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가 다 익자 근심이 사라진다

by 박민진

난 요즘 청첩장이 두렵다. 인간관계가 좁아 잦지도 않은데 버겁다. 금요일 저녁, 느닷없는 약속에 나가보니 어김없이 파스텔톤 초대장이 손에 들려있다. 얼떨결에 ‘이거였구나’ 싶어 어색한 말을 보탠다. 정말 놀라운걸. 어디서 만난 분이야. 난 집게로 고기를 불판에 늘어놓으며 의례적인 말을 보탠다. 괜스레 숙제를 받은 기분에 절인 양파를 한 움큼 씹으며 표정을 관리한다. ‘밥을 얻어먹으면 꼭 참석해야 할까?’ 꽃등심에 부정 타면 안 되는데 귀찮은 마음만 앞선다.

고기가 다 익자 근심이 사라진다. 표정은 만개하고 술자리는 활기를 되찾는다. 이성을 잃은 내 젓가락질이 현란하다. ‘내가 이 녀석 결혼식을 갈 정도로 친했던가’하는 의심도 사그라들고, 고기를 씹을 때마다 저작근이 뇌를 자극해 몸에 피가 도는 기분이다. 고기의 환락에 스며든 나는 이제야 녀석을 기꺼이 축하해주기로 한다. 그래 사랑 좋지 사랑해야 살만하지. 이것이야말로 오병이어의 기적과 다를 바 없다. ‘나라면 녀석을 결혼식에 초대했을까’라는 쓸데없는 가정도 사라지고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인다. 난 후식으로 냉면까지 한 사발 들이켜며 거나한 식사를 마쳤다.


이른 저녁 마포의 밤은 벅적하다. 연말이라 그런지 추운 날씨에도 시끄럽게 떠든다. 붐비는 지하철에 껴가며 고깃집에서 보지도 않았던 청첩장을 폈다. 식장이 안산이네, 엄청나게 멀잖아. 웨딩홀 이름은 왜 이렇게 촌스러워. 난 소용없는 불평을 읊조리며 스케줄러에 결혼식 일정을 적었다. 금쪽같은 토요일 하루가 이렇게 날아가는구나. 별 약속도 없으면서 난 끔찍이도 결혼식이 싫다. 수십 번도 넘게 본 흔해빠진 예식이 지겹다. 누군가에겐 삶에 있어 여느 때보다 중대한 그 날이 내겐 그저 또 하나의 반복이다. 오만 원짜리 봉투를 내밀고 식권과 주차권을 받아 그럴싸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다. 똑같은 양복을 입은 비슷한 나이 때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간다. 만찬장에 가면 싸구려 훈제 연어를 수북이 담아 과식을 한다. 그러면 틀림없이 불쾌해질 거고 난 소화가 될 때까지 죄 없는 신혼부부를 증오할지도 모른다. 그게 끝이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커피도 한잔해야지. 그러다 보면 늦어져서 서부 간선로는 틀림없이 막힐 거고 어느새 밤도 마음도 컴컴해지겠지. 난 저물어가는 하루가 아쉬워 급히 뭔가를 읽으려다 잠이 들겠지. 난 냉소적인 얼굴로 킬킬거렸고, 내 앞에 앉은 아주머니는 그런 나를 의심스럽게 노려봤다.

물론 날 초대해준 친구가 고맙다. 심지어 소고기까지 얻어먹었으니 감개무량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결혼식 때만 만나는 관계에 염증이 있다. 결혼 전까진 볼 일이 없었다면 과연 평생 별 볼 일 있을까. 더 나아가 이 친구와는 비슷한 데가 없어 일상을 나눌 교집합도 없다. 친구 앞에서 포크너나 쿤데라 얘기를 할 건가, 그렇다고 홍상수에 대해 수다를 떨 수 있나. 그냥 한때 시간을 나눴던 사이였고, 지금은 자연스럽게 서로 너무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느새 난 누군가의 생사고락에 영 관심이 없는 냉혈한이 되었다. 누군가를 대할 때 셈을 하고 깍쟁이처럼 실과 득을 따진다. 내 몫을 챙기느라 타인을 표정을 살필 여력이 없다. 어제 적은 글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 무력하다. 한강대교를 지나는 1호선 지하철 안에 진동하는 돼지갈비와 소주 냄새가 오늘따라 유달리 역하다. 굉음과 함께 열차가 덜컹거리며 정차하자 내 몸도 덩달아 휘청거린다.

결혼은 당사자에게 얼마나 각별한 일일까. 삶이 노선을 달리하는 시기에 경황이 없을 거다. 매일 저녁 그동안 연락도 안 하던 지인을 만나 저녁을 먹고, 의례적인 말을 늘어놓으며 멋쩍은 표정을 짓는 일은 생각만 해도 고역이다. 어디 그뿐인가 집도 구해야 하고 그 어렵다는 신혼여행 일정도 짜야한다. 친구는 식장을 예약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말끝마다 너희는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을 붙이며 침을 튀긴다. ‘그래 넌 재주가 용하니 두 번 더 해봐라’ 난 연신 맞장구를 치며 고기를 뒤집기 바쁘다. 아마 녀석도 하객을 모아야 한다는 압박에 오늘 자리를 마련했겠지. 누군가의 성화에 못 이겨 나를 카톡 리스트에 올려놓고 과연 이놈을 초대하는 게 맞는지 한참을 고민했을 것이다. 이번 한 번 뿐이라는 일념으로 오늘 술자리를 만들었겠지. 난 고기로 가득 찬 배를 문지르며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생각을 떨쳐내려 애썼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 길에 덩그러니 놓인 자전거를 보니 몇몇 기억이 떠오른다. 이번 주말에 결혼반지를 맞추러 간다던 녀석은 한때 자전거에 돈을 쏟아붓던 이른바 자전거 애호가였다. 난 녀석과 자주 한강을 배회했다. 시간만 나면 양평과 여주를 찍고 돌아와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때 나눈 이런저런 말들이 희미하게 느껴진다. 무슨 얘기를 했었던가. 지친 몸으로 벤치에 앉아 노을을 보며 몇 시간을 떠들었다. 짐짓 심각한 얼굴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힘은 넘치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던 때였다. 생의 좌표를 엉뚱한 곳에 찍고는 현실적이지 못한 미래를 계획했다. 취업과 공부라는 갈림길에서 가족과 애인 그리고 사회의 평판을 의식하느라 도통 내가 아닌 것 같은 선택을 감내했다. 조금은 무구하고 달뜬 녀석의 까만 얼굴이 선연하다. 그때 우린 각별한 사이였을까. 녀석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기억에만 존재하는 또 다른 나 자신을 의식하며 청첩장을 다시 물끄러미 살펴봤다.


나는 왜 이토록 결혼식이 싫은가. 그건 나 스스로 정상 궤도를 이탈한 사람이라는 불안을 품기 때문이다. 별 볼 일 없는 글을 쓰고, 밥벌이와 먼 문학에 천착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세상과 거리를 두고 고립을 자처한다. 난 모두가 열심히 어딘가를 향해 정진할 때 샛길로 빠져서 쓸데없이 빈둥대고 있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보편적인 코스를 거스르고 무용지물과 씨름한다. 누군가가 새의 순리를 말할 때 쌍심지를 켜고 비꼰다. 그리곤 어느 카페 구석에 틀어박혀서 일류 작가의 글을 읽으며 전율한다. 순종적으로 일주일을 버틴 나를 위한 보상이랍시고 책과 영화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난 뻔한 패턴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득의양양하다. 굳이 나 없이도 사람이 득실거리는 예식장에서 약소한 봉투를 내밀기 싫다. 서부 간선로에 갇혀 저녁노을을 흘려보내긴 더더욱 싫다. 그래서 난 카톡으로 넉넉한 돈 봉투를 만들어서 보냈다. 톡으로 솔직하게 미안한 마음을 전달했다. '그 날은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밥까지 거하게 얻어먹었는데 미안하다.'


토요일 아침이다. 허기를 붙들고 스타벅스에 둥지를 텄다. 뭐라도 주워 읽고 어렵사리 몇 자 적으니 마음이 놓인다. 시간이 지나서 오후가 되니 평생 간헐적이지 못했던 내 배가 요동친다. 스타벅스의 값비싼 샌드위치와 과일, 크루아상과 커피를 시켰다. 조금 모자라서 페퍼민트 차에 케이크도 하나 먹는다. 스타벅스 직원은 마구잡이로 시켜대는 나를 위해 포크를 네 개 준비했지만, 난 공손하게 세 개의 포크를 반납했다. 훌륭한 작가는 대부분 말랐던데 난 걸출한 작품을 쓰긴 글렀다. 그건 그렇다 쳐도 영수증에 찍힌 꽃등심 반 근 가격에 기분이 상한다. 그래도 오늘은 은희경의 <빛의 과거>를 꽤 읽었고, 인디포스트에 기고할 글도 보냈으니 실적이 괜찮았다. 녀석에게 보낸 카톡은 1이 지워지고도 답이 오진 않았다. 결혼 준비에 바빠서 그렇다고 믿어버렸다. 가방에 책과 노트북을 챙겨 넣고 외투를 걸치고 추운 겨울로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