다들 그럴 때 있지 않나. 늘 쓰던 글을 또 쓰는 것처럼 지루해지는. 말의 오래된 감각이 날 더 이상 지켜주지 못하는 순간. 씻나락 까먹는 소리 같지만 어젯자 뉴스를 보니 그런 생각이 더 짙어졌다. 날씨 풀렸다고 강원도로 소풍 갔다가 폭설에 갇힌 사람들의 군상. 이게 다 봄이 왔다고 설레발친 결과다. 눈 덮인 고속도로가 마치 스웨덴의 여느 산간마을처럼 보였다. 무거운 습설을 퍼내며 혹독한 겨울을 보내는 그들에게 봄은 멀게만 보인다. 그 와중에 갓길에 차를 세우고 코펠에 라면을 끓여 먹는 사람들은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처럼 기괴하면서도 사랑스럽다. 겨울의 마지막 진상짓을 농담으로 받아내는 배포라니! 한국인들이 그렇게 주말마다 캠핑을 다니는 게 이런 재난상황을 위한 모의훈련이었을까.
어쩌면 인간은 시기마다 이름을 달리 붙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인간이라고 일반화했지만, 그냥 내 얘기일지도) 밀란 쿤데라 식으로 누구나 우연이라고 말하는 걸 기어코 운명이라고 우기는 태도에 가깝다. 매일 엇비슷한 하루를 보내고도 어제와 다른 하늘을 발견하는 재주다. 매일 아침 사무실에 들어서며 날씨가 어떻다고 요란을 떠는 것도, 글을 쓸 때 날씨가 마치 문학의 본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공들여 묘사하는 것도 다 평범함을 특별하게 볼 줄 아는 인간다움의 발현이 아닐까. 그런 의미부여야말로 불현듯 엄습하는 권태에 대항하는 인류의 지혜일 것이다. 틈만 나면 입을 삐죽 대고 불평을 늘어놓다가도 나른한 실바람에 취하는 게 봄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다. 홍상수의 영화 <자유의 언덕>에서 모리는 꽃을 5분쯤 보고 있으면 그 꽃과 하나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나 역시 혼자 산책할 때 가끔 흐드러진 색감에 완전히 동화될 때가 있다. 잠시 멈춰 서서 뚫어져라 보면 삶의 두려움을 없애는 효과를 체감할 수 있다. 의식이 깨끗해지고 사위가 조용해지면서 일상이 달리 보인다.
이번 겨울은 너무 추워서 팔짱을 낀 채 스웨터 안으로 몸 전체를 감추고 지냈다. 그놈에 가스비 좀 아껴보겠다고 꽁꽁 싸매고 살았다. 터틀넥을 위로 잡아당기고 앞자락은 굽힌 무릎 위로 끌어내려 다리를 덮고 발밑에 집어넣어서 텐트를 만들었다. 뜨신 커피로 손가락을 녹이면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주로 어두컴컴한 글이었다. 하지만 날씨가 풀리니 버릇처럼 알몸이 됐다. 겨울옷을 하나씩 서랍에 넣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집을 돌아다닌다. 햇살이 몸에 감기는 느낌을 즐기면서 글도 더 따듯해졌다. 봄은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화창한 해변이라든지 울창한 목초와 유년의 휴일을 떠올리게 했다. 강변의 평화로움과 수업이 끝난 뒤의 운동장, 일요일 오후의 고요함에 대해 적었다. 밤에는 저녁을 먹자마자 동네 인근을 한 바퀴 돌며 글감을 떠올렸고, 구겨진 메모지를 청바지 뒷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뭐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굴었다.
봄이 오며 프로배구도 더 재밌어졌다. 특히 쌍둥이 논란으로 폭격을 맞은 여자 프로배구는 전에 없는 우승 경쟁에 한창이다. 의도치 않은 소음에 부담스러운 주목을 받고 있지만, 평소엔 못 받던 관심을 독차지하니 배구팬으로서 신이 나기도 한다. 뉴스는 앞다투어 흥국생명 배구단 소식을 보도하고, 지난 주말엔 선두 흥국을 바짝 쫓는 GS칼텍스와의 경기가 큰 주목을 받았다. 거의 엘 클라시코 급으로 긴장감이 돈 경기였다. 식빵 언니 김연경이 쌍둥이가 없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전 포인트였다. 긴 팔과 긴 다리가 난무하는 코트는 이제 봄 배구를 준비 중이다. (배구 선수들 너무 예쁘다) 봄이 오면 프로야구도 개막한다. 야구장 외야석에 볕을 쬐다가 날아오는 플라이볼을 보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하루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봄날의 야구장은 이야깃거리가 풍성하다. 올해 한화는 꼴찌를 면할 수 있을까. 공양하는 불도의 마음으로 지켜볼 생각이다.
봄을 맞아 나를 솔깃하게 한 뉴스는 주 4 일제에 관한 논의였다. 여태 시기상조라는 말이 우세하지만, 앞으로 등이 휠 때까지 직장생활을 하게 될 나로서는 불목에 치킨을 먹을 날을 기다린다. 최근 넷플릭스의 기업문화를 다룬 <규칙없음>이라는 책을 보니, 주 4일이니 5일이니를 따지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이라고 하더라. 성과를 내기만 하면 출근 자체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실리콘밸리의 트렌드라나. 밥값을 해낼 수 있다면 카리브해에 가서 두 달 만에 돌아와도 회사는 별말하지 않는다. 겉보기엔 혁신적이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왜 요즘 노량진에 사람들이 그렇게 미어터지는지 이해할만했다. 성과를 못 내면 정리에 들어가는 약육강식의 기업 문화는 나같이 평범한 이들에게 엄혹하게 느껴진다. 어린 직원을 키워 쓰겠다는 전통적인 기업 마인드는 사라진 지 오래다. 돈만 잘 벌어오면 규칙 따위가 무슨 상관이라. 주 4일은 무슨, 그냥 다닐 수 있을 때까지 죽어라 일하겠습니다!
봄이 오며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아스트로제네카냐 모더나냐 화이자냐 하도 많이 들어서 다 외워버렸다. 근데 시작 전부터 누구를 첫 접종자로 하는가로 시끌벅적했다. 정치권과 언론, 커뮤니티가 연일 앞다투어 논의를 이어갔다. 이처럼 인간이란 존재는 누가 보더라도 의미가 없어 보이는 것에 기어코 얘깃거리를 만들어내는 존재다. 굳이 문제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도 논란을 만들고 의문을 제기하고 그럴싸한 당위를 만들어 말의 잔치를 연다. 어찌 보면 이런 수다스러움이야말로 권태를 이겨내는 힘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소란이 없다면 내 적막한 출근길은 얼마나 지루했을까. 그 얘깃거리들이 모여서 지루한 회의 시간의 얼음을 깼고, 어색한 술자리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알탕에 소주 한 병 시켜놓고 밤새 떠들 수 있는 능력이 호모 사피엔스를 승자로 만들었다. 시끄러워도 좋으니 부디 올해는 백신으로 사라진 술자리가 복구되기를.
작년에 개인적으로는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올해 봄은 조용하길 원한다. 과거는 얼룩에 가까워, 아무리 박박 문질러도 원형대로 복구하기 어렵다. 그냥 북 찢어내고 다시 쓰는 게 빠르다. 비록 계절은 반복되지만, 미세한 차이는 분명히 있으니까 유심히 잘 봐야 한다. 완전히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꾸며볼 생각이다. 말에 뭍은 먼지를 털어내고 가식적이거나 형식적이지 않다면 좋겠다. 오탈자는 없는지 잘 보고 비문을 체크하고 여러 번 퇴고를 한다. 누가 그러던데 소리 내서 읽어보면 오점이 잘 보인다고 한다. 늘 쓰던 글이지만 오탈자를 잘 솎아내서 행갈이를 하면 다시 봄으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이런 뻔뻔함이야말로 계절의 순환이 주는 특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