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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Dec 24. 2016

혼자서 밥을 먹는 남자

영화 <그녀> her 2013, <공기인형> Air Doll 2013

보통은 회사 구내식당을 이용해 저렴하게 세끼를 때우지만, 어느 날 만큼은 회사에서 벗어나 정말 맛있는 밥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얼른 회사를 빠져나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혼자서 식사하기 좋은 식당을 찾아 나선다. 시내의 골목들은 좁디 조미만 식당들은 그득 차 있다. 마치 알을 머금은 해파리처럼 기괴한 모습으로 보인다. 그 많은 식당 중에서 괜찮아 보이는 외관을 한 곳을 찾는다. 스윽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가장 크게 적힌 메뉴를 주문한다. 최근엔 한 덮밥집에 들어가서 연어덮밥을 먹었다. 생연어에 소스 조금 뿌린 밥이랑 나오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무엇보다 양이 든든하다. 홍대돈부리라고 몇 개의 체인이 있는 집인 것 같은데, 맛도 맛이지만 우선 혼자서 잡지를 읽으며 식사하기에 좋은 조용함이 좋다. 대체로 돼지 덮밥 아니면 연어덮밥이 팔린다. 손님들은 들어오자마자 덮밥 하나, 연어 하나를 말하고는 자기 할 걸 하고 기다리는 식이다. 자리에 앉으면 된장국 하나를 주는데, 그 냄새가 아주 구수하다. 금세 한 밥에 싱싱한 생연어를 얹어주는데, 소스와 연어의 향이 또 엄청나게 자극적이다. 

홍대돈부리 연어덮밥

살아 있는 양 탱글탱글한 연어살과 무한대로 제공되는 밥과 된장국으로 난 내 허기진 배를 달래준다. 주인이 특별히 친절하지도 말을 걸지도 않는다. 그저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말만 하세요'라는 얼굴로 주문을 받는다. 가게의 외관은 허름하지만, 청결한 점이 맘을 끌었다. 요컨대 아주 조용하고 담백한 식사를 했다. 일식집이라 그런지 밥이 설게 나오지만, 쌀이 달아 쑥덕쑥덕 잘도 넘어간다. 아마도 품질이 좋은 쌀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물 대신 제공되는 냉보리차도 별미다. 무엇보다도 요리를 기다리는 중에 연어를 써는 모습, 돈가스를 튀기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어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다. TV와 시끄러운 음악이 없다는 점도 딱 내 스타일인 것 같다. 혼자 오는 손님이 유독 많은 홍대돈부리는 아마도 이런 콘셉트로 지점을 늘려가고 있는 듯한데, 직장과 조금 멀어서 오랜 시간 걸어야 하는 단점 말고는 아마도 당분간 내 저녁식사를 책임져 줄 식당이 될 것 같다. 난 이십 분 만에 해치우고 문을 나섰다.


영화 그녀, her 2013

주말에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를 그린 허(그녀, 원제 her)라는 영화를 봤는데, 혼자 사는 노총각이 주인공인 작품이라 혼밥 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혼자 식사하는 사람의 특징은 대화 상대가 없다 보니 무언가를 보고, 읽거나 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하는 '테오도르'라는 남자는 남에게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하고 있다. 낯선 이에 빙의해서 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이게 사랑을 고백하는 문장을 능숙하게 쓰는 테오도르는 정작 본인의 연애에는 수월치 않아 보인다. 우연이 퇴근길에 테오도르는 운영체제(OS)를 구매하게 된다. 이후부터 스칼렛 요한슨 버전의 목소리를 가진 '사만다'라는 운영체제는 인간보다 더 테오도르를 이해해주는 존재가 된다. 외로운 남자 테오도로는 OS 운영체제를 사귀면서 점점 더 행복에 젖게 된다. 그녀의 목소리와 대화를 하며 식사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먼 미래엔 분명히 유효할 것으로 느껴지는 장면이다. 그녀는 지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테오도르에 완전히 부합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한다. 심지어 일종의 폰섹스까지 할 수 있다. 단순히 대화 상대가 있다는 점뿐만이 아니라, 그녀가 컴퓨터답게 검색도 해줘, 편지도 써줘, 뉴스도 알려주고, 메일로 읽어준다. 노래도 잘하고 목소리는 어찌나 섹시한지. 물론 OS와 사랑하는 것은 부럽지 않았지만, 식사하는 중에 내가 원하는 정보는 취해서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느낌을 선사했다. 또한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가 가진 허스키한 기운은 성적인 말 없이도 섹시함을 가득 품은 느낌을 준다.

영화 그녀, her 2013

아마 나 말고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은데 혼자 식사하며 뉴스를 읽고, 책을 읽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혼자 사는 남자들은 늘 빠른 속도로 단순한 덮밥류의 간편식을 흡수한다. 식사를 멈추고 책장을 넘기거나, 링크를 누르는 것은 어설프고 복잡한 일이다. 나같이 성질 급한 놈은 아 빨리 다 먹어버리고 자리를 뜨길 원한다. 하지만 사만다와 함께라면 그럴 걱정은 없다. 그녀와 함께라면 사랑까지는 몰라도, 혼자 하는 식사의 즐거움만큼은 보장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이 영화가 말하려는 무언가,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사랑까지 자신의 편의에 맞춰 구축하려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어긋한 해석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사람 여자와 단둘이 식사하는 장면도 있다. 이혼하려는 여친과,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와의 장면이 그것이다. 웃긴 점은 이 장면마다 감독은 갈등의 씨앗을 불어넣는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먹는 행위보다 서로의 소통이 중요한 타인과의 식사 장면에서 소통하는 방향성은 무참히 어그러진다. 무언가 대화가 될라치면 눈을 피하고, 다툼이 생겨난다. 그리고 실망했다는 듯 고개를 돌리는 장면이 이어진다. 내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상대의 기분대로 대화를 맞춰야 하는 식사자리는 불편하다. 영화에서 그가 맛있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여성은 들어주는 화답하는 OS 속 사만다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테오도르의 오랜 친구인 에이미가 남성 OS애인과 대화하며 커피를 마시는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과연 어떤 사람일지에 대한 의문부호를 확장하는 것이다. 에이미를 바라보는 테오도르의 눈빛은 기쁨이 아닌 허탈함에 가깝다. 

공기인형 空気人形, Air Doll, 2009

이와 비슷한 예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공기인형>을 들 수 있다. 혼자 사는 일본의 독거남들은 섹스돌을 앞에 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식사를 한다. 하루 종일 상사의 지시만을 받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퇴근을 해서 집에 들어올 때까지 그는 많은 것을 듣고 생각하지만 결코 자신의 것을 입밖에 꺼내어 놓지 못한다. 오로지 말없는 섹스돌만이 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고, 들어주는 상대인 것이다. 그는 식은 도시락을 우걱우걱 씹으며 아무런 눈치도 안 보고 그녀에게 자신을 털어놓는다. 아마도 현재 우리에게 식사를 한다는 것만큼 현대사회의 소통의 단절을 야기하는 주요한 모티브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그녀>와 <공기인형> 속 독거남들은 항상 게임을 하거나,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식사를 한다. 가까운 미래에 관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것이 현재의 내 모습과 너무나 겹쳐 보여 마음이 시큰해지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우리는 결국은 혼자서 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 운명 앞에 어떤 식으로 순응하게 되어 있는 걸까. 난 내 앞에 놓인 근사한 연어덮밥을 입에 넣으며, 편히 눈 둘 곳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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