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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Dec 18. 2016

오직 홀로 된 이들이 살아간다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혼자 사는 사람이 많다.

혼자서 산지도 이제 10년이 넘어간다. 내 20대는 혼자서 산 기억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혼자 사는 이들이 등장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흥미롭기보단 지겹다. 혼자서 TV를 보고, 발가락을 후비는 독거남들은 나와 유사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노출한다. 하지만 TV 속의 싱글들은 탄탄한 경제력과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자의식으로 무장한 네오 싱글이 아닌가. 나름 공감대를 가지려 접근했던 나는 그들의 자랑질이 당황스럽다. 그들은 혼자 살면서도 전혀 불편하게 없다는 듯 거액을 들여 집을 꾸민다. 화려한 주방에서 시간과 공을 들여 완성한 요리를 혼잣말을 중얼대며 먹지를 않나, 가끔 손님을 초대하고 자기 침실을 소개하는 이해 못할 짓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혼자 산다면서 청결한 상태의 집을 유지하고 있다. (가끔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요즘엔 더러운 집을 방치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서울의 원룸 빌라는 이제 교회당보다 많고, 혼자 사는 가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내 주변에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모두들 TV 속 그들처럼 다들 잘 먹고 잘 살고 있을까. 아니면 나처럼 라면물을 끓이며 세탁기의 종료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까. 영화와 소설 속의 독거남들은 좀 다르지 않을까.

외젠 이오네스코 '외로운 남자' Le Solitaire

외젠 이오네스코 <외로운 남자>, 노동을 벗어던진 남자의 이야기

최근 자주 가는 종로의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외젠 이오네스코'의 <외로운 남자>라는 책을 골라 들었다. 그때 딱 가게 옆 괜찮은 카페가 눈에 보였고, 금세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노동을 하며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살던 파리의 15년 차 독거남은 어느 날 친척이 남긴 예기치 못한 유산 덕분에 즐겁고 행복하게 살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쉬운 인생이라면 이 이야기가 세계문학전집에 실리진 못했을 것이다.

남자는 결국 거대한 유산을 통해 지겨운 조직에서 벗어났지만, 직장생활을 하며 조직의 개 노릇을 할 때는 아무런 고통도 없던 인생의 부조리함이 비로써 자유의 목마에 올라타자 훤히 내다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결코 고독하지 않게 살고 싶었으나, 삶은 행복과 자유를 갈망할수록 고독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나이 서른다섯이면 인생 경주에서 물러나야 한다. 인생이 경주라면 말이다. 직장 일이라면 나는 신물이 났다. 예기치 못했던 유산을 물려받지 않았더라면 난 권태와 우울증으로 죽고야 말았으리라” 그는 소설의 서두에 이렇게 인생을 확신하며 직장을 그만두었으나, 결코 우울과 고독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의도치 않게 만난 행운으로 인생의 행복을 쟁취했다고 믿었지만, 세상과 우주는 결코 자신이 원했던 모습대로 생긴 게 아니었다.

이렇게 혼자 사유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사실 행복함보다 많은 외로움과 고민거리를 앉게 된다. 하루하루 이오네스코의 말대로 개처럼 끌려가는 인생일 때는 결코 알지 못했던 고통이 찾아오는 것이다. 조악한 비유일 수 있지만, 로또 1등이 된다고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통계적으로 노동을 중단한 당첨자들은 대부분 파산했다. 그만큼 젊고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노동을 포기하는 순간의 환희는 길지 않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는 그저 직장 때문에, 경제력 때문에 등등 여러 가지 가 있다. 하지만 결국 혼자됨으로 해서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불편함과 외로움을 감수하고 선택을 한 것이다.(난 사회적 여건 때문에 강제적으로 혼자가 되었다고 믿지 않는다.) 이런 이유이다 보니 혼자 사는 사람들이 문화예술이라는 매개체에 집착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영화, 책, 음악, 자전거, 노트북 등 친구가 될 만한 녀석에겐 몽땅 맘을 준다. 이오네스코 역시 혼자가 되었을 때 예술작품을 통해 인생의 목적을 찾으려고 했다. 그만큼 혼자가 된 이는 문화생활과 취미에 투자하는 돈만큼은 잘 아끼지 않는다. 작은 카페에 혼자 앉아 책을 읽는 이오네스코의 모습이 눈에 띈다. 그에겐 고통스러운 사유는 죽음의 이유가 아니다. 그에게 철학과 사회비판은 삶의 본질을 느끼는 행위일 뿐이다. 노동과 사회여건의 고통이 삶의 본질을 향한 고민으로 치환됐을 때, 삶이 인력과 척력으로 작동하는 유기체라는 걸 비로써 이해하게 된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Only Lovers Left Alive, 2013

짐 자무시의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미국 디트로이트와 모로코 탕헤르라는 먼 거리에 떨어져 지내는 뱀파이어 커플 아담과 이브가 있다. 수세기에 걸쳐 사랑을 이어온 이들이지만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 활동 중인 아담은 자신의 창작생활에 대한 염증으로 절망에 빠져 있다. 이브는 그를 위로하기 위해 디트로이트행 밤 비행기에 몸을 싣고 마침내 두 사람은 재회한다. 서양사부터 미국 대중문화를 아우르는 지적인 대사를 읊고, 모로코의 이국적인 카페에서 문학을 논하는 뱀파이어들은 한국에서 보면 딱 된장 냄새나는 커플이다. 그들이 마시는 피는 더 이상 살육을 통해 얻지 않는다. 에스프레소 원액을 내려마시듯 딱 필요한 양만 주문해 마시고, 많은 말이 없이도 다 안다는 듯 미소 짓는다.

두 사람은 소통할 수 있는 존재란 서로뿐임을 잘 알고 있다. 두 사람은 같이 살지 않지만, 아담은 디트로이트의 작은 원룸에서 록 음악을 하면서도 그녀를 자신의 영감의 샘처럼 생각한다. 이브는 모로코에서 역사와 문학에 흠뻑 빠져 살고 있다. 둘은 사랑하고,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결코 같이 살지 않는다. 재밌는 점은 두 사람이 재회한 계기가 된 아담이 가진 세상사에 대한 염증이라는 것이 결국은 예술적인 영감이 다 떨어졌을 때 발생하는 허기라는 점이다. 누구보다도 오랜 시간을 살아온 존재이고, 죽음에 대한 공포심도 없다는 건 어떤 삶인까. 게다가 경제력까지 원하는 대로 갖추고 있는 이 흡혈귀들의 고민은 ‘염세’다. 너무 오래 살아서일 수도 있지만, 인생이란 그들이 벗기고, 갈기갈기 찢고, 다시 조립해 봐도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난제로 돌아온다. 그들이 결국 하는 일이란 혼자가 되는 것, 그리고 예술적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문화에 천착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제목이 뜻하는 ‘오직 사랑하는 이’의 조건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닌, 예술과 문학에 집착하는 자신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Only Lovers Left Alive, 2013


이 지독한 염세를 뒤로하고 살 수 있을까. 권태라는 친구는 염세적인 당신을 덮쳐올 게 분명하다. 영화에서 두 사람이 왜 동거를 선택하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도 여기서 시작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권태가 관계의 종식으로 이어질까 겁을 낸다. 두 사람의 짧은 대화와 전화를 통해 하는 고민들은 직접적인 애정의 과녁을 빗겨 난다. 그저 서로의 동선을 존중하고 비켜서는 단출함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스스로 행복해지길 갈망하는 싱글족들의 삶은 조졸하다. 보편적인 가치에 관한 환멸과 예술적 성취에 대한 무한의 애정이라는 복합적인 감정 역시 이 뱀파이어들과 유사하다. 예술 애호적이고 현학적인 취미를 가진 두 뱀파이어는 결국 아무리 오래 살아봤자 혼자인 것이 가장 속 편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영화는 뱀파이어를 소재로 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결국 따져보면 혼자서 칩거하며 개인적인 삶의 영위에 딱 필요한 돈과 음식만을 섭취하는 시대의 싱글들에 대한 은유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채 인간의 목을 베어 무는 클래식한 뱀파이어는 이제 예술적 영감을 갈구하는 보헤미안이 되어 나타났다. 35살이 된 이오네스코는 노동을 벗어던지고 생각을 하게 되자 더 큰 고독에 부딪힌다. 우리의 거리에는 지금 이오네스코와 뱀파이어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그들은 어떤 이유로 무엇에 천착하여 어떤 예술을 논하고 살고 있을까. 그저 야근을 업으로 여기는 샐러리맨은 ‘진짜’ 혼자가 된 삶을 갈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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