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보이나 몰라서 보이나

왓챠 <2021 스페셜 토크쇼 - Let's BTS>

by 박민진

왓챠를 틀다가 우연히 <2021 스페셜 토크쇼 - Let's BTS>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공중파에서 한 스페셜 토크쇼였는데, 현재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아이돌인 방탄소년단 멤버들을 밀착 인터뷰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자 프랑스 유학 시절이 떠올랐다. 이름도 몰라 성도 몰랐던 멤버들을 다 외우며 BTS 팬이 되었던 가을날이 화창했다.


난 카페 죽돌이라 프랑스 유학 시절에도 늘 카페에 살다시피 했다. 특히 내가 거주했던 툴루즈 시내의 내로라하는 카페는 다 다녔다. 한국 커피집과 달리 툴루즈의 카페는 식사까지 취급한 터라 아침에 가서 빵과 샐러드를 먹으며 끼니를 때우고 오후 내내 죽칠 때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내 단골집은 '툴루즈 제1대학' 학생들이 주로 찾는 저렴한 카페 'Les Gourmands de Saint-Sernin'이었다. 한국말로 생세르냉의 미식가들쯤 되는데, 유럽 최대 규모의 로마네스크 건축물인 생세르냉 대성당이 코앞에 있어서 창밖으로 보이는 바실리카의 모습이 끝내줬다. 이름처럼 먹음직스러운 빵과 신선한 야채로 만든 샐러드, 질 좋고 싼 커피로 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내겐 곳곳에 전기 콘센트가 있어서 작업실 노릇을 했다. 카페에 들어서면 갓 스무 살이나 됐을까 싶은 학생들 여럿이 모여 과제를 하거나,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친하게 지냈던 K팝 댄스머신이자 미술학도인 엘사랑 미리암도 여기에서 만났다.

카페는 오래된 주택을 복원하고 개조한 탓에 허름했지만, 주인장이 꽤 깔끔을 떨어서 전체적으로 청결했다. (난 화장실이 청결하면 가게 위생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늘 주방을 지켰던 털보 사장은 한국 영화를 좋아해서 나만 나타나면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짧은 영어로 박찬욱과 봉준호, 홍상수, 김기덕 얘기를 늘어놓는 통에 대답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단골이 된 이후로는 가끔 영업시간이 끝나갈 때 직원들에게나 주는 케이크나 크루아상을 작은 박스에 담아서 선물하는 귀여운 친구였다.

내가 이 카페를 좋아했던 이유는 가격과 분위기도 있지만, 무엇보다 근처 학생들의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툴루즈 대학 친구들이 그린 그림들은 내가 유럽의 미술관에서 보던 작품과는 달리 소박하고 재기가 넘쳤다.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고풍스러운 도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맹렬한 장난기가 배어있었다. 어떻게든 재밌어야 하는 나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전시회가 열리는 날 카페에 들어서면 학생들이 소란스러운 호들갑과 함께 날 환대해줬다.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소감을 적어 포스트잇으로 그림 옆 붙여놓는 모습이 보였다. 졸지에 관람객이 된 나는 어색한 감탄을 연발했다. 와, 오우, 세 부, 제 냘, 메르시 보꾸(뭐가 고맙지?). 내가 아는 칭찬이란 칭찬은 다 섞어가며 마치 세잔의 미공개 작품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굴었다.

어느 날 카페에서 리포트를 쓰고 있는데 한눈에도 어려 보이는 친구가 다가와서 제 그림에 아무 한국어나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미리암이라는 친구였는데, 이름으로 보아 마그레브 지역 출신으로 보였다. 아프로 머리에 통이 큰 바지를 입고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었다. 미리암은 내가 아이패드로 한국 소설을 읽는 걸 보고 다가왔다. (그녀는 BTS 팬이라 유행어처럼 '아이 홉 쏘' 대신 '제이홉 쏘'라고 말하곤 했다) 미리암은 그림에 수많은 별을 새겨 넣고 별들마다 각기 다른 언어를 적는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었다. 특별히 한국어가 들어갈 별은 두 개나 할당됐다. 그림은 아크릴 물감의 질감이 드러나게 거칠게 칠해져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림 솜씨보다는 아이디어가 중요한 작품이었다. 나는 뭘 적어야 할지 아리송해 작품의 콘셉트와 제목을 물었지만, 미리암은 그냥 무제 #6이라고만 했다. 내 추측으론 어떤 다양성의 광경 같은 걸 그리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었다. 당시에도 횡횡했던 이방인에 대한 혐오 대신 화합의 목소리를 내려는 게 아니었을까. 아무튼 미리암은 그냥 한국인이 쓴 한국어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그 소중한 별 속에 검은색 붓펜으로 '사랑'과 '문화'를 썼다. 한국을 대표하는(?) 만큼 가장 한국적으로 보이는 궁서체로 적었다. 미리암은 내 글자 모양이 예쁘다고 난리였다. 내 악필에 호들갑을 떠는 걸 보니 립서비스가 분명했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예쁨'나 '굉장해'처럼 도드라진 글자를 적을 걸 그랬나.

평소 이름난 미술관에 이상한 압박감을 가졌다. 유럽에서 유명한 미술관을 꽤 다녔는데, 어느 순간부터 지쳐버렸다. 내 고질적인 지적 강박감이 발동해서다. 문간에서 나눠주는 팸플릿부터 어려운 용어가 난무한다. 전시작품과 작가에 관한 정보가 읽기도 힘들 만큼 작고 빼곡하게 적혀있고, 추측하기도 어려운 미술 사조와 역사적 배경까지 두루뭉술하게 나열되어 있다. 작가의 이력과 당시의 연표도 빼놓을 수 없다. 심지어 작품에 담긴 의미와 상징까지 큐레이터의 난해한 설명으로 이루어진다. 바야흐로 정보 인플레이션 속에서 예술을 관람해야 한다. 그걸 무시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만 드니 난 미술관에서 지쳐 나가떨어졌다. 막상 전시장에서 감상을 시작할 땐 내가 알고 간 지식을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할 때가 많았다. 오히려 작품 그 자체보다는 한 캔버스를 얼마나 오래 보다가 다른 것으로 옮겨야 하는지에 더 신경 썼다. 몸을 앞으로 기울여 각각의 그림 옆에 적힌 제목과 설명을 읽는데 정신이 팔렸다. 특히 추상회화는 하얀 배경 위에 너무나 단출한 긴 얼룩만 그려 넣고 제목은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럴 바엔 노트북으로 구글에서 정보를 찾아보면서 그림을 검색하는 게 더 낫지 싶은 거다.

돌이켜보면 오로지 깊이에의 강요가 날 미술관으로 이끌었다. 이왕 유럽에 왔으니 교양을 쌓아야지. 많이 알아가서 기억에 남겨야지. 지난주에 읽은 책도 기억 못 하면서 그런 터무니없는 희망을 가졌다. 한국에서는 두 달에 한 번쯤 가니 부담이 없었지만, 유럽은 미술관이 지천으로 널려 있으니 박물관을 견학하는 초등학생처럼 그게 다 숙제로만 보였다. 내가 왜 주말 아침에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넓게 펼쳐진 테니스 코트를 놔두고 여기 와서 대체 뭘 얻으려 하나.

다음 날 카페를 가니 내가 쓴 글자가 새겨진 별 그림도 걸려 있었다. 별 연작으로 부를만한 각기 다른 별들이 다채로운 색감을 뽐냈다. 내가 글자를 쓴 별은 작았지만, 벽을 가득 채운 왕별도 있었다. 심지어 분홍색 별도 있었고, 타버린 잿빛 별도 있었다. 표면의 활달함이 살아있는 동시에 고전 회화가 추구했던 차분함도 보였다. 별이라는 소유할 수 없는 대상을 마치 책상 서랍에서 꺼낼 수 있는 물체처럼 친밀하게 묘사했다. 나는 그 단순함에 푹 빠져버렸다. 굳이 뭘 알 필요도 없이 그림이 날 자극하는 게 느껴졌다. 짓눌릴만한 권위를 떨쳐내고 그림은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전에 없는 순수한 고양감이었다.

난 예술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더 보인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 예술론의 오래된 난제에 난 맥락을 우선시하는 편이다. 하지만 미리암이 그린 별을 본 순간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일면으로는 몰라야 더 보인다고도 생각했다. 다 알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냥 모르는 게 속이 편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녀가 그린 별이 어떤 의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세잔이 생트 빅투아르산을 좋아해서 여러 번 그린 것처럼, 미리암도 별을 그리며 그 못지않은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림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보는 보는 자의 몫이다. 알든 모르든 속지 않고 잘 보며 살고 싶다.


한때 애틋했던 공간과 추억에 관해 쓰고 나니 프랑스의 한적한 도시 툴루즈가 그립다. 물론 다른 못 가본 나라들을 내버려 두고 다시 갈 것 같진 않다. 하지만 내가 안심하는 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곳이라는 점이다. 내가 죽더라도 살아남아서 내가 흔적을 증언해줄 공간인 게 확실했다. 오래된 카페, 무너지지 않는 대성당의 위용, 작은 골목으로 빠지면 다리 하나가 나오고, 그걸 건너면 그의 방이 있었다. 아마 우리가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할 거다. 액자에 걸린 그림이 가진 영속성은 죽음과 무관하다. 모든 게 변해도 그림만큼은 어느 벽에 걸려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주말에 사람들이 왜 미술관을 드나드는지 이해할 수 있다. 수영장을 자주 그리는 할아버지의 작품이 왜 그렇게 비싸게 팔리는 지도. 그리고 물론 비슷한 이유로 나도 이 밤에 오탈자를 고쳐가며 글을 쓰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