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럴 수 있으니까

공간 <피부과>

by 박민진

난 어릴 적부터 턱과 인중에 난 수염을 족집게로 뽑아왔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면도를 할 때 일회용 면도기로 쓰다가 피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그냥 뽑고 살았다. 벌써 이십 년이나 돼서 습관으로 굳어졌다. 오해와 달리 번거롭거나 아프지 않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털들을 조금씩 제거하면 그만이다. 뽑아낼 때 아무래도 따갑지만 익숙해지니 눈물이 맺히진 않는다. 한때 만나던 친구가 꼬박꼬박 레이저 제모를 했다. 난 자주 그를 따라다녔다. 강남의 병원은 깨끗하고 소파는 편한 데다가 과자랑 커피가 무제한이었다. 난 다리를 꼬고 우먼센스나 여성동아 같은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를 좋아했다. 친구는 시술대에 누워 신음하고 있겠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니까. 생각보다 심도 높은 기사가 많았다. 기획 특집으로 오르가슴에 다다르는 방법 같은 실용적인 비법이 가득했다. 뜬구름 잡는 소리지만 절대 눈을 뗄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병원 로비는 별다른 눈치를 보지 않고 여성 잡지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덤으로 내가 그를 기다려줬으니 저녁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너의 시술을 기다리는 게 되게 지루했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가 저녁을 사줬다. 그렇게 꽤 여러 번 피부과를 들락거렸는데도 내가 제모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친구의 그 반들반들한 피부를 만지는 걸 좋아했음에도 난 그냥 뽑는 게 편했다.


지난달에 시가지에서 업무를 보고 시간이 남아 스타벅스가 있는 빌딩에 주차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스타벅스가 있는 1층을 누르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거울을 보니 '오픈 기념 레이저 제모 50% 할인'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무작정 4층으로 가서 병원 문을 열었다. 로비에서 커피를 대접받고 어색한 얼굴로 25만 원을 결재했다. 30분 동안 마취를 하며 로비에 한편에 있는 하리보 젤리를 8통이나 까먹었다. 시술대에 누워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내 수염이 타들어 가는 냄새를 맡았다. 내가 족집게로 샤프심을 뽑아온 시간이 어언 두 바퀴인데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어릴 적에 불장난할 때 자주 머리카락을 태운 적이 있어서 냄새가 익숙했다. 아련한 유년의 냄새였다. 에어프라이어에 삼겹살 굽는 냄새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앞으로 네 번은 더 병원에 들려야 내 턱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왜 느닷없이 제모를 했는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딱히 생각이 있는 게 아니었는데 왜 갑자기 병원에 쳐들어 간 거야. 너 설마 로비에서 잡지 읽으려고 간 거는 아니지. 마침 스벅에서 읽을 만한 책이 없어서 그랬나. 아니 그냥 화장실에서 본 내 얼굴이 좀 더러워 보였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없었다. 내가 제모해야 할 이유는 ‘그냥’에 불과했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행복>에도 '그냥'에 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나온다. 영수(황정민 분)는 서울에서 방탕하게 살다가 시골 요양원으로 들어간다. 하도 술을 처먹어대니 간이 나만할 리 있나. 잘 나가던 사업도 말아먹고 애인한테 차인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강까지 잃었으니 쪽이 팔려 멀쩡한 서울의 병원을 다 놔두고 시골로 도망친 거다. 삶의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던 이 무뢰한을 구원한 건 은희(임수정 분)다. 시골 산간에서 눈이 맞은 두 사람은 살림을 합치고 오순도순 살아가기 시작한다. 영수는 은희와 같이 살며 과거를 떨쳐내고 어렵사리 술과 담배까지 끊어내며 건강을 회복한다. 진정한 사랑을 얻은 영수의 얼굴은 전과 달리 소박하고 아늑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짠하고 해피엔딩에 이르면 허진호가 아니지. 마땅한 직업이 없어 어느 촌로의 일손을 돕던 영수는 다리에 힘이 풀릴 만큼 일을 하다가 평상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촌로는 표정 없는 얼굴로 영수에게 술 한잔을 건넨다. 이어서 담배까지 권한다. 영수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담배까지 맛있게 피운다. "정말 어렵게 끊었는데." 촌로는 그 말을 듣고 무심하게 되받는다. "건강엔 좋지 근데 재미가 없어." 영수는 노인의 말을 듣고 마치 주문에서 풀려난 것처럼 그때부터 다시 망나니로 돌아간다.


내가 이 장면을 자주 떠올리는 이유는 삶의 비밀을 관통한 것처럼 느껴져서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긴 시간 숙고한 자만이 쓸 수 있는 에피소드랄까. 인간이 내리는 어떤 중대한 결심이나 계획이라는 게 실은 그냥 그럴 수 있으니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영수라고 은희랑 잘해보고 싶지 않았을까. 근데 그냥 그 순간에 술과 담배가 더 끌린 거다. 건강이 회복돼서 살만했던 것뿐이다. 느리고 가난한 은희와의 동거가 슬슬 지겨워지던 차에 그에게 촌로가 속세의 맛을 상기한 것뿐이다. 영수는 서울에서 진탕 취해 낯선 여자들이랑 뒹굴던 삶이 그리워졌는지도 모르겠다. 내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인생에 변곡점이 된 중대 기로에서 난 즉흥적인 충동으로 갈길을 택했다. 그냥 익숙하고 편히 취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간 것뿐이다. 대단한 이유란 건 애초부터 없었던 거다. 우선 저지르고는 나중에 이유를 갖다 붙이고 식으로 여태껏 살아왔다. 그러니 한낱 레이저 제모는 오죽할까. 그냥 시간이 좀 남아서 백반집에서 김치찌개 대신 된장을 고르듯 병원으로 간 거지.


영구하지 않다는 영구 제모를 세 번 거치니 털들이 자취를 감췄다. 스티커를 떼어내도 찐득거리는 자국이 남기 마련인데, 아무리 뽑아도 끈질기게 솟아났던 털들이 정말로 증발했다. 이제 수염을 뽑는 수고를 덜었으니 좋아졌는가 생각해보면, 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십 년 가까이 습관처럼 굳어진 수염 뽑기가 일상에서 사라지니 미세한 불안이 이명처럼 날 따라다닌다. 특히 뭔가 반복적으로 할 때 명상과 비슷한 평온을 느끼는 내게 족집게로 샤프심을 떨궈내는 작업은 꽤 의미가 있었다. 나쁜 기억을 족집게로 뜯어내고 멀끔한 평온을 얻는 짓이었다. 요즘엔 족집게 대신 설거지나 빨래를 개는 일에 더 집중하고 있다. 집안일이야말로 현대인의 명상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차근차근 집을 정돈하면 평온이 온다. 그래도 좀 그립다. 무성한 털을 뽑아내던 시간이. 이제 뽑아낼 털이 없으니 다른 부위라도 건드려야 하나. 털을 제모 하면 더 굵은 털이 난다는 속설이 있던데, 다시 털들이 자라나면 나는 족집게를 들게 될 것 같다.


최근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 가발공장을 취재한 걸 봤다. 수많은 직공들이 명품 가발을 만들기 위해서 손수 털을 하나하나 가죽에 심는다. 싸구려 가발은 다 기계가 하지만 내 머리처럼 자연스러운 가발은 다 수작업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발공장엔 평생을 엄청난 인내심으로 가발을 만들어온 장인들이 많다고 한다. 역시 그냥 이루어진 건 없는 건가. 하루에 십만 단위가 넘는 털들을 모를 심듯 심어나가는 장면을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감동적이었다. 다들 하나같이 귀에 뭔가를 꽂고 리듬감 있게 꿰매고 붙이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의 귀에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이나 클래식 FM이 나오고 있지 않을까. 난 다큐멘터리가 취재한 장면 이후에 퇴근을 하는 직공들을 떠올려봤다. 본드가 잔뜩 묻은 장갑을 벗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 퇴근 버스에 올라탄다. 된장찌개와 윤기가 흐르는 밥을 기대하며 어디엔가 전화를 건다. 그들은 어떻게 이런 직업을 갖게 되었을까. 설마 그냥? 난 가발을 만지는 그들에게 이상한 친밀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