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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Jan 08. 2017

입이 짧은 그녀의 마음고생

영화 <도희야>

내가 먹는 양이 많다 보니 좀 어렸을 땐 입이 짧은 친구가 부러웠다. 몇 년 전 같이 일했던 직장 후배 녀석이 딱 그랬다. 몇 숟가락 먹지도 않았는데 바로 수저를 놔버린다. 난 아직 먹고 있는데 너무한 거 아냐, 그런 눈으로 녀석을 쳐다보면 살짝 미소 지으며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선배 죄송해요 제가 입이 짧아서. 내게 그 모습은 욕구의 절제이자, 비인간적인 처사였다. 내 배는 아직도 성이 나서 남은 김치찌개에 남은 밥을 비벼먹으려는 참인데 벌써 커피를 사러가는 녀석의 등이 보인다. 그러고 보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 속 캐릭터 중엔 영화에 먹는 장면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특이한 점은 먹는 신에서 먹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포인트다. 무언가에 대해 고뇌해야 한다든지 상대와의 대화에 여념이 없어 음식은 안중에도 없는 그런 캐릭터가 좋다.(본격적인 먹방엔 관심이 없다.) 가령,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미카엘이 그렇다. 좌파 성향의 기자인 미카엘은 늘 생각하느라 바쁘다. 그는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시켜놓고 신문이며 TV를 보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중요한 사건의 단서가 생각나면, 방금 나온 따끈한 양고기 샌드위치를 모른 척하고 문을 나선다. 한 입 베어 먹으면 좋을 텐데, 그에겐 사건이 더 중요한 것이다. 담배 한 갑을 사서 한 개비 피우고 다 버리는 그 과감함! 욕구보다 일이 더 우선인 도시남자 멋지지 않은가.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2011

이런 장면도 좋다. 해리슨 포드 주연의 <도망자>(The Fugitive, 1993)에서 열차에서 탈출한 '리처드 킴블'(아직도 이름을 외워!) 박사는 생사를 건 도주 중, 그 과정에서 생긴 자신의 복부 외상을 치료하기 위해 한 시골 요양병원에 몰래 스며든다. 그는 전문의답게 스스로 자신의 몸을 치료하기 위해 아무 병실이나 들어간다. 그는 환자 옆에서 자신의 몸에 주사도 놓고, 찢어진 환부를 꼬매며 몸을 원상복구 시키는데 최선을 다한다. 치료 중에 그는 환자 옆의 샌드위치를 발견하고 몇 입 먹고는 그 자리를 떠버린다. 삼분만 먹으면 다 먹을 수 있는 것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복도를 스쳐 지나가는 형사의 눈빛을 피해 미련 없이 병원을 떠난다. 그에게 샌드위치는 마치 남은 도주생활을 위한 탄수화물 덩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모양이다.


내가 이런 식욕에 무덤덤한 캐릭터들의 모습을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단순하다. 내가 워낙 워낙 먹는 걸 즐기다 보니 무언가에 열중 해 먹는 것을 등한시하는 입이 짧은 녀석들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십 년 가까이 항상 몸무게를 신경 쓰는 나 같은 사람에겐 그럴 만도 한 것 같기도 하다. 요즘엔 저녁을 맛있게 섭취할 권한을 얻기 위해 점심시간을 쪼개 하루 40분씩 운동을 하고 있다. 근력운동과 러닝머신을 낑낑거리며 하고 나오면, 배가 밥을 달라고 요동을 치는데 그제야 난 환한 미소로 점심밥을 사 먹으러 갈 수 있다. 칼로리와의 싸움, 지방과 근육과의 신경전. 언제쯤 이 지겨운 싸움에서 승과 패가 나뉘어 신경 쓰지 않고 승복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고등학교 땐 라면 4개를 혼자 끓여먹었다. 그렇게 먹어도 살은 잘 찌지 않았다. 특별히 많은 칼로리를 소비한 것 같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러다 보니 더 열심히 먹었다. 아침을 집에서 먹고 등교하면, 매점에서 햄버거와 라면을 먹었다. 점심 급식을 타 먹고, 바로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사 먹었다. 저녁엔 저녁밥과 야식을 꼼꼼히 챙겨 먹었다.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좋아하는 영화를 닥치는 대로 보고, 몸에 나쁘다는 것만 골라 먹었다. 그리곤 다음날 학교에 가서 엎드려 잘도 잤다.

도망자The Fugitive, 1993

대학시절 룸메이트는 이상한 다이어트로 날 감명시켰다. 그 친구는 게임을 무척 좋아했다. 특히 FM이라는 축구게임에 몰두하면 내가 들어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집중했다. 이 친구의 다이어트 요령은 게임에 빠져 식음을 전폐하는 것이었다. 자기가 게임 속에서 유명한 축구감독이라도 됐는지 밥 따위는 관심도 없다. 오로지 팀을 위해서 헌신하고 선수들을 챙긴다. 에스프레소 커피만 연신 마시며 게임에 질 때면 맛있는 욕을 찰지게 하던 녀석. 지금은 뭘 하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네. 피폐한 얼굴로 아침에 일어난 날 보며 우승했다고 좋아하던 그 친구가 보고 싶다.


결국 다이어트의 성공 요령은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밀레니엄>의 미카엘은 취재에 집중했고, <도망자>의 킴블 박사는 누명을 벗는 데 집중했다. 대학 친구는 축구감독이 되는 게임에 집중했는데, 나만 집중을 잘 하지 않아서 살이 찌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요즘 영화들은 게걸스럽게 먹는 먹방을 중간중간 삽입 해 군것질이 무지하게 당긴다. 난 배고프면 신경이 곤두서고 짜증을 쉽게 낸다. 한 번은 너무 배가 고파 회사에서 힘없는 표정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과장이 내 등을 치며 허리 좀 피고 일하라고 내 등을 퍽하고 쳤다. 소리도 크게 나고, 상당이 아팠는데, 문제는 영혼 없이 일하던 내가 그 입식타격으로 짜증이 솟구쳤다는 점이다. 순간 고개를 휙 돌리고, 뭔가 지껄일 뻔했는데 얼마 남지 않은 의식이 한 귀퉁이에서 밥줄 보존을 위해 참으라고 타일러주더라. 자고로 굶는 다이어트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여기 또 다른 다이어트 법이 있다. <도희야>라는 영환데 다들 아시다시피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섹션에 초대되어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아동학대와 동성애, 가정폭력, 성 소수자 차별, 외국인 노동자 차별, 노동 쟁의 등 갖가지 문제가 점철된 마을에 전근을 오게 된 여경 영남(배두나)은 동성애자다. 그 사실을 숨기고 근무를 하다가 사생활이 더럽다는 이유로 지방에 좌천된 신세다. 자세한 얘기는 해주지 않지만, 아무래도 그녀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사랑과 강제로 헤어져야 하는 아픔을 맛 본 모양이다. <도희야>는 사회적 소수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거친 세상에 견뎌내는 가를 세심하게 지켜보는 작품이다. 영남은 파출소장이라는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도시에서 제 기득권을 찾지 못한다. 경찰대학 출신이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로 망신이라며 조직 내에서 지탄받는다. 사랑하는 이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마음, 폭력적인 시선의 노출까지.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도희 역시 영민한 머리와 아름다운 춤 솜씨를 가지고 있지만, 가정폭력의 사슬에 묶여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알아보고 구원을 위한 연대를 시작한다.

영남은 특이하게도 퇴근 후에 생수병에 소주를 담아 무던히도 마셔댄다. 경찰이라는 신분과 시골마을이라는 노출된 공간이 신경 쓰였던 그녀는 몰래 시내에서 소주를 사서 고육지책으로 생수병에 담아 마신다. 신기한 점은 그녀는 퇴근하자마자 소주를 마시기 시작해 잠이 들때까지 밥을 먹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직장에서 먹고 왔다거나, 혹은 먹는 장면을 생략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철저하게 영남이 음식(밥)을 먹는 행위를 영화에 비추지 않는다. 그저 소주만 하염없이 마신다. 난 걱정이 된다. 저렇게 마른 몸에 필수 영양소 섭취가 없으면 쓰러지는 거 아닌가. 그녀는 거실 한 귀퉁이에 안장 제복 단추 두 개만 풀고, 차가운 소주를 넘기고는 크게 한 숨을 쉰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 이상의 음식물은 필요치 않아요, 그냥 이대로 잠들면 그만이에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남은 마음고생이라는 최고의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 술을 마시는 여자 역시 사회적으로 눈총을 받는 약자다. 그녀는 이 시골에서조차 이리저리 치여 완전히 형태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다. 생수병의 강소주만이 그녀를 위로해준다.

요즘 먹방이 유행이라는데 혼자 사는 가구가 많다 보니 밥을 혼자 먹기 싫어 먹방을 보며 끼니를 때우는 거라는 어느 신문의 사회면을 읽은 적이 있다. 박사까지 땄다는 사람이 하는 분석이 꽤 재밌어서 끝까지 읽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일리가 있다. 나도 하루의 한 두 끼는 혼자 먹기 때문이다. 처음엔 좀 힘들었다. 혼자서 밥을 사 먹고, 커피를 마신다는 게. 하지만 이젠 꽤 익숙하다. 혼자가 편해진 것이다. 내 식욕에는 외로움이라는 마음고생도 결코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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