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인내는 나의 미덕, 나의 무기

나의 무기를 창밖으로 던져버린 날에

by 김문정

수시를 아홉 달 남짓 남긴 딸을 옆에 태우고 대입 학원상담을 위해 서울로 운전하여 가던 토요일이었다. 우리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서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며 고속도로를 진입하려던 차, 차에 하이패스가 장착되지 않은 터라 우측 깜빡이를 켜고 현금전용 길로 조금 급하게 진입하며 통행권을 뽑으려 했다. 뒤에 직진으로 오던 소형 흰색화물차를 인지하고 있던 터였다. 그 트럭을 먼저 보내기는 애매한 거리의 차선이라 안전거리임을 확인하고 우측 깜빡이와 함께 속도를 내었다. 직진이었던 그 트럭과 내차의 거리는 충분히 안전거리였으나 그건 내 생각이니 차선을 바꾼 미안함에 창을 열어 왼손을 빼내어 치켜들어 진심으로 미안함을 표시했다. 순간 뒤에서 경적이 빠아아아아앙~ 늘어지게 울려댔다. 통행권을 뽑고 차 창문을 급히 올리며 화났네, 화났어. 또 시작된 여자운전자이면 반드시 들어야 할 쌍욕 대잔치가 시작될 것을 직감했다. 수순은 분명하다. 여성비하를 저변에 깔고 읊어대는 수위조절불능 언어의 만행..


내가 잘못함을 충분히 알고 있고 미안함을 표시한 것으론 부족한 모양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그 운전자에겐 생명의 위협으로, 또는 진로를 방해하는 도전으로 다가왔나 보다.

한 개의 차선이 여러 길로 벌어지는 차선에서 그의 흰색트럭이 내 운전석 가까이 바싹 다가와 붙었다. 매우 위협적이다. 그 역시나 예상한 모드였기에 침착함을 유지하라고 나의 뇌는 따라오는 경적소리만큼 경보를 마구 울려댔다.

나는 옆으로 붙는 트럭에 속도를 맞추며 노려보며 욕설로 뻐끔대는 그를 향해 차 창문을 내렸다.

“야,ㅇㅇ년아!”

역시나, 미친 듯 뛰는 심장박동소리에 먹혀버릴까 크게 말해버렸다.

“왜 욕을 하세요? 길을 몰라서 그런 건데 “

그 말이 기름이 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상황은 더 악화되고, 욕설은 더 노골적이다.

“뭐 이 ㅇㅇㅇ이 ㅇㅇ을 하고 있네, 모르긴 뭘 몰라, ㅇㅇ“

통통하고 붉은 볼에 흐트러진 곱슬머리, 앳된 모습이 우리 아들보다 서너 살 위정도?? 목소리엔 아직 청년의 여물지 않은 어린 사람의 어투가 묻어 나왔다.

“야! 계속 욕할래? “

짧은 찰나에 보이는 일그러지고 뒤틀리는 그 애의 입술

옆에 앉은 딸이 내 오른팔을 꽉 움켜쥐었다.

내가 여자운전자라는 이유로 트집 잡히지 않기 위해 방어운전, 준법운전 삼십 연차 운전자. 남녀평등 세상이 변할 대로 변했어도 찻길 위에서 한번 트집 잡히면 존엄 따위 개나 줘버려야 할, 아니 똥이 돼야 할 여자운전자다.

딸아이가 옆에 있다. 아이가 넷이니 평생 아이가 옆에 있었다. 한 명, 많을 땐 네 명이 내차에서 학원가며 밥을 먹고, 숙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잠을 자고, 노래를 하던 곳이다. 이 이동하는 두 번째 집에 위험을 가하는 일은 절대 없으리라 마음먹고 부당한 일이 있어도 반항 한번 못해보고 숨죽여 살은 여성운전자.

어린 자가 계속하여 내게 ㅇㅇ년, ㅇㅇ년,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사람을 향한 각양각색의 욕을 내뱉는다. 오늘은 지기 싫다.

“야, 인마! 인생 길다~ 입에 걸래를 물고 자니?”

“뭣이 ㅇㅇㅇ이!!!”

그 뒤로 쌍소리 릴레이를 하길래 나도 질세라 앵무새처럼 그의 소리를 따라 받아쳐 주었다. 내 글이 더 못나질까 담지 못할 소리.

그리고 소리가 멀어져 더 이상 그가 무어라 하는지 들리지 않을 때 창문을 서서히 올리고 나는 오른쪽길 서울로 빠져나간다. 그 차가 곧 벌어지는 갈림길에서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갈 것을 짐작했기에 온전히 감정이 폭발하는 대로 소리칠 수 있었다.


“딸! 미안해… 부끄러워??”

딸아이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고, 아이는 정면을 응시한 채 아무 말도 없었다.